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복음과 율법-설교2

제36강, 육체​​

윤주만목사 2018. 10. 25. 16:01


36, 육체​​

갈라디아서 5:17절을 보겠습니다. (308)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육체의 소욕입니다,

그것은 잔과 대접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는 외식입니다, 그 외식은 율법의 행위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육체의 소욕을 말씀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성경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지금까지 사도 바울이 할례라는 율법을 가지고 말씀을 했다는 것을 기억하면 이 육체의 소욕이 무엇이라는 것을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일입니다,

정말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어느 것을 가지고 욕심을 내는 것을 지금 왜 갑자기 말씀을 하겠습니까? 만약에 이 소욕이 세상의 어느 것이라면 정말로 사도 바울은 봉창을 두드리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까지 믿음과 율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의 욕심을 말씀한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까? 그러나 이 시대 갈라디아서를 보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가 하면 자기들이 잘 믿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까 앞뒤 문장이 연결이 안 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 입니다,

그것을 이제 사도 바울이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듣고 믿는 것은 성령의 소욕이고 할례를 받는 것은 육체의 소욕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마치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일과 세상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금 발전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이야기를 합니까? 자기를 위해서 일을 하면 육체의 소욕이 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하면 성령의 소욕이 된다고 말을 합니다, 진심이든 거짓이든 내 육체로 어떤 행위를 했다면 그것은 다 육체의 소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사람들이 할례를 받을 때 장난으로 받았습니까?

진심입니다

하나님의 성도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육체의 소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했든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했든 내 육체로 하고 있다면 다 그것은 육체의 소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진심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성화주의와 율법주의가 섞이다 보니까 이 사람의 진심이라는 것이 마치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진심으로 하면 그것이 성령의 소욕이 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진심이라고 말하는 그 자체가 악한 생각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모든 행위는 다 육체의 소욕에서 나온 것입니다,

성령의 소욕입니다

성령이 어떻게 소욕을 일으키고 있습니까?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모든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앞 절에서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성경 안에서 진리이신 하나님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인도를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은 서로 정 반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천국 복음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령의 소욕은 성경을 보게 하고 있고 그 성경 안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천국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은사가 아닙니다.

행위가 아닙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듣는 것을 믿어지게 역사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고 묻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듣고 믿어지는 역사가 성령의 소욕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일서2:16절을 보겠습니다, (389)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입니다.

그것이 다 육체의 소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도 세상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 안에 있는 내 육체도 세상에 있습니다. 세상이라고 하니까 마치 교회 밖에 사는 것을 말씀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고 교회 역시도 세상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자기가 어떤 소욕을 부리고 있는지 모르게 됩니다.

교회가 세상입니다.

그러면 그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 역시도 세상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고 있는 기도도 세상이고 또 찬양도 세상이고 모든 것이 다 세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세상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 시대 모두가 행위에 빠져 있습니다,

예배를 많이 드리고 싶어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예배가 있습니까? 그것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하면 바로 육체의 소욕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기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마치 성령의 소욕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육체와 성령을 성경에서 바로 정립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다 육체의 소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세상 밖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일들이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무엇이 세상인지 육체인지도 이 시대는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가 세상에 속해 있었습니까?

바로 육적인 이스라엘이 세상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주의에 빠졌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육체의 소욕에 이 시대 교인들이 얼마나 빠져 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심지어는 그것이 믿음의 척도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 정욕을 좇아 육체의 소욕을 이루려고 하는 그것을 보면서 믿음이라는 이상한 주장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면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는 아직 천국에 간 것이 아니라 이 세상 광야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답은 쉽습니다,


다 육체입니다.

아니 내 육체가 하고 있습니다, 예배도 내 육체가 합니다, 기도도 내 육체가 합니다. 찬송도 내 육체가 합니다. 십일조도 내 육체가 합니다. 제가 성도가 하는 예배도 하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완전하게 육체의 소욕에 빠져 들어가 있습니다,

왜 스스로 속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내 육체로 하는 것은 소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소욕이라고 하니까 나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의롭게 살고자 하는 것 역시 소욕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소욕을 나타냈는가를 이사야서를 통해서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만만의 수양입니다,

천천의 수소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제사에 빠져 들어갔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배가 부르실 정도로 그들은 육체의 소욕에 빠져 제사에 열심을 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그것 못지않게 육체의 소욕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믿음이 아니라 맹목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이 세상에서 사는 것과 같이 그와 같은 행위를 하면서도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육체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는 너무도 잘 외우고 있습니다,

제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는 주님께서 부탁하신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각자의 은사대로 일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율법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또 그것 역시 육체로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성도는 그 일을 할지라도 기억하지 않고 버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육체의 소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욕이라 해도 우리는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해서 영혼을 구원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은 성도가 그것을 전하지 않으면 누가 그 일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 시대 율법주의자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사람을 죽이는 일에 얼마나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성도는 정말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로마서8:23절을 보겠습니다. (250)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사도 바울은 너희가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다 무엇입니까?

영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소욕은 우리 성도들이 영생을 받게 하고 있습니다, 그 영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이렇게 우리가 양자가 되어 우리 몸이 구속을 기다릴 정도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소욕이 강하면 탄식을 하겠습니까? 성령은 이렇게 우리 성도가 구원을 받기를 바라면서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소욕입니다.

그는 우리가 진리의 하나님과 또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영생을 얻기를 바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일을 하는 것만 해도 평생의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교회 안에서 그런 육체의 소욕에 빠질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못 합니다. 일주일에 10여 번이 되는 예배를 어떻게 드립니까? 성령을 좇아 행하고 있는 성도라면 그런 제사를 드리는 시간까지도 아까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만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거의 하루 종일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도 있고 기도도 많은 시간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성령이 내 안에서 탄식을 하고 있다면 절대로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진리 이신 하나님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도 모르는 그들이 제사에 빠져 육체의 소욕을 채우면서 부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럴 시간이 있다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은 이미 육체의 소욕에 빠져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예배만 참석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사가 알아서 전하면 그것을 듣고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스스로 성경을 안 보고 그 안에서 지혜를 구하지 않고 있다면 거짓 선지자가 이끄는 대로 가다가 그 거짓 선지자에 의해서 반드시 멸망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은 영생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소욕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를 묻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그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국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어도 모르는 그들이 히브리어를 하고 있고 헬라어를 하면서 자기 유식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다 육체의 소욕에서 나온 것임을 모르고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둘이 대적합니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거스리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성령이 오시면 율법을 잘 지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대적입니다,

원수라는 말씀입니다, 싸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거스린다는 말씀은 서로 싸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성령을 받은 성도가 율법을 지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성령이 감동을 해서 자기들이 수많은 예배를 드리고 있고 또 찬송가를 부르고 있고 기도도 하고 있고 헌금도 10여 가지가 넘는 것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성경 똑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서로 대적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제까지 할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할례를 받으면 믿음이 없고 믿음이 있으면 할례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믿음이 없고 믿음이 있으면 율법을 안 지킨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의 소욕을 서로 거스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율법입니다,

그것을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둘이 서로 거스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믿음이 좋으면 십일조도 잘 내고 주일도 잘 지킨다고 말을 합니다, 실상은 자기 육체의 소욕을 채우기 위해서 애를 쓰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0:1절을 보겠습니다, (253)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이 둘이 서로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좇아 행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데 육체의 소욕이 자꾸 거스리게 되면 원하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육체의 소욕이 원하는 영생을 얻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것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말씀대로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육체의 소욕이 있으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거짓 형제가 들어와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이성으로 너무도 타당하게 생각이 되어서 할례를 받았는데 그 받은 할례로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육체의 소욕입니다,

우리의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성경을 몰라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까지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교회에 나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그렇게 전도를 받아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을 잘 믿겠다고 하면서 모든 일을 했는데 너무도 간절하게 원하던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래서 주님께서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교회에 나와서 평생을 헌신을 했는데 지옥에 간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남들은 여행을 다녀도 평생 주일이라는 날 때문에 해외여행 한 번도 못 갔는데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간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할례입니다.

그 단 한 가지를 가지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얼마나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내가 세상에서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육체의 소욕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을 한 그 모든 행위가 다 육체의 소욕이 되어서 성령의 소욕을 거스리면서 원하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대적입니다.

우리의 대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의 행위는 믿음에 대적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단 한 가지가 우리를 대적해서 우리가 원하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고 도리어 저주를 받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단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교회가 이단입니까? 율법을 폐하는 교회가 이단입니까?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교회가 이단 아닙니까? 율법을 지키는 교회는 다 이단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원하는 구원도 받지 못하게 하는 교회를 사람들이 아무리 정통이라고 한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여러분은 가장 불쌍한 자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생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수가 바다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기독교인의 수가 천만이 된다 해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왜 남은 자만 구원을 받습니까?

절대 다수는 모두가 다 율법주의에 빠져 성령의 소욕을 거스리고 대적을 하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소욕이 성령의 소욕을 거스리면서 대적한다는 말씀은 육체로 하는 그 일로 진리를 대적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진리를 대적하는 육체의 소욕을 하면서도 자기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그런데 어떻습니까?

서로 거스리고 대적을 하면 누가 이깁니까? 육체의 소욕이 이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진리와 비진리가 싸우면 진리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미 그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 뿐 아니라 사도들도 역시 이스라엘의 율법주의자들에게 의해서 많은 핍박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영혼은 이깁니다,

그러나 육체는 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할례 그까짓 것 하나 때문에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보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저 그렇게 쉽게 생각하는 그 율법 하나가 결국에는 성령의 소욕을 이겨 우리의 원하는 구원을 받지 못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원하는 것은 구원입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을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라지는 교회 안에서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또 다른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육체의 소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그 소욕을 위해서 성령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할례입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사람들이 이 할례를 너무 쉽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받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받아서 굳이 나쁠 것이 없기 때문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할례가 그들이 그렇게 원하는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에 대해서 얼마나 강하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바로 깨닫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5:18절을 보겠습니다, (30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면,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보다 더 명확한 말씀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으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를 보고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행위가 있습니다. 이 둘은 서로 거스리면서 대적을 합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있는 성도는 율법을 안 지키고 율법을 지키는 자는 믿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믿는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가 속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성도는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제사법이니 시민법이니 도덕법이니 그런 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하면 모든 율법 아래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할례를 받았습니까?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참 성도와 같이 보인다 해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삼가 지키고 있는 것이 있다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정의입니다.

내가 아무리 이성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확신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니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이성이 아니라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아니라고 하는데 내가 아무리 그렇다고 한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습니까? 아니 우리가 성경을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안 믿었습니까? 당시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자기들의 이성으로는 이 세상 어느 민족도 믿지 않는 하나님을 자기들은 믿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그것을 확증해야 하고 성령이 증거를 해 주어야 합니다, 성경에서도 증거를 받지 못하면서 그저 맹목적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할례를 받는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할례가 지금 이 시대는 십일조가 되어 있습니다, 십일조를 내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스스로 속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너희가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오시면 듣고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들이 할례를 받지 않았지만 듣고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사람들이 율법을 안 지켰지만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 전체가 아닙니다,

지금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할례라는 율법이 들어왔습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는 그 할례를 받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것 뿐 아니라 지금 이 시대 삼가 지키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율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있어 심각한 문제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면 어느 사람들은 자기는 율법을 안 지킨다고 하면서도 십일조를 내고 있고 주일을 지키고 있고 거의 모든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을 모릅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의 문자 그대로 하는 것은 다 율법입니다. 할례도 율법이 있기 전에 아브라함에게 너와 네 집에 있는 모든 남자에게 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에서 받은 율법에 할례도 들어가 있습니다, 성경에 율법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은 다 율법입니다,

613가지입니다,

그것을 제가 일일이 설명할 필요성은 없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다 나오고 있습니다, 그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하고 있다면 그는 율법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 뿐 아니라 교회를 다니면서 삼가 지키고 있는 것이 있다면 다 율법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매 주일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 자체가 율법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릴 때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 역시 율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율법 책이 기록이 안 되어 있더라도 지금 교회 안에서 삼가 지키고 있다면 다 율법이라는 말씀입니다, 삼가 지키고 있다면 그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 아래 있습니다.

야고보서2:9절을 보겠습니다, (372)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사람을 외모로 취합니다,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사람의 행위를 보고 죄라고 한다면 그것이 율법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니 죄라고 하지 않았을지라도 왜 나와 같이 하지 않은가 생각하면 그것이 율법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율법이 되고 율법이 나를 범죄자로 정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모르면 여러분은 반드시 율법을 지키다가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의 행위를 지키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에는 율법을 아는 것 역시 포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외모로 취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율법인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외식이 될 수도 있고 율법이 될 수 있습니다. 외식이나 율법이나 거의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교인들은 식사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을 나타내기 보다는 그들이 진심으로 감사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합니다,

식사 기도를 할 때 보니까 안 하고 그냥 먹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왜 기도를 안 하지 이상하네,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이 율법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식사 기도를 식사 때마다 하고 있다면 그것은 율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외모를 보고 취하는 것이고 그러면 율법이 나를 범죄자로 정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범죄자가 됩니까?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모든 율법이 살아나니까 내가 온 율법을 항상 다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범죄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먼저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지금 기독교인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하고 있는 식사 기도가 율법이라고 하면 아마도 저를 보고 이단이라고까지 이야기를 할 사람도 있습니다,

이단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입니다. 그런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은 피차 멸망을 당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식사를 할 때 손을 씻는 것과 이 시대 기도를 하는 것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율법 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손을 씻어서 율법이고 나는 감사하기 때문에 율법이 아니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삼가 지키는 모든 것은 다 율법입니다,

제가 예배를 어느 날 정해서 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계속 말씀을 드리지만 제가 이 모든 것이 율법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럼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냐고 따집니다, 그렇게 율법을 가지고 저와 따지지 마시고 그럴 시간이 있으면 성경을 보고 그 안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아무리 믿음이라고 해도 역시 율법입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당시 과학으로는 어느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갈릴레이는 끝까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 했습니다.

여러분이 믿음이라고 합니까?

저는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도 율법입니다, 지금 이 시대 모든 사람이 율법이 아니라고 해도 저는 율법이라고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한 가지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분명히 규정합니다, 저 혼자서 율법이라고 한다 해도 저는 끝까지 율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감사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혜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율법이라고 해야지 왜 믿음이라고 말을 합니까? 할례 단 한 가지를 가지고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얼마나 강하게 우리에게 율법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가를 깨닫기 바랍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규정을 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율법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율법 아래 있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율법의 한 가지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서5:18절을 보겠습니다, (315)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술 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너무 많은 술에 취해서 정신이 혼미해져 있습니다, 마치 술 취한 자와 같이 자기가 무엇을 하는 줄을 모르고 취해 있습니다, 사람이 율법에 취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술은 한 잔을 먹어도 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술을 잘 먹어서 안 취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어느 사람은 입에 대기만 해도 취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똑같은 말씀을 에베소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합니다,

한 잔의 술이 여러분을 취하게 하고 있습니다. 다 율법을 비유로 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술에 취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는 충만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갈라디아에서는 인도하심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감동을 받는 성도는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인가 하면 율법의 술에 취하지 않는 것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술이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대적합니다.

성령과 율법은 서로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서 두 가지를 비교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술이 취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또한 술이 안 취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할 때는 하나가 되면 하나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 아래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부탁을 드리지만 술 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 한 가지만 보아도 그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인가 아니면 그저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다가 멸망을 당할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내 생각과 이성을 버리시고 오직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문제는 내 영혼의 생명이 걸린 너무도 중요한 일입니다,

싸워야 합니다,

우리 육체는 끊임이 없이 소욕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율법을 잘 지키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다 성자와 같이 살면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칭찬을 듣고 또 하나님으로부터도 성도라 칭함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사단은 끊임이 없이 지금도 우리 육체를 감성으로 자극하면서 멸망에 빠뜨리려고 율법의 영광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내가 율법의 모든 행위를 버렸을 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지금도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율법의 소욕에 너무 취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부탁드리지만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다 버리고 오직 믿음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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