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8강,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윤주만목사 2019. 4. 29. 07:18


18,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마태복음 7:13-14절을 보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서 그 길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려하고 있으며 자기가 하는 특별한 그 일이 마치 좁은 문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좁은 문이 어떤 문인가를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똑 같은 말씀이 누가복음 13:24절에도 나옵니다.

 

누가복음 13:24절을 보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모든 사람들은 생명을 얻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말씀하시면서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씀입니다 나만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많다는 말씀입니다

 

아마 거의 모든 신앙인들은 자기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자기가 지금 행하고 있는 신앙생활이 바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힘쓰고 있는 것이라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더욱 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힘을 쓰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길은 넓어서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고 말씀을 하시고 누가복음에서는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많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결론 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많은 사람들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구하며 가고 있지만 그 길이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구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자기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을 모르기 때문에 크고 넓은 길을 따라 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우리가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3:25절을 보면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이들은 세상 사람들이 아닙니다.

집 주인이 한번 문을 닫은 후에 멸망으로 들어가는 자들이 서서 문을 두드리면서 주여 열어 주소서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으니까 주여 열어 주소서 말할 것 아닙니까?

예수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여 라고 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특히 신약 성경을 볼 때 주의해야 할 것은 멸망을 당하는 자들이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약은 이스라엘과 비 이스라엘의 싸움이었다면 신약은 교회 안에 있는 알곡과 가라지의 싸움입니다.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 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도 주여 라고 부르고 있다면 그들은 모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예수님께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은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구하고는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천국에 가고는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구하고는 있지만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은 넓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 온 모든 사람들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고는 있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 큰 길을 따라 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분명히 멸망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문 밖에서 주여 하고 문을 열어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문 밖에서 주여 하고 문을 열어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교회 안에 있는 그대로를 말씀한 것입니다

초대 교회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대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보다는 넓고 큰 문으로 들어가려는 멸망으로 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자는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많은 이단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단을 피하는 것이 과연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정통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좁은 문으로 가고 있는 길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3:26절을 보면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쫓겨 난 자들의 말입니다

이들이 얼마나 나름대로는 신앙생활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주의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하는 이 말씀은 주님의 살과 주님의 피를 마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도 주님의 말씀을 먹고 있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자기들을 길거리에서 가르쳤다고 믿고 있습니다.

 

갈수록 이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먹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었고 또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을 들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을 들었다는 말씀은 지금은 예수님이 안 계시니까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이 과연 멸망으로 들어갈 사람들입니까?

이런 사람들을 보고 주님께서는 멸망으로 들어가는 많은 사람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바로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행하는 것이 바른 신앙생활이라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바로 믿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 길거리에서 가르치실 때 복음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이 사람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자기들은 바른 신앙생활을 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주여 하면서 문을 열어 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착각을 합니다. 내가 주님을 알면 주님께서는 당연히 나를 알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마치 내가 대통령이 누구인가 아니까 내가 가서 만나자고 하면 만나 줄 것이라 생각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가 대통령을 아는 것과 대통령이 나를 아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법을 잘 지키고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내가 다 행한다 해서 대통령이 나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신앙인들은 당연히 자기가 예수를 아니까 예수님도 자기를 알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내가 주여 하고 부르니까 당연히 주님께서는 나를 알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수가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사람들이 어떤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교회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그것으로 예수님께서 당연히 나를 알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바로 멸망으로 들어가는 자들입니다

 

누가복음 13:27절을 보면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주님 앞에서 먹고 마시고 주님께서 길거리에서 가르치는 것을 들은 그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무슨 악을 행했습니까? 우리가 보기에는 이들은 너무도 신앙생활을 잘 한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먼저 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예수님을 아는 것에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라도 교회에 들어오면 예수님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 온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닫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모든 것은 내가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알고 예배를 드리고 내가 주님을 알아서 찬양을 부르고 내가 주님을 알아서 기도를 하고 하는 그런 것은 행악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다수는 내가 주님을 알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기 지식으로 주님에 대해서 알고 그렇게 생각하고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시고 있다고 그리고 가르침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내가 주님을 아는 것 참 중요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어쩔 것입니까?

내가 대통령에게 가서 대통령을 안다고 해서 대통령이 나를 안다고 말합니까? 대통령이 여러분을 알 때 대통령한테 가서 나를 아느냐고 묻는다면 대통령은 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단지 내가 아는 것을 가지고 가서 안다고 한다면 쫓겨나고 말 것입니다

 

지금 대통령에 대해서 그의 가족과 그의 친척 그의 학문 그의 지식 그리고 그의 사상을 모두 연구해서 안다고 해서 대통령이 나를 안다고 합니까? 그런데도 교회에 나온 사람들은 당연하게 대통령이 나를 알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대통령을 찾아 가서 대통령을 아니까 만나겠다고 한다면 대통령은 그를 악한 자로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모르는 사람이 자기가 안다고 하면 악한 자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아는 것 너무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모른다면 여러분은 주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 중에 대통령을 아는 사람이 많겠습니까? 대통령이 그 사람 개인을 아는 사람이 많겠습니까? 넓은 길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대통령을 아는 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 대 다수는 아니 거의 모든 사람은 대통령이 누구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 들어 온 대 다수는 예수님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알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대한민국 사람 중에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대통령이 안다고 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대통령이 아무리 많이 안다고 해 보아야 1만 명 이내 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 중에 대통령을 아는 사람은 아마 사천만 명은 넘을 것입니다 어느 문이 크고 그 길이 넓어 그 길로 가는 사람이 많겠습니까? 여러분의 구원은 주님께서 여러분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주님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해도 주님께서 여러분을 모르면 도무지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문이 크고 그 길이 넓게 펼쳐져 있습니까? 수많은 성경 교제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그 교제들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아무리 많이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예배를 드린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은 지금 가고 있는 길은 넓은 길이며 들어가는 자도 많은 그 문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시고 주님이 길거리에서 가르치지 않았느냐고 반문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주님을 사랑하면 무엇 할 것입니까?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겠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사랑하면 그 사람도 나를 반드시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런데도 교회 안에 있는 다수는 내가 사랑하면 반드시 그가 나를 사랑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마음과 그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다른 것입니다 정말 진심으로 내가 짝사랑을 해도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쩔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 있는 다수는 내가 사랑하면 주님이 나를 사랑할 것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은 아무런 상관도 없이 내가 좋아하기만 하면 주님은 무조건 나를 좋아할 것이라고 착각 속에서 혼자 짝 사랑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중에 주님께서 도무지 모르겠다면 어찌할 것입니까?

 

욥기10:7절을 보면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 주의 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나이다

 

주님이 나를 아셔야 합니다.

내가 악한가 아니면 선한가를 판단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선한 행위를 보면서 마치 그것이 주님의 생각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선한 행위를 보면서 주님께서 나를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라 착각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나를 아는 것 그리고 내가 주님을 아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아시는 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짝 사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 사랑이 이루어진다면 가장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짝 사랑으로 끝이 난다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맙니다. 짝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더구나 그 사랑이 실패를 해서 그 고통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잘 아는 사람도 짝 사랑을 하다 결국에는 자기 생명을 끊고 말았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살았는데 그 사람이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고 나니까 그만 자기 생명을 끊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불쌍한 일입니까? 내가 어느 사람을 사랑하려면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모르고 나 혼자서 좋아 한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사랑을 하려면 그의 마음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마음을 알려 하기 보다는 내가 무조건 사랑하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도무지 모르고 있는데 자기 혼자서 짝 사랑을 하며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찬양을 하고 헌신을 하면서 주님께 나를 사랑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선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내 스스로 악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내가 사랑하니까 너도 나를 사랑하라고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정통의 교회가 지금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문이 크고 그 길이 넓어 가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아주 작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주님께서는 너무도 잘 아시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주 크고 넓은 길을 가면서 자기가 행하는 행위에 힘에 겨워하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길은 크고 넓은 길입니다

 

마태복음23:5절을 보면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 술을 크게 하고

 

교회 안에 다수는 행위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행위는 멸망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말하면서도 행위를 보며 그 크고 넓은 길을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행위의 옷을 크게 입었습니다.

경문을 넓게 하고 옷 술을 크게 하면 사람들이 볼 때 얼마나 거룩하게 보이겠습니까? 지금도 자기 행위의 모습으로 경건하게 모양을 가꾸려고 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 다수를 이루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는 그 믿음이라는 것도 사람에게 보여 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행한다고 말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행하는 것도 어차피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나 믿음으로 하는 것이나 사람에게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으로 예배드립니다. 믿음으로 기도합니다. 믿음으로 이웃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한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사람에게 보이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만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나온 모든 사람들은 믿음으로 행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으로 행하고 있는 그것이 바로 크고 넓은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3:12절을 보면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주님께서 나를 아셔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안다고 하는 그것은 어떻게 아는 것이냐 하면 부분적으로 아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주님을 아는 것은 아주 적은 부분이나 주님은 나를 온전히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아주 부분적인 것을 가지고 자기 혼자서 짝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는다 해도 내가 주님을 아는 것은 부분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지식으로 주님을 알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아주 조금 아는 지식을 가지고 혼자서 짝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 강요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있으니까 주님도 나를 사랑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 온 사람은 청함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그 다수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큰 문으로 들어가고 있으며 아주 넓은 길을 걸으면서 주님 앞에서 먹고 마시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행위가 행악하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전혀 모르는데 자기는 주님을 아는 것 같이 행동하고 있는 것이 바로 행악하는 일입니다

 

주님과 아무 상관도 없는데 마치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행악하는 일입니다 상대는 전혀 마음을 주고 있지 않은데 자기 혼자서 사랑하면서 상대에게 나를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다수는 자기가 이렇게 사랑하고 저렇게 주님을 사랑하고 있으니까 주님도 나를 사랑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처럼 악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정말 싫은데 상대가 나를 좋아하니까 나보고 무조건 좋아 하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것을 스토커라고 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주님께 스토커가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 안에 들어 와서 행위의 옷을 입고서 자기가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고 있으니까 주님 무조건 나를 사랑하십시오. 하고 있지는 않느냐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아셔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여러분이 예수님에 대해서 아무리 많이 안다 해도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도무지 모른다면 여러분이 하는 모든 행위는 멸망으로 가는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한편 강도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23:42절을 보면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여러분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 주님께서 나를 생각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을 통해 알아가는 길은 정말 좁고 협착한 길입니다 그러나 이 세대는 좁고 협착한 길을 가려 하지 않고 행위의 모습을 보며 당연히 주님이 자기를 생각할 것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에 여러분을 신부로 맞이하신다고 여러분의 심령에 감동을 주고 있습니까? 좁고 협착한 길은 내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하는 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생각하고 있는가 나를 알고 있는가 하는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아셔야 합니다.

그것을 찾아가는 길이 성경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아시고 나를 어떻게 사랑하시고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고 있는 가를 성경을 통해 하나 하나 확증해 나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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