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8:26절을 보겠습니다. (신 250쪽)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천국입니다
사람들은 이 천국을 자기들의 이성을 따라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이 천국에 대한 비유의 말씀들이 있지만 그 말씀들은 비유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가장 근접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천국을 이 세상에서 어느 좋은 곳보다 더 좋은 곳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정도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천국은 그 자체가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상상의 나래를 편다 해도 이 천국에 대해서 우리 언어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비유입니다
천국은 이라는 말씀 자체가 다 비유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보이지 않는 소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소망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우리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도 바울은 천국에 갔다 왔다고 말씀을 합니다.
그런 그가 천국에 대해서는 전혀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하면 표현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자기가 몸으로 갔는지 몸 밖에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도 바울이 사람의 언어로 그것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천국에 대해서 전혀 말씀하고 있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기가 갔다 왔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천국에 설령 갔다 왔을지라도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우리에게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보이지 않은 소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경륜 자체도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믿음이라는 것을 주셨습니다. 사실 이 영의 일을 우리가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믿음의 방법을 통해서 우리가 보이지 않은 소망을 가질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비밀입니다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성령이 오시지 않고는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아무리 가르쳐 주려고 해도 믿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노력으로는 아니 열심으로는 안 됩니다 내 부모도 안 되고 내 형제도 안 되고 내 자식까지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영의 일입니다
가르쳐 주면 뭐합니까?
그가 알아듣지를 못하고 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교제를 하고 있는 성도님들이 이 성경에서 모든 비밀을 알고 믿음으로 든든히 서 있으면 뭐 합니까? 내 자식에게 이 놀라운 비밀을 가르쳐 줘서 구원을 받게 하고 싶어도 하나님께서 내 자식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그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우리 성도님들을 통해서 이 복음의 비밀을 가르쳐 준다 해서 그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이 교회 안에 전도를 해서 그가 신앙생활을 하는 그 행위를 보고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의 행위는 믿음과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보고 믿음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들이 행위가 좋고 나쁨에 따라 믿음이 있고 없고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믿음을 주셨습니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사실 이 믿음을 주실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보고 믿으면 그만입니다. 우리가 주일이라는 날에 예배를 드리고 십일조를 하고 하는 것으로 믿음이 있는 것이라면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말씀도 우리에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이스라엘과 같이 안식일을 지키면 됩니다. 소득의 십일조를 내고 이레에 이틀을 금식하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자기들이 정해서 지키면 그만입니다. 굳이 믿음이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영의 일은 그런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 아니고는 바랄 수 없기 때문에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 가능합니까?
보이지 않은 것을 바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는가 하면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을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동일한 믿음을 가지라고 예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 믿음을 전혀 모르고 아브라함의 행위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육적으로 부자로 살게 된 것을 생각하면서 자기들도 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려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믿으려 하기 보다는 육체로 어떻게 하면 아브라함과 같은 부자로 살까를 생각하고 있고 아브라함의 믿음보다는 그가 이 세상에서 한 행위를 따라하려 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다른 이유를 가지고 믿고 있다면 그는 차라리 세상에서 불교를 믿던지 아니면 자기 양심을 따라 사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는가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소망을 얻으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믿는다는 것을 기독교인들은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일을 성경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알고 믿어야 하는데 그것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들이 육체로 하고 있는 행위를 보고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우리가 보이지 않은 소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을 모르지만 성경에서 천국을 말씀하니까 바라고 있습니다. 그 바라는 것이 실상이 되어 나타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참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고난입니다 성도가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느 누가 우리가 말을 하면 들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어느 누가 우리가 하는 말에 공감을 하고 인정을 하겠습니까? 인간적인 관계에서 공감을 하는듯 하지만 만약에 성경을 가지고 치열하게 이야기를 하면 적대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피조물입니다
우리 육신은 고난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고대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피조물들이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로마서8장은 위로의 말씀입니다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런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위로를 해 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왜 위로를 하고 있는가 하면 현재의 고난이 너무 크기 때문에 위로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초대 교회에 고난이 없었다면 아마도 로마서 8장은 다르게 기록이 되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 성도들이 얼마나 큰 고난을 당했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주의자들로부터 고난을 당하기도 했고 또 로마라는 국가에 의해서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바라는 것은 빨리 주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님들이 받는 그런 고난이 아닙니다. 그것을 고난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초대 교회에 성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그것 하나로 율법주의자들로부터 고난을 당하기도 했고 또 그들이 고소를 해서 로마라는 국가로부터 자기 생명까지도 빼앗기는 그런 고난을 당했습니다.
마태복음8:16-17절을 보겠습니다. (신 11쪽)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이사야53:6절을 보겠습니다. (1033쪽)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무엇이 연약한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런 말씀이 있으면 의미도 모르고 그저 자기가 연약하다는 말을 하고 있고 실제 교회 안에서의 행위를 보면 누구보다 더 강한 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문자로 보고 있습니다.
거의 이스라엘이 되었다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보고 그렇게 말하는 그들이 이스라엘과 똑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구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성경을 보고 문자 그대로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것과 마태복음의 말씀을 보고 귀신을 좇아낸다고 하며, 병을 고친다고 하면서 안수기도를 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우리는 귀신들린 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마귀의 소유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서 선택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머니 태속에서 부터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말씀을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선택입니다
9장에서 말씀을 드릴 예정입니다 우리 육체의 선택이 아니라 우리 영을 선택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 선택에 대해서도 자기 육체를 선택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귀신이 들렸고 우리는 모두가 병이 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신이 바릅니까?
그리고 세상에서 지적입니까?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단에게 속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피조물은 사단의 것이기 때문에 사단이 마음대로 하고 있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그 사단의 뜻대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그것을 야고보서에서 병이 들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귀신들린 자를 좇아 내주시고 또 병이 든 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사람들이 어떻게 합니까? 교회 안에서 모두가 샤머니즘에 사로 잡혀서 자기들도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아서 귀신을 좇아내고 병도 고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귀신들린 자입니까?
누가 병이 든 자입니까? 이 시대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이 사단에게 속해 있고 영적으로 병이 들어서 죽게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 귀신을 좇아낸다고 하고 있고 육체의 병을 고친다고 하면서 교회를 병원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병을 고쳤습니까?
그래서 그가 영생을 했습니까?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 육의 일이 아닙니다. 실제 주님이 오셔서 병자를 고치신 것을 제가 부정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실제 그렇게 하셨어도 그것은 다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병을 고치면 뭐 합니까?
그가 영생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병을 고쳐야 합니다. 아니 영생을 하지 않더라도 그가 그 병이 나은 후에 선하게 살 수 있다면 병을 고쳐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생도 할 수 없고 또 병을 고친다고 해서 선하고 의롭게 살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연약한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육체의 병이 들어서 연약합니까? 성경에서 우리가 육체의 병이 들어서 연약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육체의 병이라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연약한 것은 그런 육체의 연약함을 보고 연약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병을 담당하셨습니까?
우리 육체가 병이 들어 있는 것을 담당하셨습니까? 그것은 이 세상 모든 종교가 하고 있는 샤머니즘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왜 언약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왜 연약한가 하면 우리는 영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연약합니다.
왜 영생을 할 수 없습니까?
우리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영생을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우리는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연약합니다. 우리는 진토이기 때문에 우리 체질로는 율법을 지켜서 영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연약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우리 인생은 영생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생을 얻고자 해서 하는 그 행위가 어떻게 되고 있는가 하면 연약해서 죄악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 한 그 행위가 죄악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항상 다 지켜야 하는데 연약해서 죄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연약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육체의 언약함을 보고 연약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연약합니다. 그런 연약함이 아니라 내 스스로는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스스로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성도만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지키신 율법을 믿을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연약한 자가 아니라 강한 자입니다 내 육체가 사단에게 속해 있고 내가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가 어떤 병이 들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병이 들어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병이 들어서 율법을 지키니까 자기가 얼마나 연약한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습니다.
그것을 이사야에서는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죄악을 범하고 있는데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심으로 해서 우리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연약한 병을 고침을 받아서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우리 육의 일이 아닙니다. 이 시대도 어리석은 자들은 교회를 병원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그런 육체의 병을 고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마치 무당이 신 굿을 해서 병자를 고치는 것과 같은 행위를 교회 안에서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세상의 의술이 있는 것을 가지고 육체의 질병을 고치는 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샤머니즘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자를 고친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이상한 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 병자를 고친다고 하면서 도리어 더 힘이 들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체의 질병을 고치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의사를 두셨습니다. 육체의 병은 그 의사에게 가서 고치면 됩니다. 왜 그것을 교회에서 고치려고 하고 있습니까?
문제는 성경을 문자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셨다고 하니까 마치 육체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다 저주를 받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엄청난 순교를 당하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외면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연약함이 무엇인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내 육체의 연약함을 가지고 연약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분복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냉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좀 일찍 죽으면 어떻고 좀 고생을 하면서 살면 어떻습니까?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자기 영혼을 마귀에게 파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39:4절을 보겠습니다. (구 830쪽)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무엇이 연약합니까?
우리 육체는 반드시 죽어야 하기 때문에 연약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 육체가 죽지 않으면 우리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아는 성도만이 자기가 연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 인생은 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을 우리가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영생을 얻으면 좋은데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는 순간부터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도리어 나를 죽게 하고 있습니다. 왜 죽게 하고 있는가 하면 우리는 체질적으로 이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죽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담이 이 율법에 손을 대는 순간부터 우리 진토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율법이 없어서 범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허무한 율법에 굴복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진토를 통해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을 주셔서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율법을 자기들이 지키면서 연약함을 모르고 있습니다.
연약합니다.
왜 우리가 연약합니까? 그것은 우리의 종말과 연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왜 생겼는가 하면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해서 우리에게 종말이 있습니다. 그렇게 종말과 연한이 있게 하신 이유는 우리 아담의 자손이 진토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을 통해서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자기 연약함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다윗은 당대의 왕입니다 그가 무엇이 연약했습니까? 그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그런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도 인생입니다 자기 종말과 연한을 생각하면 한 없이 연약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율법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자기 육체로 지키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무엇이 연약한가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처절할 정도로 깨달았습니다. 아니 성령이 감동을 해 주심으로 해서 내 육체로는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알고 율법에 의해서 우리 육신이 저주를 받아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왜 죽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죄를 지어서 죽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은 이 세상 사람들도 다 아는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죽는 것은 죄를 지어서도 어느 정도는 맞겠지만 죄를 지어서보다는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율법의 저주를 받아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세운 왕입니다 그런데도 그가 자기 연약함을 알게 해 달라고 간구를 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다윗은 말씀을 하면서 자기 연약함을 알게 해 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죄를 지어서 연약합니까? 물질이 부족해서 연약합니까? 권력이 없어서 연약합니까? 초보에서 벗어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이 세상 사람들도 다 아는 연약함입니다. 왜 우리가 연약한가 하면 우리는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어서 연약합니다. 율법으로 살아야 하는데 도리어 죽게 하는 율법이 되어서 연약하다는 말씀입니다
연약함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 육체가 조금 괴로우면 그것을 보고 연약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종말이 오기 때문에 연약합니다. 율법을 다 지키지를 못해서 종말이 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님께 담당시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언입니다
그 말씀그대로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연약해서 할 수 없는 그것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연약해서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안 믿으니까 자기들이 스스로 율법을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50:8-9절을 보겠습니다. (구 1030쪽)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뇨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에게 먹히리라”
나의 연약함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 육체의 종말과 연한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하면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해서 우리는 율법의 저주를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피조물은 생명에 있어서 반드시 죽어야 하기 때문에 연약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성경은 우리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가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이 생명에 대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거의 문자적으로 보면서 영의 일이 아니라 육체의 일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성령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령을 왜 우리에게 보내 주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셨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자기 육체의 연약한 것을 도와 달라고 간절히 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시대는 육체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 성령의 역사라고 하면서 무당이 하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그가 오시면 무엇을 합니까?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책망을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그 안에서 진리를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영의 일을 알게 인도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책망하십니다.
왜 세상을 책망을 하시고 있습니까? 세상이 진리를 모르니까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어떻게 책망하시는 줄도 모르고 심지어는 샤머니즘을 행하는 자기들의 말을 안 들으면 성령의 책망을 거절하고 있다는 말로 교인들에게 겁을 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사야에서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뇨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에게 먹히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내가 의롭다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 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누가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까? 사람의 지혜로 성경을 아무리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성경을 달달 외울 정도가 된다 해도 자기가 어떻게 의롭게 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 하시는 것을 어느 누구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십니다.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의 대적이 누구뇨 누가 이렇게 담대하게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율법에 의해서 모두가 저주를 받는 자입니다 그런 피조물이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양자의 영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 대적 율법에 의해서 저주를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피조물은 모두가 율법의 저주를 받아 반드시 개인의 종말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 연약함에서 우리 피조물은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죄를 받았습니다.
율법에 의해서 우리는 정죄를 받았습니다. 정죄를 받으면 반드시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누가 우리를 도와주시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로마서에서 분명히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우리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믿지를 못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어떻게 됩니까?
그가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도 사람의 이성으로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도와주시는 가를 이사야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뇨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에게 먹히리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율법의 저주를 받은 누가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못 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신 성도는 성령이 감동을 해 주시기 때문에 영의 일을 알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성령이 오셔서 도와주시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믿지를 못하고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우리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셨다는 것을 성경에서 보고도 그것이 무엇의 연약함을 담당하셨는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25:27절을 보겠습니다. (신 44쪽)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요한계시록5:8절을 보겠습니다. (신 404쪽)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마땅히 빌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지혜로는 마땅히 빌 바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자기 연약함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니까 몰라도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니까 심지어는 주님 아시지요 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땅히 빌 바를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하든지 내가 빌어야 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마땅히 빌 바를 모르지만 막연하게 자기가 기도를 하게 성령이 오셔서 감동을 해 주신다고 하면서 아무 것이나 자기 생각에 있는 것을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기도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이성으로는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빌 바를 알지 못하면 어떻게 빌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몰라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발람의 기도를 하다가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내가 빌어야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땅히 빌 바를 모르는데 성령이 오셔서 빌어준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교회 안에서 자기가 마땅히 빌어야 하는 것은 빌지 않고 빌지 말아야 하는 것을 빌다가 발람과 같이 죽는 사람입니다
기도 모든 것이 가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기도를 만병통치약과 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도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기도에 모두가 미쳐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성령이 우리 언약함을 도와주셔서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하니까 몰라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잘못하면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모든 신학자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목사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마땅히 빌 바를 알고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로마서에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니까 몰라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들의 이성을 따라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는 사람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달란트를 받으소서라고 하면서 내가 땅에 감추어 두었다가 당신에게 다시 주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이미 아카데미 강의를 통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자세한 것은 그리스도편지에서 아카데미 강의를 보시면 됩니다. 굳이 여기서 일일이 다 설명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달란트가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주신 재능대로 생명을 남기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재능을 주셨습니다.
우리 인생 모두는 이 생명의 달란트를 남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율법주의자는 율법을 지키다가 달란트를 남기지 못해서 주님이 오시고 나니까 주님의 것을 도로 드리면서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데서 모으는 줄 알고 있다고 하면서 자기 생명을 남기지 못한 사람입니다
생명입니다
우리는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모릅니다. 정말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 한 달란트를 받은 종과 같이 마땅히 생명을 남겨야 하는데 남기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을 남길 수 있는 재능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 합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우리는 마땅히 빌 바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마땅히 빌 바를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마땅히 빌 바를 알게 되어 있습니다.
마땅히 빌 바가 무엇입니까?
생명의 달란트에 대해서 우리는 빌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마땅히 빌 바를 빌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로마서에서 모른다고 하니까 몰라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막연하게 성령이 오셨다고 하면서 자기 머리에서 생각이 나는 것을 빌고 있습니다.
성도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내가 해야 하는 기도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하는 기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마땅히 빌 바를 모르다보니까 자기 머리에서 생각이 나는 대로 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금 대접입니다
성도의 기도가 금 대접에 담겨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해야 하는 기도가 무엇인가 하면 생명에 대한 기도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생명에 대해서만 기도를 하고 있고 가라지는 교회 안에서 온갖 것을 다 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구하라고 하니까 이 세상 것을 구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심지어는 사망에 이르는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입니다
이미 바알이 교회 안에 가득합니다. 그런 바알들을 못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바알을 섬겼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니까 바알이 주는 것을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로 자기 영혼이 망하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무조건 기도만 하면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밤을 세워가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해도 이 생명을 얻으면 모든 것을 다 얻는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사람의 이성으로는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이 생명에 대해서 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을 가지고 빌고 있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마땅히 빌 바를 알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 성령이 오신 성도는 금 대접에 담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생명에 대해서 기도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니까 자기들이 빌고 싶은 것을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자기 안에 생명의 달란트를 남기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고 가라지는 그런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를 누가 들어주고 있는가 하면 사단이 들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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