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18강,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윤주만목사 2019. 7. 1. 07:39


118,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고린도전서 7:1-7절을 보면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찌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권도요 명령은 아니라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성경입니다

우리 성도에게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볼 때는 반드시 영의 일이라는 것을 생각을 하고 보아야 합니다. 설령 그 말씀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영의 일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을 기본적으로 갖고 보아야 합니다.

 

늘 그렇습니다.

성경을 풀다가 보면 정말 어려운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니 그냥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싶은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이 말씀은 성경의 제목과 같이 우리 성도들의 혼인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 성도의 혼인에 대해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사람에게 있어서 혼인만큼 중대사가 없습니다. 그러나 영의 일에 있어서는 우리 인생의 혼인이라는 것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의 혼인이 중요합니까?

물론 육체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와 혼인을 하는가는 너무도 중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제가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우리 인생의 혼인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에는 혼인을 하기도 전에 순교를 당했던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불자가 되라고 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그런 말씀을 하고 있다면 이제까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복음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창조하시고 또한 우리의 체질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 분이 우리 인생들에게 스님들과 같이 결혼도 하지 않고 살라고 말씀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문제입니다

내가 여자를 가까이 하고 또 여자를 멀리하고 하는 그런 문제를 가지고 우리에게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런 것은 우리 구원의 문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오해를 함으로 해서 심지어는 혼인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혼인을 합니까?

혼인을 하지 않습니까? 혼인을 하고 이혼을 합니까? 만약에 우리 육체의 이런 문제가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문제가 된다면 그것 역시 행위가 되기 때문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말씀과 배치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가 혼인을 했던 사람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의 아내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도들의 아내에 대해서는 말을 하고 있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우리 성도들에게 이혼에 대해서 함부로 생각하라고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적으로도 가능한 세상의 이성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되었다면 그것은 어느 누구도 왈가불가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우리 인생들의 그런 사소한 문제를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성경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가 사단의 미혹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참 어렵습니다.

사실 고린도전서 7장의 말씀은 여러 번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도 쉽게 말씀을 드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말씀 자체가 너무도 명확하게 우리 인생들의 혼인에 대한 문제로 말씀을 하기 때문에 더욱 영의 일을 알기 어려운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혼인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실 이 말씀을 영의 일로 본다는 그 자체가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게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이상하게 해석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기 딱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때 바리새인들이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잡혀온 여자를 끌고 왔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그 여자를 정죄하지 않고 바리새인들에게 먼저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우리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그런 육의 일을 가지고 우리에게 음행이라고 말씀을 한다면 예수님의 말씀과 정면으로 배치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음행입니다

그것이 진짜 육체의 남자와 여자가 하고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을 하는 그런 음행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절대로 음행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음행을 누가 하고 있는가를 알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모두가 연결이 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5장에서 음행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6장에서도 음행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또 7장에서도 음행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음행에 대해서 계속해서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음행입니까?

이 음행을 말씀할 때는 거의 다 교회와의 관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이 음행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와 음행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교회를 비유로 하는 음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이제까지 거의 모든 교회가 음행에 빠졌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도 그 음행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사람인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에서 음행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음행을 하는 것에 대해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보시기 바랍니다.

음행에 대해서 말씀을 할 때 거의 대부분의 말씀이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역시 교회에 대해서 음행을 하는 일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것을 기본으로 해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보고 이 세상에서 남자와 여자의 음행으로 보면 우리가 받은 믿음이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거의 모든 목사들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도덕 선생이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기본적으로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적어 보낸 문제를 두고 말하겠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사도 바울이 7장을 이렇게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5장과 6장을 보아도 고린도교회에 성도들에 쓴 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것으로 생각이 되고 있습니다. 아무튼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에 사도 바울에게 쓴 말이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되어 있습니다.

 

그 말에 대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대답을 이제 7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남자가 여자를 가까지 아니함이 좋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반은 남자고 반은 여자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면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남자가 여자를 가까지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더구나 지금과 같이 고도로 발달을 하고 있는 사회에서 남자가 여자를 가까지 하지 아니함이 좋다는 말씀은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이 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거의 모든 사람이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 안에 있는 일이라고 해도 교회 안에는 여자가 남자보다는 조금 더 많이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고 말씀을 하면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기가 참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남자만 여자를 가까지 아니함이 좋습니까? 여자는 남자를 가까지 해도 좋다는 말씀입니까? 그냥 스쳐 지나치기 쉬운 말씀이지만 우리는 정말 깊이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에 이 음행이 남자와 여자와의 음행이라면 남자만 여자에게 가까지 하지 않으면 해결 될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말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왜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말에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남자에게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자만 여자를 가까지 하지 아니하면 음행의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것과 같이 말씀을 하고 있다면 사도 바울은 세상을 너무 모르고 하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6:13절을 보면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남자입니다

성경에서 남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에서는 믿음에 굳게 서 있는 성도를 남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함이 좋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리적인 남자입니까?

그리고 여자입니까? 그런 남자 여자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은 믿음이 있는 성도를 남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은 우리 성도를 남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입니까?

남자입니까? 그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모든 성도를 남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생리적인 여자라 해도 그가 구원을 받았다면 사도 바울은 지금 그를 남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 남자입니다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함이 좋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은 성도가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함이 좋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여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여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갈라디아서 4:24절을 보면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남자입니다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가 누군가 하면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가와 사라를 비유로 해서 두 여자를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는 종을 낳은 여자고 하나는 아들을 낳은 자유하는 여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입니다 그것을 남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여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의 영의 일에 대해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깨달아서 아는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교회를 의인화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여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가 자유하는 여자냐 아니면 종을 낳은 여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일단 교회는 남자로 하여금 음행을 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음행입니다

누가 음행을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음행을 했습니다. 누구와 음행을 했는가 하면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음행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었는데 그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모든 행위를 통해서 음행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도 보이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를 통해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음행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남자는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이는 교회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는 말씀입니다

 

여자입니다

남자는 반드시 여자를 보면 음행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 남자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보면 어느 누구라도 다 음행을 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남자는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4:4절을 보면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성도입니다

여자들로 더럽히지 아니라고 정절이 잇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가 누구입니까? 우리가 보고 있는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음행을 하기 때문에 가까이 하지 아니함이 좋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입니다

음행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음행을 하지 않고 있습니까? 그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자기들이 음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서도 자기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왜 사도 바울이 남자에게 여자를 가까지 아니 함이 좋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요한계시록의 말씀과 같이 여자로 말미암아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함으로 해서 자기를 더럽게 하지 않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남자입니까?

구원을 받은 성도입니까? 여자를 가까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여자는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이는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를 보면 거의 모든 남자가 음행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음행을 하는가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적은 누룩입니다

처음 시작은 적은 누룩부터 출발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적은 누룩이 아니라 온 덩이가 누룩 투성이 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온갖 누룩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세상에 보이는 교회를 가까이 하면 반드시 남자는 음행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은 우리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여자를 가까지 아니 함이 좋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그것을 음행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큰 음녀를 말씀을 하면서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노의 포도주가 무엇입니까? 율법은 진노를 이룬다고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런데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을 성경은 음행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큰 음녀가 바로 이 진노의 포도주에 취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서도 이런 비유의 말씀들을 깨닫지를 못해서 이 시대 거의 모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음행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드시 음행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보이는 교회를 가까이 하면 음행을 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가까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여자를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섬기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섬깁니까?

누가 교회를 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거리낌이 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말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자를 가까이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도리어 여자를 섬기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를 가까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여자는 보이는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보고 음행을 하지 않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워지면 반드시 율법을 지키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여자를 가까이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더구나 기독교라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보고 교회를 가까이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니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을 보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들을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교회를 반대합니까?

제가 무교회주의를 주장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는 주님의 아내입니다. 그런 교회를 제가 무조건 비판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고 있는 건물의 교회는 다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솔직히 이 시대 교회라고 세워 놓고 간판을 내 걸고 있는 교회에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다 진노의 포도주를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은 어떻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고 절기를 지키고 갖가지 헌금을 하고 그 안에서 삼가 지키는 일들을 아무 거리낌이 없이 하면서도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음행에 빠질 유혹 때문에, 남자는 저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도 저마다 자기 남편을 두도록 하십시오.”

 

비유입니다

이 세상의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정말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마치 실제 이와 같이 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함으로 해서 음행을 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이제 우리 육체의 일을 비유로 해서 우리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자입니다

여자를 보면 음행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음행을 하는 것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세상에서는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결혼을 하고 있는가 하면 결혼을 하지 않으면 여자를 가까이 하면 음행을 하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혼인을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우리 육체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음행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은 성도가 교회를 가까이 함으로 해서 음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음행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남자는 아내를 두고 여자는 남편을 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성도들에게 음행을 연고로 해서 혼인을 하라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 세상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여 음행을 할 수 있으니까 실제 세상에서 남자는 아내를 두고 여자는 남편을 두는 것과 같이 하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3:12절을 보면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데살로니가전서 4:4절을 보면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교회입니다

그 기본은 주님의 아내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교회의 남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도가 교회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교회와 성도의 관계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집사입니다

디모데전서를 통해서 집사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한 아내는 실제 여자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가 교회를 세우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잘 다스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잘 다스리는데 어떻게 하는가 하면 그 교회를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취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보면 음행을 합니다.

그 음행의 연고로 사도 바울은 우리 성도들에게 교회를 취할 때 존귀함과 거룩함으로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사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서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라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의 영의 일을 육체의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찌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와 같이 남편에게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하도록 하십시오.”

 

의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와 관계에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고 있습니다. 세상 이치로 생각을 할 때 그렇게 했을 때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남편에게 그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세상의 혼인입니다

그 의무는 음행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의무를 다함으로 해서 남편도 음행을 하지 않고 아내도 음행을 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혼인관계에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성도와의 관계에서 서로 의무를 다함으로 해서 음행을 하지 않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거룩함과 존귀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 남편이, 성도가 의무를 다 함으로서 거룩함과 존귀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어떻게 됩니까? 그 존귀함과 거룩함을 지킴으로 해서 그 남편이 음행에 빠지지 않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의무를 다 해야 합니다.

아내는 존귀함과 거룩함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남편은 그 교회가 존귀함과 거룩함이 있음으로 해서 음행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있는 성도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모두가 음행에 빠져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아내가 자기 몸을 마음대로 주장하지 못하고, 남편이 주장합니다. 마찬가지로, 남편도 자기 몸을 마음대로 주장하지 못하고, 아내가 주장합니다.”

 

주장하다

권리를 굳게 내세우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존귀함과 거룩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남자는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존귀하고 거룩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는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교회와 남자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런 후에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된 상태에서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세상의 남편과 아내의 사는 것을 통해서 우리 성도와 교회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몸입니다

교회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 합니다. 그러니까 믿음에 굳게 서서 강건한 남편이 그 몸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존귀함과 거룩함에 있는 교회가 그 남자의 몸을 주장함으로 해서 그가 음행에 빠지지 않게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입니다

자기 몸을 주장하면 어떻게 됩니까? 여자는 사랑을 받고 싶어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남자에게 자기를 사랑하라고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가 믿음에 굳게 서서 강건하면 음행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보고 음행을 할 수 있는데 그 교회가 존귀함과 거룩함을 가지고 있으면 남자가 음행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서로 물리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기도에 전념하기 위하여 얼마 동안 떨어져 있기로 합의한 경우에는 예외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다시 합하십시오. 여러분이 절제하는 힘이 없는 틈을 타서 사탄이 여러분을 유혹할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성도와의 관계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은 성도를 남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남자를 남편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에 굳게 서서 강건한 남자와 존귀함과 거룩함이 있는 아내는 이 세상의 부부들과 같이 분방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남편은 믿음에 굳게 서서 강건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존귀함과 거룩함에 있습니다. 육적으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와 성도는 서로 분방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예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25절을 보면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정말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성도는 믿음에 굳게 서 있습니다. 그리고 존귀하고 거룩한 교회에서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와 그 교회가 서로 분방을 하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마귀의 시험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와 교회입니다

우리는 늘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지금 이 시대 보이는 교회에서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그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교회에 떨어지고 다른 여자를 보면 남자는 반드시 음행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면서 서로 분방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절제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일이 아닙니다.

실제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음행에 얼마나 쉽게 빠지는가를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음행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영적으로 음행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우리 성도들에게 교회와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권도요 명령은 아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말하는 것은 그렇게 해도 좋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지, 명령으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권도요 명령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권도로 하고 명령으로 하지 않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는 설령 교회와 분방을 한다고 해도 믿음에 굳게 서서 강건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이렇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권도입니다

만약에 교회와 성도와의 관계가 반드시 이렇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권도가 아니라 명령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교회와 성도와의 관계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권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분방할 수 있기 때문에 권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다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각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가 있어서,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합니다.

 

갈라디아서 4:12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사도 바울입니다

고린도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음행에 대해서 철저할 정도로 싸움을 했던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안에 율법이 들어오자 그것에 대해서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행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지 말고 남자답게 강건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그렇게 믿음에 굳게 서 있는 성도라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독한 율법주의에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후에 그 율법을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서 분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교회와 함께 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교회와 분방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다른 은사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잠시 교회와 분방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가 받은 은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예를 들을 만한 것이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말씀이라면 성도님들이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그리고 교회입니다 우리는 존귀하고 거룩한 교회와 늘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의무를 다 함으로 해서 그 교회가 존귀함과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게 하고 우리 성도는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