마태복음5:6절을 보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인생입니다
내세를 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들은 가능한 의롭게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고 그것이 인생의 본성이라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내세에 가면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염라대앙이라는 말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생들이 죽으면 내세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서 더욱 더 의롭게 아니 나름대로는 세상에서 의를 행하면서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패러다임입니다
인생이 한번 배운 사상에서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에서 벗어나려면 패러다임이 변해야 하는데 그런 일이 인생에게는 거의 있지를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정도가 되려면 정말 강한 충격으로 와야 하는데 더구나 내세를 생각하는 그런 사상은 쉽게 바뀔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누가 압니까?
누가 이것이다. 라고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누가 갔다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물론 종교인들 중에서 내세를 갔다 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본 것에 대해서 아주 리얼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고 종교인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그것이 마치 사실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그렇게 우리에게 설명할 수 있는 것 같으면 성경에 기록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피조물들입니다. 그리고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그것 한 가지만 생각을 해도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갔다 왔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압니다.
간증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 적이 없는데 그가 입신체험을 했다는 것을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그것을 저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고 말할 사람이 있겠지만 그것 역시 인생의 이성적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말씀 그대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말씀 그대로 우리 인생이 죽은 후의 일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성경은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성경을 보기보다는 스스로의 생각에 사로 잡혀서 자기들이 상상하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것을 듣는 것을 마치 사실인 것과 같이 듣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합니다.
우리 인생은 한번 죽는 것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초적인 말씀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죽으면 끝입니다.
저 김병덕이라는 인생도 죽으면 끝입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을 얻는 자 되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인생은 죽으면 성경에 있는 말씀 그대로 저는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이상을 성경에서는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죽은 후에 무슨 누구에게 가서 심판을 받고 하는 것은 다 인생들의 상상력이지 실상은 죽으면 우리는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입니다
죽으면 마치 영화에서 보는 것과 같이 인생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고 그것이 자유자제로 이동을 하는 것과 같이 그리고 이 자연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과 같이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습니다. 그런 사상이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까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성경입니다
우리 성도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것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의 상상력까지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상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기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고 그래서 인생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가 의롭게 살기를 원하고 있고 실제 그래서 이 세상이 존재를 한다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그것이 본성입니다
인생은 누구나 그렇게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미 배운 것이 자기들이 알고 있는 것이 그렇기 때문에 더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더욱 의롭게 살기를 원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종교 안에서 율법주의로 계속해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 내세의 심판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주님께서 마태복음에서 열 처녀의 비유와 달란트의 비유와 양과 염소의 비유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더욱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초입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3장에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말씀이 기초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성경을 주신 목적은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심으로 해서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만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에 있는 말씀만 하시기 바랍니다. 성경 외에 있는 말을 하는 사람은 다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가 아무리 이 시대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성경에서 말씀을 하지 않는 내세를 갔다 왔다고 하는 사람은 자기가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 혹시 꿈이나 환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지 그것이 실제 내세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은 정말 성경을 너무 무시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외에 있는 말들을 너무 좋아하고 있습니다. 마치 세상에서 가십거리를 찾는 사람들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재미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기 까지 하고 있습니다.
왜 성경을 봅니까?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보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는 성경에서 이 영생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내가 믿어지지가 않으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지혜롭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지금 종교는 거의 감성주의에 빠져 그런 가십을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감성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으면서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내세의 일입니다. 말씀을 하지 않았으면 이유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믿기보다는 자기가 알려고 하고 그런 가십거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말에 너무도 쉽게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천국에 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의 말을 듣고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미 성경에서 다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성경에서 지혜를 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런 이야기를 아주 말 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자기도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습니다.
천국입니다
누구나 다 가고 싶은 마음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은 가고 싶다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성경을 아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3:6절을 보면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빌립보서3:8절을 보면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의입니다
의로움, 의라는 뜻이 있는 헬라어의 단어입니다. 이런 단어의 뜻을 정말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한글 개역성경으로도 얼마든지 그 뜻을 알 수 있는데 이 시대 종교인들은 지적으로도 교만함에 이르러 이런 것을 말씀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 슬프기도 합니다. 제가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이 의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의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이 살면서 율법이나, 도덕이나, 성실이나, 정직이나 그런 것이 바른 것을 의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인생들이 말을 하는 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의 단어 역시 그 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인생이 살아갑니다.
아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하면 의롭게 살아야 내세에 들어가서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좋은 것으로 자기들이 원하는 천국으로 간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주님께서도 지금 인생들의 생각을 아시고 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천국에 가기를 원하고 그래서 의로운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그 의를 말씀을 하고 있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인생들이 생각을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의로운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종교 안에서 열심히 율법을 지키고 있는데 주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의 생각과 주님의 말씀은 이질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 인생들의 생각에 따라 의로운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해서 율법을 정말 잘 지켰고 그래서 스스로가 생각을 해도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사도 바울의 인생의 생각에 따라 하나님을 믿으면서 율법을 지켰고 그래서 흠이 없는 의를 가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해서 살았고 그래서 흠이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고 하는데 주님께서는 그런 사도 바울이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켜 흠이 없는 의를 가진 사도 바울이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3장6절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의를 얻기 위해서 율법을 잘 지켰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을 정도로 지켰다는 말씀입니다 .
그런데 주님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사도 바울과 같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잘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종교인으로 살 때의 사상과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고 있고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의를 가진 자가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의가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빌립보서3장6절의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의가 주리겠습니까? 그가 의에 목이 마르겠습니까? 그는 스스로가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절대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의 의로 흠이 없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도리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율법의 의가 있으면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겠습니까? 그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의에 주리지도 않고 목이 마르지도 않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율법을 지킬 때 어떻게 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열심을 다 해서 교회를 핍박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종교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과 같이 교회를 핍박하는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아닙니까?
그런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다 사도 바울과 같이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그는 표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스스로가 생각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 어떻게 변합니까?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가 있습니까?
그 의로 교회를 핍박을 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의가 배설물과 같다는 것을 알고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게 지키고 있었는데 그것을 배설물로 알고 그것을 버리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입니다.
그런데 3장6절에서는 흠이 없는 율법의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3장8절에서는 그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배설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 안에서 행위를 하는 모든 것이 다 배설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종교인들은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 배설물과 같은 것을 온갖 행위로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의가 있습니까? 의가 없습니까? 그는 의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가 지키던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배설물로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이성으로는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는데 그것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입니다
그 문자를 알고 스스로를 의에 주리고 목마름 자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은 무지한 자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하는 모든 행위가 무슨 의인지도 모르고 그것이 배설물인지도 모르고 온갖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종교입니다.
의에 주립니까?
의에 목이 마릅니까? 그들이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데 무슨 의에 주리고 목이 바른 자가 될 수 있겠는가 스스로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우리 인생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는 행위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전도서7:20절을 보면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이사야64:6절을 보면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성경의 정의입니다
우리 인생들에 대한 정의입니다. 그가 종교 안에서 아무리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산다고 해도 성경은 정의를 해 주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말씀을 깨닫는 성도만이 주님의 말씀과 같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을 받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분명히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그는 자기의 의가 더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배설물과 같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버리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킵니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고 있고 헌금을 하고 있습니까? 그 안에 하는 모든 행위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배설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죄를 범하고 있는 행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입니다.
제가 도덕적인 죄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을 얻지 못하는 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영생을 얻지 못하는 죄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온갖 행위를 하면서 그것을 보면서 자기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주님의 말씀과 같이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를 수 있는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는 종교 안에서의 모든 행위가 더럽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은 배설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율법에서는 대변이라고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덕적 관념입니까?
제가 그것을 더럽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는 그렇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주일을 잘 지키고 찬송가를 은혜롭게 부르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헌금을 잘 내고 하는 것은 종교적으로 볼 때는 더럽지도 않고 의로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을 얻는데 있어서는 그것은 배설물과 그리고 대변과 같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압니까?
그 문자를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의에 대해서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의에 주린 자이고 누가 의에 목이 마른 자인가를 모르고 있다면 그가 아는 성경말씀이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의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생각을 하는 그런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한문으로 의(義)자를 아는 것으로 지금 성경을 보고 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니 헬라어를 안다고 해서 지금 주님의 말씀을 안다고 할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종교 안에서 성경을 다 그렇게 보고 그저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킵니다.
그가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입니까? 주님의 말씀을 깨닫는 성도라면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아니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복을 받기 위해서 그리고 배부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 안에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안 지킵니까?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찬송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종교의 의식에 따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외식을 하기 위해서 식사 때마다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기와 개 같은 자의 소득을 드리는 것과 같이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 율법의 행위고 의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16:10절을 보면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의입니다
제가 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문자를 알고 그리고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단어의 뜻을 아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성선설과 성악설의 기본적 사상에서 성경을 보고 있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마치 자기가 성경을 아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것이 망하는 길임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의입니다
주님께서 의가 무엇인가를 요한복음16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5장에서 말씀을 하는 의와 헬라어로도 그리고 한자로도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인생들이 헬라어로 그리고 한자로 알고 있는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의가 무엇입니까?
인생이 생각하는 의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의는 전혀 다릅니다. 지금 주님께서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말씀을 깨닫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주님께서 이상한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면서 이 말씀을 굳이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고 질문조차 못하는 것이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의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정의를 내려 주시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황당합니까? 인생들은 자기들이 지식이 있다고 하면서 한자까지 써 가면서 아니 헬라어로 디카이오쉬네 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성경을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이성적 지식으로 거기에 더해서 도덕적 관념에서 성경을 보니까 전혀 다른 말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의입니다
인생이 생각하는 의는 스스로가 의롭게 되는 의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우리 인생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정의를 내려 주고 있습니다.
의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완전케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의가 우리 인생에게는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루신 의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것이 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과 같이 그렇게 율법을 선지자의 글을 완전케 하시고 의로우신 생명으로 부활을 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그것이 의라고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의가 있습니까?
우리 인생에게 이 의가 있습니까? 우리는 어느 누구도 이 의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겠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자기들이 심판을 받으면 조금이라도 더 율법을 잘 지켜야 하나님께서 잘 보아 주실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절대 안 됩니다.
하나님은 법대로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법대로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법대로 사랑하시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감성에 호소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누가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입니까?
우리 인생은 다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이루셨지만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믿지를 않고 있고 도리어 배설물과 같은 율법의 의를 보면서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54절을 보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팔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자기의 율법의 흠 없는 의를 배설물과 같아 버리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말씀과 같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는 말씀이고 그런 성도가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생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생각하는 의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의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이 마릅니까?
영생을 얻기 위해서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성도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과 같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고 그 증거를 받은 성도는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그 안에 예수의 생명을 얻은 자 되고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바로 주님께서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15:7-8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
율법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배부를 수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이루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렇게 꾸어 우리가 배부를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스스로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어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지만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주님께 꾸어 배부른 자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고 있습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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