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은혜와 진리의 말씀

487강,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윤주만목사 2020. 3. 23. 06:26


487,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창세기 20:1-7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하며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아니한 고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그가 나더러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 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 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줄 알찌니라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창세 전부터 아셨고 그리고 종말의 올 때까지 인생들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더 오묘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그 깊은 경륜에 놀라움을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성경을 보면서도 그저 이 세상의 이성적 지식으로 보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놀라운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모든 성경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의 일을 믿을 수 있게 기록하셨습니다. 성경을 육의 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로 보아야 하며 그것을 깨달은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사건들을 기록했는가 하면 그것을 통해서 영의 일을 믿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창세기에서 사람들이 육체가 되었습니다. 그 육체어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시고 부르시고 있지만 역시 인생들의 한계는 어쩔 수 없습니다. 마치 하늘과 땅 차이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 한계에 부딪쳐서 끝내는 육체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신앙생활입니다. 그 신앙생활을 보고 믿는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찬송을 하고 또 성경 말씀을 보고 듣는 것으로 마치 믿음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입니다.

종교와 믿음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종교인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종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교인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고 기독교라는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교인이 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는 너무 종교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종교인이 되어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데도 이 시대는 종교인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고 자기들이 하고 있는 모든 행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위라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부름에는 축복과 저주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 세상 사람들이 보는 말씀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보고 있는 말씀이며 이 성경의 모든 예표는 바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는 축복을 받을 사람이 있고 또 화를 당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성경은 누누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축복을 받을 사람보다는 화를 당할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예표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은 화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들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의 열심을 보고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차라리 세상에서 죄인으로 사는 것이 더 낫지 교회에 와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악인이 되어서 화를 당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큰 불행입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제사장들이 악인이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들은 자기들만큼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 없다고 자부를 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이었지만 주님께서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자기들만큼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은 없다고 자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다수는 제가 보기에는 99% 이상이 화를 당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 시대 신앙생활을 보면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종교인으로 전락을 해 있는 것을 보면 과연 구원을 받을 사람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깨어나시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의 그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이스라엘은 선지자를 대적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다수는 선지자를 죽이거나 핍박을 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다수는 그렇게 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교회 안에서 맹목적으로 충성을 하고 있습니다.

 

다수는 죽습니다.

그렇다고 어느 소수가 산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음행을 하고 있고 간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 도리라고 생각하면서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구약은 예표와 그림자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성경을 본다는 것은 이 세상의 좋은 책을 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구약을 보면서도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생명에 대한 말씀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음행을 하면서도 자기들이 왜 음행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잠언 6:32절을 보면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무지합니다.

부녀와 간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부녀와 마음껏 간음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너무도 선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을 간음하지 않는 사람을 믿음이 없다고 하고 그렇게 하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부녀와 간음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도 무지해서 진짜 이 세상의 부녀와 간음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 그는 정말로 무지한 자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부녀와 간음을 하면서도 그것을 너무 좋게 여기고 있는 것이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합니다.

정말 부녀와 간음을 하는 자는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는 자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의 육적인 부녀와 간음을 하는 것으로 우리 영혼이 망합니까? 만약에 그것으로 우리 영혼이 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고 있는 무지한 자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런 육적인 죄가 아닙니다.

설령 부녀와 간음을 한다 해도 영혼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제가 부녀와 간음을 하라고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라면 당연히 이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설령 그런 일이 있다 해도 그것으로 우리의 영혼이 망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아담이 범죄를 한 것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사람들이 진 모든 죄를 지고 가신 것이며 그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믿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잠언의 말씀은 실제 이 세상의 생리적인 부녀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성경을 볼 때 기초가 든든히 서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기초가 든든히 세워져 있는 성도는 성경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릴 수 있습니다.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정말로 무지한 자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부녀와 간음하는 것을 너무도 좋아하고 있고 부녀와 간음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공격하고 있습니다.

 

왜 부녀와 간음을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믿음이 이 부녀와 간음하는 행위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녀와 간음을 더 하려고 음욕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 음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부녀가 누구입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이 교회와 간음을 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고 말씀을 하면서 교회와 간음을 하면 영혼이 망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부녀와 간음을 너무 많이 하고 있습니다. 부녀와 간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일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영혼이 망합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하나님을 믿어서 천국에 가려고 교회에 나왔는데 그 부녀와 간음을 하다가 영혼을 망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지해서 자기가 부녀와 간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부녀와 간음을 하지 않으면 자기 믿음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더욱 열심을 내서 간음을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무슨 간음을 하고 있냐고요?

예배, 기도, 찬송, 헌금, 그리고 봉사 등 여러 가지 수도 없이 많은 간음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으로 간음을 한다고 하면 저보고 정신 이상한 사람이라고 이단이라고 할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들이 다 부녀와 간음을 하고 있는 행위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고 그 영혼이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종교가 그렇습니다.

이렇게 부녀와 간음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간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의 일에 대해서 너무 무지해서 그것을 간음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간음하는 것을 자랑하고 있고 더 많이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에서 교회는 주님의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려서 부녀입니다. 요한이서에서도 부녀라고 의인화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아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아내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교회는 주님의 아내입니다. 정말 강조를 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려도 못 알아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의 아내입니다.

 

내 아내가 아닙니다.

주님의 아내를 내가 사랑해서 됩니까? 안 됩니까? 주님의 아내를 내 아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라고 하니까 막연히 너무 좋게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 교회가 부녀고 주님의 아내라는 것을 이 시대는 모르고 있습니다. 영의 일에 대해서 무지해서 주님의 아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남의 아내를 사랑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이 발각이 안 될 때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일단 발각이 되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이 세상의 부녀도 그런데 주님의 아내를 사랑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녀와 간음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은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 영혼을 죽여 버리십니다. 아니 죽은 영혼을 살리시지를 않습니다.

 

교회 안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녀와 간음을 하고 있는 자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 교회가 주님의 아내라는 것을 모르고 간음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의 아내와 간음을 하고도 살기를 바랍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누구인가 하면 천국에 가기 위해서 교회에 나와서 부녀와 간음을 하다가 그 영혼이 망해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부녀와 마음껏 간음하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부녀와 간음하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면서 그 영혼들을 스스로 망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 간음의 문제입니다.

영혼 구원을 방해하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이 부녀와의 간음이라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무지해서 자기가 부녀와 간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영의 일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교회는 주님의 아내이지 내 아내가 아닙니다. 주님의 아내를 사랑하고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창세기부터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도 이 부녀와 간음을 하려고 하는 왕에 대한 말씀입니다. 아니 부녀를 취해서 자기 부인을 삼으려고 하는 왕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경고를 하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메타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그 영혼을 망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하며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 자손들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기 위해서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려고 그를 갈데아우르에서 부르셨지만, 아직 아브라함은 정착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남방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술과 그랄에 우거하며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사라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 사라로 인하여 자기가 죽을 것을 염려해서 누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아브라함이지만 이렇게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는 삶에서는 자기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 사람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애굽 왕이 사라를 취하려고 했습니다.

그때가 나이 75세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이후에 또 똑같은 일이 있지만,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로 인하여 죽을까봐 누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라의 나이도 90이 가까운 나이인데도 그때 사라가 얼마나 아름다웠는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90세 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90세인 노인을 누가 취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의 모든 말씀은 예표와 그림자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실제 사라가 그렇게 아름다웠을 수도 있고 또 예표로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렇게 기록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름다웠던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했습니다. 당시 왕이라면 자기가 원하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데 사라를 취했다는 것을 볼 때 사라가 얼마나 아름다웠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라가 아름답다는 것을 우리는 잘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아비멜렉입니다.

아버지는 나의 왕이라는 이름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수명이 상당히 길었던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노아 때와 같이 구백세 이상을 살지는 않았지만, 사람의 수명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도 거의 200세 가까이 살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100세가 넘어도 젊어 보였고 사라도 그렇게 아름다웠던 것으로 생각되어 집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나이 50만 넘어도 할아버지 같았습니다. 그러나 제 나이가 벌써 70대 초반인데 그때와는 너무도 다릅니다. 사실 70대 초반이라 해도 이제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수명이 연장이 되니까 사람들이 젊게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전에 60세 초반에 비하면 10년 이상이 젊게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마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거의 200세 가까이 살다 보니까 나이가 100세가 되어도 지금 우리 40대 정도 되는 것 같이 아주 젊어 보였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까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보고 그 아름다움에 반해서 취했다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단지 그 사건입니까?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랄 왕이 사라를 취하려고 한 것을 왜 성경에 기록했습니까? 사라가 아름답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기록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랄 왕에게서 아브라함을 구해 주시기 위해서 이 말씀을 기록했습니까? 이미 그 일이라면 애굽 왕을 통해서 한번 보여주셨습니다.

 

20여 년 전에 똑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똑같은 일을 또 다시 성경에 기록할 이유가 있습니까? 주변 왕들을 두려워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지켜 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또 그런 사건이 있게 하셨습니까? 그리고 그랄 왕 아비멜렉에서도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구해 주시는 일을 반복할 필요성이 있습니까?

 

성경은 예표입니다.

애굽 왕과 그랄 왕은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교훈이 너무 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거의 똑같은 유사한 사건이 있게 하시고 있습니다. 단지 다르다면 애굽 왕은 하나님을 안 믿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그랄 왕 아비멜렉은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어느 정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가 구원을 받을 믿음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 사건의 진행을 통해서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누이 사라를 취해서 그를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라가 정말 아름다웠기 때문에 아비멜렉으로서는 당연히 취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

 

그 밤에 하나님께서 꿈에 현몽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에게 네가 취한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그는 남의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비멜렉이 누구인가를 잘 아시기 바랍니다. 그는 비록 그랄에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당시만 해도 노아의 후손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홍수에 대해서 들었고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입니다.

단지 남의 아내를 취한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그랄 왕 아비멜렉을 죽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아내를 취한 그것으로 아비멜렉을 죽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늘 주의 깊게 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네 자손이 하늘의 뭇별과 같이 많으리라고 언약을 해 주셨습니다. 그 자손이 사라에게서 나야 하는데 아직 이삭을 낳기 전에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현몽을 하셔서 사라를 취한 것으로 죽이겠다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그가 남의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단순히 그가 남의 아내여서 지금 하나님께서 그랄 왕의 꿈에 나타나 죽이시겠다고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그렇게 단순하게 보지 마시고 그 안에 있는 깊은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남의 아내입니다.

이 시대도 남의 아내를 취하려고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죽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랄 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단지 생리적인 남의 아내를 취한 것으로 죽이시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남의 아내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랄 왕을 죽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남의 아내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생리적인 남의 아내만 알고 있지 영적인 남의 아내에 대해서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똑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남의 아내니라 그를 취하면 반드시 죽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있고 남의 아내를 취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32절을 보면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에베소서 5장에서 교회를 주님의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그도와 교회에 대해서 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남의 아내를 취하려고 하는 자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아내입니다. 그런데 그 아내를 취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남의 아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는 남의 아내입니다. 그런데 그 아내를 자기 아내와 같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 아내를 사랑하고 있고 그 아내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있고 그 아내를 위해서 심지어는 싸우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왜 남의 아내를 위해서 자기가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고 싸우고 있습니까?

 

왜 그런 일이 있습니까?

그것은 교회가 누구의 아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의 아내를 취하는 순간 그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죽여 버리시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누누이 이렇게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남의 아내를 자기 아내같이 생각하고 그 아내를 너무 사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아니한 고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그가 나더러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아비멜렉이 묻고 있습니다.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비멜렉이 자기가 의롭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틀립니까? 아비멜렉은 의롭습니다. 분명히 아브라함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했기 때문에 취한 것이지 아내라고 했으면 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가 잘 못 했습니까?

사실은 아브라함이 잘못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두려워서 사라를 누이라고 해서 아비멜렉이 사라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를 취하려고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아비멜렉의 입장에서는 자기는 의롭게 행했는데 하나님께서 죽이겠다고 하시니까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나더러 이는 내 누이라 했고 그 여인도 내 오라비라고 했기 때문에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했다고 말합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예표입니다. 바로 뒤에 말씀에 아브라함은 선지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라는 그의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세 가지 직임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것은 왕으로 오셨고 제사장으로 오셨고 선지자로 오셨습니다. 지금 아브라함을 예표로 해서 주님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선지자의 아내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입니다. 그 아내는 바로 교회입니다. 그 아내를 아비멜렉이 취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비말렉은 그가 선지자의 아내라는 것을 모르고 누이로 알고 취하려고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취하려고 했다고 말하고 있고 그것을 하나님께서도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

 

이 시대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이 아비멜렉과 같이 남의 아내를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가 주님의 아내라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만약에 교회가 주님의 아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이렇게까지 음행을 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선지자의 아내인 교회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취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를 위해서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남의 아내를 그렇게 사랑하면서도 그것을 죄악이라고 생각지도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남의 아내인 줄 모르고 온전한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 해도 역시 죽이시겠다는 것을 지금 아비멜렉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온전한 마음입니다.

정말 깨끗한 마음으로 취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정말 하나님을 위하는 온전한 마음으로 교회에 나가서 헌신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선지자의 아내를 취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간음하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단지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의 아내가 아니라 창조주의 아내인 교회를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진심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온전한 마음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아무리 온전한 마음이라고 해도 안 됩니다. 또 주님의 아내라는 것을 내가 몰랐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속았습니다. 그가 남의 아내라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가 속아서 몰랐든 무지해서 몰랐든 간에 만약에 남의 아내를 취했다가는 하나님께서 죽여 버리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지 이 세상의 남의 아내가 아닙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아내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그 아내를 자기들이 마음껏 취하고 있고 간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속아서 남의 아내를 취했든 아니면 무지해서 남의 아내를 취했던 그와 간음을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죽이시겠다는 것을 이 아비말렉의 사건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남의 아내입니다.

내 아내처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교회를 위해서 이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교회와 간음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은 다 간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의 아내를 취하고 통한이 여기지도 않고 있고 오히려 그것을 기뻐하고 있는 것이 바로 무지한 교인들입니다.

 

살기를 바랍니까?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그 영혼이 망하게 됩니다. 잠언에서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부녀와 간음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그것이 교회가 되고 그 교회가 보이기 시작을 하면 이상하게도 이 부녀와 간음을 하고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랬고 지금 이 시대 교인들이 마음껏 간음하면서도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를 웅장하게 짓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오케스트라 같은 찬양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매주 마다 꽃으로 치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 교회를 위해서 자기들이 수고해서 번 돈을 아낌이 없이 너무도 기쁜 마음으로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어떻게 하든지 아름답게 만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남의 아내를 취하는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이 시대는 간음에 깊이 빠져 있으면서도 무지해서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온전한 마음입니까?

정말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아비멜렉과 같이 왕이 남의 아내를 취하는 일입니다. 교회가 종교가 되면 이렇게 되고 있고 실제 이 시대 그것이 눈으로 뻔히 보이고 있지만,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영혼을 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7,“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줄 알찌니라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선지자입니다. 그가 너를 위해서 기도를 하면 네가 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막론에서 분향단을 배웠습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해 주심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습니다. 주님의 아내를 돌려보내면 주님께서 그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아내입니다.

온전한 마음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믿음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의 아내를 취하고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더구나 창조주의 아내를 취하고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했든 정말 하나님을 사랑해서 했던 믿음으로 했든 여러분이 지금 이 시대 교회를 위해서 하고 있는 그 모든 일들이 다 남의 아내를 취하는 일이며 그 일로 인하려 반드시 하나님께서 죽이실 것입니다

 

돌려보내라고 말씀합니다.

아비멜렉에게 너만 죽인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를 취하고 있는 교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간음하는 행위가 나타나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다 죽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몰라서 겁이 없이 주님의 아내인 교회를 위해서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면서 간음하고 있습니다.

 

다 죽습니다.

그 교회 안에서 누군가 간음을 하면 아니 목사가 간음하고 있으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죽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주님의 아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영의 비밀을 모르면 아무리 그가 교회 안에 있다 해도 이렇게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와 간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도 모두가 죽습니다. 영의 비밀을 바로 깨달아 자기 영혼을 보존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왕 같은 제사장이고 성도라 해도 교회를 취하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함을 얻어 살기를 바랍니다. 그런 성도가 되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