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강,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민수기14:20-2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그러나 진실로 나의 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으로 맹세하노니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로 하여 광야로 들어갈찌니라”
오늘 이 설교를 작성하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늘 의문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에 들어가는데 여호수아는 그래도 늘 모세의 곁에서 보좌를 했으므로 모세가 죽은 이후에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가는데 별로 의문을 달지 않을 수 있으나 갈렙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민수기 26장 65절을 설교 말씀으로 올렸지만 그래도 뭔가 의문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뜻 밖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연세가 드신 권사님이신데 성경을 참 많이 읽으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알기로는 70독 이상을 하신 것으로 압니다. 그분과 많은 통화를 하면서 교제를 나누었는데 갈렙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심으로 제 의문이 다 풀렸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리고 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 꾸짖지 아니하시고 주신다는 야고보서의 말씀이 더욱 가슴에 와 닫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최소한 교회라면 그리고 성도라면 이런 교제가 있어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목사인 저도 배워야 하고 또 권사님을 통해 아주 중요한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상하 관계가 아니라 수평 관계에서 언제든지 소통이 되어야 그 교회가 바로 성장을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분과 저는 아직 얼굴로 마주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늘 통화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그분이 얼마나 영혼을 사모하고 있는가를 충분히 공감을 하고 있고 많은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저 보다도 더 많이 성경을 읽고 계신다는데 제가 오히려 고개가 숙여지기 까지 합니다. 늘 아쉬운 마음이지만 여유가 된다면 한 몇 년간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성경만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연세가 있으셔서 성경을 참 많이 읽고 있습니다.
성도가 나이가 들면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가를 아주 잘 가르쳐 주시고 있고 또 그분을 통해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다시 한 번 자기 신앙에 대한 도전을 가지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기도는 참 많이 합니다.
그리고 찬송가를 듣기를 즐겨하고 있습니다.
또 교회에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면서 여러 가지로 봉사를 하고 있지만 그들이 과연 지혜를 사모해서 성경을 얼마나 읽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합니다. 자기 영혼을 위해서는 스스로 권사님과 같이 늘 성경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행위로 하는 일을 80%이상 줄이고 정말 그 시간에 지혜를 사모하면서 성경을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자기 영혼을 보존하는 지혜로운 성도의 모습입니다. 기도, 예배, 찬송, 봉사, 헌신, 사랑... 등 그런 것 80%이상 줄이고 성경에서 지혜를 사모하는 성도만이 구원을 받는 길을 가고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교회가 너무 행위에 빠져 있습니다.
어떤 예배를 해야 하는 가를 모르고 있고 예배에 대해서도 바른 정립이 안 되어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는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러 왔다가 예배를 하지 못하니까 다시 돌아가면서도 자기가 모르는 그 성경 말씀 이사야를 읽으면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빌립을 보내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게 하셨습니다.
예수에 대해서 얼마나 압니까?
이런 말씀을 드리면 대단히 죄송하지만 한국 교회는 예수에 대해서 무지에 가깝다고 보아야 합니다. 어린 아이 보다도 못한 지혜를 가지고서 자기가 예수를 아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고 그런 지혜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현재 이 명박 대통령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과연 여러분은 이 명박 대통령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안다고 하는 것은 사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명박 대통령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통령 본인 이외는 아무도 모릅니다. 물론 부인이나 자녀들은 남들 보다 조금 더 많이 안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주 잘 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안다고 할 때 최소한 이 명박 대통령이 나를 안다고 할 때 그나마 아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이 명박 대통령을 안다고 아무리 주장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아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 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실 부부라도 모르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 사람 본인이 숨김이 없이 사실 그대로 이야기 해 주어야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아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셔야 내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2:11절을 보면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사람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숨김이 없이 진실 되게 이야기 해 주면 그 사람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하나님의 깊은 것 까지도 알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보혜사께서 오셔서 가르쳐 주셔야지 만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에게서 은사가 나타나는 것과 보혜사 성령의 임재는 다릅니다.
내가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고 찬송을 하고 기도를 하고 예배를 하고 이웃 사랑을 하고 하는 이 모든 것을 해도 보혜사가 임하지 않고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과연 보혜사가 임한 성도가 얼마나 되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오늘은 갈렙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늘 왜? 하고 많은 이스라엘 사람 중에 갈렙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늘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정탐을 하고 난 후에 여호수아와 같이 말을 해서 가나안에 들어갔다는 것도 물론 이해가 되지만 그것만으로는 갈렙이라는 인물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부족합니다.
20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그러나 진실로 나의 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으로 맹세하노니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이스라엘이 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그것을 이루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애굽의 강한 군대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나안에 정탐을 보내기 까지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계속해서 시험을 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 하면서 늘 자기들의 생각대로 나아가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기 보다는 자기들의 눈에 보이는 당장의 것에 급급하여 늘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정탐꾼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데 그들은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통곡을 하면서 울었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이제 갈렙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보겠습니다.
민수기13:6절을 보면
“유다 지파에서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요”
갈렙이 유다 지파 사람입니까?
저도 그렇게만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너무 쉽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탐꾼을 보내는데 각 지파에서 대표를 뽑는데 당연히 그 대표에 뽑혔다면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도 이제까지는 갈렙이 유다 지파라는 것에 대해서 의심을 가지지 않았고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나안을 정탐하는데 각 지파의 족장 중에 대표를 뽑는데 누가 의심을 하겠으며 누가 갈렙을 유다지파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민수기32:12절을 보면
“다만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볼 것은 여호와를 온전히 순종하였음이니라 하시고”
갈렙을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갈렙이라는 이름의 뜻은 개(dog) 종, 노예라는 뜻입니다 갈렙은 그냥 보통 사람이 아니라 개 같이 취급을 받았던 그런 노예 출신이었던 것으로 그 이름에서 알 수 있습니다. 개라고 하는 것은 정말 비참한 노예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갈렙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애굽에서 이스라엘보다 더 비참하게 살다가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 이스라엘을 이끌어 낼 때 같이 따라 나온 사람입니다 출애굽기 12장에 중다한 잡족이 이스라엘과 함께 나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렙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중다한 잡족 중에 끼어 있던 무리였습니다.
중다한 잡족들은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 소속이 되었고 갈렙은 유다 지파에 들어가 거기서 잡족들의 족장으로 있는 그를 보고 모세가 정탐꾼으로 보내는 대표로 뽑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당시 유다 지파에서는 갈렙 만한 사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왜 그 이름의 뜻이 그런가를 조상을 통해 알아 볼 수 있습니다.
그나스라는 이름이 어디에 나오는가를 성경을 통해 살펴보면 그가 정말 이스라엘 사람인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 가르쳐 주고 있지만 우리가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기 때문에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창세기36:15절을 보면
“에서 자손 중 족장은 이러하니라 에서의 장자 엘리바스의 자손에는 데만 족장, 오말 족장, 스보 족장, 그나스 족장과”
여기 그나스가 나옵니다.
에서의 자손 중에 그나스 족장이 나옵니다.
이 갈렙은 아마도 애굽이 그 당시 제일 강대국이었기 때문에 전쟁을 해서 포로로 잡혀 와서 애굽에 살고 있던 사람 중에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의 같은 경우 요셉으로 인하여 대우를 받고 살았지만 전쟁 포로인 갈렙은 개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정 인찬역 성경 대 백과사전에도 갈렙을 이방인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이었지만 그가 정탐꾼의 대표로 유다 지파를 대표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자기 처지가 개 같기에 이스라엘 보다 더 간절하게 가나안에 들어가 유업을 받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아 갈 수 없었습니다.
개 같은 노예로 살다가 이제 자유를 맛보고 있는 갈렙의 입장에서는 다시 애굽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스라엘보다도 더 가나안 땅을 사모했고 그 땅에 들어가 유업을 받아 사람답게 살고 싶었던 갈렙으로서는 가나안 정복만이 자기가 살길이었습니다.
가나안은 천국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민수기13:30절을 보면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애굽도 이기신 하나님입니다
그 당시 가장 강대국이었던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조상과 언약을 한 그 땅을 주시기 위해 광야로 이끌어 내셨는데 사실 가나안을 점령하는 것은 애굽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쉬운 일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절박했을 것입니다
갈렙의 입장에서는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애굽이었기에 너무도 절박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어떻게 하든지 가나안에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민수기14:3-4절을 보면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다시 돌아가자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돌아 갈 수 있을지 몰라도 갈렙은 개 같은 노예로 살았는데 어떻게 다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은 고난을 받았지만 그래도 죽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을 했고 갈렙은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죽는 것 보다 못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 따라 왔겠습니까?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스라엘을 따라 나왔을 때는 개 같이 살던 그 노예의 삶에서 해방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는 노예지만 이스라엘과 함께 하면 최소한 노예는 되지 않을 수 있고 또 모세가 각 지파로 보내 그들에게도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하는데 갈렙은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절박했습니다.
다시 돌아가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말을 듣고 너무도 절박한 갈렙의 입장에서는 옷을 찢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도 개 같은 노예가 될 것이고 또 설령 싸우다가 진다 해도 역시 개 같은 노예가 될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가나안은 한번 싸움이라도 해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애굽으로 돌아가면 싸움도 하지 못하고 그들의 노예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갈렙이라는 그 이름의 뜻에서 그가 어떤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가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싸워 보지도 않고 노예가 되는 것과 싸워서 이기면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는 것과 어떤 것을 선택을 하느냐는 누구나 쉽게 공감을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민수기14:6절을 보면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갈렙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씀을 하고 있지만 가장 현실적인 것은 갈렙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곳은 가나안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가나안이 아니고는 그는 다시 절망의 늪으로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그가 옷을 안 찢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소망이 있는 사람은 자꾸 돌아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노예로 밖에 살 수 없다는 것을 개 같은 노예 밖에는 안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처절할 정도로 몸으로 격은 사람은 싸우다 죽더라도 가나안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미련이 남아 있는 사람은 자꾸 돌아보고 그 세상의 끈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심정입니까?
천국을 바라보고 그것을 소망하는 그 심정이 어떠한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갈렙과 같이 이 세상에서는 개 같은 노예로 밖에는 살 수 없을 때 그는 오직 천국만을 바라보고 어떻게 하든지 싸워서라도 들어가려고 합니다.
초대교회를 교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를 했을 때 가장 많이 복음을 믿고 따랐던 사람들은 바로 노예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소망이 없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전하는 천국 복음에 대해서 가슴이 와 다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좋은 천국에 어떻게 하든지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런 실 낫 같은 소망도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사도 바울이 전하는 천국 복음이 간절했고 비록 이 세상에서는 개 같은 노예로 아니 주인이 기르는 개보다도 못하는 노예로 살다 죽을지라도 정말 천국이 있다면 그곳에 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노예들이 초대 교회의 주축이 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24절,“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이것은 은혜입니다
가나안은 천국의 모형입니다
그곳은 이방인에게 허락이 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 이스라엘에게 허락이 된 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갈렙에게 그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갈렙은 이방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만 천국에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갈렙을 통해 천국에는 이방인도 들어간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 주셨습니다. 이방인이 우리에게도 소망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갈렙은 이스라엘 자손이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하나도 없는 이방인입니다
그는 더구나 개보다도 못한 노예였고 이방인입니다 갈렙을 통해 그런 이방인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갈렙을 통해 우리도 소망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애굽에서 나온 20세 이상의 모든 남자가 다 광야에서 죽었는데 오직 갈렙 만이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에 들어가는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면 갈렙은 이방인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갈렙도 사람입니다
그가 무엇을 특별히 잘 해서가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비록 자기와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약속한 그 땅을 반드시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고 또 그 능력을 믿고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입니다
그러나 이방인에게는 갈렙이 있었습니다.
천국은 이스라엘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우리 이방인들에게도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개 같은 노예로 산 갈렙을 통해 어떤 자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너무도 풍족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마치 세상의 주인이 된 것처럼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안타깝기만 합니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더 이상 소망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곳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며 우리 눈은 갈렙과 같이 오직 가나안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세상 사람들보다 더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그들에게 천국은 그리 절박하지도 않고 가슴에 와 닫지도 않습니다.
그는 정탐꾼으로 갔습니다.
오직 그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자기가 정탐 했던 그 땅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실제 20세 이상의 남자들이 광야에서 다 죽고 난 후에 그는 가나안에 들어가 자기가 정탐 했던 헤브론 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가나안을 가장 먼저 받은 사람이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방인인 바로 갈렙이라는 말씀입니다 아직 가나안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또 그 땅을 분배하기도 전에 이방인이 갈렙에게 하나님께서는 그가 정탐한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시고 실제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여호수아는 갈렙에게 그 땅을 주어서 이스라엘로 살아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갈렙이 가나안 땅을 받은 것은 우연도 아니고 또 그가 다른 사람 보다 더 뛰어나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마음에 갈렙을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마음에 따라 갈렙에게 가나안 땅에 기업을 주셨습니다. 천국은 내가 노력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갈렙은 그 뜻을 알고 기뻐했으며 가나안을 너무도 사모 했기에 이스라엘 모두가 반대를 하고 그 땅을 악평하여 소리 내어 통곡을 하면서 울 때 그는 옷을 찢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우리가 그 땅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을 했습니다.
나를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가 냉정하게 내 자신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갈렙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기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성경을 통해 보겠습니다.
히브리서11:6절을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갈렙은 믿음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60만이 나왔지만 그 중에 믿음이 있는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믿음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민수기14:8절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고 확신에 찬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직 두 사람 만이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있는 여호수아와 갈렙만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입니다.
내가 이방인이냐 아니 이방인 중에서도 개 같은 노예로 살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이 있는 사람 하나님이 자기를 기뻐하시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적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아주 적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이적과 기사를 다 보여 주시고 가장 강대국인 애굽에서 자기들을 이끌어 내셨는데도 그리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또 그들을 위해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는데도 그것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갈렙은 모형입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는 그림자입니다
사실 초대 교회의 다수의 성도들이 바로 갈렙과 같은 처지에 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부자냐 노예냐 하는 것을 따지지 않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 있느냐에 따라 천국으로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갈렙만은 그들과 달랐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갈렙만이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를 기뻐하시고 이방인임에도 제일 먼저 그에게 가나안 땅을 주는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이 시대도 많은 교인이 있지만 그들과 다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만을 보시고 갈렙과 같은 나를 오늘도 헤브론 땅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 땅을 차지하시고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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