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889강,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윤주만목사 2022. 4. 1. 06:52

골로새서2:20-23절을 보면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오셨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주시라는 것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는 사람은 지극히 적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라고 사도 바울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 시대는 미디어가 발달을 해서 정말 오지에서 문명의 혜택을 받지 않고 사는 극소수의 사람을 빼고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이방의 종교인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20억 명 정도로 추산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을 하신 날이라고 하면서 성탄절이 되면 온 세상에 시끌벅적하게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즐기고 있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비밀입니까?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더 이상 비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이 20억 명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도 성탄절이라고 하면서 그 날에 굳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도 그 날을 즐거워하고 그 날에 행복을 누리려고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비밀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니 종교 안에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비밀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종교인들입니다. 

기분 나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그 정도의 지식은 이 세상에서 굳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서 성경 몇 번을 보면 다 알 수 있는 지식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비밀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들이 알고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이 참으로 이상하다는 것을 우리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깨달아서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지혜입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지혜가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그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도 성경에서 하나님을 아는 정도는 이 시대 종교인들보다 더 많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혜와 지식입니다. 

그 비밀이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자의 형상 그러니까 창조하신 생명을 얻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 사람입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창조하신 자의 형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부활의 형상을 입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 생명을 얻는 것을 영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는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골로새서의 문자를 보고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비밀을 계시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비밀을 모릅니다. 

그렇게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면 사도 바울은 비밀이라는 단어를 사용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을 비밀이라고 하면 정말 이런 말씀을 하면 안 되겠지만 웃기는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방의 종교인들은 성경을 그렇게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있습니까? 

이방의 종교인들 중에 누가 깨닫고 있습니까? 그저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압니까? 

지금 이방의 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도 증거를 하지 않고 있는 삼위일체의 한 위의 성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증거를 하지 않는 것을 자기들이 감동을 받고 있다고 하는 것은 무당이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근거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비밀을 아는 것 역시 성경에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도 모르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믿는다고 하면서 종교적인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님께서 어떻게 부활을 하셨는가를 알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니까 부활에 대해서도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생의 이성적 지식으로 정의를 내리고 신체의 부활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자기들도 신체가 부활을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루신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길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그들이 그저 종교 안에서 그들의 교리에 따라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이 말씀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그분은 죄가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것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자기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니까 어떻게 합니까? 

이방의 종교는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온갖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켜야 하는지 지키지 말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무슨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또한 율법을 누가 지켜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생명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거듭남이라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두 번 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생명에 대해서도 모르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신 목적입니다.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는 그들의 교리서를 보면 이 생명에 대해서 언급조차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다고 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잘못 된 이야기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모든 보화입니다 

주님께서 천국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보화가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보화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발견을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해서 증거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보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모세의 율법에 그리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에서 우리는 이 보화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우리가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알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방의 종교인들은 그저 세상 사람들이 아는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입니까? 

이 시대 종교인들이 아는 것을 가지고 비밀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정도는 다시 말씀을 하지만 세상에서 지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이 성경 몇 번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고 하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20절,“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너희입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성경을 볼 때는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가를 먼저 알고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 말로 사오정이 되는 것인 줄을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인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그 기초도 모르면서 성경을 본다고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보냈을 때는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성경을 누가 보고 있습니까? 이방의 종교인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먼저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듣고 믿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 시대 이방의 종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이 반발을 하고 저에게 심하게 욕을 한다고 해도 저는 분명히 말씀을 하지만 그들은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듣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는 이 말씀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 성도님들은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적은 숫자이지만 우리 성도님들을 위해서 성경을 풀고 있고 또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길 자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방의 종교는 복음이 전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저는 그렇게 말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그들이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세상 초등학문에 따라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지도 모르고 있고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고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인생의 이성적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이미 이스라엘을 통해서 예표로 다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똑같이 그렇게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4:3절을 보면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에베소서4:13절을 보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초등학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초등학문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이 초등학문이 무엇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문자를 아는 것으로 그리고 그 문자를 인생들의 이성적 생각으로 하고 성경을 보고 있고 자기들이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입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다른 곳으로 복음을 전하러 간 사이에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와서 율법을 지키게 하는 것을 듣고 이 갈라디아서를 보냈습니다. 

 

이 정도입니다.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초등학문이 무엇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도 전혀 그렇지가 않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이 성경을 세상초등학문으로 보고 아는 것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 노릇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렸다고 말씀을 하니까 사람들은 실제 어린 아이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들어와서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은 그 사람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성적이고 학자라고 해도 소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소자입니다. 

그리고 소년입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이런 단어를 보고 실제 어린 아이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복음을 처음 듣는 사람은 소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제가 굳이 설명을 안 드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어렸을 때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처음 복음을 전하고 듣고 믿을 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소자에 대해서 많이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이 소자는 선생이 가르치는 대로 따라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본성은 율법주의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복음을 듣기 전에는 다 소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본성입니다. 

다 율법을 지키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와 정치 그리고 국가 사회 등이 다 율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이 잘 운영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법이 필요하고 그것을 하는 것이 세상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다 같습니다. 

그가 세상에서 아무리 지성이라고 부른다 해도 복음을 듣는 일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진리의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아직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의 이성적 생각을 세상 초등학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그렇게 세상초등학문 아래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입니다. 

이제 복음을 듣고 믿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는 자가 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아들을 아는 것과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것이 장성한 분량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믿고 있는 성도를 사도 바울은 남자답게 믿음에 든든히 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예수 그리스도를 압니까? 

그것을 성경에서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세상 초등학문에 순종을 하는 자가 있고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데 까지 이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성경의 문자를 보고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을 초등학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골로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사도 바울이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벌써 교회 안에 율법주의자가 들어와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온 율법을 지켜도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의 종교인들이 613가지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단 하나를 지켜도 율법을 지키는 것이고 세상 초등학문에 순종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성경을 보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다 지켜서 율법주의가 되고 자기들은 필요에 따라 지키는 것으로 율법주의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입니까? 

그것 역시 세상 초등학문에 순종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증거를 한다고 하면서 할례를 행한 사람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온 율법을 항상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그러니까 그렇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8:34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로마서6:6절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죄의 종입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씀입니까? 성경에서 율법을 문자적으로 보고 그것을 자기들의 육체로 지키는 유대인들을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은 다 율법주의의 본성을 가지고 있고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들입니다. 

그들에게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의 말씀과 같이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말씀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을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으로 어떻게 합니까? 

이제는 죄의 종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과 같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면서 이제는 세상 초등학문에 순종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이 그렇게 믿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이루신 일을 알고 그것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를 믿는 것이 영생을 얻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2:15절을 보면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의문입니다. 

이 의문이 무엇인가도 모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의문을 안다면 이방의 종교가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는데도 성경을 그저 이 세상의 초등학문을 보듯이 하고 있고 그 문자를 이성적으로 아는 것으로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의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의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문자 그대로 행위를 하는 것을 의문에 순종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기 교회입니다 

사도들이 살아 있는 그때에 벌써 율법주의가 들어왔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보면 너무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우리 이방인들을 위해서 이 율법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의 문자만을 아는 사람들이 종교가 되어서 유대인들과 같이 죄의 종이 되어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단 한 가지라도 지키는 순간 그는 죄의 종이 되어 사망이 이른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법, 시민법, 도덕법을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사법도 시민법도 그리고 도덕법도 다 율법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 율법을 말씀을 하면서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1절,“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잠언11:6절을 보면 

“정직한 자는 그 의로 인하여 구원을 얻으려니와 사특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

 

잠언23:20절을 보면 

“술을 즐겨하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고린도후서6:17절을 보면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의문입니다. 

율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율법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초등학문에 순종을 하는 것이 바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말씀을 하고 있지만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해서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다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미 앞에서 율법이라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이 악이라는 것을 우리 성도님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잠언에서 정직한 자는 그 의로 인하여 구원을 얻으려니와 사특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이 바로 악을 잡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맛보지도 말라. 

역시 율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술을 즐겨하는 것으로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술을 맛보지도 않는 것과 같이 율법은 단 한 가지라도 지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지지도 말라.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성도로서 사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 하심을 얻느냐 아니면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진노를 받느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만지지도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입니다. 

지켜서도 안 되는 것을 강조를 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비유적으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골로새서는 우리 이방인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방의 종교인들입니다. 

거의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해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저는 아직까지 못 봤습니다. 우리와 함께 교제를 하고 있는 성도님들 외에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을 아직까지는 만나보지를 못했습니다. 

 

강조입니다. 

우리는 그 단어의 뜻을 아는 것보다는 그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은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는데 어찌하여 다시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율법을 지키고 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입니다. 

그때는 복음이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됐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는 그들이 교리 자체가 도덕법이 살아 있다고 하고 있고 주일이라는 날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복음이 전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이렇게까지 강조를 하면서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방의 종교인들은 거의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 역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암담하기까지 하고 우리 성도가 받은 은혜가 너무도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안식일이 무엇인지 주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종교 안에 들어가 소년이 푸주로 끌려가는 것과 같이 다 끌려가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안식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당시 주일이라는 날을 지켜서 사도 바울이 안식일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는 어느 누구도 주일이라는 날에 대해서 편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안식일은 지키면 안 됩니다.

그러면 주일이라는 날은 지켜도 됩니까? 참 이런 말씀을 할 때마다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지한가를 생각하면서 혼자 가슴만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일이라는 날에 대해서 단어조차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무지한 자들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이라고 하면서 주일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정당성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거기에는 주일도 들어가 있고 그 주일에 종교 안에서 하는 모든 행위가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22절,“(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런 것들은 다 한때에 쓰다가 없어지는 것으로서, 사람의 규정과 교훈을 따른 것입니다.”

 

야고보서4:14절을 보면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율법의 행위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입니까? 그것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이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없어집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신체로 부활을 한다고 생각을 하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한 모든 행위도 천국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해서 더욱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피조물은 죽으면 마치 안개가 사라지는 것과 같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그것을 지키면 뭐 합니까? 사라진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라지고 말고는 두 번째 말씀이고 이 율법을 지키는 그 자체가 죄의 종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악을 행하는 일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면 이 악한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사람의 가르침입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문자로 보고 그것을 종교 안에서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이 사람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지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영생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본성에 따라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23절,“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런 것들은, 꾸며낸 경건과 겸손과 몸을 학대하는 데는 지혜를 나타내 보이지만,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는 데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그 행위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면 사람의 이성에 따라 경건과 겸손과 몸을 학대하는 데는 지혜가 있게 나타내 보인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의 본성에 따르면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지혜 있는 사람과 같이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5:16-18절을 보면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율법입니다.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는 데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자체가 육체의 소욕을 따라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에 있어서는 아무 유익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그 욕망을 억제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이 욕망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그저 종교 안에 들어가면 본성에 따라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성령이 인도하시면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종교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본성이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것은 육체의 욕망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진리의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은 자 되었음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