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24강,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윤주만목사 2019. 7. 7. 05:56


124,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갈라디아서 5:16-18절을 보면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모르면 죽습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무엇이 위험한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부모가 곁에서 항상 지키고 있지 않으면 큰 사고를 당하게 되거나 실수로 아파트 난간에서 떨어지거나 차 사고가 나서 사망을 당할 수 있습니다. 아이는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모릅니다.

 

차가와도 달려갑니다.

그것에 부딪치면 자기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 가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자동차가 와도 무서워하지 않고 달려가다가 사고를 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만약 아이가 자동차와 부딪치면 어떤 결과가 있을까를 잘 안다면 자동차를 보고 피할 것입니다

 

인생에서 사고는 순간입니다

알고도 사고가 나고 또 모르고도 사고가 납니다.

부주의에 의한 사고가 날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거기에 처한 환경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런데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릅니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마치 전부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오래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져 자기에게 있는 믿음을 점검해 볼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고민을 하지 않고 그저 전체를 한두 번 읽으면 자기 자신이 대단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이 얼마나 오묘합니까?

아무리 세상 지식이 뛰어난 사람도 하나님의 지혜를 볼 수 없게 해 버리면 눈이 가려서 도저히 보이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경전은 그냥 많이 읽으면 누구나 그것에 대해 정통할 수 있지만 성경은 아무리 많이 읽어도 하나님의 뜻을 모를 수 있습니다.

 

안 보입니다.

이스라엘은 성경을 어려서부터 공부를 하고 또 성경을 연구하는 랍비들이나 학자들이 많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했습니다. 만약 그들의 눈이 밝아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에는 구약에 정통한 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천 년 동안 구약을 보면서도 아직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있고 심지어는 기독교인들에게 테러를 가하기도 합니다. 아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깝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알지 몰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온전히 알고 있는 사람은 너무도 적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를 온전히 믿는다고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정말 죄송스럽지만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솔직히 회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행위로는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입술로는 예수를 시인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들을 너무도 많이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영적인 죄이며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고 이것과 싸워 이기지 못하고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은혜를 말하는 그들이 은혜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아주 달콤하게 말하고 있는 그들이 사랑을 거절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을 말하고 있는 그들이 나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 말씀을 거절하고 행위에 빠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가 예배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교도에서 들여온 그 예배의 형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자기들의 감정에 몰입이 되어서 마치 은혜를 받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노래를 아주 잘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고 감정에 빠지고 있고 세상에서 말 잘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감동을 받고 있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는 그런 예배를 드리면서 흡족해 하고 있습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다면 지금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신앙생활의 모습을 보고 근심을 하게 될 텐데도 오히려 그것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그들이 오히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행위들을 하면서 억지로 하나님께 받으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알아야 합니다.

너무도 중요한 성령에 대해서 거의 무지에 가깝다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은사와 보혜사 성령을 분별하지도 못하고 마치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그 은사가 마치 자기를 구원하는 보혜사 성령의 표징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은사는 이단들에게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단이라고 말하는 몇 곳만 보아도 교회 안에서 나타나는 은사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은사가 구원과 관계가 있는 성령의 역사라면 우리가 이단이라고 지칭하는 그들을 이단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병도 고칩니다.

그리고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합니다.

그들이 찬양을 하면 얼마나 은혜롭게 하는지 거기에 참석을 한 사람들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은사는 사단이 주고 우리 교회에서 나타나는 은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까?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사는 물론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나타날 수도 있고 사단에 의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누구를 통해 나타난다고 여러분이 어떻게 분별을 할 수 있습니까? 단지 이단이라는 것으로 단지 정통리라는 것으로 은사를 사단의 역사 하나님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만약 이 은사가 구원과 관계가 있다면 절대 같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라고 하는 그것은 구원과는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에 함께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만 이단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타 종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불교에서도 사용하는 언어는 다를 지라도 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은사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르면 죽습니다.

마치 그런 은사를 보고 자기가 보혜사 성령을 받은 것으로 그런 은사가 행해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자신을 보면서 자기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은 어린아이가 자동차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모르고 달려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함께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은사와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보혜사 성령의 임재하심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은사가 나타나도 그에게 보혜사가 없을 수 있고 은사가 나타나는 것 같지 않아도 그에게 보혜사가 임재 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성령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성령을 모른다는 것은 한 마디로 성령을 훼방하는 일이 됨에도 너무도 태평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답답하기만 합니다. 아무리 깨우치려 해도 수십 년간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그들을 깨우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처음 복음을 접한 자가 쉽습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면서 느낀 것은 신앙생활을 많이 하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쉽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타성에 젖어 막연하게 내가 하고 있는 신앙생활이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복음이 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가를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을 쫓아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마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을 해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예배를 드리고 있고 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수고하고 있는데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성령을 쫓아 행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은사와 율법입니다

앞서서 말씀을 드렸지만 은사와 보혜사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는 은사를 행하고 있으면서 마치 그것을 성령을 쫓아 행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율법을 행하고 있고 또 은사를 나타내고 있는데 그것을 보혜사 성령의 감동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은사는 아무리 좋아도 구원을 못 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은사가 나쁘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자의 분량대로 주신 은사를 행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은사가 나를 통해 나타난다고 해서 내가 구원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찬양을 합니다.

방언을 하고 또 예언을 하고 심지어는 자기가 천국을 갔다 왔다고 주장을 하기도 하고 교회를 치리하기도 하고 말씀을 전하기도 하고 하면서 그런 자기의 모습이 마치 성도의 표징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은사들은 이단의 교회에서도 나타나고 정통의 교회에서도 나타나고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서도 나타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일곱 교회 거의가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으면 반드시 진노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행하고 있는 은사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은사가 오히려 복음을 방해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사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을 모르고 은사를 따라가다가는 자기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마태복음에서 내가 주와 함께 먹고 병도 고치고 능력도 행하고 주의 일을 했다고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을 도무지 모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는 나타났지만 주님은 모릅니다.

지금 내가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그 은사로 인하여 내 눈이 가려져 주님께서 나를 모른다고 한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르고 따라가게 되면 그렇게 됩니다.

 

쫓아 행하라고 하니까 몸으로만 행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쫓아 행하라고 하는 이 말씀은 내가 어떤 행위를 하라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 보혜사께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면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어떤 행위로도 나타날 수 있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들이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라면 당연히 그런 행위들을 안 할 것입니다. 그러나 쫓아 행하라고 하는 이 말씀은 근본은 마음으로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나를 인도하시면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주님의 십자가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보면서 자기가 무엇을 행하려고 합니다.

자기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은사를 행하는 것을 아주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 은사로 인하여 실제 복음이 가리어지고 있는데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육체의 욕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히려 성령을 거절하고 자기 육체의 옥심을 이루는데 모든 정력을 낭비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은 육체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모든 행위가 성령을 쫓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데도 오히려 육체의 욕심을 이루려고 그것에 미쳐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말씀은 누구에게 쓴 것입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쓴 것입니까? 아니면 갈라디아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쓴 것입니까?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가 바로 갈라디아 교회와 같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분명히 갈라디아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쓴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육체의 욕심이 무엇입니까?

바로 율법주의 빠져 있는 갈라디아 교인들이 행하고 있는 율법의 의를 나타내고자 하는 욕심입니다. 여러분이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은사도 하나의 율법의 행위와 같을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들이 가진 육체의 욕심이 무엇입니까?

세상 적인 욕심입니까? 그런 욕심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자기가 더 의로워지고자 하는 육체의 욕심을 가진 것입니다 욕심이라고 하니까 나쁜 것만을 생각하는데 이스라엘은 육체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들 말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육체의 욕심이 많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오셨을 당시에 그들은 율법에 정통했고 그 율법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이기지 못해서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복음을 방해하고 있는지 조차 모릅니다.

성령은 믿음으로 인도하고 있고 우리 육체는 나를 나타내기 위해 율법의 의를 이루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둘은 언제나 싸웁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행위와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싸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은 믿음을 쫓으라고 요구를 하시고 있는데 우리 육체는 어떻게 하든지 욕심을 채우려고 율법의 의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가 바로 육체의 욕심이라는 것을 바로 분별을 해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면 결국 행위에 빠져 자기 영혼을 죽게 합니다. 아니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실 성령을 모르고 성령의 쫓아 행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성령을 쫓아 행하는 것은 마음으로 믿는 것이고 육체의 욕심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바로 교회 안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들입니다

 

제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대로 자기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육체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되는 순간 아니 그것이 자기 육체의 욕심이라는 것을 모르는 순간 그 영혼은 사망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는 모든 일이 그럴 수 있습니다.

내가 정말 복음을 위해 내 모든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하는 그 행위가 육체의 욕심을 이루려고 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교회는 그 욕심이 너무 지나치게 많다는 것입니다 그 욕심을 서로 경쟁을 하면서 이루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고 서로 간증을 하면서 서로 격려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성령을 쫓아 행하려 고는 하지 않는 그들이 육체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은 안 가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육체의 욕심이라는 것도 모르고 오히려 자기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육체의 욕심을 이루려고 하는지 심지어는 빚을 내서 헌금을 하고 그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한심합니까?

아니 제가 한심하다고 하면 저보고 이상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도 모르고 자기 육체의 욕심을 이루려고 하는 일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책망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에 너무 빠져서 그것이 육체의 욕심을 이루는 것인지 조차 분별이 안 됩니다 아니 오히려 자기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17,“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 둘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내가 육체의 소욕을 따르게 되면 성령의 소욕을 거역하게 되고 성령의 소욕을 쫓아가게 되면 육체의 소욕을 거역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육체의 소욕은 다시 말씀은 드리지만 세상 사람들이 하는 행위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자기 율법의 의를 이루려고 하는 사람들의 소욕입니다

 

이 둘은 서로 대적을 합니다.

그런데 이 둘이 아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현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아니 이 둘을 다 주장하면서 어느 한 가지를 소홀히 하면 구원을 못 받을 것처럼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대적을 하면서 싸우고 있는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잘 타협을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만약 이 문제를 바로 깨닫지 못한다면 여러분의 구원은 거짓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체의 소욕으로 인하여 성령을 훼방하고 있는데 과연 그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제가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잘 아실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구원입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바로 천국에 가서 영원한 축복을 누기기 위함입니다. 물론 교회가 대형화 되다 보니까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지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온 사람들의 소망하는 바는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더욱 열심을 내고 있지 않습니까?

 

내 육체의 소욕이 천국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고 오히려 육체의 소욕을 이루기 위해서 더욱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육체로 행하고 있는 모든 신앙생활의 의가 바로 육체의 소욕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성령의 소욕을 거절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둘은 함께 있지 않습니다.

분명히 사도 바울은 이 둘이 대적을 이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흔히 말 합니다 신앙생활도 잘하고 믿음도 좋고 마치 금상첨화 같지만 그것이 성령의 소욕을 거절할 수 있는 일이 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면 자기도 모르게 성령을 훼방하는 자가 되고 맙니다.

 

천국에 가고 싶습니까?

반드시 육체의 소욕을 버려야 합니다.

육체의 욕심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결단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복음을 위해 헌신해야 하겠지만 그것이 내 육체로 이루는 순간 그것조차도 내 육체의 소욕이 된다는 것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성도만이 성령의 소욕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얻기 위해서 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배설물처럼 버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않고 복음을 위해 헌신해야 하지만 그것이 육체의 소욕이 된다는 것을 알고 더욱더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 간구를 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과연 이제까지 육체의 소욕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 왔는가 아니면 성령의 소욕을 이루어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 살아왔는가? 자신을 냉정하게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육체의 소욕을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내 육체의 소욕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버리고 더욱더 복음을 위해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립니다.

내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가 나를 분별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내가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아니면 율법을 버렸는가 입니다. 율법을 버린다고 하면 마치 방종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율법이 없어도 얼마든지 의롭고 선하게 살 수 있습니다.

 

아직도 율법 아래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다는 말씀은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과연 율법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율법의 어느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는 가 스스로 분별하시면 내가 구원을 받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성도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은 육체의 소욕입니다

또한 은사도 육체의 소욕이 될 수 있습니다.

내 몸을 통해 나타나는 모든 것은 다 육체의 소욕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특히 율법은 한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사를 행하되 그것이 내 구원을 방해 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늘 성령을 쫓아 행하며 그 성령의 소욕을 이루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소욕은 내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지금도 나를 깨우치고 있고 나를 감동하시고 있습니다. 성령의 소욕을 쫓아 행하는 성도가 되셔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도함을 받아 영혼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