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37강,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윤주만목사 2019. 7. 21. 07:55


137,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요한복음 9:1-3절을 보면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사람은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양심이라는 것을 주셔서 그 거울에 비춰서 볼 때 자기가 어떤 잘못을 하게 되면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하시고 그것을 계속해서 하지 못하도록 하게하고 있습니다.

 

죄를 압니다.

자기가 어떤 죄를 짓게 되면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그 일로 인하여 내가 혹시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보응을 받지 않을까 고민을 합니다. 실제적으로 교회 안에 이런 사상으로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죄를 안 지려고 노력을 합니다.

기도를 하기도 하고 하루 종일 성경책을 보기도 하고 또 찬양을 부리기도 하며 사회에 나가서 봉사를 하기도 하고 예배에 참석을 해서 잠시라도 자기에게서 죄가 틈이 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밥 먹는 시간 빼고 이렇게 했다고 죄를 안 졌습니까?

아마 이렇게 하면 그마나 죄를 덜 지을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을 것입니다. 죄를 안 짓기 위해서 자기 육체와 싸우는 모습이 가상하지만 실제적으로 죄를 안 짓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설령 그가 하루 종을 밥 먹는 시간 빼고 성경 말씀만 보았다 해도 그는 역시 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왜 그런가를 알아야 합니다.

죄인은 사는 것 자체가 죄 입니다 죄인으로 태어난 인생은 사는 그 자체가 죄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죄를 안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숨을 쉬는 순간순간이 모두가 죄라는 것을 모르면 안 됩니다 쉽게 말해서 이렇습니다.

 

포도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 가시나무가 있습니다.

포도나무가 변해서 가시나무가 될 수 없고 가시나무가 변해서 포도나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압니다. 가시나무는 살아 있는 자체가 바로 가시나무라는 것입니다 또한 포도나무 역시도 살아 있는 자체가 포도나무입니다.

 

가시나무가 사람에게 해를 안 끼쳤다고 포도나무가 됩니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있고 찬송하는 마음으로 있고 사람에게 다가가서 찌르지 않고 있다고 해서 가시나무가 변해서 포도나무가 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마치 이것이 가능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가시나무가 사람이 와서 실수로 넘어진다고 해서 자기가 그 자리에서 피한다고 가시나무가 변합니까?

 

설령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가시나무입니다

그 가시나무가 평생 자라면서 단 한 번도 사람에게 그리고 생명들에게 가시를 안 찔렀다 해도 그것은 가시나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가시나무가 죄를 안 져서 포도나무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법을 다 해도 안 됩니다

 

그런데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도 지성이 있다고 자기들이 지혜가 있다고 자부하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러면서 자기가 남을 안 찔렀다고 자랑을 합니다. 가시나무가 안 찔렀다고 마치 포도나무가 된 것처럼 떠들고 있는 것이 바로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 사상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아주 쉽게 말 합니다.

자기들 눈에 보이는 모습에 따라서 그가 좀 안 좋게 보이면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보응을 받아서 그렇다고 말 합니다 그 보응을 안 받으려면 죄를 안 짓고 살아야 하고 죄를 지면 반드시 보응을 받게 된다고 말 합니다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늘 두려워합니다.

 

보응을 받을까봐 두렵습니다.

그래서 자유하지 못하고 무슨 일을 하나 하더라도 이것을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 판단을 하지 못하고 기도를 해 보겠다고 합니다. 지혜가 있다고 자부하는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면서 그것을 지혜로 분별을 하지 못하고 꼭 기도를 해 보아야 할 수 있습니다.

 

무당이 다 되어 있습니다.

무당이 점을 칠 때 그리고 어떤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때 기도를 해 보겠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기도를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지혜를 가진 자라면 내가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그것을 꼭 기도를 해야 알 수 있다면 그는 지혜가 없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너무 샤머니즘 화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이유가 바로 죄를 통해서 보응을 받는다는 사상이 너무 강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서운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 하다가 결국에는 그 무서워하는 것이 임해서 지옥에 가고 말 것입니다

 

믿음대로 됩니다.

내가 보응을 받는다면 그대로 보응을 받게 되고 내가 지은 죄로 인하여 내가 벌을 받게 된다고 하면 그 믿음대로 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늘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가 믿는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가 죄를 짓고도 벌을 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믿음대로 되는 것이고 벌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믿음대로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무딘 양심을 가지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죄를 짓고도 아주 당연하게 살라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율법주의에 너무 구속이 되어 있는 여러분의 사상에 문제점이 없는 가를 생각해 보자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죄를 지면 벌을 받습니까?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받을 수도 있고 안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죄를 지은 그 순간을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 결국에는 모두가 그 죄로 인하여 죽게 되기 때문에 어차피 보응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어떤 죄를 지었다고 그 죄에 대해서 일일이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지는 안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것은 무슨 살인죄를 지었을 때 해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설령 살인죄를 안 지었어도 거짓말하는 자는 살인한 자라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고 내가 죄를 지었다면 결국 그 삯은 즉 대가는 사망이라는 말씀입니다

 

나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약 그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일일이 벌을 내리시고 있다면 나는 벌써 죽었어야 합니다. 아니 이 세상에는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죄를 안 짓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을 일일이 다 벌을 내리시고 있다면 누가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런대 교회 안에서 교인들을 겁을 주는 수단으로 마치 죄를 지면 그것에 대해서 반드시 벌을 내린다고 생각에 사로잡히게 만들고 있습니다. 가장 웃기는 말은 십일조를 안내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다른 것으로 빼앗아간다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믿는 대로 십일조를 안내면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안 냈으면 그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십일조를 빼앗아가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엄밀히 말씀을 드려서 그는 사망을 당해야 합니다. 내가 육체적으로 또 율법적으로 죄를 지었을 때 그 값은 사망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멀쩡히 살아 있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가 받는 벌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제가 죄를 지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것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이용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지고 있다는 심각성에 있습니다. 교인들에게 자기들이 정한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마치 안 지키는 그대로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벌을 내리시고 있다고 믿게 해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고 또 자기들이 정한 그 율법을 잘 지키도록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23:37절을 보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이후부터 그리고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그 후에도 참으시고 사람들이 모두가 하나님을 버렸을 때 노아의 가족을 남기시고 또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범죄를 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멸망시키시지 아니하시고 바벨론의 포로에서도 다시 이스라엘로 모아 들이셨습니다.

 

죽였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범죄를 보면 그들은 벌써 멸망을 당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참으시고 또 참으시면서 선지자들을 계속해서 보내주셔서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원치 않았고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인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그들을 구원하시기까지 참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교인들을 보면 자기가 죄를 지면 바로 벌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전혀 아니다 라고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필요에 따라 바로 벌을 내리셔서 깨우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죄 마다 그렇게 하신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한 시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는 것 자체가 죄고 살아 있는 순간은 가시나무일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 벌을 일일이 다 받는다고 한다면 아마 차라리 죽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빌 것입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편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사상이 지금 어떤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그가 소경이 된 것은 그가 아니면 그 부모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소경으로 태어났다고 말 합니다.

 

, 지금 교회 안에 있는 내가 아닙니까?

환경과 처지가 안 좋은 사람을 보면서 그가 잘못을 하지 않았으면 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제자들만의 생각이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습니다.

 

벌을 받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 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생각에 죄를 지면 그 죄 값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죄를 덜 짓고 사는 것이지 만약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한다면 이 세상은 정말 죄가 범람을 하는 그런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세상 사람도 죄를 안 지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제자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벌을 받지 않으면 내 자녀가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의롭게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아주 작은 율법의 의를 보면서 마치 세상 사람들보다 더 의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사람은 모두 같습니다.

바로 이것이 율법주의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이 세상은 모두가 율법주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종교나 또 설령 무신론자나 마찬가지로 다 선하게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자기로 인하여 내 자손에게 해가 끼치는 것을 원치 않고 있습니다. 설령 나는 조금 못살아도 내 자손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선하고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모르는 제자들로서는 아주 당연하게 하는 말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그런데 제자들이라고 별 수 없는 것입니다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제자들로서는 이 세상의 사상을 따라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우리 어렸을 때는 자녀가 조금 잘못되게 태어나면 그 부모가 마치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것같이 바라보고 있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결코 많이 변하지 않았지만 그 자녀가 정상인으로 태어나지를 못하면 그 부모는 죄인이 된 것처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만약에 죄 때문이라면 내 자녀도 바르게 태어날 수 없습니다.

바르게 태어났다 해도 우리는 역시 가시나무일 수밖에 없고 늘 죄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들 보다 더 많은 죄를 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의 값으로 내 그 자녀가 다르게 태어났다면 이 세상에 태어나는 아이가 바르게 태어날 수 있는 확률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만약 죄를 그대로 다 벌을 내리신다고 한다면 우리는 자녀를 낳을 수도 없고 또 이 세상에서 단 한순간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없습니다. 내가 그들보다 죄를 덜 지었다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습니까? 시편에 보면 죄의 경중을 따져 보니까 이 세상에서 최고로 선한 자와 죄인과 저울에 달아 보니까 입김보다 경하다고 말씀을 하는데 우리 아이가 어떻게 바르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버리시기 바랍니다.

만약 죄를 진 그대로 벌을 내리신다면 우리는 한 시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죄를 마음 놓고 져도 된다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제가 설령 여러분에게 그렇게 말을 한다 해도 그렇게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제가 도둑질해라 한다고 여러분이 하겠습니까?

제가 사람을 죽여도 괜찮다고 말을 한다고 걱정하지 말하고 해도 여러분은 절대도 안 합니다. 왜 안하느냐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양심이라는 것을 주셔서 하지 않도록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가르치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바보입니까?

아니 바보라고 해도 사람을 죽이라고 한다 해도 안 할 것입니다.

바보도 안하는 그것을 제가 시키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발상입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죄를 지라고 이러한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벌을 안 받는다고 해도 여러분은 죄를 안 짓고 살려고 노력을 합니다. 제가 그런 말씀을 드린다 해도 감히 마음 놓고 죄를 지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생각의 틀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늘 말씀을 하셨듯이 여러분이 믿는 그대로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지금 얼마나 율법이 성행하고 있습니까? 그 율법에 의해 사람들이 꼼짝을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여러분은 믿는 그대로 반드시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폐해졌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폐해졌는데 벌을 받고 말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죄를 지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율법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로 들면 맥추감사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을 안 지키면 벌을 받는다고 믿는 그 사람에게는 그것을 안 지키면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제사 제도는 폐해졌다고 믿는 사람은 그것을 지키고 말 것이 없습니다. 폐해진 것을 안 지키는 것이 옳습니까? 안 지키면 벌을 받는다고 믿는 것이 옳습니까? 교회 안에 지금 이렇게 폐해진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안 지키면 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가 이것을 안 했더니 하나님께서 이것을 반드시 빼앗아가더라고 말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폐하신 그것을 안 한다고 빼앗아가셨다면 하나님은 정직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사단이 미혹을 해서 율법주의에 빠지게 만들고 있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폐하신 그것을 안 한다고 빼앗아 간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말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정직하지 못하다고 주장을 하는 것임에도 아무 거리낌이 없이 그러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웃기는 일들입니다

 

부모가 있습니다.

그 딸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잘 지키고 싶어서 10까지 무조건 들어오라고 하고 안 들어오면 그때마다 어떤 벌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녀가 성장을 해서 이제 10시까지 들어오라고 하는 것을 폐지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난 후에 딸이 12시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다시 벌을 내린다면 그 부모는 딸에게 정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맞는다고 말 합니다.

아니 딸이 스스로 자기가 열시가 넘으면 벌을 받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벌을 안 내리는 아버지를 보면서 아버지가 요즘 이상해 지셨다고 합니다. 아니 자기에게 벌을 내려 달라고 하면서 집에 들어오는 것을 10시 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10시 안에 들어와서 벌을 안 받으려고 합니다.

 

모르면 이렇게 됩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면 10시 이전에 들어오려고 노력을 합니다.

이제 장성을 했으면 연애도 해야 하고 또 좋은 배필을 만나야 하는데 아직도 10시 넘으면 벌을 받는다고 그 예전 법에 구속이 되어 있으면서 아무 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철저하게 세뇌되어 있는 교인들의 모습과 무엇이 다릅니까? 내가 이 율법을 안 지키면 벌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애써 거절하고 있습니다.

 

이 소경의 부모가 정말 죄를 안 졌습니까?

그리고 이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도 죄를 안 짓고 살았습니까?

그 보모도 죄인이고 이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도 물론 죄 가운데 살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죄를 안 지은 의인라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소경으로 태어난 것이 죄 때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죄 때문에 소경으로 태어났다고 하면 이 세상 모든 자녀들은 소경이 아니면 정신지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거나 여러 가지 질병을 가지고 태어나야 합니다. 아니 태어날 수도 없습니다.

 

3,“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부모도 역시 죄인입니다.

그 부모가 전혀 죄를 안 지었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소경의 부모도 역시 죄인이고 죄를 지면서 살아왔다는 말씀입니다

 

이 소경을 통해 주님께서는 하시고자하는 일을 나타내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마음에 있는 죄를 지면 벌을 받는다고 하는 그 생각을 바꿔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이제까지 죄를 지면 벌을 받는다고 생각을 해 왔고 이 소경을 보면서 그가 아니면 부모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났다고 하는 사상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죄로 인하여 벌을 받은 것이라면 이 세상에는 모두가 벌을 받게 되어 있고 한 순간도 마음 놓고 살 수 없습니다. 태어나는 아이들은 모두가 병신이고 소경이고 정상적인 아이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죄를 지라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 죄로 인하여 벌이 바로바로 내려진다고 하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는 것이 죄입니다.

숨을 쉬는 것이 죄인 우리가 만약 그것을 다 벌로 받는다면 어떻게 이 세상에서 견딜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제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면 그럼 마음 놓고 죄를 지어도 되겠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 안타깝기만 합니다. 얼마나 율법주의에 깊게 빠져 있으면 사상의 벽을 깨지 못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왜 보내 주셨습니까?

벌을 내리시기 위해서 보내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평생 짓는 죄를 예수님께서 대신 가져가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율법을 안 지켰다고 예수님께서 폐하신 그 율법을 무서워하면서 바로 벌을 받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이 폐해졌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그 율법을 안 지키는 것이 자유지만 율법이 아직 안폐해졌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율법을 안 지키는 사람은 방종을 하는 것으로 보여 지기 마련입니다 내가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자유가 될 수 있고 방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모든 율법에 대해서 자유 합니다.

 

그들은 자유하면서도 더 선하고 의롭게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 있는 성도는 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선하고 의롭게 살면서 자유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