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23강,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윤주만목사 2019. 7. 6. 08:36


123,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베드로전서 3:18-22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성경은 일반 책이 아닙니다.

마치 순서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말씀을 순서 그대로 해석을 하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또한 잠언이나 요한계시록을 보면 의인화를 시켜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게 기록을 해 놓으셨습니다.

 

요한계시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요한이 본 계시와 환상들이 종말에 일어날 일을 순서대로 기록한 것으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예언의 말씀들을 보면 전혀 순서와 상관이 없이 보이는 대로 기록을 해 놓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순서대로 해석을 하다 보니까 문제가 생기고 확실하게 풀리지 않고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어제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아니 어제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해도 우리는 순서대로 그대로 이야기 할 때 보다는 생각이 나는 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후 문맥이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아! 이 이야기는 밤에 있었던 이야기고 저 이야기는 아침에 있었던 이야기지만 말하는 사람이 두서없이 이야기를 했구나 하면서 알아듣습니다.

 

제가 하나님이 두서가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눈이 있어도 세상적인 지혜가 있어도 하나님께서 그 눈을 열어 주시지 않고 또 지혜를 주시지 않으면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수 없이 읽고 또 평생을 연구를 해도 깨닫지 못하게 하시면 알 수 없는 것이 성경입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또 절기를 지키고 안식일을 지키면서 살아왔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행위에 열심을 내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들의 눈으로 보고도 영접하지 않는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말이 됩니까?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다면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그 성전이 어떻게 지어 진 것입니까? 모세가 하늘에 있는 성전을 보고 그 형상을 따라 성막을 지었습니다. 그 성전이 무엇이냐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전의 모든 기구는 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상 대대로 제사를 드리는 그들이 성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저 자기들의 행위로 제사를 드리는 데만 열심을 다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고 또 절기를 지키고 하는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나타내고 있었지만 수천 년이 넘게 그 일을 하면서도 그들은 예수를 몰랐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을 보는 이스라엘이 그랬듯이 지금 이 시대도 신약을 보면서도 또 그들과 같이 문자에 매여 제사를 드리는 것과 같이 행위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해석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야 정답입니다 구약도 그렇고 신약도 마찬가지로 예수가 나오지 않으면 그는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이 됩니다.

 

예수가 나오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저는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 이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것이 문자적 해석이냐 영적인 해석이냐 은유적 해석이냐 비유적 해석이냐 할 것 없이 어느 해석을 취하더라도 예수가 나온다면 최소한 실수는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려운 말씀들이 있습니다.

사실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예수를 보려고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해석이 어려운 것입니다 내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다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라도 예수를 통해 그 말씀을 해석하려고 하면 성령께서 쉽게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왜 봅니까?

 

요한복음 5:39절을 보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성경을 보는 분명한 목적입니다

만약 이 외에 성경을 보는 또 다른 목적이 있다면 그는 성경을 차라리 안 보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이유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이며 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위해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적을 모르고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가 왜 성경을 보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또 성경을 보면서 예수를 찾으려고 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성경이 이해가 안 되고 때로는 모르면서도 그냥 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어렵다고 말 합니다

 

성경이 어렵습니까?

만약 어렵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나는 고아와 과부의 아버지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배우지 못하고 무식한 고아나 과부가 읽어서 그 안에서 예수를 발견할 수 없다면 하나님은 스스로 거짓말을 하시는 분이 됩니다

 

성경은 쉽습니다.

다만 생각하는 방향이 어디로 가고 있느냐에 따라서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어려운 말씀이 될 수도 있고 아주 쉬운 말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야고보서를 통해 지혜를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하는 자에게는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지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지혜를 얻지 못하는 것은 지혜가 어려워서도 아니고 다만 사람들이 지혜를 구하기보다는 자기 정욕적인 것을 구하느라 지혜를 구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기도를 들어 보면 거의 대부분이 정욕적인 것을 구하고 있지 지혜를 구하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본문 18절입니다.“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한 번 죽은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고 이 죽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번 죽었다는 그 말씀은 한 번 제물이 되어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속죄 했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죽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직도 죄 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서 또 다시 죽기를 바라고 있는 사람들은 매일 자기 죄의 문제를 가지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자기 죄를 회개 하겠다고 매일 눈물을 흘리는 그 행위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신 것을 믿지 않겠다는 기도라는 것을 모르고 마치 그렇게 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 해 주셨습니다.

죄인이 죄인을 용서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는 가능하겠지만 영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모두가 죽어야 하는 죄인이 다른 죄인을 용서하고 그 죄인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의인이 죄인을 대신해 주시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구약의 제사 때 흠 없는 어린 양을 속죄 제물로 번제 단에 드렸습니다. 이 번제 단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었지만 이스라엘은 예수를 몰랐습니다.

 

대신이라는 말씀은 너무도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내가 빚을 졌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 빚을 갚지 못하면 채주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빚은 내가 이 세상에서 지은 죄의 빚이며 사단은 사람들에게 그 빚을 갚으라고 양심을 부축이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은 모두가 빚진 자입니다

자기도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자가 남의 빚을 갚아 줄 수 없습니다.

모두가 일만 달란트의 빚을 진 자들입니다 그 빚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갚을 능력이 안 되기 때문에 오직 빚이 없는 부자 예수 그리스도만이 대신 갚아줄 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빚을 갚아 주셨는데도 아직도 그 빚을 갚으려고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이 있습니다.

 

빚을 갚아 준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의한 자를 대신해서 빚을 갚아준 이유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빚을 누군가 갚아 주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로 갈 수 없습니다. 인생은 어느 누구도 스스로 이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만약 이 빚을 갚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이 빚을 갚아 준 것을 믿지 않습니다.

믿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도 법과 싸우느라 자기 육체의 힘을 소비하고 있고 실제 싸워야 하는 영적인 것에서는 싸움을 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죄를 지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루 종일 기도하고 또 성경을 보고 있다고 해서 죄를 안 지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면 그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 자기 행위를 보면서 마치 죄를 안 지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사단의 계략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 같은 육체를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육체로 십자가에서 한 제물이 되어 이 세상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영으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리심을 받으셨습니다. 이렇게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또한 영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귀한 뜻입니다

 

예수와 나는 한 몸입니다

예수가 육체로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다면 나도 역시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는다는 귀한 말씀입니다 비록 육체는 쇠하여 죽지만 우리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살리심을 받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한 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는 아담이 되고 성도는 하와가 되어 한 몸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19절을 봅니다.“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참으로 난해한 말씀입니다.

마치 언뜻 보기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영으로 살아 나셔서 옥에 가셔서 지옥에 가셔서 그곳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파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죽은 후에도 구원이 있습니까?

사람의 육체가 죽은 후에 구원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성경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런 일이 있다면 우리가 애써 지금 예수를 믿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느냐 못 가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 육체의 생명이 있는 때에 정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비유에서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부자가 죽어 음부에 가 있는데 그가 자기 형제들에게 나사로를 보내서 그 형제들이 자기 있는 곳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아브라함에게 부탁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있는 곳을 알고 있다면 그는 거기서 벌써 회개를 하고 천국으로 갔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굳이 자기 형제들에게 나사로를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도 이미 자기 잘못을 알고 시인을 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가 옥에 있는 자라면 베드로전서에 있는 말씀대로라면 그가 뉘우치고 있다면 회개를 해서 나사로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하다는 것을 이미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한번 죽은 자들이 옥에서 다시 회개를 해서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한 곳이 없습니다. 우리 육체의 생명이 있을 때 천국으로 가냐 아니면 지옥으로 가냐 결정이 되고 예수를 믿은 사람은 천국으로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갑니다. 그렇게 결정이 된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다시 회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공동번역입니다

이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갇혀 있는 영혼들에게도 가셔서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조금 쉽게 번역이 된 것 같습니다.

개역 성경에서 번역을 한 옥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지옥이 아니라 갇혀 있다는 뜻으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누구에게 갇혀 있는 것입니까? 바로 사단에게 갇혀 있는 영혼들에게 가셔서 기쁜 소식을 선포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옥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하는 것은 이 지구는 하나의 옥입니다.

물론 과학이 발달을 해서 지금은 저 우주로 우주인들이 나갔다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이 지구에서 벗어나서 영원히 우주로 가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아니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캡슐을 만든다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지구는 그렇게 갇혀 있는 옥과 같은 곳입니다

사단에게 모든 사람들이 갇혀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아담이 죄를 지은 후부터 인류는 사단에 의해서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갇혔다는 의미는 육체의 구속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또 우리 생명이 언젠가는 모두 죽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로 갇혀 있는 영혼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파 하셨습니다.

 

“20절 압니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누구에게 복음을 전파 하셨습니까?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노아의 홍수는 수천 년의 시간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수천 년 후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는데 어떻게 노아의 홍수 때 기쁜 소식을 전파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을 시간적으로 보면 오해를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언제부터 계시던 분입니까?

이 세상 창조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물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지금부터 이천 년 전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창세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39-40절을 보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하고 예수님하고는 너무 오래 시간차가 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아브라함은 너희와 같이 나를 거절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멜기세덱을 만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히브리서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자기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은 영접하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제 조금 이해가 되실 것이라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이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 하셨습니다. 사단에게 갇혀 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았습니다.

어느 때를 막론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보다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는 추정적으로 수십억 명이 있었는데 겨우 여덟 명만이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복음을 전파 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방주는 무엇입니까?

노아가 만든 방주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노아를 통해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파 했지만 그 당시 수많은 사람들은 이 복음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방주로 들어가는 것을 싫어 하다가 결국 물로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가서 직접 전파를 하신 것이 아니라 노아를 통해 방주를 만들게 하신 그것이 바로 기쁜 소식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순종치 아니하고 겨우 여덟 명 노아의 가족만이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기간이 수백 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면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라셨지만 그들은 기쁜 소식 노아의 방주로 들어가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물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노아의 가족도 물로 심판을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 방주 안에 들어감으로 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물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표 우리가 받는 세례라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세례를 받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모두가 침례를 행했습니다.

침례는 물속에 완전히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심판을 받아서 물에 완전히 들어가서 죽었다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 같이 물에서 나옴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표가 바로 침례라는 말씀입니다

 

노아의 가족은 바로 이 침례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은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물로 죽임을 당했지만 방주 안에 있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던 노아의 가족은 물로 침례를 받는 것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하신 것 같이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받고 있는 침례가 바로 이 표라는 말씀입니다 침례냐 세례냐 하는 것은 이미 여러 곳에 제가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여기서는 언급을 안 하겠습니다.

 

이 세례가 무엇이냐면 육체의 더러운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세례를 받는 자는 더러운 것을 다시 버릴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영혼이 구원을 받은 성도는 더럽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믿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 육체의 더러운 것을 버리는 의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참 침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 그러한 행위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노아의 가족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방주 안에 들어간 성도들입니다

그런 성도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는 그런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려고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진리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이제 성도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는 것에는 아주 열심을 내고 있으면서도 성경에서 하나님을 찾아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아 가려고 하기 보다는 행위에 집착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내가 모르면 정말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가를 알려고 하기 보다는 그것을 사모하면서 성경을 놓지 못하기 보다는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신앙생활에 만족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찾아가는 것은 내가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방주가 아닙니다.

교회는 이스라엘이 사십 년간 광야 생활을 했던 것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교회에 나왔다는 것으로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방주 안에 들어간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으면 그 안에서 칭찬을 받으면 마치 천국에 들어간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찾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방주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야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를 찾으려 하기 보다는 그저 교회 안에서 하는 신앙생활에 만족을 하면서 자기들이 마치 구원을 받은 성도인 것처럼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저 교회 안에서 믿는다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예수를 찾을 수 있는데 까지 찾아야 내 안에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를 찾지도 않고 예수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믿는다고 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22,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그것은 아주 잘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는 의미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 우편의 의미도 많은 곳에서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간단히 말씀을 드리면 성전의 두 기둥이 있는데 왕을 세울 때는 좌편 기중에서 기름을 붓고 제사장을 세울 때는 우편기둥에서 세워서 기름을 부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입니다

이 세상에는 레위 지파의 대 제사장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유다 지파로 오셔서 하늘의 대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일 년 일 차례 지성소에 들어가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의 죄를 속죄 하는 제사를 드리고 그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시면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의 죄가 단번에 사해 졌습니다.

 

히브리서에서 우리의 대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레위 지파의 대 제사장은 일 년 일 차례 매년 마다 제사를 드렸지만 우리의 대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단번 속죄를 자기 육체로 드림으로 해서 다시 드릴 필요가 없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계신 대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세주 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단번에 속죄하신 의인이며 불의한 자를 대신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속죄를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자기가 죄를 안 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선한 일을 하는 것으로 마치 자기 죄가 갚아지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내 평생의 죄는 대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자기 몸을 속죄 제물로 드림으로 해서 모든 죄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없어졌다는 것을 믿는 성도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려고 노력을 하기 보다는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 가려고 합니다.

 

바로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한번 죽은 자들에게는 다시 기회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옥에 가서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은 예수님을 죽이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지옥에 대해서 말씀드리기기 조심스럽지만 지옥을 안다면 이 말씀을 보고 예수님께서 지옥에서 복음을 전파하신다는 생각을 절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를 알려면 성경에서 보화를 끊임없이 캐내야 하고 그렇게 보화를 발견하기를 사모하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게 인도해 주십니다.

 

예수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바로 알면 성경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께서 내 안에 임재하시면 그가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내가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모든 성경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확언하건데 사모하는 자에게는 구원에 관한 말씀은 쉽게 알 수 있도록 깨닫게 해 주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가 바로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고 있는 성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하여 하나님을 찾아가는 귀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