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9강,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베드로후서 1:10-11절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믿음
성경을 보고도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른다면 그는 이스라엘과 같이 종교인으로 살다가 결국에는 화를 당할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예수를 안 믿었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도 예수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다고 하면 아마도 반박을 할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 믿고 있습니다.
아니 믿음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표면상으로는 분명히 그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 그들의 행위들을 보면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종교적인 생활을 함으로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체가 믿음을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를 부정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건물에 간판을 내걸고 있는 것을 교회라고 생각하는 데서부터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부르고 또 기도를 하고 하는 행위들을 함으로서 마치 성도가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본질 문제입니다.
그리고 교리 자체가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성도가 천국에 넉넉히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천국에 들어가는 것에 있어서도 생각이 너무 다릅니다. 성도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어떠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믿을 수 없고 그런 것이 종교인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성도는 담대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겉으로는 담대하지만, 실제 믿음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이 세상의 초등학문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는 것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이 성경을 수십 번 읽었을 때 그들이 알 수 있는 정도의 지식으로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적인 능력이 있어서 대학을 나온 사람이 성경을 자기 혼자서 수십 번 읽어서 아는 정도의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을 가지고 예수를 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수십 번이 아니라 수백 번을 읽어서 아는 지식이라 해도 그것은 예수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를 안다고 하는 지식입니다. 그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예수를 안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사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아는 것을 가지고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쉽게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성경을 보았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하다는 것을 성경에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이나 제사장들이 그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자기들 나름대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자부하고 살았지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지금이라고 다를 것 같습니까?
이 시대 그들과 다르다는 것이 있다면 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실제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그저 이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다른 것이 있다면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그것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예수를 안 믿고 있습니다. 분명히 이스라엘이 표면적으로 하나님을 믿었던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그 안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비밀에 대해서는 무지에 가깝다고 보아야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과연 이 시대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가 몇이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그것은 하나의 맹목적인 신앙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무지에 가까운 그들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신앙생활을 잘합니다.
그러나 게으릅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 있어서는 너무도 게으른 것이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평생을 예수를 알려고 해도 다 알지 못하는 것이 성경의 오묘함인데 이 시대는 자기들이 아주 조금 아는 그것을 가지고 마치 예수를 다 아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에서 예수를 모르면 죽습니다. 그가 아무리 교회에서 평생을 신앙생활을 했다 해도 그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많이 아는 것으로 예수를 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하는 것을 가지고 지식을 자랑하다가 망하는 길로 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왜 예수를 믿습니까?
그것은 영생을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그것으로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고 그것이 수십 년간 신앙생활로 이어지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져 스스로의 힘으로는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2절을 보면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헛된 것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아는 것을 너무도 게을리 하고 있습니다.
은혜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보고 또 자기들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어떤 현상을 보고 은혜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를 알지 못하면 여러분에게 은혜가 없습니다. 이 시대는 은혜라는 말을 아주 쉽게 사용하고 있는데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있으려면 반드시 전제 조건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알아야 은혜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은혜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은혜라고 말하지 않고 자기들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을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은혜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거저 주시는 것을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들에게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게 하신 것은 우리가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이 오직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가 있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은혜가 어디서 오는가를 사도 베드로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앎으로 해서 이 은혜가 우리에게 더욱 많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저 문자적으로나 알고 있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은혜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서 은혜라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내가 알고 있다고 한다면 그는 은혜를 모르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알면 평강이 넘칩니다.
걱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는 오직 천국에 가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이 천국에 가는데 있어서 걱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보면 얼마나 걱정이 많이 있습니까? 사실 이 시대는 종말론에 빠져 요한계시록을 잘못 해석하다 보니까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평강이 무엇입니까?
걱정이 하나도 없어야 합니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있어도 걱정이 없는 것이 평강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으면서도 은근히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은근히 걱정이 되는 이유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주일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십일조도 내야 합니다. 기도도 해야 합니다. 찬양도 해야 합니다. 성경도 읽어야 합니다. 예배도 드려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렇게 해야 할 일이 많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걱정이 많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할 일이 많으니까 걱정이 있는 것이지 할 일이 없으면 걱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일일이 다 열거를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이 해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깨닫기 바랍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이 많은가 하면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설령 내가 잘못을 했어도 아니 아무것도 하지 못할지라도 사랑을 아는 성도는 절대로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르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이 많고 그것이 다 걱정이 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이 시대는 믿음이 있는 성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다 종교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종교인은 자기 종교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율법의 모든 것을 다 지켜 행하느라고 얼마나 노력을 했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걱정을 많이 하는 그것으로 인하여 사망의 길로 가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3절을 보면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새번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앎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그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그의 영광과 덕을 누리게 해 주신 분이십니다”
아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해서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그의 권능으로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과 하늘의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주셨습니다. 그것을 왜 주셨는가 하면 우리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해서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평생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는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만 아주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와 가라지의 차이입니다. 실제 겉으로 보기에는 가라지가 성도와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는 것에는 전혀 힘쓰지 않고 그저 자기가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해서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교회 안에서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 죽고 사는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너무 행위에 빠져 있습니다. 성경을 안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학문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가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세상적으로 볼 때 아무리 공부를 많이 했다 해도 역시 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야 합니다.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런 공부를 한 것으로 그가 많이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교회 안에서 목사들이 설교를 하면서 자기 지적인 능력을 자랑하기 위해서 히브리어나 헬라어 원어를 가지고 설교를 하는데 이런 것이 다 이 세상의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모르고 문자를 쓰니까 자기 목사가 성경적 지식이 대단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정도는 이 세상에서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다른 학문을 공부한 사람이 신학을 공부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다른 학과를 공부하다가 신학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이 다 이 세상의 학문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알고 원어를 알고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비유와 은유라는 것을 알고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 세상 사람도 유일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은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율법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방의 교회도 역시 이스라엘을 그대로 따라 율법주의에 빠졌습니다. 거기다 더 하나를 추가해서 은사주의까지 교회 안에 너무 팽배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에서 이것을 아는 것에 힘써야 합니다. 평생을 성경에서 이것만 보아도 다 못 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행위에 빠져 자기들의 신앙생활에 너무 열심을 내고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1:4절을 보면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로써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해서라는 말씀입니다. 성경 전체는 우리에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행위를 어떻게 하면 잘할까를 아는 것에 힘쓰다가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아는 것에 얼마나 힘썼습니까?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새번역입니다.
“그는 이 영광과 덕으로 귀중하고 아주 위대한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약속들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세상에서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해서 아주 위대한 약속을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약속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하는 그 피를 믿음으로 해서 생명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위대한 약속입니다.
그보다 더 위대한 약속이 어디 있습니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약속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말씀대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느 약속이 그보다 더 위대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그것으로 위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세상에서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를 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정욕입니다.
그 정욕이 무엇인가를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세상 정욕에 부패하는 사람이라고 하니까 마치 이 세상의 나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상 정욕의 부패하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지켰던 율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들을 보면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이 시대 역시 자기들의 외모를 회칠하고 있습니다.
정욕입니다.
주일을 잘 지키고자 하는 것도 정욕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자 하는 것 역시 정욕입니다. 예배를 감동스럽게 드리고자 하는 것 역시 정욕입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거의 모든 신앙생활의 행위들이 정욕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야 하는데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나쁜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좋다고 생각하는 거의 모든 것이 다 정욕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정욕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를 보면 이스라엘보다 더 그런 정욕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들이 자기 영혼을 망하는 길로 가게하고 있지만, 그것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세상에서 썩어질 것입니다
다 없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없어질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계속해서 그것을 가르쳐 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보다는 정욕에 빠져 세상에서 썩어질 그것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내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이성으로 선하고 의롭다고 생각되고 또 정말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 해도 역시 정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그 영광에 참여를 할 수도 없고 또 주님께서 오실 때 영접을 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행위입니다.
그것이 다 정욕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썩어질 것들입니다. 그것에서 피하여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성도가 되려면 그런 행위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 힘써야 합니다. 늘 깨어 성경을 보면서 지혜를 구하고 내가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종교가 되어 버려서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썩어집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는 다 정욕이고 썩어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그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있는 성도를 하나님께서 그 성품에 참여하시게 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보아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하늘의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썩어질 것에 빠져 그것을 어떻게 하면 잘할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정욕이 너무 강해서 주체를 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의 행위가 옳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1:5-8절을 보면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힘쓰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힘쓰는 성도만이 영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종교생활에는 너무도 힘쓰고 있지만, 진리를 알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종교에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행위를 버리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아니 그리스도편지에서 계속해서 이 말씀을 드려도 사람들은 이 설교를 보면서도 행위에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받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행위에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다면 그는 은혜를 받은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형제 사랑입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서 형제 사랑을 함으로서 그 형제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도 역시 문자적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다 메타포입니다. 그 뜻을 알지 못하고 그저 문자적으로 보고 있다면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어떤 믿음이 있어야 하고 덕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고 또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더해져야 하고 또 성도는 절제를 해야 하고 인내를 해야 하고 경건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을 다 영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이것을 통해서 형제 사랑을 공급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것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게 하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게으릅니까?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육체적으로는 너무도 부지런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 있어서는 너무도 게으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 생명의 달란트를 남기지 못한 종을 주님께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바깥 어두운 곳에 좇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생활에는 너무도 부지런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 있어서는 너무도 게을러서 생명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 버리세요.
신앙생활을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생명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을 택하는 성도가 지혜롭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예수를 아는 것은 버리고 오히려 신앙생활에 매여 꼼짝을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른 자가 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신앙생활을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까 무엇이 게으른 것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칼뱅이면 뭐 합니까?
그리고 웨슬레면 뭐 합니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영혼이 구원을 받았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 세상에서 위대한 자가 되기보다는 생명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주는 신학자가 되기보다는 아무도 몰라주더라도 아니 기억도 하지 않더라도 생명을 얻었다면 그는 지혜로운 성도입니다.
교회에서 누가 기억하면 뭐 합니까?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어서 뭐 합니까? 그런 것을 버리지 않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말에 꿩잡는게 매라는 말이 있습니다. 꿩만 잡으면 되는 것입니다. 정말 강조드리지만, 생명만 얻으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생명은 영의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우선은 신앙생활을 통해서 자기를 보이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다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1:9절을 보면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소경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눈을 뜨고 있으면 뭐 합니까?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래 하고 있으면 뭐 합니까? 때가 오래되어 선생이 되어야 하는데 40년을 넘게 신앙생활을 했어도 목사의 말을 들어야 무엇을 할 수 있는 어린아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게을러서 40년을 신앙생활만 했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여 열매 없는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도 없습니다. 덕도 없습니다. 지식도 없습니다. 절제도 없습니다. 인내도 없습니다. 경건도 없습니다. 형제 우애도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랑도 없습니다. 아니 자기들은 다 있다고 할지 몰라도 이 시대는 그 뜻도 모르고 있습니다.
죄 사함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교회에만 나오면 기도를 하려고 하면 죄부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 용서해 주세요. 하면서 자기가 지은 죄를 생각하면서 그 기도부터 하고 있는 것이 교인들입니다. 아직 열매가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기초가 되고 있는 죄의 문제도 해결이 안 되어서 매일 그렇게 죄를 용서해 달라는 고백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바랍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으로 마치 예수를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아주 미흡하다는 것을 알고 늘 깨어 부지런하게 이 일에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열매를 얻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의 일이 아닌 영의 일을 깨닫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데 육에 너무 깊이 빠져 있습니다.
10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아무 선이나 악을 행하기 전에 우리를 모태에서부터 선택하셨습니다. 내가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잘해서 부름을 받고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 전에 교회에 나오기 전부터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고 선택을 하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더욱 더 힘써서,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은 것과 택하심을 받은 것을 굳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은혜입니다.
나를 불러 주시고 선택을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에 더욱 굳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왜 나를 어떻게 부르셨고 또 어떻게 선택을 하셨는가를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너희가 실족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안 믿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너무 자유의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어떻게 부르셨는가를 모르고 있고 또 야곱을 어떻게 선택을 하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기록이 되어 있는데도 율법주의에 빠져서 그런 말씀들을 아무리 보아도 소경이 되어서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부르심과 선택을 모르면 실족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적인 선택이라고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로 선택을 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선택을 믿지 못하면 반드시 그 사람은 실족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실족을 하게 되는가 하면 아무리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종교적인 신앙생활은 잘하고 있을지 몰라도 믿음의 비밀을 몰라 믿어 지지가 않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면 여러분은 다 실족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이 행위를 믿음이라고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모르면 그렇게 자기가 하고 있는 행위를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음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모든 구속의 경륜을 믿는 것입니다. 행위로 넘어지지 마시고 믿음에 더욱 굳세게 서시기를 바랍니다.
11절,“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이같이 하면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열매를 맺으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죽을 때까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게으르지 않습니다.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감을 너희에게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천국에 넉넉히 들어가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목사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거의 종교적인 이야기와 신앙생활에 대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입에 바른말로 예수 믿으라는 그 말 한마디를 하고 마치 예수를 알고 믿는 것으로 다 미혹이 되고 있습니다.
이같이 하시기 바랍니다.
영생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왜 예수를 믿는지 모릅니까? 자기가 왜 믿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믿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정말 부지런한 성도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라지들은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면 잘할까에 힘쓰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육의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율법으로 인하여 육의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성경에 수도 없이 기록을 하셨는데도 이 시대는 소경이 되어서 안 보입니다. 행위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보고 있는 그들이 예수를 아는 것에는 너무도 게으르게 그저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때가 오래되어도 선생이 안 되고 아린아이와 같이 젖을 먹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예수를 아는데서 부터 시작입니다. 예수를 모르면서 믿는다는 것은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부지런한 성도가 되어 성경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만이 주님께서 오실 때 영접을 받아 천국에 넉넉히 들어가 모든 축복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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