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오늘의 말씀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윤주만목사 2018. 1. 1. 10:33


전도서 5 : 8

"너는 어느 도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공의를 박멸하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높은 자보다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이 있음이니라"

 

세상에는 가난한 자가 있습니다

가난한 자의 대명사는 고아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고아의 아버지라고 시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고아를 지켜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가난한 자를 지켜 주시고 그들을 다시 부하게 해 주셔야 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그냥 힘들게 놓아두십니다.

 

부자와 나사로에서도 나사로는 죽을 때 까지 가난했습니다.

성공하는 것이 축복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잘못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만 존재하는 교회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이십니다.

육적으로도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은 결코 가난한 자를 돕는 분이 아니라고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도왔다면 나사로가 죽을 때 까지 거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거지 나사로는 육적으로 거지가 아니라 영적으로 거지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적으로도 가난한 사람은 학대를 받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영적으로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감찰하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가난한 자를 학대 합니까?

바로 교회 안에서 율법의 의가 좋은 부자가 율법의 의가 없는 가난한 사람을 학대 하고 있습니다,

그런 학대를 받으면서도 그것이 은혜라고 그들을 따르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의를 박멸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율법주의가 하나님의 공의를 세운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공의의 심판을 박멸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율법적인 의로 가려 버리고 있습니다,

 

너는 어느 도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여기서 말씀하는 어느 도는 이스라엘의 어느 도를 말씀하는 것이며 이스라엘은 지금의 교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교회가 나타나는 것을 지금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제 전도서의 말씀 그대로 이 시대도 역시 교회 안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학대합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율법을 안 지키거나 못 지키는 사람을 학대하고 있고 심지어는 율법의 의를 보면서 믿음이 없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교회는 율법주의가 복음주의를 학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감찰하고 계시며 반드시 그들에게 심판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7 : 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교회는 여자입니다

그 여자가 타락하면 음녀가 되고 있습니다,

음녀는 두 남편을 섬기는 여자를 음녀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남편과 율법의 남편 두 남편을 섬기는 교회는 율법을 섬기기 때문에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하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공의를 박멸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함으로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처럼 말을 합니다

아니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안 지키면 정죄를 하고 믿음이 없다고 말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지키지 못해 빚진 율법의 의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갚았는데도 타락한 교회는 아직도 갚지 못한 것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면서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가난한 자가 못하는 것을 하게 하는 것이 학대입니다

부자가 가난한 자를 보면서 자기처럼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바로 할 수 없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서 1000만 원 짜리를 사는데 부자는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부자처럼 그것을 살 수 없습니다,

 

사고 싶어도 못삽니다,

부자가 가난한 자를 앞에 놓고 1000만 원 짜리 산 것을 자랑하는 것은 바로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도 이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1000만원을 십일조 하는 사람은 돈이 없는 과부와 고아의 가산을 삼키고 있습니다,

 

부자가 학대하고 있습니까?

너무 슬퍼하지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심령까지도 살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고 가난해서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는 성도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약속한 대로 죄와 상관없이 데려가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음녀입니디,

지금 이 시대 교회는 다 음녀가 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이 시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교회를 더 이상 다닐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내지 않고 주일을 잘 지키지 못하고 자기들이 지키는 절기에 교인으로서 하는 일을 하지 못하면 음녀가 되어 있는 교회는 보이지 않게 학대를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가난한 자입니다,

이 세상 교회에서 학대를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을 보고 슬퍼하지 마시고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학대하는 그들은 심판을 받고 우리 성도는 구원을 해 주실 줄 믿고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감사

성령께서 감동하여 주심으로 음녀에게 속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예수님만을 섬길 수 있게 인도하시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