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로마서 강해 -

로마서 강해 131강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윤주만목사 2018. 8. 16. 05:15


로마서12:16절을 보겠습니다. (25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우리 성도입니다

세상을 사는 자와 같이 살아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라는 교회는 어느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주님께서 오셨을 때 유대교인들보다 더 타락의 길로 가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방에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주님을 대적을 하면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주님이 오셔서 이 시대 기독교인들과 대화를 하신다면 이스라엘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유대인들과 같이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교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고는 있지만 모두가 종교의 생각에 사로 잡혀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라는 종교는 이 세상의 어느 친목 단체보다 더 든든한 끈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든 삶이 종교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혼을 합니다.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그 일을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백일이 되고 돌이 되면 모든 잔치를 교회 안에 있는 사람과 함께 즐거워하면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즐거운 일이 있으면 그 교회는 그것을 아주 적절하게 이용을 하면서 함께 즐거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보는 교회입니다

친목 단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들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고 그 즐거움에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 교인들의 당연한 삶이 되었습니다. 그런 인간의 유대적인 관계가 끈끈하게 연결이 되어 있는 교회는 사실 세상의 단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범죄를 하고 난 이후에 에덴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 사람들이 많아지고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노아의 홍수가 있기 전에 성경은 육체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들 역시 육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방에 빛을 비춰주셨지만 이방 역시 육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육체가 되어서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행위를 보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마음껏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예배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믿는다고 하지만 그 예배 자체가 연락이 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영혼의 일로 즐거워해야 하는데 교회는 육체가 되어서 자기들이 육체로 하는 행위를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함께 즐거워하면서 성도로서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성경을 보고 육체의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 반드시 육체의 사람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는 자기 육체의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세상의 즐거움을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의 일을 생각하면서 내 영혼이 구원을 받은 그것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이 천만 명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 지구 안에 수십억 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우리에게 복음을 듣게 하시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영의 일은 믿음이 있는 성도만이 즐거워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말씀합니다.

영생을 얻는 성도는 당연히 즐거워합니다. 또한 우리는 복음을 가진 자를 통해서 듣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이며 우리의 드릴 영적 예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우리 복음을 가진 자들에게 부탁하신 일이기도 합니다.

기독교인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복음을 들은 성도들은 압니다.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마태복음에서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안 됩니다

우리 인생의 능력으로는 어떻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아는 성도는 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부자가 되어서 연락을 하면서 울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다 구원을 받았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실상은 울어야 하는 그들이 울지를 않고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자입니다

로마서12장의 은사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은사자들은 주님이 부탁하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각각 받은 은사대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때 즐거워하는 자도 있고 우는 자도 있습니다. 그때 사도 바울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이 시대 우리에게 이 복음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들을 수 있습니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빠져 그 안에서 연락을 하면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은사가 있다면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한 영혼이라도 영생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즐거움이 얼마나 큽니까? 주님의 말씀과 같이 잔치를 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복음을 전해서 영생을 얻게 해야 합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서로 한 마음이 되고,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사귀고, 스스로 지혜가 있는 체하지 마십시오.”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하지만 종교생활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교인이 되는 순간에 여러분은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인이 되는 것과 영의 일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영의 사람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연결이 되는 말씀입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 하라는 이 말씀을 오해를 해서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에 있어서 서로 마음을 같이 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마음을 같이 하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라고 하니까 어떻게 합니까?

교회 안에서 목사가 어떤 일을 선동을 하고 있고 그 일을 하는데 있어서 마음을 같이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반대를 하면 마음을 같이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고 심지어는 믿음이 없어서 저렇게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저 역시도 사람입니다 제가 만약에 육체의 일에 마음을 쓰고 있다면 성도님들이 막아야 합니다. 아무리 제가 복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어떤 일을 해도 그것에 찬성을 하는 것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에서 서로 마음을 같이 해야 합니까?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예배를 통해서 복음이 전해지고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고 손 대접하는 일에 있어서 서로 마음을 같이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입니다

이 시대는 예배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일에 있어서 서로 마음을 같이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자기들이 종교생활을 위해서 서로 마음을 같이 하라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는 자기들의 종교를 위해서 마음을 같이 하려고 모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13:11절을 보겠습니다. (300)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를 다 쓰고 나서 사도 바울이 내가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마음을 같이 하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후서13장입니다

고린도교회에 마지막으로 하는 말씀이지만 이 13장은 우리 믿음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고린도 교회 안에 이미 믿음에 있지 않은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경계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확증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3장의 말씀은 이미 아카데미 강의를 통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정말 우리는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 안입니다.

아니 이스라엘 모두입니다. 이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도 잘 알겠지만 이스라엘이 언제 스스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했습니까? 성경의 역사를 보아도 모두가 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 주셔서 그들이 믿지 않고 있다고 책망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너희가 믿음을 스스로 알지 못하면 너희가 버리운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막 복음을 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하는 고린도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버리운 자입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버리운 자가 많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 안에만 있으면 아니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하면 버리운 자가 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버리운 자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기 스스로 믿음을 확증하고 시험하지 못해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평생을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아니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런 그들에게 마귀의 자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안 믿어서 마귀의 자식이 된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믿음에 있는가 시험도 하지 않고 확증도 하지 않아서 버리운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역시 시험도 하지 않고 있고 확증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는 이스라엘의 바리새인 못지않게 마귀의 자식이 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시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확증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그것을 사도 바울이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치 않게 하시기를 구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믿음에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악을 조금도 행치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무엇이 악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 진리를 행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악을 행하고 있으면서 진리를 거스리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은 아니 믿음에 있는가 시험하고 확증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진리를 거스려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악을 행하고 있다면 그는 믿음이 없고 진리를 거스려 행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쁜 의미입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교회 안에 어느 일부의 사람이 행하고 있어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아니라 절대 다수가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13장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에 있는가 시험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믿음을 확증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하고 있는 사람이 교회 안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00명 중에 한 사람만이라도 이렇게 하고 있다면 사도 바울은 성경을 이렇게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없습니다.

믿음에 있는가 시험하고 확증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교회 안에만 나오면 자기가 믿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오늘 처음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했다고 자기가 믿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로마서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겨우 오늘 나와서 설교 한편을 들었다고 해서 그가 믿음이 있습니까? 아니 교회 나와서 10년을 주일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렸다고 해서 그가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성경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믿음이 주어진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믿음은 단번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것도 다 비유적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입니까?

누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까? 어느 목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까? 겨우 설교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그 말 한 마디 한 것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고 비유와 은유로 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인도함을 받아서 전해야 그것이 그리스도의 말씀이 될 수 있습니다. 정말 미안하지만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전해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음이 있습니까?

평생을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그들에게 믿음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도 못하는 그들이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이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말씀을 보고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 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해야 마음을 같이 할 수 있습니까? 먼저 우리 자신을 믿음에 있는가 시험하고 그 믿음을 확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전제 조건이 무엇인가 하면 조금도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믿음도 모르고 있고 악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 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같이 해야 합니까? 먼저 우리 자신을 믿음에 있는가 시험하고 우리 자신을 확증해야 합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하면 조금도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성도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육체의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체로 마음을 아무리 같이 하면 뭐 합니까? 그것은 외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육체로 마음을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종교를 통해서 그렇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지 실제 그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그것이 이 시대 교회의 분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식으로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데 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렇게 믿음이 있는 성도는 서로 마음을 같이 할 수 있습니다. 영의 일을 생각하는 성도는 사실 마음을 다르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서로 마음이 같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마음이 같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으로는 같아 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 아니라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해서 믿음에 있는 마음이 서로 같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마음이 같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있고 그것이 우리의 드릴 영적 예배라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2:46절을 보겠습니다. (190)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교회에 나왔습니까?

그리고 그 교회가 분쟁이 없이 하나님께 예배를 하고 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을 같이 하였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외형의 모습을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교회가 다툼이 없다고 해서 마음을 같이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믿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 어떻게 마음이 같아질 수 있습니까? 우리 성도들이 지금 기독교의 교회에 나가보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서 마음을 같이 할 수 있습니까? 절대로 마음을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입니다

복음이 전해질 때 그 안에서 같은 믿음을 가졌을 때 마음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적으로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을 보면서 성경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또 다른 외식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주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에 120여 문도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이제 막 복음이 전파가 되기 시작한 때입니다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 전까지는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고 있듯이 제자들도 자기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오시고 나니까 복음이 전파가 되기 시작을 했고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모이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렇게 믿는 성도들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떡입니까?

우리가 먹는 떡입니까? 물론 육체의 사람이니까 먹는 떡도 떼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그저 먹자고 날마다 성전에 모였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주님의 살인 떡을 떼기 위해서 성전에 모였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에 모였습니다.

예배를 위해서 모였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떡을 뗐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교회에서 들었다는 말씀입니다 당시는 120여 문도에게 성령이 임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에 날마다 모이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종교를 위해서 모이는 것이지 믿음이 있는 성도가 아닙니다. 그렇게 시간을 정해 놓고 날마다 모이는 것 자체가 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배입니다

그리고 모임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 안에서 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사도행전에서 말씀하는 것으로 대입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은 먼저 믿음이 있는 것이 전제 조건이 되고 있습니다. 믿음도 없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날마다 모이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같습니까?

믿음이 전제 조건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말씀은 주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에 성령이 오시고 복음이 막 전파가 되기 시작한 때입니다 그것을 보고 이 시대 기독교가 날마다 모이려고 하고 있다면 그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이 시대 날마다 모이려고 하는 그 자체 악한 행위인데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복음이 막 전파가 되는 때입니다

그때는 당연히 믿음이 있는 성도들이 날마다 모여서 예배를 했고 또 복음을 전파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런 시대가 아님에도 율법을 만들어서 날마다 모이고 있습니다. 아니 종교는 어떻게 하든지 교인들을 자기들의 율법의 포승으로 꽁꽁 묶어 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반드시 믿음이 있는 자가 있고 믿음이 없는 자가 있습니다. 누가 많은가 하면 믿음이 없는 자가 절대적으로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기독교라는 종교는 이미 믿음에서 많이 벗어났다는 것을 그들이 지키는 율법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왜 믿는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에는 그래도 믿는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믿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그래서 성도는 이 세상을 나그네와 같이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또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조건입니다

먼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믿음은 영생을 얻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육의 일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믿음으로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의 영이 거하시는 성도만이 믿음이 있고 그런 성도만이 서로 마음을 같이 할 수 있습니다.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도 늘 경계를 해야 합니다. 우리 보이는 것으로 마음을 같이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믿음이 없다면 그런 행위는 아니 사람의 마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인간적인 마음을 같이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믿음이 있어 영생을 얻는 그 마음을 서로 같이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성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고 있고 그것이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복음을 듣고 믿은 성도가 있고 그에게서 이제 복음을 듣는 성도가 있습니다. 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성도입니다 이렇게 같은 은혜로 구원을 받은 성도는 서도 마음을 같이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입니다

이 은사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미리 안 자는 쉽게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받은 은혜나 이제 막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의 은혜나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두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서로 마음을 같이 해야 합니다.

누가복음11:43절을 보겠습니다. (11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잠언30:32절을 보겠습니다. (946)

만일 네가 미련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였거나 혹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

화 있을찐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만 하고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너무 자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니 너무 단순하게 보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말씀입니다 화에 대한 말씀은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게도 똑같이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이스라엘의 거의 모든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시대는 다릅니까?

당시에 유대교가 정통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고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을 보고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기독교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주님께서는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축복만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축복보다는 화를 받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 많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화를 당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역시 바리새인들과 같이 자기들이 화를 당한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 목사들입니다

자기들이 아주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목사들 뿐 아니라 교인들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은 세상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높아졌는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온갖 악을 행하면서도 자기들 스스로 성도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높은 데 마음이 가 있습니다.

겸손의 모양을 내고 있습니다. 왜 겸손의 모양을 내고 있는가 하면 자기를 높이려고 겸손의 모양을 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악한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아니 사단에게 미혹이 되면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인지조차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교인들입니다

사실 그들이 얼마나 겸손의 모양을 내고 있습니까? 마음을 높은 데 두지 말라고 하니까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자기 겸손의 모양을 나타내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섬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고 있는가 하면 그 일을 함으로 해서 사람들이 자기를 인정을 해 주고 있고 높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양은 낮은데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한 없이 높아져 있다는 것을 또한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나타나는 행위만을 보고 있지만 그것이 참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렇게 낮은 데 처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마음이 높은 데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진심입니까?

믿음으로 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진심이 어디 있습니까? 누가 사람의 진심을 믿을 수 있고 인정할 수 있습니까? 조금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저는 그런 것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진심이라고 말을 하는 그 자체가 어디에 있는가 하면 마음이 높은 데 있기 때문에 하고 있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나와 저 사람이 다릅니까?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똑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진심이라는 감성적인 말에 모두가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진심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또 남이 진심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정말 진심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바리새인이 율법을 지켰습니까?

마음이 높은 데 있기 때문에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상석에 앉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겸손의 모양은 다 내고 있는 그들이 실상은 다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앉는 것에 마음을 두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 당연히 사람들이 그를 높여주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교인과 그렇지 않은 교인이 있으면 누구를 높여 주겠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니라 해도 진심이라도 해도 실상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바리새인입니다

이스라엘이 왜 그들을 상석에 앉게 했습니까? 인간적인 이성으로 생각할 때 그들은 존경을 받을 만 했습니다. 자기들이 잘 지키지 못하는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누가 존경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의 진심이라는 것이 바로 이렇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이 시대 율법주의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음을 높은 데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니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아니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가증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네가 미련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였거나 혹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한 일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는 다 악한 일입니다 그런 일을 한다는 자체가 높은 데 마음을 두고 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내 이성을 가지고 성경을 반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럴 것 같으면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것이 더 낫습니다.

바리새인 악만 행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릅니까?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 역시 악을 행하고 있지만 우리는 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율법을 지키는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리새인과 같이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하고 또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행하면서 내 마음이 진심이라는 그런 추상적인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낮은 데 처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해야 낮은 데 처할 수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면 내가 아무리 낮은 데 처하고 싶어도 안 됩니다 아니 사람들이 나를 높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부러 죄를 지라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입니다

그들이 그냥 높은 자리에 앉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반 이스라엘 백성보다 율법을 잘 지켰기 때문에 그들은 높은 자리에 앉았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율법을 잘 지키면 내가 낮은 데 처하고 싶어도 사람들이 나를 높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모르면 나도 모르게 사단에게 미혹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 기독교인 전체가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같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이 악이라는 것을 모르고 손으로 입을 막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도리어 간증이라는 미명 아래 자랑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은사자입니다

이 시대 은사자는 샤머니즘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그런 은사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알고 있는 은사자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높은 데 마음을 두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경계의 말씀으로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1:5절을 보겠습니다. (370)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로마서 12장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대로 자기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고 있는 은사자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지혜입니다

사람들은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혜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야고보서의 말씀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스스로 지혜를 얻었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지혜를 주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실상은 지혜를 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거의 모든 사람이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배우는 성경 공부를 통해서 자기들이 성경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하면 스스로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은사입니다

누가 주십니까?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서12장의 은사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은사도 모르는 그들이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고 있습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볼 때마다 제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 하면 사람의 이성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 같으면 공부를 하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성경의 어느 한 구절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이 이성이 있고 지적인 능력이 있어서 문자를 보고 스스로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의 이성과 생각이라는 것은 짐승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짐승과 차이가 무엇입니까?

문자를 알고 생각하는 사고가 있는 것입니까? 그것이 뭐가 그렇게 대단합니까? 차라리 그것이 없으면 짐승과 같이 육체로 왔다가 육체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지식이 있다 보니까 그것을 가지고 성경을 보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사단에게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누가 더 낫습니까?

전도서에서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보고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뛰어남이 없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다가 저주를 자청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그리고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까? 좋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 안에서 복음을 못 본다면 여러분이 갖고 있는 그것은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지도 못하고 있는 그들이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고 있고 가르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지혜입니다

그것은 짐승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짐승이 너무 하찮게 보일 수 있지만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영생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 짐승이나 일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단지 그들보다 조금 더 나은 것을 가지고 지혜 있는 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침팬지입니다

7살짜리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지능을 가지고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나 아이큐 150이 되어서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나 일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한다고 해서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다가는 그 짐승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짐승보다 못 합니다

침팬지는 흙으로 와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고 있는 인생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평생을 교회 안에서 악만 행하다가 죽는다면 그들보다 더 못한 처지가 된다는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다시 부탁드리지만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런 은사를 주시지 않았으면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면 됩니다. 그런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다가 성경을 오해를 하면 불행한 일이 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12:17절을 보겠습니다. (25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11장까지는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12장부터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이 복음을 세상 끝까지 전하라고 부탁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부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면서 그것이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참 어렵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을 사람들이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냥 지나치기 쉬운 사소한 단어에서 그 뜻을 모름으로 해서 성경을 전혀 다르게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도 그런 말씀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

이 말씀을 보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상대가 악하게 나를 대해도 악을 행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그들이 나에게 악하게 대할지라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하러 다니는 교회를 보면 그들이 정말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사람입니다

글에 집중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집에 와서 벨을 누르면 나가게 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도를 하러 다니는 사람입니다 솔직히 복음을 전하고 있는 저 역시도 짜증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어떻게 하는가 하면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아무리 자기들에게 안 좋은 이야기를 해도 늘 웃는 모습을 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들은 성경의 문자를 보고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고 하니까 도리어 더 악한 일을 하면서 그것으로 자기들의 의를 쌓으면서 부자가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그렇게 자기들이 악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악으로 악을 갚지 않는다고 하면서 도리어 그것을 간증까지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세상 일이 아닙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는 성경을 볼 때 이 말씀을 왜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은 절대로 풀리지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가 하면 복음을 전하고 있는 은사자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8:10절을 보겠습니다. (11)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아무에게도

성경은 그냥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스쳐 지나치기 쉬운 문자도 우리는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에게도 라는 이 말씀이 약 20회 정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를 지칭하는가 하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는 사람입니다

분명하게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칭할 때는 아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도 구원을 받지 못한 이스라엘을 지칭할 때는 아무에게 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백부장의 하인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고쳐 주시고 난 후에 백부장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백부장이 예수님께서 자기 하인을 고쳐 주시겠다고 하면서 같이 가시겠다고 하자 그냥 말씀만 해도 내 하인이 낫겠다고 말을 하자 주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 중에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전체를 주님께서는 아무에게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 전체를 주님께서 아무에게도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아무에게가 누군가를 먼저 알고 로마서를 보아야 그 말씀을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악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 말씀이 무엇을 말씀하는지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우리 성도는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성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면서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 어렵습니다.

잘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무엇을 말씀을 했는가를 알면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복음을 전하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적 예배입니다

그때에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아무에게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우리가 악을 행함으로 해서 그들의 악이 정당화 되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갚다

남에게 빌리거나 꾼 것을 도로 돌려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에게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가 복음을 전하는데 그가 악을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조금 어렵습니다.

잘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무엇을 말씀을 했는가를 알면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복음을 전하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입니다 누군가 여기에 와서 헌금을 하겠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자기 수입이 1000만원이 되는데 매달 100만원씩을 십일조로 드리겠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사람입니다

아니 이 시대 목사들이 교회를 개척하고 나서 이 문제에 거의 다 넘어진다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자기가 어느 정도 복음을 알고 십일조의 부당성을 깨달았어도 그것을 뿌리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체를 사도 바울은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고 말씀을 하면서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결론을 21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가르치다보면 악한 일이 많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십일조만 말씀을 드려서 그렇지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수많은 행위들을 보면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악에서 지고 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도 참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악한 일입니다 악을 아는 성도는 악으로 악을 갚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사람은 반드시 악에게 질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악에게 지는 것을 사도 바울이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보면 누군가 악을 행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이성에는 너무도 좋습니다. 아니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 역시도 그렇게 하고 있다면 그것은 악으로 악을 갚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아는 성도는 설령 그런 일이 있다 해도 악으로 악을 갚지 않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2:12절을 보겠습니다. (379)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선한 일을 도모하라

도모하다 어떤 일을 이루려고 대책과 방법을 꾀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살면서도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그 일을 이루려고 대책과 방법을 꾀하는 것을 도모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세상의 일이 아니라 은혜의 복음을 전해서 그 영혼이 구원을 받는 정말 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육체의 생명이라도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저 역시도 지난 몇 개월 동안 병원을 다니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육체의 생명입니다

물론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영의 일을 알고 그 생명을 얻는 자 되었기 때문에 육체의 생명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이성으로 생각할 때는 그 육체의 생명이 너무도 소중하기만 한 것 역시 사실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육체의 생명에 대해서 애착을 갖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생명도 귀합니다.

세상의 이성으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하물며 영의 생명이 어떻겠습니까?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우리 안에 있는 영의 생명이 얼마나 귀한 가를 성령의 감동으로 믿고 있습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전한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정말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그 일을 하는데 있어서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아서는 안 됩니다 왜 선한 일을 도모를 해야 하는가 하면 성경은 우리에게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의 생명이 없다면 우리는 짐승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실입니다

성도가 선한 일을 도모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이 세상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종교를 바라볼 때 어떻습니까? 쉽게 말씀을 드리면 그들이 생각하는 의를 행하는 것을 보면서 참 종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한 일입니다

어느 누구도 칭찬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를 보고 저들은 오직 예수밖에는 모른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도리어 이단이라고 공격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 성도는 이 세상에서는 어느 누구도 우리가 하는 일을 보고 선하다고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날에 우리 선한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선한 일을 도모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선한 일은 세상이 알지도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악으로 악을 갚아서는 안 됩니다 아무도 우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해서 악으로 악을 갚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바람이 임으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과 같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도모하고 있는 선한 일은 영의 일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악입니다

성경에서 이 악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악에 대한 말씀은 정말 세상 속된 말로 귀에 박힐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로마서를 강해를 하면서 계속해서 이 악에 대해서 말씀을 드린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려도 이곳에 있다가 다시 종교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한 일만 도모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선한 일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평생을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알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언제 악을 행할 수 있습니까? 더구나 악으로 악을 갚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누군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사람과 같이 보인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서도 따라 해서도 안 됩니다

선한 일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선한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선한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다보니까 악한 일만 도모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악 합니다

이 세상도 악하고 종교가 되는 있는 교회도 악 합니다 우리는 마치 딴 세상을 사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악이 무엇인가 선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를 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로마서12:18절을 보겠습니다. (257)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성도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도모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악을 행하고 있을지라도 악으로 악을 갚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악에게 지지 않고 선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선한 일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알고 믿음으로 해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싸움입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대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십일조를 하면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십일조를 하지 말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헌금 자체를 하지 말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단의 미혹을 받은 자로 취급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하려면 반드시 율법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는 수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지키고 있는 율법들이 악한 행위라고 하면 어느 누구도 우리 말을 들으려 하고 있지 않고 도리어 대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13절의 말씀과 같이 어떻게 하든지 우리를 핍박하려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선지자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사를 보아도 성도들은 핍박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들이 핍박을 받았는가 하면 선한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교가 되어 있는 다수에게는 그 선한 일이 도리어 악하게 보였기 때문에 아니 자기들의 종교가 위협을 받기 때문에 핍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육체적으로 이기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느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 싸움에서 이겼습니까? 어느 한 사건의 예표를 보지 마시고 전체를 보면 선한 일을 도모하는 성도는 육체적으로 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체의 싸움이 아닙니다.

만약에 육체의 싸움이라면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그렇게 순교를 당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냥 두셨다면 하나님을 믿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는 육체적으로 다수에 속해 있는 종교에 의해서 지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는 지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종교가 되어 있습니다. 영의 일을 모르다보니까 육체적으로 이기려고 싸움을 하고 있고 그 싸움에서 이기는 자기들을 보면서 마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핍박을 받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아마 이 시대 교회에 가서 이 복음을 전한다면 미친놈이라고 하면서 끌어 내릴 것이 분명하고 교회 밖으로 쫓아 낼 것이 분명합니다. 다시는 자기들에게 와서 미혹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핍박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이방의 교회가 종교가 될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종교가 되어서 모든 사람이 그 종교에 의해서 우상숭배를 할 것을 아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선한 일을 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일을 도모를 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반드시 우리를 핍박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핍박을 할 때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핍박을 하더라도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육체적으로 우리를 핍박을 하는 사람들과 화평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단이라고 합니다. 차라리 이단이라고 하면서 쫓아낸다면 그마나 다행입니다 우리와 상종을 안 하겠다고 하면서 모른 척 하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핍박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귀신이 들렸다고 하면서 저들을 없애 버려야 한다고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입니다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까? 할 수 있거든 이 아니라 화평 할 수 없을 정도로 핍박을 받았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성도들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9:23절을 보겠습니다. (69)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사람들이 성경을 오해를 합니다.

아니 국어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강한 긍정입니다 그것은 부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이 말씀은 설교로 올려 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강한 긍정에 대해서만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할 수 있거든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다는 부정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치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합니다.

그런데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냥 악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를 핍박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핍박이라고 하니까 이 시대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로마 시대에 성도들이 어떻게 핍박을 받았는가를 제가 굳이 말씀은 안 드려도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생명을 빼앗기는 핍박을 받았습니다.

죽이고 있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고발을 하면 끌고 가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할 수 있거든 이라고 하니까 지금과 같이 아주 평온한 시대에 아주 조금 핍박을 받는 것을 가지고 그것을 견뎠다고 하면서 간증을 하는데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생명입니다

육체의 생명이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실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초대교회의 성도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사람의 이성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께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입니다

내 스스로 믿을 수 있습니까? 절대로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야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믿음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 간질을 앓고 있는 아이를 고쳐 주신 것은 비유입니다 사람으로서는 그것을 고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니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할 수 없습니다.

이 시대 조금 하는 것을 가지고 할 수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육체의 생명을 죽이는데 이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게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아니 자기가 누군가를 모르고 사람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영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사람과 평화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으로는 할 수 없지만 내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어서 화평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의 능력으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성경말씀을 오해를 해서 자기들이 육체적으로 평화하는 것을 가지고 도리어 의를 쌓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이것도 의가 됩니다.

정말 우리는 내 의가 조금이라도 나타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조금만 잘못 해석을 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문자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을 핍박하는 자들과 평화하는 것으로 의를 쌓으면서 스스로 저주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내가 육체적으로 평화를 한다고 해서 그것을 보고 로마서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평화할 수 없지만 복음이 내 안에서 역사를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2:14절을 보겠습니다. (89)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평화

전쟁이나 갈등이 없이 평온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알고 있는 평화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는 먼저 성경에서 문자를 보고 그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국어도 모르고 의미도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평화할 수 있습니까?

우리 사람이 평화를 할 수 있습니까? 어느 누구도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할 수 있거든 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우리 인생으로는 평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인정을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자기들이 평화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감정이 있어도 그것을 무마하고 평화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들이 로마서의 말씀과 같이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평화입니다 이 세상에 주님이 오심으로 해서 평화에 관한 일을 우리에게 밝히 보여 주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를 하라고 하니까 인간과 인간 사이의 그런 평화를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핍박을 받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우리는 당연히 핍박을 받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로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죽임을 당하는 핍박까지 받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이 말씀은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 있는 말씀은 우리 스스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뒤에 말씀은 인간적으로는 할 수 없지만 그럴지라도 우리는 은혜를 받은 성도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을 누가복음에서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평화입니다

우리 성도가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에 인간적으로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