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39강,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윤주만목사 2019. 7. 24. 09:04


139,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여호수아 2:8-11절을 보면

두 사람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소문을 듣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지만 대부분 자기 삶에 매여 있거나 아니면 귀찮기도 하고 또 내세에 대한 명확한 확증이 없기 때문에 무시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생 라합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그녀는 이스라엘 민족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가나안에서 특별하게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것도 아닙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 그녀는 기생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 기생이라면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기생 라합을 기록해 놓으셨습니까?

수많은 이스라엘의 여자들이 있지만 그들의 이름이 단 한자도 올라 있지 않은데 기생 라합을 성경에 기록해 놓았습니까? 기생 라합은 여호수아뿐만 아니라 마태복음에 예수님의 족보에도 기록이 되어 있고 히브리서 믿음의 조상을 기록하는 11장에도 기록이 되어 있고 야고보서 2장에서 라합에 대해서 기록을 했습니다.

 

라합은 이방 여자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 다 진멸하라고 한 가나안에 있는 여리고 성에 사는 여자입니다 그런 여자를 더구나 기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여자를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손길을 베풀어 주시고 또 그녀를 통해 섭리하시고 우리에게 교훈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방인입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보면 개와 같은 사람입니다

구원을 생각할 수도 없고 그저 세상에서 진멸해야 하는 대상이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그런 이방인입니다 그러나 라합은 이방인이라 해도 이스라엘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듣고 또 믿었습니다.

 

정탐꾼을 영접했습니다.

자기 나라를 치려고 하는 적국의 정탐꾼을 영접한다는 것은 자기 생명을 내 놓아야 하는 일입니다 2장 초반부에 나오지만 여리고 왕이 찾아와서 기생 라합에게 정탐꾼을 내 놓으라고 요구를 합니다. 그러나 라합은 정탐꾼을 숨겨 놓고 오히려 자기 나라 왕을 속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도 기생을 하고 있는 여자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 기생 라합을 통해서 또 한 가지를 분명히 알고 가야 합니다.

 

왜 정탐꾼을 보냈습니까?

그리고 그 40년 전에 정탐꾼을 보냈을 때는 그들이 악평을 함으로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이 벌어져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를 통해 또 정탐꾼을 보내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이스라엘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입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점령할 수 있다는 소망을 주기 위해서 이고 그것을 통해 담대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라합을 통해 이방인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죽어야 하는 이방인에게 은혜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귀한 뜻을 라합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라합은 첫 구원을 받은 이방인입니다.

그것도 여자이면서 기생입니다 조건으로 볼 때 라합이라는 여자는 도무지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여자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여자를 구원하시고 그 여자를 통해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는 이방인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섭리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족보에 4명의 여자 이름이 나옵니다.

그 중에 첫 번째가 바로 이 라합이며 그녀는 이방인이고 기생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이방인의 여자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을 하고 또 그녀는 보통의 사람이 아니라 아니 모범적인 삶을 산 여자가 아니라 그 지방에서 기생을 했던 어쩌면 천박한 여자이기도 합니다.

 

여리고 성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기생 라합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라합 보다 선하게 살고 의롭게 산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텐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돌아보지 않으시고 기생 짓을 하고 있는 라합에게 정탐꾼을 보내 영접하게 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교회 밖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 합니다 어떻게 모든 사람을 오직 믿음으로 만 구원을 하시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의문을 갖습니다.

 

그리고 말 합니다.

더 선하고 더 의로운 사람이 있는데 그런 것은 다 무시해 버리고 하나님께서 선택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 아주 저항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생 라합보다도 더 선하고 의롭게 산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왜 라합을 구원해 주시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모르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볼 때는 분명히 기생 라합 보다 더 의롭고 선하게 산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눈으로 볼 때 그런 것이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조금 더 선하냐 조금 더 의롭냐 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일제시대를 겪었습니다.

점령군의 입장에서 보면 다 한국 사람입니다 한국 사람이 아무리 잘 해도 일본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 충성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용을 했을지라도 그를 일본사람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개가 사람과 친합니다.

어떤 개는 심부름도 하고 또 반려 동물이라고 해서 마치 가족과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는 개입니다. 그 개가 집에서 함께 살아가고는 있지만 그래서 사랑을 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개를 자기 자식과 같이 취급을 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사람을 보는 기준은 그와 같습니다.

의인은 하나도 없는데 다 죄인인데 어느 죄인이 조금 덜 짓고 더 많이 짓고 하는 것은 사람의 생각이지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실 때 하나를 범한 자는 모두를 범한 자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를 범해도 죽습니다.

또 모두를 범해도 죽습니다. 죽는 것은 똑 같습니다. 죽는 것에 있어서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지금 볼 때는 모두를 범한 사람이 더 나쁘게 보일지 몰라도 나중에 죽는 것을 볼 때는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를 범한 사람이 조금 죽을 수 있다면 몰라도 다 죽는 것은 똑 같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리고에 있는 모든 사람은 같습니다.

기생 라합이나 그 안에서 현자와 같이 아니 공자와 같이 산 사람이 있을지라도 죽는 것은 다 같습니다. 그런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여리고에서 가장 나쁜 삶을 산 기생을 택해서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기생을 택한 이유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로마서5:20절을 보면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죄를 지라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은혜를 더 깨달으라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만약 여리고에서 현자와 같은 사람을 택하셨다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 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타락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기생을 택하셨기 때문에 은혜가 더욱 은혜가 되어 넘치게 된 것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저히 상식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때 은혜가 더욱 은혜 되어 넘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은 혹시 구원을 받을 수 있지만 기생은 그런 생각도 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누가 기생 따위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겠습니까? 설령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점령했다 해도 기생은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나라와 나라가 전쟁이 났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지식이 있고 현자라는 소리를 듣던 사람은 아무리 적이지만 대우를 해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생 같은 여자들은 그저 자기들의 노리개 감이나 되고 그렇지 않으면 죽든지 살든지 상관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여자에게 하나님께서 정탐꾼을 보내 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리고 성에서 가장 천대를 받고 있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정탐꾼을 보내 영접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 여자이었기에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영접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기개가 있고 지조가 있는 여자라면 절대로 정탐꾼을 영접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자기 나라 왕이 왔을 때 발고를 해서 정탐꾼을 잡게 했을 것입니다

 

그런 여자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시대도 라합과 같은 여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듣게 하시고 구원의 손길을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만약 정탐꾼이 라합의 집으로 가지 않았다면 아무리 라합이 하나님의 소문을 들었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8,“두 사람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정탐꾼을 그냥 보내시지 않았습니다.

소문을 들은 그리고 그 소문을 믿은 라합에게 하나님께서 정탐꾼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 소문을 라합만 들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리고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문을 굳게 닫고 출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자기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달랐습니다.

라합은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로 한 것을 믿었습니다. 물론 이 믿음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만약 믿지 않았다면 라합이 어떻게 정탐꾼을 영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애굽에서부터 이스라엘을 인도하셔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을 믿었습니다.

 

모두가 그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이 간담이 녹아 밖으로 출입을 하지도 않고 성문을 굳게 닫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라합은 그렇게 해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 그렇게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까?

 

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한 것을 소문으로 들었습니다. 사실 직접 보지도 않고 소문으로만 듣고 그 사실을 믿기는 힘이 들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미디어가 발달을 해서 지구 어디에서 일어나는 일도 정확하게 분별을 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저 사람의 구전으로만 듣고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똑 같이 들었습니다.

여리고에 있는 모든 사람이 똑 같이 들었기에 모두가 무서워서 성 밖으로 출입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에는 혹시나 자기들이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이 라합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가 살려고 하면 정탐꾼을 영접하는 길 밖에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영접했습니다.

 

사실 홍해를 가른 일은 40년 전에 일입니다

아마 기생 라합이 낳기도 전에 일어났던 일일 수 있습니다. 기생을 하는 것으로 볼 때 아직 나이가 40은 안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는 이미 하나님께서 그 소문을 듣고 믿을 수 있게 감동을 해 주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신 것을 성경을 통해 우리는 배워 왔습니다. 그런데 믿지를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아직도 죄와 싸우고 있는 것을 보면 믿음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마치 여리고 성에 있는 사람들이 이 소문을 듣고도 자기들이 싸우려고 했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살려면 영접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영접을 할 생각은 안 하고 성 문을 굳게 닫고 이스라엘이 쳐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자기가 죄와 싸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를 영접하면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교회에 나온 사람들이 아직도 죄와 싸우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죄를 안 짓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죄를 질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자기가 죄 안 짓는 것을 가지고 마치 싸움에서 이긴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아담에 지은 죄부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때까지 모든 사람이 지은 죄를 자 지고 가셨는데 믿지를 못 합니다.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똑 같이 소문을 들었지만 라합 밖에는 아무도 믿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이 시대도 똑 같이 성경말씀을 보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죄를 다 지고 가셨다는 것을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를 안 짓기 위해 싸우느라 모든 힘을 다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복음을 위해 일을 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구약에서부터 보여 주셨습니다.

성막을 통해 어린 양이 번제 단에서 드려지는 것을 예표로 보여 주셨고 또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대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다 지고 가셨지만 아직도 죄와 싸우느라 참 복음의 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죄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어떻게 하든지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슬기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못 합니다

그러니까 매일 죄를 안 짓게 해달라고 죄와 싸워 이길 수 있게 해 달라고 십자가를 부정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라합은 소문으로만 듣고도 하나님의 뜻을 믿었는데 이 시대는 모든 예언이 성취된 텍스트를 읽으면서도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라합은 모든 것을 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정탐꾼을 영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텍스트를 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못하고 아직도 자기가 죄와 싸워서 이기려고 성문을 굳게 닫고 싸움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1:31절을 보면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라합은 믿었습니다.

그러나 여리고 성에 있는 다수는 믿지를 못 했습니다

가장 천하게 산 라합이 믿었는데 라합 보다는 의롭고 선하게 산 다수의 사람들은 소문을 듣고도 믿지를 못 했습니다 왜 믿지를 못했느냐면 아직도 자기들이 싸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무엇 합니까?

신앙생활을 평생하면 무엇할 것입니까? 선하게 의롭게 살아서 현자라는 칭찬을 들으면 무엇 할 것입니까? 믿음이 없으면 다 죽고 맙니다. 라합이 살 수 있었던 단 한 가지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믿지를 못 합니다

아니 행위를 어떻게 하든지 주장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도 라합보다는 더 낫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기생으로 산 라합도 구원을 받았는데 무엇이 부족하다고 행위에 매달리고 있습니까? 그래도 기생 짓은 안 하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왜 믿지를 못 합니까?

자기 삶이 기생과 같으면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행위가 너무도 좋게 보이기 때문에 그 행위로 인하여 도무지 믿음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차라리 기생과 같으면 쉽게 영접할 수 있는데 자기가 스스로 생각할 때 남들이 하지 않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고 그런 자기 행위 때문에 도저히 믿을 수 없습니다.

 

여리고는 강합니다.

그냥은 안 무너지는 성입니다

그런 성 안에 있으면서 그런 교회 안에 있으면서 마치 자기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웅장한 교회 건물을 보고 또 자기 행위를 보면서 자기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자리할 수 없습니다.

 

예수를 영접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그리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예수를 영접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들어 쌓고 있는 높은 여리고 성이 있고 또 바른 신앙생활이 있기 때문에 예수를 영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라합을 살린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기생이 선하고 정직하면 얼마나 잘 했겠습니까? 기생은 기생입니다 그러나 라합은 믿음으로 정탐꾼을 영접했다고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라합은 소문을 듣고 믿었습니다. 반드시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에게 무너질 것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소문 보다 더 확실한 텍스트가 있습니다.

그 성경을 나름대로는 본다고 하면서도 믿음에 대해서 물어 보면 거의 다 행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고 말 합니다 기생 라합이 무슨 행위가 좋겠습니까? 기생 짓을 하는데 무슨 행위를 논할 수 있습니까?

 

왜 하필 하나님께서는 가장 천박한 기생 라합을 구원해 주시는 가를 바로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그녀가 잘 나서도 아니고 똑똑해서도 아니고 그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이방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또 믿음을 갖게 하고 있는 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기생 라합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는데 기생 보다 잘 사는 사람들이 아직도 행위가 부족해서 행위에 매달리고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온전히 믿지 못 합니다

 

라합을 기록환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녀를 통해 선하고 의롭게 사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까?

기생과 같은 라합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나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히브리서 믿음 장에 라합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라합은 무엇을 잘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녀는 오직 소문을 듣고 하나님을 믿었을 뿐입니다 그 믿음으로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고 그 믿음으로 이방인으로는 처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었고 그 믿음으로 여리고 성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죽어야 하는데 살 수 있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라합을 통해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니고 오직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가 이방인이냐 아니면 기생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 그 한가지만으로 구원을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11,“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어떤 하나님으로 믿었습니까?

상천하지의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위에 있는 하늘이나 땅에 있는 모든 것의 신이라는 말씀입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라합은 믿었습니다. 온 천지에 오직 하나님밖에는 없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하늘이나 땅이나 하나님 한 분 만이 신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 영혼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말로는 은혜, 은혜를 외치고 있지만 그 은혜가 무엇인가도 모르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라합은 상천하지에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하나님이 세분이라고 가르치고 또 생각 없이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이라고 세뇌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으면 다 죽습니다. 절대로 구원 받지 못합니다.

 

이 시대 성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구원을 받는다고 믿어야 합니다. 이 은혜에 무엇을 더하려 하는 사람은 결국 여리고 성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망하고 말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렇게 믿는 성도는 라합을 구원해 주신 것과 같이 그 영혼을 구원해 주셔서 천국으로 영접해 주실 줄 믿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영혼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