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호세아11:1-7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었거늘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저희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을찌라도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저희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같이 되었으며 저희 앞에 먹을 것을 두었었노라 저희가 애굽 땅으로 다시 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칼이 저희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 하리니 이는 저희의 계책을 인함이니라 내 백성이 결심하고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저희를 불러 위에 계신 자에게로 돌아오라 할찌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는 시각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자의적으로 보고 있고 자기들에게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 보이는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한 종교의 계략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기들에게 좋은 말을 하고 있는 교회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나에게 선지자를 보내시는가 하면 내가 이스라엘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있고 이스라엘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잘못을 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셨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우리 이방인입니다 이 둘이 차이가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겼으면 이 시대 역시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다만 이스라엘이 보이는 우상을 섬겼다면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보이지 않는 아니 자기들이 우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우상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를 보내셔서 지금 이 시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는 나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지자들이 쓴 성경을 주셨지만 그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더 멀리하고 바알에게 제사를 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부르시면서 위에 계신 자에게로 돌아오라 할찌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만 그렇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부르고 있지만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호세아서의 말씀을 보면서도 애써 무시를 하고 있고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입니다
1000만 명이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호세아 시대에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100-200만 명 정도는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확실하지는 않기 때문에 단정 지어서 말씀을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합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에 하나님께서 저희를 불러 위에 계신 자에게로 돌아오라 할찌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결심을 하고 하나님에게서 물러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성경이 그렇다고 말씀을 하면 그런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저희를 불러 위에 계신 자에게로 돌아오라 할찌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이지만 실제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이 시대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하고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 숫자가 지극히 적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복음으로 교제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알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를 이단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서는 하나도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만약에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가 있는데 이 말씀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아니 이 시대 1000만 명이 넘는 기독교인이 하나님께로 돌아왔다면 호세아 선지자를 보내서 말씀을 하신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도 없다고 하면 하나도 없습니다. 호세아 시대만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1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시든지 아니면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거짓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시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호세아 시대에 하나도 없었는데 어떻게 이 시대 그것도 이방의 작은 나라에 1000만 명이 돌아와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일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 내셨습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이 사실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인 이스라엘을 사랑해서 애굽에서 불러내 주셨습니다. 아들과 같이 사랑하여서 이스라엘을 불러내서 내 백성을 삼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부르심으로 볼 때는 분명히 축복을 받는 민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
종이 되었던 곳에서 불러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인생입니다 우리 인생 모두는 이 세상 초등학문 아래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불러내어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시고 있습니다.
애굽입니다
이 세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애굽에서 불러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시고 이스라엘이라는 교회 안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교회에서 하나님을 믿음으로 해서 그들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불러낸 목적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도 불러냈고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교회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생을 얻지를 못했습니다. 아니 영생이 무엇인가도 모르고 그저 가나안에서 축복을 받고 살아가는 삶을 생각했습니다.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저희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부르면 부를수록, 이스라엘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갔다. 짐승을 잡아서 바알 우상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며, 온갖 신상들에게 향을 피워서 바쳤지만,”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와 단 한번이라도 하나님을 믿었던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광야에서부터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고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만이 선지자가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선지자입니다. 그 선지자들을 하나님께서 보내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점점 멀리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애굽에서 인도함을 받는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면서 그들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땅에서 인도함을 받아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자기 땅으로 얻은 백성입니다 그런 그들이 점점 더 멀리 감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2:5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 나를 멀리하고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똑같은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하나님을 멀리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성경은 그들이 하나님을 멀리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와 호세아 선지자 시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은 늘 하나님을 멀리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멀리 했습니다.
그들이 왜 하나님을 멀리 했는가를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멀리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디도서1:14절을 보면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2:20절을 보면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허탄한 것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디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켰습니다. 왜 지켰는가 하면 주님 앞에 찾아온 청년과 같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에 허탄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킵니다.
그것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진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들이 주장하는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말은 허탄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행함이 있는 믿음에 대해서는 깨닫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스도편지와 복음과 율법에 있는 야고보서 강해를 보시면 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을 멀리 합니까?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하나님을 멀리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그렇게 하면 할수록 이스라엘은 점점 더 율법주의에 빠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를 보내셨지만 그들이 점점 더 멀리 갔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만의 일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방의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멀리 했습니까?
바알들에게 제사를 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거의 문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실제 바알을 섬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로새긴 우상도 섬기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자기들을 보면서 호세아 선지자의 말씀을 이스라엘만의 일로 치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바알을 섬깁니까?
그리고 이스라엘만 아로새긴 우상에게 분향을 하고 있습니까? 이방의 교회는 이 말씀을 보고 하지 않고 있습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이상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방의 교회는 그렇게 하지도 않는데 굳이 이 구약을 기록해서 우리가 보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가복음16:19절을 보면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바알입니다
신약에 와서 이 바알이 사라졌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알이 무슨 신입니까? 풍요의 신입니다 무엇으로 풍요로워지는 것입니까? 물론 재물로 풍요로워지기 위해서 섬기는 신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주님께서는 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부자입니까?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알에게 제사를 한 그것이 신약에 와서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시면서 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로 말씀을 하시면서 그 부자가 어떻게 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고 싶습니까?
아니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 율법을 잘 지키고 싶습니까? 그것이 호세아 시대에 바알에게 제사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면 그는 교회 안에서 평생을 바알을 섬기다가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약에 있는 바알이 이 시대 바로 이렇게 율법의 의를 탐하는 것으로 교회 안에 그대로 들어와 있습니다.
바알에게 제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세상에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 비하면 부자입니다 왜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그들이 마음에 바알이 있어서 제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바알입니다
그것이 없어졌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심한 신학자라는 사람들이 이 성경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겼다고 하면서 고고학적으로 출토가 되고 있는 바알 상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의 말씀을 왜 하셨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바알을 섬기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부자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를 한 부자로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사람은 율법의 의가 없어서 거지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5:21절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아로새긴 우상입니다
우상 앞에서 분향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만 우상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 우상은 신약에 와서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그들이 우상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상이 무엇이라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조금 알고 있는 히브리어의 뜻을 아는 것으로 성경을 보려하기 때문에 이 우상에 대해서 깨달을 수 없습니다. 히브리어를 아무리 많이 공부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우상에 대해서 절대로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우상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우상을 만들고 분향을 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정도로 우상이 가득 차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우상 (פְּסִיל) 페실은 파살에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그것의 히브리어 뜻을 안다고 해서 호세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우상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까?
우상입니다
이 우상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많이 말씀을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행위가 우상이 되어서 사람들이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을 우상이라고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저 히브리어의 뜻을 아는 것으로 마치 자기가 우상에 대해서 아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선지자들이 부르면 부를수록 저희가 점점 더 멀리하고 바알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성경이 풀리지가 않아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평생을 교회 안에서 바알과 우상을 섬기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을찌라도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에브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었고, 내 품에 안아서 길렀다. 죽을 고비에서 그들을 살려 주었으나,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잠언20:24절을 보면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사람의 걸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다고 하는 그것을 알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입니다
우리 인생은 태생적으로 율법주의입니다 이제까지 이스라엘을 보아도 그렇고 이방의 교회를 보아도 율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알에게 제사를 하는 일이고 아로새긴 우상에게 분향을 하는 일이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알지 못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을찌라도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브라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생 모두가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끊임이 없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초대교회를 보더라도 사도들이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가고 나면 바로 율법주의가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계속해서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 안에서 바알에게 제사를 하고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병든 것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이 시대 다 문자적으로 보면서 무슨 병을 고쳐 주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영적인 병이 든 것을 육적인 것으로 예표로 삼아 고쳐 주셨지만 그것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알지 못하였습니다.
누가 알지 못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백성들이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알고 있습니까? 그들은 이스라엘보다 더 모르고 그저 종교 안에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저희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같이 되었으며 저희 앞에 먹을 것을 두었었노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인정의 끈과 사랑의 띠로 그들을 묶어서 업고 다녔으며, 그들의 목에서 멍에를 벗기고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분에 대해서 알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의 멍에를 벗겨 주셨습니다. 우리가 율법의 멍에에서 묶여 있었는데 주님께서 그 멍에를 벗겨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멍에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멍에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해 주셨지만 이 시대는 믿지를 않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 이스라엘 못지않게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 살은 영생을 위한 양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영생의 떡을 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못보고 있습니다.
떡입니다
생명의 떡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먹이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이 생명의 떡을 먹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실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생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신 것도 그렇고 그 일에 대해서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것도 역시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을 보면서도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애굽 땅으로 다시 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 땅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로 돌아오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입니다
다시 애굽의 종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고 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싫어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이스라엘은 우리의 예표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했는가에 따라 이 시대 역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 부르셨지만 점점 더 멀리 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이제 모든 선지자들 보내주시고 성경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를 부르시고 있지만 역시 이방의 교회도 율법을 지키는 일로 인하여 점점 더 멀리 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돌아오기를 싫어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의 교회도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싫어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의 행위가 어떠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교회 안에만 들어가면 율법을 지키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오기를 싫어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합니다.
돌아오기를 싫어하는 이스라엘에게 앗수르의 포로가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앗수르는 가장 강대한 나라였습니다. 이 앗수르가 망하고 난 후에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탄생이 됩니다. 그 앗수르의 포로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의 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앗수르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호세아의 예언 그대로 앗수르에 망해서 그들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망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깨닫지를 못해서 이 시대 역시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칼이 저희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 하리니 이는 저희의 계책을 인함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전쟁이 이스라엘의 성읍을 휩쓸고 지나갈 때에, 성문 빗장이 부서질 것이다. 그들이 헛된 계획을 세웠으니 칼이 그들을 모조리 삼킬 것이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 율법을 지켰습니다. 모세가 율법을 반포를 하고 난 후에 그들은 우리가 다 지켜 행하겠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켜서 그들은 살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계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책입니다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궁리해 낸 꾀나 술책이라고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면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것을 호세아 선지자는 바알에게 제사를 하며 아로새긴 우상에게 분향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해서 영생을 얻고자 했습니다.
잘못된 계책입니다
이 계책으로 인하여 전쟁이 임해서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율법을 지킨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칼로 망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예표가 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도 율법은 진노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아무 감각도 없이 그저 종교가 시키는 대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는 자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경고입니다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풀어지지가 않아서 이 경고의 말씀을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자기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내 백성이 결심하고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저희를 불러 위에 계신 자에게로 돌아오라 할찌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내 백성이 끝끝내 나를 배반하고, 바알을 불러 호소하지만, 그가 그들을 일으켜 세우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을 안 믿습니다.
내 백성이 결심을 하고 내게서 물러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를 불러 하나님에게로 돌라오라고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하고 있는가 하면 바알을 섬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으로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바알을 섬기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반포하신 율법을 지킨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바알을 섬기는 이스라엘은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돌아오라고 하고 계시지만 일어서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백성이 하나님이 부르시는데 하나도 돌아오는 자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러나 성경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주님을 대적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절대로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 시대도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아무리 그가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할지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왜 하나도 없는가 하면 모두가 율법을 지키기 때문에 하나도 없습니다. 이 시대 역시 하나도 없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복음을 주시고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해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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