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6강, 야곱의 기도

윤주만목사 2019. 4. 27. 21:26


16, 야곱의 기도

 

창세기 32:27-28절을 보면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의 기도에 대해서는 말씀을 많이 들어서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겨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가나안 땅을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야곱과 같이 문제가 해결 될 때 까지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야곱이 이 기도를 하게 된 배경은 야곱이 형 에서를 속이고 이삭에게서 축복을 받은 후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 하자 자기 외삼촌 집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갔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들어오는 길에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사백 명을 데리고 올 때 처음에는 선물을 보냈다가 또 다시 선물을 보내도 에서가 계속해서 자기를 죽이러 오자 모든 가족을 얍복 강을 건너게 한 후에 홀로 남아 기도를 하고 있는 사건입니다

 

야곱은 참으로 꾀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혹시 선물로 에서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을까 하여 소와 양과 나귀를 보내 보았지만 에서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선물을 계속해서 보내도 에서가 계속해서 자기를 죽이러 오자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창세기31:13절을 보면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라반의 아들들이 보기에 야곱의 짐승들은 점점 늘어가고 자기들의 것은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고 야곱을 미워하기 시작하였고 외삼촌 라반도 야곱을 대하는 것을 전과 같지 아니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고 해서 외삼촌 집을 떠나 왔지만 외삼촌 보다 더 무서운 자기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러 오고 있습니다.

 

라반과 더 이상 함께 살 수 있는 형편도 되지 않고 그렇다고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곳에는 에서가 있어 자기가 전에 형의 장자 권을 빼앗은 것으로 인하여 에서를 만나는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지방으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출생한 그곳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은 들어가야 하는데 에서가 자기를 죽이러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은 얍복 강을 건너지 못하고 먼저 자기 부인들과 아들들을 건너게 한 후에 자기는 뒤에 남아 얍복 강가에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한 후에 하나님과 씨름을 해서 이겨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는 것이 오늘의 말씀이며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야곱의 기도를 본받기 위해서 하나님과 단판을 짓는 그런 기도를 하기 위해 오늘도 철야를 하고 작정기도를 하며 자기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성도가 기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모두가 기도를 했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도 기도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시대 교인들이 기도를 무슨 만병통치약이나 알라딘의 마술램프처럼 생각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모든 문제를 기도로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것도 영적인 문제가 아닌 육신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 악한 일입니다 야곱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육신 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가나안은 천국의 모형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네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하는 약속의 땅입니다 야곱은 지금 천국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기도를 한 것이지 육신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를 한 것이 아닙니다. 천국을 들어가려 하는데 자기를 죽이러 오는 에서는 우리가 천국을 들어가는데 있어 방해를 하고 있는 사단과 같은 존재라고 보아야 합니다.

 

야곱의 기도는 천국을 소망하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우리와 같이 일상적인 문제를 자기고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땅에 들어가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중에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처지가 되자 얍복 강에서 생명을 걸고 기도를 했던 것을 우리는 바로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천국에 대한 문제를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육신에 대한 것을 가지고 밤을 새며 울며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내 육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은 자기 육신의 문제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구약을 보면서 육신의 문제로 기도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육신의 문제는 오늘 날 우리의 영적인 문제라는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 그림자를 보면서 실체를 보지 못하고 구약의 그림자를 따라 육신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를 하는 행위는 결코 바른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문제 때로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반드시 응답 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은 결코 바른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2:7-9절을 보면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도 물론 자기 육신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를 했습니다.

너무 안질이 심해 복음을 전하는데 문제가 있어 그것이 떠나가기를 3번씩이나 간구 했지만 그 육신의 문제에 있어 주님께서는 들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도 바울이 그것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육신의 문제를 위해 기도했지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병이 있으면 반드시 나을 때 까지 기도하라 하고 어떤 육신의 문제가 있으면 그것이 해결 될 때 까지 응답 받을 때 까지 기도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으면 마치 믿음이 없는 것처럼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는 영적인 기도가 아니라 자기가 사역을 하는데 있어 불편한 것을 주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눈이 잘 안 보여서 그것을 기도하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그것을 주님께서 들어 주셔야지 마땅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사도 바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주셨는데 무엇이 부족 하느냐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의 입장에서는 안질이 나면 더 사역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주님께서는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으로 족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고 병든 자를 그가 기도를 하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 육체의 가시는 주님께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을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사도 바울은 족하다는 것을 알고 크게 기뻐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미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은혜를 입고서도 그것이 부족해서 욕심을 부린다면 그것은 다 정욕에서 나온 것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로마서 13:14절을 보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정욕이라고 하면 나쁜 것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육신을 위해 하는 모든 일이 정욕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눈에 안질을 고쳐서 더 좋은 모습으로 사역을 하고자 하는 것도 정욕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안질을 고치고자 기도하는 그것도 육신의 일입니다

 

영의 일과 육신의 일을 분별해야 합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모든 일도 나를 통해 나타나면서 하는 일은 모두 육신의 일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내 육신을 통해 하는 모든 일은 육신의 일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 육신으로 일을 하면서도 그것이 영의 일이라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육신이 무엇인가 영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것은 모두가 자기 정욕에서 나온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열심을 다하는 모든 행위도 내 정욕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제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육신으로 기도도 해야 하고 예배도 드려야 하고 찬양을 부르기도 해야 하지만 그것조차도 육신의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그것이 지나치면 절제하지 못하면 그것이 정욕이 된다는 것을 모르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기 생명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기도가 자기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기도를 하고 그런 기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기복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나쁜 일만이 정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내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그것도 정욕에서 나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것에 더 정욕에 빠지겠습니까?

사람이 사실은 나쁜 일보다는 좋은 일에 더 정욕에 빠진 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정욕이 무엇이냐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욕구입니다 그 욕구에는 나쁜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에 좋게 보이는 것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마음에서 나쁜 것만을 생각합니까?

사람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항상 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교회 안에 들어 온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 좋은 것을 더 많이 하기 위해 정욕이 불 일듯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육신으로 하는 모든 일은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지나치면 다 정욕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기도를 그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면서 그것을 반드시 응답 받겠다고 떼를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응답 받은 자기 모습을 보며 마치 자기가 믿음이 있는 승리자의 모습이 된 양 자기 도취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육신의 일을 전혀 기도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때로는 전혀 응답이 없고 답답하기만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조차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응답이 없었다는 것은 주님의 은혜가 이미 나에게 족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은혜를 족하게 주셨는데도 그것이 부족해서 정욕에 따라 반드시 응답을 받고자 한다면 그는 주님의 은혜를 거절하는 자로 변하고 말 것입니다

 

기도도 율법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도 잘못하면 자기 영혼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보다 내 의지를 반드시 이루고자 한다면 그는 기도를 이용하는 자입니다

 

기도를 가지고 하나님과 싸우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교회는 기도를 가지고 하나님과 싸우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싸워서 기도 응답을 받은 자기 모습에 도취되어서 마치 믿음이 좋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이용한 악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와 야곱의 기도는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육신의 일로 기도를 한 것이고 야곱은 천국의 모형 가나안을 들어가기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주님께서 응답하신 것도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구원을 이루어 주셨다는 말씀이며 더 이상 육신의 일로 기도를 하지 말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야곱의 기도는 그런 육신의 문제가 아니라 천국을 들어가기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야곱의 기도는 그런 점에서 참 좋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천국을 얻기 위해 하나님과 씨름을 해서 이긴 승리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과연 사람이 하나님과 싸움을 해서 이길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기도를 해서 하나님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사단에게도 매일 져서 죄를 짓고 사는 인생이 과연 하나님과 싸워서 이길 수 있습니까? 지금도 그런 생각에 사로 잡혀서 매일 철야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기도를 해서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게 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정욕에 사로 잡혀서 내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하나님을 위해 더욱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눈물을 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관심도 없고 그저 자기들의 정욕에 사로 잡혀서 어떻게 하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서라도 자기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결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승리자가 된 것처럼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싸워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자는 한 마디로 자기 존재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야곱이 과연 하나님과 씨름을 해서 이겨서 승리자라는 이름을 그에게 주었습니까? 물론 성경에는 표면적으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승리자이기 전에 하지 말아야 할 기도를 했습니다.

 

야곱의 기도가 과연 정당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 기도가 바른 기도냐 하는 문제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야곱이 기도를 잘 해서 하나님을 이겨서 응답을 받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믿음이 없어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야곱에서 천국은 이미 약속이 되어 졌습니다.

 

창세기28:13절을 보면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야곱이 에서를 속이고 자기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고 난 후에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 하자 외삼촌 집으로 도망을 가는 중에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나타나셨습니다. 돌베개를 베고 자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야곱은 어떤 처지입니까?

그 이름 그대로 속이는 자가 되어 가족을 떠나 멀리 하란 땅으로 도망을 가고 있는 처량한 신세입니다 혼자서 그 먼 길을 간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야곱의 처지가 얼마나 외롭고 힘든 상황인가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을 한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리브가를 통해 장자가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지만 그것을 사람이 생각으로 취하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도망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깜깜한 밤중에 돌베개를 베고 자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에게 약속을 하시고 있습니다.

 

창세기28:15절을 보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은 정말 외로운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형에서를 피해 도망가고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약속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자기는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처지에서 도망을 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너를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창세기3227-27절을 다시 상고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너무 문자적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분명히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을 해서 이김으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승리자라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성경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기도를 해서 그 기도가 응답이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승리자라는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그 절만을 보고 이해해서는 안 되고 앞뒤 아니면 성경 전체를 보고서라도 그 부분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 야곱이 하나님께 지면 약속을 누가 어기는 것이 됩니까?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을 해서 이겨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에서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데 만약 하나님께서 이 씨름에서 야곱을 이겼다면 누가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야곱에게 28장에서 이 가나안 땅을 네게 주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만약 야곱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약속을 어긴 분은 하나님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려서 이 씨름은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하는 씨름이며 하나님께서 이길 수 없는 씨름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기고 그냥 돌아서서 가셨다면 야곱은 에서를 만나 죽임을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28장의 하나님의 약속은 거짓이 되고 맙니다.

야곱이 씨름을 해서 기도를 해서 하나님을 이긴 것이 아니라 이 기도는 어차피 야곱이 이길 수밖에 없는 기도였다는 말씀입니다 만약 야곱이 이 기도가 응답이 되지 않았다면 야곱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에서가 무서워서 지금 얍복 강을 건너지도 못하는 야곱이 어떻게 가나안을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야곱은 처음부터 승리자였습니다.

리브가의 태속에 있을 때부터 그리고 하란으로 피난해 있을 때에도 마찬 가입니다. 야곱은 처음부터 장자가 되리라는 약속을 리브가를 통해서 받았고 또 가나안을 들어갈 수 있는 승리자의 이름을 하란으로 피난할 때부터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 버렸습니다.

천국의 모형 가나안을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시겠고 하는 그 약속을 야곱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믿었다면 야곱은 에서에게 선물을 보낼 필요도 없었고 에서를 두려워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에서가 강합니까? 하나님이 강합니까?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 보다 자기 눈앞에 보이는 에서가 더 무서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믿지 못하니까 자기 가솔들을 먼저 다 보내고도 두려워서 자기는 얍복 강을 건너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야곱의 기도가 합당한 기도입니까?

사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면 야곱은 굳이 홀로 남아 밤을 새워 가며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들어간다 해도 에서는 절대로 야곱을 죽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이긴 것이 아니라 이미 이긴 자이며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씨름에서 져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많은 신앙인들은 하나님과 씨름을 해서 이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하지 말아야 할 기도를 해서 환도 뼈가 위골되었습니다.

만약 약속을 믿고 그냥 들어갔다면 환도 뼈가 위골 되지 않고 그냥 걸어서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해서 하나님과 씨름을 하다가 환도 뼈가 위골되는 보응을 받고 말았습니다.

 

기도로 해서 하나님을 이기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이 불쌍해서 그들이 간절히 바라면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그 기도가 자기를 망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하고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이기는 기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미 이긴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왕 되신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다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함께 이긴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긴 자가 아직도 세상에서 또 다른 것을 이기기 위해 하나님과 씨름을 한다면 그것은 모두 정욕에서 나온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는 자기가 승리자임을 믿고 있습니다.

그것을 기도 응답을 받아서 아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자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야곱과 같이 꾀가 많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자의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그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미 승리자가 된 줄을 믿지 못하고 자기가 하나님과 싸움을 해서 육적으로 승리자가 되려고 기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정욕에 빠지게 되면 결국 그 영혼은 사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야곱은 하지 말아야 할 기도를 해서 환도 뼈가 위골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혼이 사망을 당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2:16절을 보면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내가 기도하는 것이 이 세상 것입니까?

그렇다면 그 기도는 정욕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라 해도 그것은 정욕에서 나온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기도한 야곱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해서 환도 뼈가 위골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 것을 가지고 기도한다면 여러분의 영혼은 사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일도 내가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하는 것임을 바로 깨닫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에 대한 어떤 열심을 가지고 하는 그것도 내가 이 세상에서 하는 것임을 아는 성도는 육신의 정욕을 위해서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믿는 성도는 두려워 할 필요도 없고 그것을 위해 하나님과 싸울 필요도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도 잘못하면 여러분의 영혼이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특히 육신의 정욕을 위해 하는 기도는 정욕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는 기도가 하지 말아야 하는 기도인가 해야 되는 기도인가를 분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말씀 합니다

기도로 싸움을 해서 내가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성도는 야곱과 같은 기도를 하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을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성도는 이긴 자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자는 기도로 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을 이겨서 천국에 들어가려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으로 승리자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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