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891강,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윤주만목사 2022. 4. 7. 06:32

누가복음21:1-4절을 보면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종교입니다. 

이 말씀은 종교에 대해서 주님께서 아주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종교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에 속해 신을 믿는 것을 원하고 있고 그럼으로 해서 자기 인생이 신의 도움을 받아 조금 더 안전하게 살기를 원하고 있고 거기다가 더불어서 복을 받는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그들의 교리가 생겨나기 시작을 했고 성경은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어진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 뿐 입니다. 어디서부터 말씀을 해야 하는지를 모를 정도로 지금 이 시대 종교는 하나님의 뜻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그저 자기들의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답답합니다.

과연 이 시대 복음을 전한다 해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물론 성경을 보더라도 선지자들이 복음을 전했을 때 듣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서 단 한 가지라도 바로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수 없어서 어떻게 이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입니까? 

솔직히 한 시간 정도 복음을 전해서 그래도 들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영생을 얻는 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성경을 풀고는 있지만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도리어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주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시는 것이 하루 정도 복음을 들어서 될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는데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입니다. 

제자들에게 삼년 반 동안 유월절을 먹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입니다. 다 유대인들이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었습니다.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삼년 반 동안 무교병을 먹이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 먹이신 것을 십자가를 지시기 전 날에 그것을 기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나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사람들은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렵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유월절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셔야 하는데 이방의 종교는 그렇지가 않고 자기들의 이성에 따라 성경을 보고 교리를 만들어서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전도서에서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의 삶 중에서 청년의 때에 복음을 듣고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다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거의 다 바알의 사상에 빠져 있는 것을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인생들에게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시는 일을 하라고 하면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인생이 먹고 사는 것에 대해서 왜 모르시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생은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인생은 헛것인지를 알아야 하고 그림자라는 것을 알아야 참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그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실 수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저 역시 사람입니다. 그래서 혈과 정이 있습니다. 왜 저라고 감정이 없고 인생의 이성을 따라가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우리 인생에 대해서 정의를 하고 있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도 일어납니다. 

부자가 되고 싶고 이 세상에서 폼 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성경을 보면서 내가 무엇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고 있고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참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소망을 붙잡으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인생으로 잘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늘 보고 있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 나라를 믿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인생의 이성적 욕망을 조금이나마 버릴 수 있고 다시 마음을 잡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제가 받은 믿음을 더욱 든든히 하기 위해서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을 버리지 못 합니다. 

아니 종교인들이 자기들이 다 버렸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도 버리지를 못하고 있으면서도 말로만 그렇게 하고 있고 사람들은 그런 말에 속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종교에 미혹을 받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더욱 더 행위에 열심을 내면서 살아가고 있고 그것이 인생의 이성에는 잘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이성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다 종교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 종교가 벌써 거의 2000년 가까이 되다보니까 이제는 그것이 고착화 되어서 성경보다 더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말씀입니까? 

그것이 이 시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분명히 요한계시록을 마치면서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 외에 더하면 재앙이 더하여 질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들이 종교에서 하는 일은 무조건 따라가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성경으로 다 끝이 났습니다. 거기에 더해서도 안 되고 빼서도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없는 말씀을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얼마나 많이 더하고 있는가를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생각도 안 합니다. 

자기가 종교 안에서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무조건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거대한 종교가 하면 소자들은 아무 의견도 제시를 하지 못하고 그저 따라가야 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짐승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비유의 말씀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선지자라고 하는 사람들도 그러니까 선생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평생을 불법만 행하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는데 소자들은 그러니까 교인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성경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 인생들을 지으신 목적도 우리가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시고 있고 그렇게 영생을 얻는 것을 하나님의 명령이라고까지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거의 모든 말씀은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쁜 의미의 말씀은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거의 다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면서 행위로 하고 있고 그 행위가 결국에는 더러운 일이 되어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뜻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사람의 이성으로 아는 것으로는 절대로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으로는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아니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성령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성령을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1절,“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주님께서도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에 대해서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이 말씀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뜻을 알고 영생을 얻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연보입니다.

종교에서는 헌금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지금 이 부자가 하는 연보가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종교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게는 몇 가지 헌금을 그리고 많게는 몇 십 가지의 헌금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우리가 이방의 종교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 연보는 곧 권력을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지 돈을 많이 모으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한 때는 그 돈으로 권력까지 마음대로 종교가 정할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헌금을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강요를 하는 곳도 있지만 고상한 말로 미혹을 하면서 헌금을 하지 않으면 자기 믿음이 없는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교인들은 헌금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더구나 자기가 믿는 신을 위해서 한다는 말에 자기에게 있는 가장 좋은 것이라도 아끼지 않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예배를 드리는 것이고 그 예배 안에는 당연히 헌금을 하는 시간이 있어서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이 하고 있고 그런 가운데서 자기만 안 하면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따라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아깝지 않습니다. 

자기를 구원해 주시고 또 자기를 축복해 주셔서 자기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데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특히 우리나라는 비교의 대상이 있습니다. 북한이라는 나라가 있고 그 나라는 공산주의이기 때문에 종교의 자유가 없고 그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을 합니다. 

종교인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어서 우리는 부자가 되었고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북한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함으로 해서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이 얼마나 모순이 되는가를 스스로가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교인들에게는 아주 매혹적인 말로 들려져 잘 사는 것에 대한 감사함으로 신에 대해서 아까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인생의 이성입니다.

신을 믿으면 당연히 헌금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더라도 제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성전을 섬기는 레위인이 있는데 이스라엘에게 그들을 잊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토지가 없기 때문에 다른 지파의 사람들이 그들에게 토지소산을 거두고 나면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면서 예물을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연보, 헌금, 예물이라는 말씀 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예물이라는 단어는 의미가 조금 다르기 때문에 사실 연보와 헌금을 거의 같이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단어의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헌금입니다. 

누가복음에서 두 번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전체에서 어느 곳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종교 안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많게는 수십 가지의 헌금을 하고 있는데 성경에는 지금 주님의 말씀에서 단 두 번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고 영생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우리가 헌금을 하고 안 하고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지금 주님께서는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역대하34:10-11절을 보면 

“그 돈을 여호와의 전 역사를 감독하는 자의 손에 붙이니 저희가 여호와의 전에 있는 공장에게 주어 그 전을 수리하게 하되 곧 목수와 건축하는 자에게 붙여 다듬은 돌과 연접하는 나무를 사며 유다 왕들이 헐어 버린 전들을 위하여 들보를 만들게 하매”

 

연보입니다. 

우리는 연보와 헌금에 대해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말씀의 근거는 성경입니다. 성경 외에 인생의 이성적 지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안 됩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성경을 볼 수 있다는 것으로 마음대로 상상을 하면서 성경을 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스스로를 사망의 길로 가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말씀입니다. 

연보에 대해서 처음으로 역대하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율법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선은 역대하의 말씀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요시야 왕 때에 처음으로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연보를 왜 했는가 하면 성전을 보수하기 위해서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연보가 모이자 그 돈으로 성전을 보수하는 일을 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전입니다. 

교회와는 전혀 다릅니다. 성전은 주님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교회는 그의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초도 모르고 성경을 본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연보는 주님의 몸인 성전을 보수하기 위해서 했고 그것으로 실제 성전을 수리하는 일을 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막론입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물론 너무 오래 전에 한 말씀이라서 조금 잘못 된 부분이 있어서 고쳐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나타내는데 있어서는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성전을 수리하는데 사용을 했고 실제 고린도후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우리 안에 세우는 일을 하는데 있어서 그것을 연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연보궤입니다. 

요시야 왕 때에 처음으로 성전 입구에 그것을 만들었고 그래서 이스라엘이 성전을 수리하기 위해서 아끼지 않고 연보궤를 채웠던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비유의 말씀이고 그것을 고린도후서에서 연보를 말씀을 하면서 우리 안에 성전이 세워지는 것을 그러니까 복음을 듣고 믿어 영생을 얻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연보궤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넣는 돈을 헌금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돈만 넣었던 것은 아니라 돈과 같이 사용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넣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연보는 교회가 사용을 하고 그리고 종교인들이 사용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전을 위해서 했다는 것을 그 기초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그 안에 헌금 통이라는 궤가 있습니다. 궤와 같이 만들어서 교회 안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거의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교회도 간단하게 거의 계좌 이체를 하는 곳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연보궤입니다. 지금 종교인들이 알고 있는 헌금통이라고 하든지 헌금궤라고 하든지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것은 성전에 놓았던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성전과 교회는 앞에서 말씀을 한 것과 같이 전혀 다릅니다. 

 

성경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말씀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방의 종교는 성경에서는 성전 입구에 연보궤가 있었는데 교회라는 건물을 지어 놓고 그 안에 헌금통이라는 것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연보궤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약성경입니다. 

연보라는 단어가 그렇게 많이 나오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연보라는 헬라어의 뜻을 아는 것으로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연보를 아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연보궤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헌금에 대해서 딱 두 번 지금 누가복음에서 주님께서 비유로 하시는 말씀에서 하고 있습니다. 헬라어를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연보궤와 헌금에 대해서 그 뜻을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번역을 하는 은사자가 구별을 하기 위해서 다른 단어로 말씀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헌금을 넣습니까? 

주님께서 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눈을 들어 보시니까 부자가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예수께서는 부자들이 와서 헌금궤에 돈을 넣는 것을 보고 계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비유로 해서 그들 중에서 부자들이 헌금을 넣는 것을 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그냥 기록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도 부자가 헌금을 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8:23절을 보면 

“그 사람이 큰 부자인 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어떤 사람입니다. 

그가 주님께 찾아와서 영생에 대해서 묻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 사람에게 십계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듣고 나서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사람이 실제 부자인 것을 아시고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을 하자 이 사람이 큰 부자인 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입니다. 

율법을 지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성경에서 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돌아가고 나서 주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을 비유로 해서 주님께서는 부자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입니다. 

이 사람 역시 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을 비유로 해서 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부자는 삭개오를 제외하고는 다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누가 헌금을 합니까? 

부자들이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들이 헌금을 하면 가난한 자는 헌금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이방인들이 종교가 되어서 어떻게 할 것을 아시고 이 말씀을 비유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부자입니다. 

율법주의자를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하면 율법주의자가 헌금을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그런 성도는 헌금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해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실제 돈이 많고 적고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을 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우리 성도를 가난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천국 복음이 가난한 자에게 전파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헌금입니다. 

율법의 행위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는 이렇게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그것을 헌금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가 이렇게 될 것을 너무도 잘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말씀을 보고도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2절,“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성경입니다. 

우리는 영생에 대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왜 지금 이 말씀을 하고 계시는가에 대해서 그 뜻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이 말씀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심리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방인들이 종교가 될 것을 미리 아시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심리가 어떻다는 것을 그리고 부자들이 있는 곳에서 가난한 자가 어떻게 할 것을 미리 아시고 지금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부자라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종교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얻고자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부자에 의해서 가난한 자가 어떻게 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우리는 지켜서는 안 됩니다. 이 시대 제가 헌금을 하는 것을 반대를 하면 아마도 종교인들이 저에게 심하게 반대를 할 것입니다. 아니 부자들은 자기들이 헌금을 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어떻게 유지를 하느냐고 하면서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사단이 역사를 하고 있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하는 행위로 부자가 되어 있는 것을 반대를 하는 저를 어떻게 하든지 흠집을 잡으려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부자입니다. 

그들이 종교 안에서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가난한 자가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부자들이 다 헌금을 하는데 가난한 자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종교가 아니라 세상에서 사람들의 심리적 관점에서 보아도 다수가 하면 소수는 자기 의지와는 상관이 없이 따라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가나한 과부입니다.

그가 무엇을 알겠습니까? 제가 무시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는 부자들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부자들이 하는 행위를 가난한 자는 그것이 부자의 행위가 되어 사망의 길로 가는 줄도 모르고 따라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가6:12절을 보면 

“그 부자들은 강포가 가득하였고 그 거민들은 거짓을 말하니 그 혀가 입에서 궤사하도다”

 

요한복음8:44절을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부자입니다. 

미가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어떻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부자들은 강포가 가득하였고 그 거민들은 거짓을 말하니 그 혀가 입에서 궤사하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강포입니다. 

꼭 육체적으로 어떤 위해를 가한다고 해서 강포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교입니다. 그 안에 가난한 자가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율법을 모르는 사람이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가 따라하게 되어 있고 다수가 하는 종교 안에서의 율법의 행위를 따라하는 것 역시 강포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식사 기도를 합니다. 

열 명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데 이제 처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니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가 하면 아홉 명이 기도를 하면 자기도 모르게 따라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다수의 힘에 의해서 따라하는 것을 강포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부자들입니다. 

미가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부자들은 강포가 가득하였고 그 거민들은 거짓을 말하니 그 혀가 입에서 궤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부자가 누군가를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입니다. 

이 과부가 스스로 했다고 생각을 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가난한 과부는 아무 것도 모르고 부자가 하는 것을 자기도 따라 하고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이 하니까 두렙돈 밖에 없는 과부가 따라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절,“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앞에서 이미 주님께서는 헌금이 율법의 행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을 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상식입니다. 

사람들도 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특별한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마치 우리가 알 수 없는 말씀을 하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1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100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연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두 렙돈을 부자들이 헌금을 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말을 하는가 하면 주님의 말씀과 같이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실제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이 말씀은 종교인들이 아주 잘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헌금을 강요를 하기 위해서 부자가 헌금을 하는 액수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고 과부가 자기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면서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고 하면 아마도 모든 사람이 주님의 말씀과 같이 생각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실제 종교인들이 헌금을 거두기 위해서 이 말씀을 잘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과 같이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가 넣는 헌금을 칭찬을 하면 부자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 많이 한다는 것이 사람의 심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인들이 이렇게 해서 헌금을 가난한 사람을 이용을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4절,“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칭찬입니까? 

주님께서 지금 이 가난한 과부를 칭찬을 하시고 계십니까?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앞에서 부자들이 헌금을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의 행위 아래 있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부자들이라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모르는 가난한 과부가 하나님의 성전에 왔습니다. 그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왔는데 부자들이 헌금을 하니까 가난한 과부는 자기 생활비 전부를 넣고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럼으로 해서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과 같이 이 과부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경말씀입니다. 

종교인들이 이 말씀을 너무 잘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가난한 과부를 칭찬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가 종교인들에 의해서 부자들을 따라 하다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생활비 전부를 헌금을 하지만 그는 그것으로 부자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입니다. 

언제 우리에게 생활비 전부를 헌금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 헌금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도리어 율법에서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헌금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구차합니다. 

그런데 이 헌금을 하면서 이 과부는 부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의 이성으로는 이 과부가 부자보다 더 많이 헌금을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율법을 행하면 진노를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요한복음에서 율법을 행하는 자들을 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25:4절을 보면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헌금입니다. 

부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라는 말씀입니다. 부자가 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하면 종교인들이 반대를 하고 교인들까지 자기들이 선한 마음을 가진 것과 같이 그러면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살고 교회는 어떻게 운영이 되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까? 

교회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을 많이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까? 율법에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꼭 헌금이라는 미명 아래서 그들이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듣는 자는 그들이 직업이 없이 복음만 전하고 있으면 인생의 이성적으로 그가 생활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도와주어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자를 따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는데 그 부자가 하는 헌금을 하고 싶습니까? 우리 성도는 진리로 인도하심을 따라 가난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