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56강,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윤주만목사 2019. 8. 13. 08:40


156,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누가복음19:11-15절을 보면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가라사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그런데 그 백성이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가로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 하였더라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마태복음에는 달란트의 비유가 나옵니다.

복음의 말씀에 이미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 했고 오늘의 달란트의 비유와 다른 므나의 비유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므나의 비유나 달란트의 비유나 똑 같이 구원론에 관련된 비유입니다

 

두 비유에서 달란트나 므나를 남기지 못한 종들에게 예수님께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그들에게 주었던 달란트와 므나를 빼앗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그 원문 그대로 해석을 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비유라고 말씀을 하셨고 이 비유에 담겨 있는 뜻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비유에서 똑 같이 악인이 등장을 하는데 이 악인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은 죄인은 구원을 받을 수 있지만 악인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주님으로부터 달란트나 므나를 받고도 그것을 남기지 못하는 사람은 악인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달란트의 비유와 므나의 비유를 바로 해석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이 악인 인가를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은 어떻게 받습니까?

오직 믿음입니다. 만약 그 외에 다른 방법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단이며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이 두 비유를 보면 마치 자기가 무엇을 해서 달란트를 남기고 또 므나를 남겨야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11,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왜 이 비유를 말씀하셨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만나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을 하시려고 하니까 제자들과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 했고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속을 이루시는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죽음에 이르시고 또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그 사역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던 때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므나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가를 미리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2, “가라사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어떤 귀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의 왕위가 아니라 영원히 있을 다윗의 왕위를 받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먼 나라 하늘에 올라 가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늘 함께 계시면 좋은데 예수님은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시기 위해서 죽음을 당하시고 또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시는 먼 나라에 갔다 오셔야 합니다.

 

달란트의 비유와 다릅니다.

달란트의 비유는 세 사람을 불러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주고 그것을 가지고 장사를 하라고 말씀을 하시고 그들이 실제 장사를 해서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두 달란트를 남기고 다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것을 숨겨 두었다가 주님으로부터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듣고 주님이 주신 달란트를 빼앗아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줍니다.

 

그것은 배수이며 바로 생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주시고 그로 인하여 우리 안에 영혼이라는 생명을 탄생할 수 있게 하신 것을 달란트의 비유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므나의 비유는 조금 다릅니다.

열 명의 종을 불러 각자에게 모두 동일하게 한 므나씩을 주고 하늘에 올라 가셨습니다. 달란트의 비유는 생명인데 이 므나의 비유는 무엇을 비유한 것인가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므나를 남기지 못한 종을 예수님께서 악하다고 하시고 예수님이 주신 그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를 남긴 자게에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드시 장사를 해야 합니다.

장사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무엇을 팔고 사는 행위로 오해를 하고 있고 마치 이 세상에서 사과 하나를 팔아서 두 개를 남기는 것으로 오해를 합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영혼 구원에 대한 말씀이며 우리 눈에 보이는 그런 장사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알기 쉽게 장사라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하늘의 일을 아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장사를 하는 것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장사를 해서 무슨 물건을 남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달란트나 므나는 우리 눈에 보이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우리의 구원은 행위 구원이 되며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 말씀을 예수님 스스로 번복을 하는 말씀이 되고 맙니다. 달란트나 므나를 마치 보이는 어떤 것으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달란트를 은사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성경을 너무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은사는 구원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설령 아무리 좋은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그 은사를 사용하지 않는다 해도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달란트의 비유는 오직 믿음으로 자기 영혼의 생명을 다시 탄생시키는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므나는 과연 무엇인가 쉽게 이해가 안 됩니다

 

더구나 각자에게 한 므나를 주셨습니다.

달란트의 비유처럼 배수를 남긴 것이 아니라 한 므나를 가지고 누구는 다섯 므나를 그리고 또 누구는 열 므나를 남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똑 같은 것을 주었는데 사람마다 남긴 것이 다릅니다. 달란트의 비유는 똑 같은 것을 주고 똑 같은 것을 남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므나의 비유는 서로 다릅니다.

다시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이 말씀은 비유고 눈에 보이는 화폐 므나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을 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을 남기려 하는 사람은 반드시 망하고 맙니다.

 

저는 이 므나를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믿음이라고 생각하느냐하면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믿음을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그냥 당신 예수 믿습니까? 이런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내 육체의 생명과 바꿀 수 있는 그런 믿음을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또 이 믿으므로 말미암아 때로는 출교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하니까 또 무슨 행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절대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앞서서 말씀을 드렸지만 이 므나는 우리 눈으로 보이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떤 정해진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주님은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가시고 난 후에 이 믿음을 대적하는 일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자기 생명까지 내 놓고 이 믿음을 요구할 때가 있었고 또 천주교에 의해서 믿음의 선진들이 순교를 당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자기 생명과 직결이 되는 그런 믿음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또 교회에서 출교를 당합니다.

내 믿음을 지키려 하다 보니까 교회에서 출교를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기도 합니다. 제가 예로 한 가지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사 제도는 폐해졌습니다. 제사 제도가 폐해졌으면 절기나 또 제사 제도에 따르는 규례가 폐해져야 합니다.

 

바로 십일조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나오면 정말 입에 거품을 물고 대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마치 십일조가 없으면 교회가 무너지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그 십일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 제사 제도는 반드시 변역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성도라면 당연히 십일조를 폐해야 합니다.

 

이 십일조는 우리나라만 존재하는 제사 제도의 법입니다

구약만을 보고 있는 이스라엘도 지금 제사를 안 드리고 있고 육적인 레위 인이 없기 때문에 이 십일조를 안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이 십일조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십일조를 안내면 과연 신앙생활을 원만히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십일조를 반대 했다가는 이단으로 몰려 교회에서 출교를 당할 것이 뻔 한 일입니다. 그런데 수십 년 신앙생활을 해 온 사람이 그 교회에서 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제까지는 모르고 했지만 그 십일조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았을 때 성령은 우리에게 믿음을 보이라고 합니다.

 

과연 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제가 알기로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십일조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들어도 그것을 어쩔 수 없이 하면서 그 교회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행함이 있는 성도라면 십일조를 안 내든지 아니면 그 교회를 나오든지 해야 합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교회에 헌금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유지하고 또 복음을 전해야 하면 당연히 성도는 연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이 누군가를 통해 이 십일조 문제에 대해서 가르쳐 준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까지 행해왔던 신앙생활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십일조를 하면서 자기가 있던 자리를 지키려고 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과연 그 송구영신 예배라는 것이 성경적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심지어는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면서 샤머니즘적인 행위들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제비뽑기를 한다든지 또 자기의 죄를 종이에 써서 태우는 정말 웃지 못 할 일들을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4:10-11절을 보면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사도바울은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해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비 성경적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고 해를 지키고 있는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헛되게 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송구영신이라는 있지도 않은 예배를 드리면서 샤머니즘에 미혹이 되어 기복을 빌고 있습니다. 무당이 하는 짓과 무엇이 다릅니까?

 

세상 적인 것입니다

불교나 무당들은 그 신도들이 그들에게 부탁을 해서 새해가 되면 기도를 하면서 복을 빌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런 일들을 하면서도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는 것은 정말 통탄을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의례히 행해 와서 모르고 행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송구영신이라는 예배를 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것을 지킴으로 복음이 헛되어진 다는 것을 가르쳐 줄 때 과연 이 시대 교인들 중에 몇이나 송구영신 예배를 안 드릴 수 있겠습니까? 누가 과연 송구영신 예배를 안 드리면서 교회 안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 다수가 굴복을 할 것입니다

설사 성령이 그것을 깨달을 지혜를 주신다 해도 제가 보기에는 송구영신 예배를 안 드릴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초대 교회는 직접적으로 그 생명을 빼앗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요구했다면 이제는 거대한 교회라는 세력에 싸우기 힘든 그런 행함이 있는 믿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두 가지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행위들 중에 그것도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는 열심 중에 실제 복음을 거절하는 행위들이 얼마나 많은 가를 냉정하게 분별을 해야 합니다. 그런 행위들로부터 내 영혼을 지킬 수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예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수많은 것들이 복음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고 설령 누군가 그것을 바로 전해준다 해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또 다른 므나를 남길 수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므나를 장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는 일평생 동안 그 므나를 남길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사람에게는 단 한번이 올 수도 있고 어느 사람에게는 너무 힘들게 10번이 찾아 올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행함을 요구할 때 그것을 이겨내는 사람만이 믿음이 있는 성도요 그런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나온 것은 구원을 받은 증표가 아니라 이제 부터의 영적인 싸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세상에 있을 때가 아니라 교회에 나왔을 때부터 영적인 싸움이 시작이 되고 그 영의 싸움에서 지는 자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누구에게 기록한 말씀입니까?

이 세상 사람들에게 기록한 말씀이 아니라 바로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이 보도록 기록한 말씀입니다 이 교회 안에 들어 온 사람 중에는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사람이 있고 또 악하다고 책망을 받는 종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을 합니다.

달란트의 비유나 므나의 비유를 보면서 마치 그것이 어떤 행위를 잘 해서 그런 행위들을 남기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두 비유가 행위에 대한 것이라면 이 세상에는 구원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습니다.

이 믿음에 반하는 행위들을 교회 안에서 너무 많이 행하고 있고 그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았을 때 과연 누가 그것에 대해서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14,“그런데 그 백성이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가로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 하였더라

 

누가 미워했습니까?

바로 육적인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로 오신 것을 부정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는 악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아직 까지도 그들은 자기들을 구원할 육적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을 하고 있습니다.

 

15,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이 세상에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을 성경은 예언을 하고 있고 우리는 그렇게 되어 질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각자에게 준 므나를 정산을 합니다.

 

이 므나는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는데 그 믿음을 방해하는 행위들을 하고 있고 그런 것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분명히 성령께서는 이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음녀에게 굴복을 하고 맙니다.

 

저도 모태신앙이 아닙니다

제 인생의 중반에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해 왔고 그것이 몸에 배여 30여년 동안 이렇게 하는 내 행위가 맞는 가 틀린가도 모르고 그저 시키는 대로 해 왔습니다. 그러다 주님의 은혜로 바른 복음을 가지고 있는 전도자를 만남으로 해서복음을 조금씩 깨닫게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성경을 볼 때마다 새로운 은혜를 주시고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제까지 행해왔던 아주 당연한 그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고 한 동안 수많은 갈등을 하게 되고 또 확신이 서지 않아서 그대로 해 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이 되니까 성령께서 감동을 주시고 그것을 이길 힘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제 스스로 그런 율법적인 행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종교적인 열심이 여러분을 망하게 하고 있습니다.

제가 교회 안에서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 지나친 행위의 열심이 오히려 믿음을 방해하고 있고 그런 율법적인 열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면 여러분은 분명 사망의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모르면 가만히 있기 바랍니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두려웠냐면 어려서부터 소경으로 있다 고침을 받은 그 부모들이 자기 아들이 소경으로 있다 고침을 받았는데도 출교를 당할까 해서 바른 진술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은 너무도 쉬운데 그 믿음을 방해하고 있는 행위를 교회 안에서 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출교를 당해 본 사람만이 그 심정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초대 교회처럼 어느 누구도 생명을 빼앗지는 못 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힘이 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를 안 내고 또 송구영신 예배를 안 드리고 또 절기를 안 지키고 또 안식일을 안 지키고 하는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제가 볼 때 거의 불가능 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단 한 므나도 남기지 못하고 실패를 하고 말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못 남깁니까?

 

누가복음19:20절을 보면

또 한 사람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바로 수건 때문에 못 남깁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는 땅에 감추어 두었다가 못 남기고 지금은 수건에 쌓아 두었다가 못 남기는 불행한 일을 만들고 맙니다. 이 수건이 행함이 있는 믿음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수건에 있는 것을 지키려 하다 보니까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3:14절을 보면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이 수건은 바로 율법입니다

율법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은 그 율법을 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을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에서 절기를 폐했다고 분명히 기록을 하고 있는데도 수건에 쌓여서 그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아직도 교회 안에서 수많은 절기를 지키고 있고 심지어는 성경에 없는 이 세상의 절기를 끌어와서 지키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추수감사절입니다. 추수감사절은 성경에 없습니다.

이것은 미국인들의 명절인 것입니다

 

수건에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느라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일 수 없고 그 율법에 구속이 되어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고는 도저히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 했습니다. 아니 그 율법에 대해서 반대를 하면 이단이라고 오히려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폐해졌습니다.

만약 율법의 어느 한 가지라도 아직 살아 있다면 우리는 휘장 가운데로 담대히 나아갈 수 없습니다. 휘장 안에는 법궤가 있어서 율법에 반하는 일을 한 사람은 반드시 죽임을 당하기 때문에 그리로 갔다가는 모두 죽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육체로 휘장을 찢어 버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담대히 휘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담력을 얻었습니다.

 

이 수건이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행함이 있는 믿음의 므나를 남기려고 하면 이 율법이 방해를 하면서 율법을 지키라고 요구를 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셨는데 아직도 그 율법의 어느 것들 중에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을 지키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수십 년 한 사람이 과연 십일조를 안 드리고 또 절기를 안 지키고 또 송구영신 예배를 안 드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를 안 하고 교회에 다닐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사회생활의 생명이 끈기는 일입니다

이제까지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해왔는데 그것을 더 이상 하지 말고 교회와 대적을 하라 하면 과연 여러분이 그것을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정말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성령께서 담대하게 감동을 해 주시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교회가 얼마나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주시고 또 그것을 믿으라고 믿음의 씨를 뿌려 주셨는데 믿음으로 진보하지는 않고 오히려 다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율법을 지키느라 행함이 있는 믿음을 남길 수 없습니다.

 

교회가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디에 어버이 주일 어린이 주일 심지어는 청년 주일을 만들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은 다 만들어서 일 년 열두 달 매 주가 절기가 되다 시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육체로 절기를 폐하셨는데 지금의 교회는 어떻게 하든지 새로운 절기를 만들어서 지키면서 복음을 헛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신 있습니까?

여러분이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이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일 자신이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장사를 해서 므나를 남겨야 하는데 므나를 남기기는 커녕 수건에 쌓여서 헛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9:21절을 보면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예수님께서 믿음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우리에게 복음의 씨를 뿌려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 악한 종은 예수님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분명히 믿음을 가르쳐 주셨지만 자기 스스로가 율법에 매여서 수건에 쌓아 두고서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도 악한 자들은 그 믿음을 지키려 하기 보다는 행위에 치우쳐서 율법의 수건에 가려져 복음을 믿으려 하지 않고 율법에 구속에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 사람에게만 물어 보았습니다.

열 명의 종에게 한 므나씩 믿음을 주셨지만 실제 주님께서는 3명에게만 물어 보았습니다. 얼마를 남기느냐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실제 이 행함이 있는 믿음을 요구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내 평생에 단 한번이 올 수도 있고 때로는 수십 번이 올 수도 있습니다. 몇 번이 오느냐 그리고 몇 개를 남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야고보서에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을 예로 들어서 행함이 있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기생 라합이 무슨 행위가 좋겠습니까? 기생으로 살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었고 정탐꾼이 왔을 때 오히려 자기 조국을 배신하면서 까지 거짓을 하면서 까지 자기 생명을 걸고 그 정탐꾼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수건을 벗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내가 쓰고 있는 율법의 수건을 벗어야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일 수 있고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므나로 비유를 해서 장사를 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원수는 세상 사람이 아니라 바로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원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을 망하게 했던 자들이 누구입니까?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사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바로 그 사자들이 타락을 해서 그로부터 배우는 모든 사람들이 타락을 하게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 그 타락의 실상을 가르쳐 주면서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성령께서 지금도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많이 남기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많이 남기려하는 그 행위가 율법에 빠지게 하고 있고 실제 이 므나는 그런 눈에 보이는 어떤 행위가 아니라 각 사람에게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믿음의 도전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일시적으로는 좋아하다가도 나중에 도로 율법주의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이려고 하기에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고 크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에는 굴복을 하게 됩니다

 

누가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초대 교회처럼 생명을 단번에 빼앗아 가면 오히려 므나를 남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거대한 세력에 맞서서 진리를 안다 해도 그것을 그대로 지켜 행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는 율법과 복음의 음행이 성행을 하고 있고 그 음행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느냐의 싸움입니다. 세상과의 싸움보다 더 힘든 것이 바로 거대한 세력이 되어 버린 교회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교회가 십일조를 내고 있고 또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있고 또 절기를 지키고 있고 또 여러 가지 삼가 지키는 일을 하고 있는데 과연 여러분이 그것을 안 하면서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절기를 지키고 또 그에 따르는 제사 제도를 지키고 또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하는 이 모든 행위들이 비 성경적인데도 거대한 교회 전체가 그것을 음행을 하듯이 행하고 있는데 과연 그것을 내가 바로 안다 해도 성령의 감동을 받는다 해도 이겨내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큰 음녀가 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말씀을 하고 있는 그 큰 음녀가 바로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들을 하고 있는 교회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교회에서 그런 음행을 하지 않고 므나를 남길 수 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이길수 있는 힘을 주시는 성도는 반드시 다섯 므나를 열 므나를 남길 수 있을 것이라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빼앗기기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교회 안에 들어 온 모든 사람에게는 한 므나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장사하라고 주셨는데 수건이라는 율법에 가려서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이지 못하고 남기지 못하고 있다가 불행한 일을 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쉽습니다.

그러나 대 다수의 사람들은 주님께서 주신 이 믿음을 율법이라는 수건에 쌓아 두고 있다가 주님으로부터 악하다는 책망을 듣고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는 신세로 전락을 하고 맙니다.

 

누가 빼앗깁니까?

교회 안에 들어 온 사람이 빼앗기고 맙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주지도 않았고 그 사람들은 굳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들어왔는데 복음의 씨를 뿌려 주었는데도 므나를 남기지 못하고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처음 주었던 그 복음의 씨를 다시 거두어 가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교회를 만들어 주셨는데 그 교회들이 종교화 되면서부터 점점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고 나중에는 바른 진리를 알게 되어도 므나를 남길 수 있는 능력조차 없게 됩니다.

 

잠언5:8-9절을 보면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하라 그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두렵건대 네 존영이 남에게 잃어버리게 되며 네 수한이 잔포자에게 빼앗기게 될까 하노라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음행에 빠져 있는 큰 음녀로 인하여 생명이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 음녀는 예수를 믿는 것과 율법을 행하는 것을 아주 교묘하게 썩어서 므나를 남기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율법의 수건에 쌓여 믿음을 내 보일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큰 음녀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이단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가 바로 큰 음녀가 될 수 있음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음녀에게 미혹이 되는 순간 눈이 수건에 가려져 믿음의 므나를 남기지 못하게 합니다.

 

이 므나의 비유는 교회 안에 들어온 모든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는 성도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자기에게 주어진 므나를 잘 장사해서 음녀에게 미혹이 되지 않고 자기 믿음을 지켜 구원을 받을 줄 확신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지켜 보호해 주실 줄 믿습니다.

 

시대가 악하므로 정말 깨어 있어 큰 음녀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