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892강, 황무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윤주만목사 2022. 4. 10. 09:04

 스가랴7:8-14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이미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남을 해하려 하여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신으로 이전 선지자를 빙자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노가 나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나왔도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었노라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 회리바람으로 그들을 그 알지 못하던 모든 열국에 헤치리라 한 후로 이 땅이 황무하여 왕래하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으로 황무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왜 믿습니까? 

그것은 단 한 가지 예수의 생명을 얻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라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반드시 주님의 말씀과 같이 생명을 얻은 자만이 그러니까 거듭난 성도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입니다. 

사람들은 종교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종교 안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종교는 인생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리지가 않습니다. 인생들의 욕망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인들은 그저 자기들의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영생을 얻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은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 세상에서 조금 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아 사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구약에서 바알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신약에 와서는 부자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은 누구나 그렇게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저도 인생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라고 해서 다를 수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역시 인생의 본성에서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본성이 있지만 성령이 진리로 인도하심으로 본성을 이겨나갈 수 있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생의 욕심입니다. 

누구나 다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잘 믿고 싶은 것이 인생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기 위해서 그들은 율법의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고 그런 행위를 함으로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율법의 행위를 잘 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기 위해서 율법을 잘 지키고 있고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축복해 주시고 있고 그럼으로 하나님을 더 잘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입니다.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믿는 신을 위해서는 때로는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를 않고 있는 사람들까지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전 재산을 내 놓고 그리고 자기가 믿는 신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수행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교인들은 존경을 표하고 있고 그것만으로도 인생은 행복함으로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사실 피조물이 얼마나 연약합니까? 그리고 한번 죽는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더욱 더 신에 의지를 하고 있고 종교는 아주 적절하게 그 심리를 이용을 해서 자기들이 얻고자 하는 것으로 얻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유일하신 하나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분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우리 피조물의 형체를 입고 오셔서 그 일을 다 이루시고 우리가 영생을 얻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모든 일을 보고 믿음으로 해서 우리가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에게 다른 것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성경 마지막에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사도 요한을 통해서 환상으로 보여주시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거의 모든 일이 다 실제로는 자기를 위해서 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이미 하나님 나라를 다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합니까? 

그것은 혹시 내 생각이라는 것에 대해서 단 한번이라고 생각을 해 보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피조물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나는 번제와 제사를 원치 아니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번제와 제사입니다. 

그 안에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모든 행위가 다 포함이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행위를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인생들이 하는 모든 행위를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억지로 받으라고 하면서 제사를 드리는 행위를 하고 있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가 기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떻게 말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전혀 원하시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자기들끼리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다 같이 이야기를 하면 실제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생들은 더욱 더 그런 행위를 하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인생의 이성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기도를 하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까? 헌금을 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인생의 이성적 생각으로는 그런 행위가 다 좋아 보이기 때문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가 기뻐하면서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신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의 먹으며 마심이 전혀 자기를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심이 아니냐고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적 행위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그 행위가 실제로는 자기들을 위해서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대 종교 안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하는 온갖 행위가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이성입니다. 

그것이 너무도 좋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좋다고 생각을 하니까 하나님께서도 좋아 하실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경말씀을 무시를 하고 자기들의 이성적 생각이 옳다고 믿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떻습니까? 

그 열심이 너무 강해서 이제는 성경에도 없는 것을 만들어서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누구를 위해서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서하면 물불을 안 가리고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역시 하나님께서 살진 짐승에 배가 부를 정도로 제사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무수한 제물입니다. 

이방의 종교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무수한 헌금입니다.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을 합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억지로 받으라고 하고 있고 자기들이 드리는 것으로 기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분에게 있어 온 우주는 그저 티끌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무수한 제물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아니 그런 것으로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혹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실 수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8절,“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이미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스가랴 선지자입니다. 

다리오 왕이라고 하면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 갔을 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러면 율법의 나라 바벨론에서 70년을 포로 생활을 해 보라고 하셨는데도 그들은 자기들이 왜 포로가 되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육의 이스라엘입니다. 

우리 영의 일을 비유와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육적으로 한 일을 비유로 우리에게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영생에 대한 말씀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서 우리를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도 그렇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고자 하는 영생의 말씀에 대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종교에 빠져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책망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영의 일에 대해서 책망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스가랴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이미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남을 해하려 하여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의 일이 아닙니다.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생을 얻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이런 말씀을 보고 실제 재판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인생의 이성적 지식으로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인애와 긍휼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7:24절을 보면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

 

재판입니다. 

히브리어로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공정한 재판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어로는 심판, 재판, 공의, 법령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판으로 그리고 공의로 번역을 한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말씀이고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영생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행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나 그 행위가 실제로는 자기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서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는 것으로 인하여 그리고 하나님과 동등하시다는 말씀으로 죽이려고 하는 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이 잘못 되었다고 하면서 그 외모를 보고 그러니까 성경의 문자를 보고 판단을 하는 것을 보고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일을 하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일에 대해서 그 의미를 모르니까 문자를 보고 인생의 이성적으로 아는 것을 가지고 주님을 죽으려고 하니까 주님께서 공의로 판단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공의를 모릅니다. 

성경의 문자는 이 세상초등학문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것은 외모를 아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표면적으로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하시는 일의 의미를 아는 것은 공의로운 일이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유대인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방인들 역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1:13절을 보면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인애,

그리고 긍휼입니다. 거의 비슷한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은 반복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고 강조를 하기 위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고 그래서 인애와 긍휼을 베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긍휼입니다. 

이 긍휼이라는 단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히브리어의 단어의 뜻을 아는 것으로 그러니까 불쌍히 여김과, 자비 등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간에 자비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왜 이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는가를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저 문자의 단어의 뜻을 아는 것은 누구라도 성경을 보고 언어를 공부를 하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아는 것으로 성경말씀을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 피조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그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인생의 이성적 지식으로는 그가 아무리 공부를 하고 지혜가 있다고 해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지혜를 말씀을 하고 있고 신약에서는 성령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성령이 오시면 그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그리고 종교 안에 있는 인생들입니다. 그들은 그저 성경의 문자를 이성적 지식으로 공부를 해서 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더욱 더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에 간다고 하는 그들이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악한 일만 하게 되고 진노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피차입니다. 

이스라엘의 형제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백성들 간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애와 긍휼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인애와 긍휼을 베푸는 것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긍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긍휼을 받은 자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왜 그렇게 했는가 하면 믿음을 몰랐기 때문에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고 그렇게 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입니다. 

그는 모든 판단을 율법을 보고 했습니다. 그가 성경을 보고 율법을 문자적으로 아는 것을 가지고 판단을 했습니다. 그때는 자기가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악한 일만 했지만 그때는 알지 못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지 못하면 율법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긍휼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성경에서 문자로 보고 아는 율법을 가지고 판단을 하지 않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합니까? 주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다고 하면서 안식일에 옳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하면서 주님을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전에는 자기가 그렇게 살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긍휼을 입음으로 해서 공의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고 외모로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통해서 율법을 반포를 하자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스라엘이 먼저 자기들이 다 지켜 행하겠다고 했고 그리고 하나님과 언약을 하겠다고 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누가 지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지키시고 우리에게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다 해도 이방인들은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하는데도 역시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을 지키면서 외모로 판단을 하고 있고 공의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들이 종교가 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종교가 되어서 그 안에서 온갖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그 자체가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당연히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면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그것으로 진노를 받게 되지만 죽을 때까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10절,“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남을 해하려 하여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과부,

고아, 나그네입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이제까지 계속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설교 말씀을 본 사람들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가 누구라는 것을 이제는 다 알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를 비유로 해서 복음을 듣고 믿는 자를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영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굳이 말씀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남을 해하려 하여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다 이렇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남을 해하려 하여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왜 이 말씀을 하는가 하면 이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누가 보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들이 이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면서 경계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보면서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2:6절을 보면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부자입니다. 

이 부자가 누구라는 것을 우리 성도님들은 다 깨닫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율법을 지키는 자를 부자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다고 말을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부자입니다.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면 지키지 않는 사람에 비해서 부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가 그 부자가 너희를 압제 하여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주의자가 율법을 지키는 것을 강요를 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하지 않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8:6절을 보면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비유입니다. 

시제 어린 아이를 두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처음 듣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이 없이 다 소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파를 하시고 계시고 있고 이제 이방인들이 성경을 보고 복음을 전한다고 할 때를 미리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을 해 합니다. 

어떻게 해롭게 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영생을 얻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영생을 얻지 못하게 하는 일에 대해서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합니까? 

그런데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같은 우리 인생들에게 종교인들이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그를 해롭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복음을 바로 전해서 영생을 얻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이 그렇게 하지를 않는다는 것을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공의를 행하지 않고 있고 인애와 긍휼을 베풀지 않고 있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고 있고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남을 해롭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1절,“그들이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레위기26:14절을 보면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치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며”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영생을 얻으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율법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치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나의 법도를 싫어하여 나의 모든 계명을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배반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영생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지자들의 말씀을 보아도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인가를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그들이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봅니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렇게 성경에서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남들은 그렇게 해도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풀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듣지를 않는가 하면 등을 뒤로 하고 귀를 막으면서 듣지를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온갖 선한 일을 한다고 하면서 하지 말라고 하는 일만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12절,“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신으로 이전 선지자를 빙자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노가 나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나왔도다‘

 

요한복음1:45절을 보면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금강석입니다. 

우리 인생들의 마음이 어떠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생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율법주의에 빠져 그 본성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면서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을 지킨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모세의 율법과 여러 선지자의 글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이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고 싶습니까? 

그래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해서 증거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이 믿지를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믿는다고 하는 그들에게 마음이 금강석 같다고 하면서 그들이 믿지를 않아서 큰 노가 나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시대를 보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역시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을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가 하면 종교 안에서 주여 주여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고 그들이 누군가 하면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무익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먼저 율법을 지키지 말고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하는데 이방의 종교는 복음이 전해지지도 않고 있고 있어서 듣고 믿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다수입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이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하늘에 올라가시고 사도들에게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 잠시 동안 복음을 듣고 믿은 사람이 조금 있었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그때에도 교회는 율법주의가 들어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3절,“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었노라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

 

듣습니까? 

누가 복음을 듣고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성경말씀에서 그들이 듣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물론 이스라엘도 그렇지만 이 시대 성경을 보고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진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깨닫기 바랍니다. 

이 시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듣지를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듣지 않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이제는 그들이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듣지 아니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말씀 그대로 이스라엘에게 더 이상 듣지를 않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14절,“회리바람으로 그들을 그 알지 못하던 모든 열국에 헤치리라 한 후로 이 땅이 황무하여 왕래하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으로 황무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그들이 알지도 못하는 모든 나라로, 그들을 폭풍으로 날리듯 흩었고, 그들이 떠난 땅은 아무도 오가는 사람이 없어서, 폐허가 되고 말았다. 그들이 아름다운 이 땅을 거친 땅으로 만들었다."”

 

이스라엘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 이방인들 역시 인생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들을 예표로 해서 우리 이방인들에게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듣지를 않아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는다면 이방인들 역시 그렇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영생입니다. 

그들이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회리바람으로 그들을 그 알지 못하던 모든 열국에 헤치리라 한 후로 이 땅이 황무하여 왕래하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으로 황무하게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고 천국을 예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 땅이 아름다운 땅인데 그 땅이 황무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율법의 행위를 함으로서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거친 땅이 된다는 것을 영생에 대해서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깨달으려면 반드시 진리의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성령이 오시려면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는 진리의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여러 선지자의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은 자 된 것을 믿고 있습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