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25강,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윤주만목사 2019. 7. 8. 06:01


125,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신명기 1:29-33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

 

믿음을 모릅니다.

지금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을 믿지 못했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행위와 믿음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믿음을 행위로 나타내려고 합니다.

아니 행위가 나쁘면 믿음이 없다고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그 행위라는 것도 성경적이지 못하고 자기들이 정해 놓은 그것을 잘 하면 믿음이 좋고 그렇지 못하면 믿음이 없습니다. 또 심지어는 이단이라고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약을 보면서 가장 실수를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마치 구약은 율법의 행위를 가르쳐 주는 말씀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 오해가 풀리지 않는 이상 바른 믿음을 갖는다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육적 이스라엘은 영적 이스라엘의 예표입니다

그들을 통해 우리가 경계를 삼아야 하는 것은 어떤 행위가 아니라 바로 믿음입니다. 이스라엘이 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는가 하면 그들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경계로 삼기 보다는 자기들이 육적인 이스라엘로 착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방인입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그 육적인 이스라엘을 사단의 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들이 하는 행위를 따라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에 의지하다가 버림을 받았는데도 그들을 따라가고 한다는 것을 자기 영혼을 사망으로 이끄는 지름길입니다

 

이스라엘을 친근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또 지금까지도 그들은 예수를 안 믿고 오히려 자기들 법으로 예수를 믿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호의적으로 대한 다는 것 자체가 복음을 모르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물론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를 아직까지도 대적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호감을 갖고 마치 이스라엘이 무슨 형제나 되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면 자기 신분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찌 보면 원수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손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은 장본인입니다 그런데도 자기들이 무슨 육적인 이스라엘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지 육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육적인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요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은 늘 두려움에 떨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영적인 이스라엘인 예수를 믿는 성도는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잘못을 보기 때문에 늘 두려워했고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징계에 대해서 늘 노심초사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두려워하는 그대로 징계를 받았고 또 두려워하는 그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자기가 무슨 조그만 잘못을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과 같이 우연히 일어 난 것도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징계로 오해를 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죄를 마음 놓고 지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만약 내가 죄를 지는 그대로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신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견디지 못하고 그냥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는 것 자체가 죄 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그것만을 죄라고 생각을 하면서 그런 실수를 하면 마치 벌을 받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인생은 사는 것 자체가 죄 입니다

죄 덩어리라고 생각하면 맞습니다. 내가 오늘 기도만 하고 살았어도 정말 하나님의 말씀만 묵상하고 살았어도 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하고 살았어도 내 삶 전체가 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마치 그런 일을 하면 자기가 죄를 안 진 것으로 흐뭇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복음의 기초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행위에 의지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죄를 안 지려고 노력을 합니다. 죄를 안 지려고 하니까 기도를 하고 있고 또 성경을 보고 있고 심지어는 어떤 사람은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영성을 깨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죄를 안 지었다고 생각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내가 사는 자체가 다 죄입니다 마음 놓고 죄를 지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복음이 있는 성도라면 당연히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자기가 가진 복음을 어떻게 하든지 전파하려고 이 세상 사람들 보다 더 선하고 의롭게 살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죄를 안 짓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선을 행한다고 해서 죄를 안 짓는다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이지 우리는 정말 하루 종일 선을 행하면서 살았어도 사는 그 자체가 죄 입니다 그런 죄의식에 빠져 살기 보다는 믿음 안에서 자유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왜 두려워합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아직 믿음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온전히 믿는 성도는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기 일생에 치명적인 실수를 했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두려워합니까?

자기가 하려고 하니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려고 하다 보니까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볼 때 너무 연약하기 때문에 두려움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완전하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일을 하면서 실패를 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무서워합니다.

인간은 너무도 연약한 존재입니다

자기보다 더 강한 존재가 있으면 두려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육적인 싸움은 우리의 영적인 싸움을 예표하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왜 두려워하고 있느냐면 자기들이 들어갈 가나안 땅에 정탐을 해 보니까 그 땅에 거하는 아낙 자손을 본 것입니다

 

거대한 성벽을 보았고 또 키가 장대한 아낙 자손을 보았습니다.

냉정하게 싸움을 하면 무조건 집니다. 그들은 모든 병거를 다 갖추고 있고 이스라엘은 변변한 무기도 없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싸움을 한다는 것을 백전백패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싸움을 해 보나 마나입니다

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진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자기들 눈으로 직접 본 정탐꾼들은 자기들이 싸워서 이기려 하니까 도저히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자기들이 싸우려 하는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사단과 싸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가 누구인가 하면 사단과 싸우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존재를 모르고 싸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싸우고 보니까 매일 지는 것입니다 매일 지다 보니까 또 질 것을 두려워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단은 사자입니다

그리고 성도는 양입니다

백번을 싸우면 무조건 양이 지게 되어 있습니다. 혹시 사자가 배가 불러서 그냥 놓아두면 모를까 사자와 싸운다는 자체가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자가 배가 불러서 그냥 놓아두고 있는데 마치 자기는 사자와 싸워서 이긴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자는 배가 부르면 동물이 지나가도 잡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자가 배가 불러서 귀찮아서 그냥 놓아두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자기가 사단과 싸워서 이겼다고 착각을 하고 그것을 자랑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자랑하면서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싸우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사자 밥이 됩니다.

 

언젠가 사자가 배가 고프면 잡아먹습니다.

단지 지금 안 잡아 먹혔다고 해서 자기가 사자를 이긴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다면 참으로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아직도 교회 안에는 이스라엘과 같이 자기들이 싸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결국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만 것을 성경을 통해서 똑똑히 보면서도 자기는 안 그럴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싸우면 두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싸워 주신다고 믿으면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아이가 아이까리 싸움을 할 때는 두려운 마음을 가지지만 자기 부모가 나서서 싸움을 해 준다면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싸우는 것을 보기만 해도 자기도 모르게 힘이 나는 것입니다 그 부모가 더구나 싸움에서 백전백승을 하는 부모라면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애굽에서 싸우셨던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는 자기들이 싸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하나님이 싸우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것은 내가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기 아들을 위해 싸워 주는데 어느 정도만 싸워 줍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이보고 싸우라고 한다면 아이는 다시 겁을 먹게 됩니다. 지금 교인들이 내가 싸워야 할 것이 있고 또 하나님이 싸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는 하나님이 싸워 주셨지만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자기들이 싸워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그러나 실제 그렇게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금 잘못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렇게 해서 천국에 갈 수 있겠느냐고 정죄를 합니다. 자기가 싸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애굽에서는 싸워 주셨지만 가나안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그렇게 싸워서 가겠느냐고 판단을 합니다. 만약 우리가 싸워야 한다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제도 싸우십니다.

아니 내가 천국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께서 싸우셔서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전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믿음이 있는 성도는 앞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구원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말로는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구원을 이루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는 것을 믿지 못하고 아직도 자기가 싸워서 천국에 가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몸부림을 치는 사람은 결국 버림을 받게 됩니다.

 

나는 사단과 게임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양이 사자와 싸우겠다고 달려들다가는 죽음만 있을 뿐입니다 양은 자기가 살려고 하면 다윗과 같은 목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목자가 있을 때 사자가 와서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할 때도 겁이 안 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목자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가 싸워 주면 됩니다.

나는 가만히 예수님이 싸우는 것을 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자와 싸워서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믿으면 됩니다. 그러면 그 믿음대로 싸움에 이기는 자가 되어 영적 가나안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아주 쉽습니다.

믿기만 하면 되는데 자기가 싸움을 해서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이 시대도 얼마나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이런 것은 하지 말아야 하고 내 몸으로 하려고 하는 이 모든 것이 바로 사자와 싸우겠다고 달려든 양의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싸우지 마세요.

그냥 지켜보면 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싸움에 이기면 나도 이긴 자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예수와 한 몸이기 때문에 예수가 이기면 나도 이긴 자가 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자기가 싸워서 이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내가 싸우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싸워서 이긴 그 이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승리자의 호칭을 듣는 그런 종교입니다

 

믿지를 않습니다.

자기가 예수와 한 몸이라는 것을 믿으면 자기가 굳이 싸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지를 못하니까 자꾸 자기가 싸워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사단은 그것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머리가 이겼으면 팔도 이긴 것입니다 머리가 이겼는데 또 팔이 다시 이겨야 합니까? 그런데도 팔이 자기가 다시 이기려고 싸움을 치열하게 하고 있습니다.

 

31,“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보았습니다.

애굽에서 광야로 인도하시고 가나안 목전까지 인도하신 것을 보고도 믿지를 못 합니다. 아마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 교인들이라면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를 보았다면 자기들은 다 믿을 것이라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그러나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었는데도 이 시대도 믿음으로 위지하기 보다는 아직도 행위를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믿음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스라엘과 같이 다수는 광야에서 죽고 만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니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역시 이 시대도 다수는 이스라엘과 같이 믿음을 갖지 못하고 성경 말씀을 바로 깨닫지 못해서 행위를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완전한 행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행위가 혼재되어 있어 영적인 간음을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완전한 율법주의는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와 율법 이 두 남편을 아주 적절하게 섬기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서 이미 죽은 율법의 남편을 다시 살려서 두 남편을 섬기는 음행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오히려 믿음이 있다고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내가 싸우고자 하는 자체가 두 남편을 섬기는 일입니다

그냥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안아서 인도하시는 것을 믿기만 하면 되는데 그렇게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믿기만 하면 되는데도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자기도 싸우려고 합니다. 그 싸움이 자기 영혼을 멸망으로 빠뜨리게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32,“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믿지를 못 합니다

이스라엘이 믿지 않은 것 같이 이 시대도 역시 믿지를 못하고 있고 자기들이 싸우고자 사자에게 대들고 있습니다. 그냥 믿기만 하면 되는데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싸우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상대를 믿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고자 하는 대상이 잘 하느냐 하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을 모르고 자기가 잘 해야 믿음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에 믿음 자체를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럼 내가 잘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잘 해야 합니까? 여러분이 저를 믿습니다. 제가 잘 해야 합니까? 여러분이 잘 해야 합니까? 제가 거짓말을 하면 여러분이 저를 믿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이 거짓말을 하고 제가 정직하다면 여러분은 비록 거짓말을 하지만 저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을 오해를 합니다.

어떻게 오해를 하고 있느냐면 저를 믿는데 저도 정직해야 하고 여러분도 정직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정직하기만 하면 여러분이 저를 믿는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굳이 여러분이 정직하지 않아도 제가 정직한 것만으로도 저를 믿을 수 있습니다. 물론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제가 정직하고 여러분도 정직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제가 정직해야 여러분이 저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행해오신 것이 정직하시다면 내 행위와 상관이 없이 나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정직해도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셨다면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인데도 이 기초적인 믿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인도하시고 또 광야에서 너희를 인도하셨고 이제 가나안 목전에 있다 그러니까 믿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도 믿지를 못하고 자기들이 싸우려고 한 것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그렇게 믿음을 모르는 이스라엘은 결국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믿음이 무엇인가를 몰랐습니다.

지금도 행위에 의지하고 있는 다수의 교인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믿지를 못하고 자기들이 사자와 싸우려고 합니다. 거대한 아낙 자손과 싸우려고 하다 보니까 더럭 겁을 먹는 것입니다 매일 죄를 짓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보니까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무서워합니까?

내가 이렇게 하다가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어? 자기 자신의 행위를 보니까 도저히 자신이 안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낙 자손을 보니까 도저히 싸움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 다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표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어서 아니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다 죽은 것을 예표로 보여주시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는 그것을 경계로 삼아 바른 믿음을 가져서 영적 가나안 천국에 들어가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장정만 육십 만입니다.

그러나 거의 모두가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있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믿음이 없는 이스라엘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지만 또 믿음이 있는 모든 사람은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내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들이 싸우려고 했던 다수는 모두 광야에서 죽었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은 믿음이 있는 사람은 또 모두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33,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서 행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앞서 행하고 있습니까?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단과 싸워서 이기심으로 내가 믿음으로 천국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행하셨습니다.

내 구원을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어 놓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실을 믿지 못하고 아직도 행위에 의지하고 있고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싸움에서 이겼다고 자랑을 하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은혜를 입었습니다.

내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은혜를 입은 성도는 이제 사단과 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과 같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해서 한 영혼이라고 더 구원을 하려고 수고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고를 아끼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갚기 위해서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복음의 보물을 세상 사람들에게도 나눠 주기를 원해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수고를 해서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