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19강,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찌니

윤주만목사 2019. 7. 2. 08:07


119,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찌니

 

레위기 2:11-16절을 보면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찌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찌니라 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릴찌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단에 올리지 말찌며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찌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찌니라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찌니 이는 소제니라 제사장은 찧은 곡식 얼마와 기름의 얼마와 모든 유향을 기념물로 불사를찌니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제사에는 5대 제사가 있습니다.

그 중에 레위기에서 두 번째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소제입니다 제사라는 그림자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 볼 수 있는 지혜를 얻어야 하며 이제는 그 제사의 행위 보다는 의미를 아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실패 했습니다.

그들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율법과 규례를 너무 잘 지키려 하다가 그 의미를 모르고 행위에 빠져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 있어서 무지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율법을 반포하신 목적과 그리고 제사 제도에 대한 규례의 의미를 바로 알았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 했을 것입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바로 알았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 했을 것이고 행위에 빠지지 않았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제사에 대한 행위에 있어서는 너무도 잘 알고 행해왔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을 몰랐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제사에 대한 의미를 모르고 그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제사 제도는 폐해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스라엘과 같이 행위의 제사를 드려서는 안 됩니다

제사를 드려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사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전혀 모르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5대 제사 하나하나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소제는 곡식을 빻아 하얀 가루를 내어 그것으로 드리는 제사를 소제라고 합니다. 다른 제사는 양과 소 그리고 염소를 잡아서 드리는 제사라면 이 소제는 곡식을 드리는 제사입니다 곡식을 드리는 이 제사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성도를 무엇으로 비유했습니까?

 

마태복음 3:12절을 보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우리는 알곡입니다

우리 뿐 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익은 열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소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그에 붙은 자 성도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 제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알곡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쭉정이는 어차피 불에 타 버릴 것이고 처음 익은 열매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에 붙은 자 성도들로 드려지는 제사가 바로 소제며 이 제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가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의미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제사나 받지 아니하십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리고 모세를 통해 반포하신 그 제사 제도를 통해 드려지는 제사만 받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드리고 싶다고 좋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린다고 해서 그 제사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드리려고 합니다.

아니 자기 마음대로 무조건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성경에 나와 있는 말씀이 있으면 그것을 어떻게든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해서 드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일천번제입니다

과연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에게 반포를 해서 드리라고 하신 그 제사도 때로는 받지 않으셨는데 자기들 마음대로 드리는 제사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면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제사는 반드시 규례대로 드려야 합니다.

소제를 드리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다고 해서 양을 잡아서 같이 드리면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렇게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뭐가 아까우냐고 하면서 소제를 드리는데 양을 잡아서 드리는 것을 막으면 오히려 분을 낼 것입니다

 

소재를 드리면서 양도 잡아서 드리고 소도 잡아서 드리자고 하면 아마 이 시대 교인들은 아주 대 찬성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당연히 믿음이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재물이 많아도 소제를 드릴 때 양을 잡아서 같이 드린다고 하는 것은 소제를 부정하게 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뭐가 아깝냐고 합니다.

아니 교회를 방해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소제를 드리면서 양도 잡아서 드리고 또 소도 잡아서 드리면 그것으로 교회 재정이 넘치고 그것으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운영하는데 뭐가 나쁘냐고 항의를 할 것입니다 아니 반대를 하는 사람들을 심지어는 이단으로 취급을 합니다.

 

그러나 안 됩니다

소제는 반드시 곡식을 드려야 합니다.

자기가 아무리 부자라고 해서 소재를 드리는데 양을 잡아서 같이 드리게 되면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지나친 열심으로 인하여 양을 같이 드리자고 하는 그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양을 같이 드려서는 안 된다고 하면 교회를 훼방하는 사람으로 취급을 합니다.

 

소제의 가장 큰 의미는 열매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그에 붙은 자 구원을 받는 성도들을 상징하면서 드려지는 제사가 바로 소제입니다 구원을 상징하는 그 제사에 흠 없는 양을 잡아서 드리는 것은 제사의 의미를 멸시하는 행위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찌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찌니라

 

소제에는 반드시 누룩을 넣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소재를 드리는데 누룩을 넣어서 드린다면 그것은 소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보기 좋은 떡이 맛있다고 누룩을 넣어서 마음껏 부풀려서 소재를 드리고 있습니다. 내가 드리는 소제에 누룩이 들어간다면 하나님의 진노만 있을 뿐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하지 말라는 그것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를 드리면서도 거기에 누룩을 썩어서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누룩을 넣은 소제를 하나님이 받으시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누룩을 넣지 않으면 오히려 믿음이 없다고 핀잔을 받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제는 성도를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그 제사에 누룩을 넣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누룩을 넣지 말아야 하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누룩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제사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누룩을 넣고 있습니다. 그 누룩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누룩을 썩어서 먹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4절을 보면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갈라디아서 5:9절을 보면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율법으로 의로워 지려고 하는 그 행위가 바로 누룩입니다

아주 적은 누룩만 들어가도 온 덩어리를 부풀게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고 그 누룩으로 인하여 내가 은혜에서 떨어진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아니 구약의 이스라엘보다도 더 율법을 잘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에는 누룩이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데 있어 조금의 누룩이라도 들어가는 순간 나는 그 율법에 의해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누룩을 넣고 있고 당연히 그 누룩 넣는 것을 기뻐하고 있고 누룩을 넣지 말라고 하면 이단이라고 정죄까지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버리라고 하면 이단으로 취급을 합니다.

율법을 버리고도 얼마든지 선하고 의롭게 살아갈 수 있는데 마치 율법이 없으면 선하고 의롭게 살아가지 못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아니고는 아무 것도 못하는 것이 바로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그 율법이 자기들의 구원을 방해를 하고 있고 소제를 부정하게 만들고 있는데도 누룩을 썩어서 자기를 드리려고 하고 있고 그런 자기들의 율법의 행위를 기뻐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신앙의 초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몽학 선생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그런 교인들이 교회 안에 수두룩합니다. 아니 거의 모든 교인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몽학 선생이 없으면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은혜에서 끊어지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소제로 드려지고 있는데 거기에 누룩을 썩어서 드리고 있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그 소재를 받으시겠습니까? 누룩을 넣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누룩을 안 넣으면 안 되는 것으로 심지어는 믿음이 없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꿀을 넣어서도 안 됩니다

꿀은 우선 답니다. 내 입에서는 달다는 말씀입니다 자기에게 단 것을 넣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먹기 좋은 것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먹기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쉽게 할 수 있는 행위들이 있습니다.

그런 행위들을 하면서 아주 단 맛을 느끼고 있습니다. 바로 율법과 복음을 잘 썩어서 먹게 하는 것입니다 율법도 잘 지키고 믿음도 좋고 모든 신앙인들이 바라는 이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꿀과 같이 달지만 그것이 음행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음행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영적으로 음행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그것이 음행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달기 때문에 더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음녀의 입은 꿀과 같이 달다고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온전히 복음을 믿는 것이 아니라 율법도 잘 지키고 복음도 믿고 하는 것이 얼마나 달게 느껴지겠습니까? 그런 신앙인들의 모습이 나타날 것을 아시고 누룩과 꿀을 넣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릴찌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단에 올리지 말찌며

 

성도는 처음 익은 열매입니다

 

요한계시록 14:4절을 보면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소제는 성도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우리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나서 그것이 처음 익은 열매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아는 냄새를 내기 보다는 자기 향기를 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것을 하나님께 드려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 안에서는 자기 것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아니 당연히 자기 것을 자기 향이 나는 것을 드리고자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단에 올리는 것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제사를 모르면 망 합니다

이스라엘은 제사의 의미를 몰랐기 때문에 행위로는 제사를 잘 드렸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자기들의 향을 드리려고 하나님 앞에서 자랑을 했습니다. 지금도 자기가 향기를 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제가 성도가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것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향기를 소재로 드리려고 하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자기는 아니라고 하지만 오직 믿음이라고 하지만 막상 그 문제에 깊숙이 들어가면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느냐면 자기가 내는 향기가 너무 좋기 때문이고 그 향기를 내기 위해서 수고한 자기 수고를 무시하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나는 것입니다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 소제를 드리면서도 향기를 내려고 합니다. 자기 입으로 아니라고 하지만 그 마음에는 그 향기가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향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을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저런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겠어? 하면서 정죄를 합니다. 그 말 자체가 이미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것임을 모르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자기 향기로 기쁘게 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아니고는 흠향을 안 하신다는 것을 모르고 자기가 향기를 내서 그것을 소제로 드리고자 합니다.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찌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찌니라

 

언약이 있어야 합니다.

언약이 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소금 언약은 변치 않는 언약을 상징합니다. 우리 성도에게는 어떤 언약이 있습니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으리라는 언약이 있습니다.

그 언약이 없이 나를 드리려고 하는 행위는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사를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제사의 행위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았지만 그 의미를 몰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언약이 없습니다.

아니 언약 보다는 율법의 행위가 더 중요합니다.

언약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기 보다는 누룩을 썩어서 그것을 부풀려서 아주 맛있는 빵을 먹으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착각에 빠져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은 헌 신짝보다 못 합니다.

심지어는 율법의 행위를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정죄를 하고 그렇게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그 마음에 언약보다는 행위가 더 자리하고 있고 그 행위로 잔뜩 부풀어져 마음에서는 한껏 보자가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

 

이삭을 빻아 소재로 삼으라고 말씀을 합니다.

 

로마서 11:16절을 보면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함께 떡 덩이가 된 성도도 거룩하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어떻게 거룩해 졌는가를 소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 스스로 거룩해 지려고 합니다. 처음 익은 열매가 거룩한 즉 떡 덩이도 거룩합니다. 처음 익은 예수 그리스도가 거룩한 즉 함께 떡이 된 내가 거룩하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지금 방종을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아무리 이 세상에서 거룩해 지려고 해도 역시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거룩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발상이 얼마나 어리석은 가를 모르고 있다면 결국 자기를 거룩하게 하려고 하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뿌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가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성도는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진토입니다 그 진토가 거룩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선하고 의롭게 사는 것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하지만 우리는 역시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거룩해 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선하고 의롭게 살려고 해도 우리는 역시 죄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룩을 썩는 자들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아주 작은 부분의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스스로 거룩해 지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사는 것 자체가 모두 악입니다

그런 인생이 거룩해 지려고 하는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모르고 성화주의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선하고 의롭게 살아야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에 성도는 그렇게 되려고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내가 예수 밖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찌니 이는 소제니라

 

기름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성령이 기름 붓듯 내려오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보혜사 성령이 오시지 않고는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그래야 이 제사 제도가 믿어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연구를 해도 보혜사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게 됩니다. 성경은 너무 오묘해서 문자적으로도 해석이 되어 영적으로도 해석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우리는 성경 해석을 할 때 두 가지로 해석을 해서 그 중에서 가장 예수 그리스도를 잘 나타내고 있는 해석이 바른 해석이라고 보면 됩니다.

 

유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입니다.

이 향은 나에게서 나는 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성도에게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냄새를 내려 하기 보다는 자기 행위의 향기를 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알아야 합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향기가 소제에서 나야 합니다. 나를 드리는데 있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나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소제입니다

반드시 소제는 이렇게 드려야 합니다.

자기 생각에 좋다고 해서 누룩을 썩기도 하고 자기에게서 나는 향기를 내려고 하기도 하고 또 행위를 썩어서 음행을 하려고 하다가는 그 소제를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고 오히려 저주가 임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 자기를 소제로 드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 생각에 좋은 것을 다 썩어서 드리려고 하고 있고 그런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마치 믿음이 좋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찧은 곡식 얼마와 기름의 얼마와 모든 유향을 기념물로 불사를찌니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기념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은 것을 기념해서 소재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소제는 다른 제사와 드리게 기념을 하는 제사이며 이 제사를 드림으로 해서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기념하면서 기뻐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구원을 기념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 열매가 되시고 또 우리가 그에게 붙은 자가 되어서 하나님께 드려졌다는 것을 기념하고 있습니까? 아니 구원에 대해서 말을 하면 오히려 너무 구원만 주장한다고 하면서 마치 이단 종파의 말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소제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행위의 소제가 아니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가 되어 하나님께 드려졌다는 것을 기념하는 제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이 소제를 영적으로 드리는 성도만이 이 제사를 드리면서 기념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기념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나를 소제로 드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