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17강,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윤주만목사 2019. 6. 30. 06:53


117,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학개 1:1-6절을 보면

다리오 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찌니라 너희가 많이 뿌릴찌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찌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성전 건축 이 시대의 로망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름다운 교회를 짓고 그 안에서 정성을 다 해서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런 마음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았기 때문에 유럽의 교회들이 웅장한 성을 지었고 또 지금 한국 교회가 그것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할 건물을 짓는다는데 누가 마다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비록 내 삶은 곤궁할지라도 모든 사람의 한결같은 마음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처소를 짓기를 원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먼저 교회는 성전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교회라고 부르는 건물은 절대로 성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것을 성전이라고 칭한다면 교회가 무엇인가를 모르는 사람이며 성전에는 반드시 지성소와 성소 그리고 뜰이 있어야 하고 구약의 규례대로 지어져야 합니다.

 

사람은 좋게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이왕이면 교회라는 말 보다는 성전이라고 해야 더 거룩해지고 또 마치 그 안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성전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에 성전은 반드시 지시하심에 따라 지었습니다.

내 마음대로 그 안에다 의자를 놓기도 하고 또 요즘 같이 문명의 혜택이 발달한 시대를 살면서 빔 프로젝트를 설치하고 영상 장치와 음향 장치를 마음대로 갖추어 놓고 성전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성전은 어떻게 지으라고 분명히 모세를 통해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지어 놓지도 않은 건물을 성전이라고 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자기들의 생각대로 하고 있는 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 성전에는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또 성전을 짓는 재료들도 아무 것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정해진 것을 재료로 사용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사입니다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지도 않는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건물을 성전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자기들 마음대로 변개 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성전에는 뜰이 있어야 하고 또 성소와 지성소가 있어야 하고 지시하신 기구들이 자리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 어디에 아무렇게나 자기 생각대로 지은 건물을 성전이라고 했습니까?

성전이라고 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그 모양대로 모든 기구를 갖추어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전에는 함부로 출입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나 출입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 합니다

마치 강대상을 지성소처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무식한 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교인들이 앉아 있는 장소를 성소라 하고 강대상을 지성소라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성전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무식한 말입니다

 

지성소에 누가 들어갑니까?

목사라고 해서 그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아마 교회 건물이 성전이고 강대상이 지성소라고 한다면 그곳에는 목사라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니 들어가는 순간 죽고 말 것입니다 제사장이라고 해도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레위기16:34절을 보면

이는 너희의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위하여 일년 일차 속죄할 것이니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매 주일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교회 건물이 성전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강대상이 있는 곳이 지성소라고 한다면 그곳에는 반드시 대 제사장이 일년 일차 들어가서 성도들을 위해서 속죄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 외에 사람들이 들어가는 순간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대제사장도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법궤가 있는 지성소에 들어가서 죽임을 당하는 대제사장들이 많으니까 나중에는 그들의 허리에 끈을 묶고 속죄제를 드리려고 들어갔습니다. 오래 동안 나오지 않으면 허리에 묶여 있는 끈을 잡아 당겨서 대제사장을 끌어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함부로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거역하는 일인가를 모르고 자기들 마음대로 함부로 건물을 지어 놓고 성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절대로 성전이라고 칭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말을 가려가면서 합니다.

자기가 해야 하는 말이 있고 또 허지 말아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좋은 말이 무조건 듣기 좋다고 해서는 안 되는 용어들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학개의 말씀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구약의 그 말씀을 신약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을 해서 봐라 하나님께서 성전을 지으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으냐 너희도 믿음이 있다면 당연히 성전을 지어야 하고 그 성전을 지음으로 해서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공갈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짓습니다.

또 교인들도 그렇게 자기들의 희생으로 지어진 건물을 보면서 기뻐하고 있고 그 안에서 드리는 자기들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이라고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자체만으로 마치 자기들이 구원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같이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근사한 건물을 지어 놓고 그것을 성전이라고 하면서 그 안에서 예배하는 자기들이 마치 특별한 것으로 오해를 하고 그 건물을 보면서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면서 마음에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다리오 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이 시대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 온 때입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를 통해서 성전을 건축하려 했다가 여러 가지 방해로 인하여 중단을 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귀한을 하고 먼저 그들은 외곽 성벽을 건축을 하고 난 후에 성전을 다시 건축하려고 했지만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그리고 이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스라엘이 감히 성전을 건축할 엄두를 못 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스룹바벨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 합니다.

 

그러면서 2장 말미에 보면 이 성전을 건축하기 전과 그리고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한 후에 이스라엘이 받은 축복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을 건축을 하기 시작한 때부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축복을 하셨다 봐라 너희도 성전을 건축을 하면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축복을 하실 것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교회 건물을 짓는데 이 말씀을 빼 놓지 않고 이용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자기들이 무슨 이스라엘이나 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그림자와 모형입니다. 그림자를 보고서 아직도 그림자를 따라가려고 한다면 이스라엘이 망한 것과 같이 똑 같이 망하고 말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하신 그 말씀이 지금 자기들에게 동일하게 적용이 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예수님께서 보이는 성전을 허물어 버리셨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성령의 전을 우리 마음에 건축하게 하기 위해서 보이는 성전 금으로 외장을 다 칠한 아름다운 성전을 허물어 버리셨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보이는 건물을 지어 놓고 성전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스룹바벨 성전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학개 선지자를 통해 지어진 성전이 그렇게도 중요했다면 하나님께서 이 성전을 보호해 주셨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 당시는 성전을 지을 만한 재정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빈약하게 성전의 모양만 갖춘 그런 성전을 건축하고 거기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알렉산더 대왕이 나타납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나서 알렉산더 제국이 4등분 되었고 그들 중에 하나를 통치했던 시리아의 안티우크스 에피파네스로부터 심하게 더럽혀지면서 성전의 모습을 상실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그렇게 어렵게 지은 성전이 제 역할을 못하고 그 모양만 남아 있게 되면서 영적 암흑기를 거치게 됩니다.

 

그리고 말라기 이후에 헤롯이 이스라엘로부터 선심을 사기 위해 사십육 년 동안 헤롯 성전을 짓습니다. 정말 빈공한 삶속에서 학개 선지자를 통해 성전을 짓게 하셨는데 그 성전이 제 구실을 못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이해가 됩니까? 사람의 생각으로 지은 성전이 아니라 선지자를 통해 예언을 해서 지은 성전이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까?

 

모든 성전은 다 무너졌습니다.

처음 지은 솔로몬 성전은 바벨론에 의해서 완전히 무너졌고 두 번째 스룹바벨을 통해 지은 성전도 에피파네스 왕에 의해서 성전 구실을 못할 정도로 훼파 되었고 그곳에서는 심지어는 돼지를 잡아 이방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에 의해 지어진 헤롯 성전 역시 예수님의 예언에 따라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로마에 의해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사람이 지은 성전입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자기들 마음대로 건물을 지어 놓고서는 그것을 성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 어느 누가 건물을 지어 놓고 성전이라고 말 했습니까?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건물을 지어 놓고 성전이라고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의미를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통해 말씀을 하셨지만 그것은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아니 성경의 모든 말씀은 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육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어차피 훼파될 성전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모르셨습니까?

안티우크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이 성전이 훼파될 것을 모르셨습니까?

그 당시 이스라엘의 삶이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포로에서 돌아와서 모든 것이 부족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육적인 성전을 지으라고 하셨겠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받으신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지은 성전을 기뻐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성전도 다 헐어 버리셨습니다.

만약 그 성전이 그리고 중요하고 꼭 필요 했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든지 보존해 주셨을 것입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을 보고 영적으로 사는 이 시대가 그대로 따라 한다는 것은 스스로 멸망의 길을 자처하는 꼴이 되고 맙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성전은 황무합니다.

그런데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판벽이라는 것은 판자로 붙여서 만든 집을 말 합니다 해석하는 성경에 따라서는 이 판벽한 집이 마치 좋은 집으로 해석이 됩니다. 어찌 되었든 성전은 황무한데 이스라엘은 집에 거하고 있습니다. 좋은 나쁘든 간에 집을 먼저 꾸미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당시 상황을 이해하면 됩니다.

12차 포로에서 돌아 온 후에 그들은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성을 건축하기 위해서 노역을 하다가 가난한 자들의 삶이 더 곤궁해 지고 부자들은 고리를 취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늘 외부의 침입을 걱정했습니다.

군대도 없었고 이제 포로에서 돌아 온 그들이 과연 얼마나 부유했겠습니까?

실제로 그들의 삶은 그리 넉넉지 못했고 좋은 집에서 살기 보다는 겨우 성을 건축하여 외부 침입을 막았으며 부유하게 살지 못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좋은 곳에서 살았다면 성전을 먼저 지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열심은 어느 누구도 따라 갈 수 없었고 더구나 포로에서 돌아온 그들을 하나로 결집할 수 있는 성전의 필요성은 굳이 말을 안 해도 그들에게는 너무도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찌니라 너희가 많이 뿌릴찌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찌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육적인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보이는 성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을 말씀하면서 마치 그것이 보이는 성전같이 그 안에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성전을 건축하지 못 했습니다.

그 성전은 보이는 성전이기 보다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성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에게는 보이는 그 성전이 문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성전이 더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성전을 지을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많이 뿌릴찌라도 수입이 적으며

 

무엇을 많이 뿌렸습니까?

그들은 포로에서 돌아왔기 때문에 자기들의 잘못을 철저하게 뉘우치고 선민으로서 바로 살아가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에스라 느헤미야를 보면 그 당시 그들이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아 바벨론에 70년 포로 생활을 하고 돌아 온 그들의 마음에는 언제든지 또 포로가 되어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율법을 아주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는데 있어서 늘 최선을 다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수입이 적었다는 말씀입니다

행위로는 정말 최선을 다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그 백성이 다시는 포로가 안 되기 위해서 얼마나 율법적으로 바르게 살려고 했는 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시편16:5절을 보면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하나님으로 소득을 삼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 했지만 그 소득은 뻔한 것입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소득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열심이 많은 씨를 뿌렸지만 오히려 소득은 적었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가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많은 것을 뿌리고 있습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 많은 것을 뿌리고는 있지만 그것이 천국에 갈 수 있는 소득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행위에 빠져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 잔의 소득인 된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습니다.

 

먹을찌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무엇을 먹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어야 하는데 그들은 육적인 것을 먹는 것으로 자기 영혼의 문제를 채우려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다고는 하지만 도무지 배가 부리지 못한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배가 부르지 못 합니다.

그래서 이곳저곳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먹어야 하는 목사들이 세미나를 다니면서 먹고 있지만 도무지 배가 부르지 않습니다. 목사가 배가 안 부르니까 그 교회 교인들이 배가 안 부르고 복음에 대해서 무지에 가깝습니다.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늘 갈증이 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마시면 그 배에서 생수가 넘쳐나 흡족할 텐데도 늘 다시 목마른 육적인 것을 찾고 있습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뜨거운 대낮에 물을 길러 우물에 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생수를 먹지 않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그들이 불과 수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들의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는 늘 갈증이 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보이지 않는 성령의 전을 건축해야 하는데 자기 집만 가꾸고 있었습니다. 자기 집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스라엘의 육체가 바로 자기 집 입니다.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옷을 입어야 하는데 완전하게 행할 수 없는 율법의 옷을 입으려고 노력을 하니까 늘 추울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들의 행위의 옷으로 입고 있었지만 그들은 자기 영혼을 따뜻하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전대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바로 은을 넣어 두는 곳입니다. 이 전대에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은을 상징하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열심히 행하고 있었지만 그 믿음이 전대에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노력했겠습니까?

자기들의 믿음을 보이려고 그들은 다시 포로가 되는 것을 두려워해서 전대를 만들었지만 그리고 열심이 일을 했지만 그 전대는 구멍이 뚫려 헛수고를 한 것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런 일이 있었는가를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아직 육적에서 벗어나지를 못 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지금 이 시대도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된 것을 마치 그들이 율법을 잘못 지켜서 포로가 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만약 율법적인 것이 문제였다면 이스라엘은 그 이전에 벌써 망 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포로가 된 것은 율법을 잘 못 지켜서가 아니라 바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포로에서 돌아온 그들이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영적인 성전을 지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성전을 지어야 하는 이 시대도 육적인 건물을 지어 놓고서 그것을 성전이라고 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성령의 전을 우리에게 짓기를 원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건물을 지어 놓고서 그것을 성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려고 합니다.

자기가 정성을 다 해서 지어 놓은 건물을 보고 성전이라고 하니까 그 마음이 너무도 뿌듯한 것입니다 진짜 필요한 성전을 짓는 데는 관심도 없는 그들이 성전도 아닌 건물을 지어 놓고 그것을 성전이라고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할 공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성전이 될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을 우리 안에 지어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거절하는 행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이 모임을 갖는 그런 건물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성전이라고 하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은혜되지 못하게 하는 일입니다

 

내 안에 성전을 지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해서 지어지는 성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일 때 성령께서 내 안에 임재해서 나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역사입니다 그 역사가 성도님들 안에 이루어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