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52강,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윤주만목사 2019. 8. 7. 07:48


152,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역대상22:6-10절을 보면

다윗이 그 아들 솔로몬을 불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하기를 부탁하여 이르되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저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지라 저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저의 아비가 되어 그 나라 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니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저도 목사로서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고는 하지만 늘 제 한계를 느낄 때가 많이 있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무익한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자 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했습니다.

그런 덕분에 저 같은 사람이 설교를 작성하는데 있어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데 그 과학이라는 것이 때로는 난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사용하는 USB가 갑자기 고장이 나서 미리 작성한 설교 10여 편 이상이 삭제가 되어 돈을 들여서 일부는 복구를 했고 나머지는 영영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다시 작성하는 설교도 사리진 설교입니다

 

저는 늘 설교를 작성하면서 감동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정말 난감하고 다시 기억이 나지 않아서 새로 작성을 하려면 수고를 배로 해야 됩니다.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가를 다시 느끼고 조심 또 조심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용하는 과학도 그럴 진데 영의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가 얼마나 미천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차라리 낮습니다.

그래도 개구리는 우물 안이라도 바로 알고 있지 우리는 지구라는 우물에 있는 것조차 알지를 못하고 있으면서도 무엇이 그리도 잘 났는지 무엇을 조금만 하면 우쭐되고 싶어 합니다

 

성경은 심오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지혜로는 성경에 있는 말씀을 바로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또 성경을 연구를 하면서 평생을 살았어도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세상의 책은 그 정도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내가 아무리 지혜가 뛰어나다 해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가르쳐 주지 않으면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가 보는 성경입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를 보면 처음 교회에 나온 사람도 성경을 읽기만 하면 깨닫고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놀랍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라면 그 보다 더한 것도 가능하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가를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 교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성경을 깨닫고 그것을 간증이나 또는 다른 방법으로 증거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이면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표면적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표면적으로도 해석이 됩니다.

그러나 또 이면적으로도 해석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우리는 이 두 가지를 통해 그 정답인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부의 표면적 해석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 아니라 행위와 율법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유입니다

그 비유가 어느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나내고 있고 어느 때는 정말 나약한 인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동일한 인물을 가지고 어느 말씀에서는 그를 예수 그리스도로 예표를 하고 있다가도 또 어느 말씀에 와서는 그를 정말 나약한 한 인간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런 것을 바로 분별하지 못하고 성경을 보다가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 시킬 수 있습니다.

 

다윗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는 사실 성경의 여러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인물로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울과 다윗은 이 세상의 두 왕인 사단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고 결국 사울이 죽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은 이 세상의 싸움에서 사단은 죽고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 계셔서 왕이 된다는 것을 예표해 주고 있습니다.

 

시편에서도 다윗은 그런 예표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다윗에 대한 그러한 각인이 너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때로는 본문과 같은 말씀이 나오면 해석을 하기가 힘이 듭니다. 한 가지로 고정을 해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사실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성경 전체가 의문이 생기게 되고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비유는 잘못 해석을 하면 큰 일이 납니다.

신약에서는 여자를 바로 해석을 하지 못해서 아직도 어느 교단에서는 여자 목사를 세우는 것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주관하지 못하고 가르치지 말라는 그 말씀으로 인하여 여자 목사를 세우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목사를 세우지 않는 그들이 여자를 교사로 세우고서는 또는 전도사로 세우고서는 남자 아이들을 그리고 청년들을 가르치게 하고 있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면 성경 말씀을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자 목사를 세우지 않으려면 가르치게 해서도 안 됩니다.

목사를 세우는 것은 안 되고 가르치는 것은 되고 아주 자기들 마음대로 편리한 대로 성경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비유를 모르니까 그 여자가 누구인가를 모르니까 실제 생물학적인 여자로 보고 목사를 안 세우고 그런 그들이 그 생물학적인 여자가 남자를 가르치게 하는 모순에 빠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만약 그 여자가 복음을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그래서 목사 안수를 못 받게 한다면 하나님의 경륜을 방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남자 목사가 복음이 없고 여자가 복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심각하게 방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한 구절을 어떻게 해석을 하느냐가 이런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입니다

만약 구원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고 또 내 해석으로 구원을 방해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방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런 분별이 전혀 안 되고 있어서 성경을 거의 표면적으로 해석을 해서 마치 이 세상에 나와 있는 다른 경전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말씀으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6, "다윗이 그 아들 솔로몬을 불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하기를 부탁하여"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내가 지금 존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더구나 영혼에 대한 문제가 확실히 해결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내 모든 것을 다 드린다 해도 아까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이 누구입니까?

그는 유명한 가문의 아들도 아니요 또 장자도 아닙니다. 형제들에 치여서 들에 나가 양을 치는 목동에 불과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그를 세워서 한 나라의 왕으로 삼으시고 또 그의 세대에 천하를 제패할 수 있게 도와 주셨습니다.

 

그런 다윗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아마 다윗이 아니라 여러분이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많은 것으로 채워 주셨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지금 이 시대도 교회를 건축하고 싶어 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생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구약의 육적인 것은 지금의 영적인 그림자라는 것을 늘 생각하면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도 자기가 육적으로 축복을 받으면 마치 그것을 다윗과 같이 행동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전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분별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다윗은 모든 것을 다 얻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일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입니다 나단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재물 명예 그리고 구원까지 받은 다윗이 생전에 가장 원 했던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성전을 건축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네 아들 솔로몬을 통해 성전 건축을 하라는 나단 선지자의 말을 듣고 다윗이 지금 죽으면서 솔로몬에게 유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토록 하고 싶어 했던 성전 건축을 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들 솔로몬에게 부탁하여 성전을 지으라고 유언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성전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솔로몬이 지었음을 부인하지 않지만 사실은 다윗이 이미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 힘써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해 놓았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지금 다윗은 솔로몬에게 자기의 마음을 진솔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를 바랐는가를 잘 말하고 있습니다.

 

7,“이르되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충분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다윗도 지을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었기에 그 마음에서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 말씀만 보아도 다윗이 얼마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마음을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다윗은 성전을 지을 수 있는 자격이 안 된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 안 되는 가를 이제부터 성경을 통해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겠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교회라는 건물을 지어 놓고 마치 그것을 성전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자격이 안 되는 것 같이 우리 역시도 자격이 안 되는데 성전도 아닌 건물을 지어 놓고 성전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지금 본문의 말씀을 기록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은혜를 받으면 그것에 너무 감사하여 자기가 하지 말라야 하는 일까지도 하려고 합니다. 좋은 것이 좋다고 생각을 하면서 무슨 일이라도 다 하려고 합니다.

 

좋은 것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다윗의 생각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 너무 좋은 일이라서 그것을 하기를 사모 했지만 그것은 순전히 다윗의 생각이고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문제를 깨닫지 못하면 사람의 생각에 좋은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고서는 하나님께 받으라고 강요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일에 대해서 받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으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구약 때는 선지자가 있어 분명히 가르쳐 주었지만 지금은 성경을 보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감동하심이 너무도 중요하고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하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과연 하나님을 위하는 일인가 아니면 방해를 하는 일인가를 분별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8,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솔로몬은 피를 안 흘렸습니까?

사람을 하나 죽인 것이나 많이 죽인 것이나 같다는 것을 모르면 안 됩니다 솔로몬이 흘린 피나 다윗이 흘린 피나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피를 흘리고 삽니다.

이것은 비단 다윗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사는 것 자체가 피를 흘리는 삶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마음으로 살인한 자는 똑 같이 살인한 자입니다 율법의 하나를 어긴 자는 살인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윗과 같이 피를 흘리고 살인을 한 자이기 때문에 성전을 지을 수 있는 자격이 안 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3:15절을 보면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성령이 아니고는 우리는 형제를 미워합니다.

정말 성령께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 형제를 불쌍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이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늘 살인을 하는 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 미워합니까?

나는 힘써서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데 그 율법을 안 지키는 사람을 보면 괜스레 미워지는 것입니다 내가 하지 않는 일을 그가 하고 있고 내가 하는 일을 그가 하지 않으면 괜스레 미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율법에 빠져 있는 우리의 옛 사람은 수도 없이 미워하면서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자격이 안 됩니다

다윗만 자격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자격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윗이 실제 전쟁을 해서 피를 많이 흘려서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생의 싸움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그래서 땅에 피를 많이 흘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생은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자격이 안 됩니다

 

다윗만 안 된다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윗을 통해 우리 사람이 성전을 지으려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지금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은 교회라는 건물을 지어 놓고서는 그것을 성전이라고 미혹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영적인 죄라는 것을 모르고 자기의 육체의 모양만을 보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지 안 원하시는지 분별을 하지 못하고 가능한 큰 건물을 지어 놓고 그 안에 들어가서 흡족해 하고 있습니다.

 

비유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지금 다윗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한 인물입니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축복을 받았다 해도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을 받으시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 당시 최고의 왕이었고 그의 나라는 패권국이었습니다. 그런 다윗도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닫기 바랍니다.

 

겁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에 좋으면 하나님도 좋아 하실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사로 잡혀서 건물을 지어 놓고 성전이라고 호도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그 건물을 기뻐 받으시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으며 억지로 받으시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격이 안 됩니다

또한 우리도 자격이 안 되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자격인 안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9,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누가 성전을 지을 수 있습니까?

바로 솔로몬입니다 이 솔로몬은 누구를 상징하느냐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로 성전을 건축한 것이지 인간 솔로몬으로는 건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윗은 우리와 같은 인생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인물로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게 됩니다. 인생이 성전을 건축하려고 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이 시대도 성전을 건축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약의 성전은 무엇을 예표 합니까?

모세가 성막을 지을 때 하늘의 모형을 보고 그대로 지었다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의 기구 하나 하나 그리고 모든 모형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것을 안다면 감히 성전을 지으려 하지 않습니다. 다윗도 그것을 몰랐지만 나중에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인간적으로 다윗이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다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안 들어 주셨겠습니까? 그러나 성전의 문제만은 인간 다윗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2:21절을 보면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구약의 그 건물은 바로 이 시대 보이지 않는 성전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 성전은 어느 누구도 지을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지을 수 있습니다. 이 성전은 하늘에 있는 모형이고 물론 이 세상에 지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평강의 사람이라야 성전을 지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은 평강의 사람입니다

싸움을 해서 피를 흘린 그런 다윗과 같은 우리는 성전을 지을 수 있는 자격이 없고 오직 평강의 사람만이 성전을 지을 수 있습니다. 솔로몬을 평강의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간 솔로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평강의 사람 솔로몬을 통해 이 세상에 성전을 지었습니다.

 

이사야 9:6절을 보면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평강의 왕입니다

바로 이 예수를 예표 하는 솔로몬만이 성전을 지을 수 있는 자격이 있지 다윗과 같이 피를 많이 흘린 우리 인생들은 성전을 지을 수도 없고 지어서도 안 됩니다 성도들에게 반드시 평강을 주고 또 안정을 줄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성전을 지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재산이 많이 있어도 그 재물로 솔로몬의 성전보다 더 근사하게 성전을 짓는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보이는 성전은 절대로 안 받으신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전이 아니라 이 세상의 건물입니다 자기들이 지어 놓은 건물을 보고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으로 말하는 것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행위입니다

 

내 안에 성전이 지어졌습니다.

그것은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지어진 성전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이 성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려 고는 하지 않고 오히려 근사하게 지어진 건물 안에 있는 자신들의 모습에 취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10, “저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찌라 저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저의 아비가 되어 그 나라 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니

 

예수 그리스도만이 지을 수 있습니다.

인간 솔로몬이 지은 그림자 그 성전이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 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미 그 자취도 없고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왜 그 성전을 무너뜨리셨는가 하면 바로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을 우리 안에 세우기를 바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아버지입니까?

이 솔로몬이 아니라 바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로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보이지 않는 성전을 지으셨습니다. 자기 육체로 율법을 폐하시고 또 우리 죄인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자기 육체로 휘장을 찢어 버리셨습니다.

 

하나님과 죄인은 원수입니다

그런 우리를 중보 하시고 또 평강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담대하게 휘장 안으로 들어가서 보좌에 나아갈 수 있게 담력을 주셨습니다. 그 나라는 이 세상에 있는 나라가 아니라 영원까지 존재하는 저 하늘에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세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보이는 건축물이 아니라 우리가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 안에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바로 보혜사께서 우리 안에 임재하시는 놀라운 역사입니다 그런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성전을 지어 갈 수 있습니다.

 

이제 그 성전이 우리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깨닫고 더욱 더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주님께서 주님의 날까지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