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7강, 육백육십육

윤주만목사 2019. 4. 28. 07:00


17, 육백육십육

 

요한계시록 13:16-18절을 보면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 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

 

육백육십육,

이 숫자에 대한 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어느 사람은 로마 시대 교황의 수라고도 하고 어느 사람은 마지막 때 열 나라가 통합이 되어 그 중에 하나가 왕이 되어 세상 모든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그 수단으로 베리칩을 만들어서 사람의 몸에 인식을 시킨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저는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저는 확신할 수 있으며 이 수는 그런 보이는 어떤 것을 매매하는 수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수는 아무나 알 수 있는 그런 수가 아닙니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이 수를 셀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지혜가 충만하여 총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은 이 수를 셀 수 없지만 총명이 있는 자는 이 수를 셀 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베리칩이라면 지금 이 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베리칩의 구조가 666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하게 총명이 있는 자는 셀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리칩 같으면 교회를 안 나오는 세상 사람도 셀 수 있는데 만약 그렇다면 그들도 그 수를 알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 수를 알고는 절대로 받지를 않습니다. 아니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총명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수를 알고 절대로 그것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수는 총명이 있는 사람이 셀 수 있는 수입니다 셀 수 있다는 말씀은 짐승의 표를 안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르면 그 수를 셀 수 없어서 그냥 받게 되지만 알고 나면 절대로 그 표를 받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볼 때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 성경은 세상 사람들이 보는 말씀이 아니라 교회 안에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보는 말씀입니다 먼저 이 사실을 이해하고 성경을 보아야지 마치 세상 사람들이 성경을 보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 다수의 사람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교회 안에 들어와 구원을 받기 원하는 사람들이 이 성경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고 기록하신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도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마지막 때 계시가 있는 이 말씀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마치 이 성경을 모든 세상 사람들이 보는 말씀으로 이해를 하고 해석을 하면 그 해석은 바르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수를 베리칩이라고 하는 주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는 베리칩을 마치 교회 안에서 매매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면 그것이 정말 베리칩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베리칩이라는 것은 교회 안에서 사용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물건을 매매하는데 사용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두 사람이 봅니다.

한 사람은 아직 복음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요 한 사람은 복음 안에 있는 사람이 봅니다. 복음을 깨닫지 못한 사람의 사상과 복음을 깨달은 사람의 생각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과 율법주의에 빠진 제사장과 바리새인과는 너무도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같은 성경을 보았지만 그들이 성경을 보는 시각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의 이 수도 복음을 가진 사람의 생각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생각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 사람은 이 수를 받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이 수를 받든지 안 받든지 사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이 수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지금 이 세대도 아마존 깊은 정글 속에는 세상 문명과 단절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그들은 이 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과 같을 것입니다

 

이 수는 분명히 구원과 관계 되어 있는 수입니다

 

요한계시록15:2절을 보면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이 수를 이기고 벗어난 사람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가라지와 알곡이 있습니다. 가라지는 이 수를 받을 수밖에 없고 알곡은 이 수에서 벗어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가라지인가 아니면 알곡인가를 알지 못합니다. 알곡은 자기가 알곡이라는 것을 분명히 압니다. 그러나 가라지는 자기가 알곡인 줄 알고 있다가 나중에 보니까 가라지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처음부터 가라지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까지 슬피 울며 이를 갈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는 알곡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가라지였던 것입니다

 

왜 그것을 모르느냐면 이 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교회 안에서 짐승의 수 사람의 수를 가지고 매매를 하며 살았지만 그것을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라고 생각했지 그것이 짐승의 수라는 지혜가 없었기 때문에 매매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매매를 하고 있느냐 아니면 하지 않고 있느냐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총명을 주셔야지 만 알 수 있습니다

 

욥기38:36절을 보면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마음속의 총명은 누가 준 것이냐

 

이 수는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총명을 주셔야지 만 짐승의 수 사람의 수를 셀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만약 베리칩이라면 이 세상 사람도 모두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받느냐 안 받느냐를 논하기 이전에 이 수를 셀 수 있는 총명이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수입니다

아니 사단도 이해하지 못하는 수가 바로 이 수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베리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말입니다 이것을 받느냐 안 받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수를 셀 수 있는 총명이 나에게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이 총명이 없으면 그것을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받게 됩니다.

먼저 이 수를 알아야 받고 안 받고 할 수 있는 것이지 이 수를 셀 수 있는 총명이 없는데 그것이 무엇인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것을 안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이것은 감추어진 수입니다

그렇게 베리침처럼 쉽게 알 수 있는 수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총명이 있어야 이 수를 셀 수 있는 지혜가 그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 수를 셀 수 있는 총명이 없으면 그 수가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매매를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매매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이 수는 교회 안에서 지금도 매매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매매를 하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사고파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어차피 멸망을 당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실제적으로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쫓아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1:12절을 보면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 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드리는 제사를 정말 거룩하게 드렸습니다.

그 당시에는 교통편이 없고 또한 성전에 제사를 드리러 오다 보면 아주 먼 곳에서 며칠을 걸어서 또는 한 달 이상을 걸어서 성전에 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기들이 준비해온 예물이 오는 길에서 흠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흠 없는 제사를 드리려 하다 보니까 성전 입구에서 양과 비둘기 그리고 돈을 바꾸어서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들은 제사를 드리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자기들이 드리는 거룩한 행위를 보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성전에서 매매를 하였습니다.

 

사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볼 때는 이스라엘은 절대 잘 못한 것이 없습니다.

 

레위기 22:20절을 보면

무릇 흠 있는 것을 너희는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열납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이스라엘은 율법에 기록된 대로 흠 없는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려 했습니다. 그 흠 없는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멀리서 오는 백성들이 가지고 온 예물을 흠 없는 것으로 바꾸어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은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볼 때는 예수님께서 지금 잘못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흠 있는 예물은 받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이스라엘은 정말 흠 없는 예물을 제사 드리려 성전에서 흠 없는 예물로 바꾸어 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상을 엎어 버리시고 성전에서 내어 쫓아 버렸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행위는 하나님의 말씀과는 반대되는 행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계시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성전에서 매매를 하면서 제사장들과 결탁을 해서 자기들이 이익을 취한 것은 잘못한 행위이지만 하나님께서는 흠 있는 예물을 받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그런 일을 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설령 이 당시 제사장들이 상인들과 결탁을 하지 않았다 해도 그래서 정말 하나님께 흠 없는 예물을 제사 드리려 했다 해도 예수님께서는 동일한 행동을 하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이 제사를 드리는 예물로 이익을 취해서 상을 엎으신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이 드리는 제사를 폐하시고자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행동을 하셨습니다.

 

육적인 제사로는 온전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흠 없는 예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다 해도 그 제사로는 그들이 거룩해 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에서 매매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7:19절을 보면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흠 없는 예물로 제사를 드리면 온전케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돈 바꾸는 자들과 비둘기파는 자들 성전 안에서 매매 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신 것은 율법에 속한 것으로는 온전케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온전케 할 수 없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드리는 제사로 온전케 할 수 있다고 성전에서 매매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행하는 그런 행위들을 보면서 자기들이 온전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가지고 매매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온전케 하지 못할 것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매매를 하면서 마치 그것이 믿음인양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들은 그것이 매매하는 사람의 수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한 총명이 없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를 가지고 매매를 하고 있습니다.

 

중세 시대 천주교가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가 범한 율법의 행위를 면죄하는 것을 팔았습니다. 그것을 산 사람은 자기 죄가 다 사해 졌기 때문에 구원을 얻을 수 있다 하면서 면죄를 팔기까지 했습니다. 그 면죄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아주 악한 행위입니다

 

율법을 팔았다는 말씀입니다

깨끗한 율법을 돈을 주고 샀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그런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그 이 시대도 율법에 있는 것을 행하면서 그것을 행하는 사람들을 믿음이 좋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율법의 행위들을 보고 거룩해 질 수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마지막 시대는 성화주의자들로 인하여 마치 중세 시대 면죄부를 파는 것과 같은 행위들을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매매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잘 행하는 사람들에게 믿음이 좋다고 칭찬을 하고 교회 직분을 주고 있습니다. 언제 부터인가 교회 직분을 주는데 있어 십일조가 반드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십일조를 내는 사람들에게 집사 직분을 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돈으로 직분을 사고 있습니다.

 

어떤 율법의 행위의 모습을 보고 직분을 팔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들을 잘 하는 사람들을 거룩하다 하며 율법을 매매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수가 율법이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왜 율법이냐면 온전케 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온전케 되는 것처럼 주장을 하면서 그것을 지키게끔 요구하고 그것을 잘 지키는 사람들에게 교회는 직분을 팔고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폐하여 졌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이 살아나서 그것을 잘 지키는 자들에게 교회 안에서 그것이 기준이 되어 직분을 팔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율법의 모양만을 보고 교회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매매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으로는 내가 거룩해 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 많은 교회가 그것을 행해야 거룩해 질 수 있다는 것처럼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해 질 수 없는 것을 팔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거룩해 질 수 없는 율법을 가지고 마치 거룩해 질 수 있는 것처럼 주장을 하는 것을 율법의 의를 파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은 온전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이 온전케 되는 것이 척도가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생명을 사고파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온전케 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팔아서 그것을 매매하다가 결국에는 모두가 율법의 진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율법을 가지고 의롭다 매매를 하는 것을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은 제가 드리는 말씀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매매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666이라는 수는 사람이 행하는 모든 율법적인 의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율법이 613가지입니다 거기에 은사적인 것까지 포함을 하면 666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은사주의도 율법주의입니다 율법과 은사가 합해져서 그것을 교회 안에서 매매하는 사람들은 결국 사망을 당하고 말게 될 것입니다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

 

그 수는 사람의 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모든 의를 육백육십육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매매하는 순간 여러분은 사망으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사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순간 악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6:24절을 보면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그리고 재물은 내 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사람의 수는 내가 이 세상을 살면서 행하는 모든 의입니다 그 의를 교회 안에서 매매를 하면서 서로를 칭찬하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큰 음녀가 나오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음행을 저지르고 맙니다. 그 음녀에게 미혹이 되면 자기가 교회 안에서 매매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총명이 없어 그 수를 받게 됩니다.

 

매매를 하면서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더 많은 것을 사고팔기 위해 이 시대 교회는 음행의 늪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짐승의 수를 받고 있으면서도 자기는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라고 오해를 하고 믿음이 좋다고 착각을 하다가 결국에는 최후의 심판 때는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입니다

 

사람의 것을 사고팔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으로는 나를 온전케 할 수 없습니다. 온전케 할 수 없는 것을 사고팔다가는 결국 음행에 빠져 사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십일조를 천만 원 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마음은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매매를 하며 그 마음은 한껏 부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어떤 선을 행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마음을 부자로 만들어서 그 행위를 보면서 마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온전케 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온전케 될 수 있는 것처럼 팔고 사는 사람은 결국에는 사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의 늪에서 빠져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수입니다 그것을 행하는 순간 여러분은 매매를 하는 자가 되어 마음에서는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팔아서 이익이 남으면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순간 여러분의 마음은 부자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7:28절을 보면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율법은 온전케 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사람이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매매를 하다 부자가 되는 순간 예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를 온전케 하실 분은 오직 예수입니다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온전케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율법의 의를 사고팔면서 그것으로 온전케 될 수 있는 것처럼 주장을 하면서 그것을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부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이 행하는 율법으로 마음에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수는 바로 사람이 행하는 율법입니다 그것을 교회 안에서 매매를 하는 순간 여러분은 사망 가운데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에 큰 음녀의 심판이 나옵니다. 마지막 교회는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또 다른 남편 율법을 사고팔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될 것입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혹시라도 교회 안에서 율법을 매매하면서 그것으로 인하여 마음에 부자가 되어 있지 않나 스스로를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사람의 수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교회는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이 사람의 수를 매매하다가 음행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총명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구하시는 자에게 이 말씀을 분별할 수 있도록 총명을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총명을 받아 사람의 수를 가지고 매매하지 말고 오직 예수만을 바라보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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