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7:22절을 보겠습니다. (신 248쪽)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사람의 육신입니다.
거기에는 선한 것이 없다고 사도 바울이 자기 자신을 이야기를 하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한 것이 없는 그 육신을 선하게 만들려고 하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끊임이 없이 이 육신을 가지고 선하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입니다
그리고 성화주의가 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이 다 율법주의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성경은 우리 육신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 속 곧 내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면서 그래서 선을 행하기를 원하고는 있지만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이성을 따라 선한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영생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으로는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선한 것이 없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선한 것이 없는 이 육신이 무엇인가를 하게 되면 그것이 도리어 원치 않는 악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이성에 따르면 교회는 선한 사람도 있고 선한 것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생에 있어서는 우리는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도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은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사도 바울은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런 일은 없지만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거하는 죄가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속입니다.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가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속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은 우리 속도 그렇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만 성령이 오셔서 이제 육체를 따라 살지 않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죄가 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 속에 무엇이 거하고 있는가를 정의를 내려 주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거하는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도 바울은 죄를 짓지 않고 있지만 그러나 만일 자기도 모르는 것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속은 죄만 있습니다.
선한 것이 없고 죄만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우리 육신으로 무엇인가를 하게 되면 그것이 다 악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교회 안에서 더 많은 악을 행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 육신입니까?
이것으로는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원치 아니하는 악만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이성에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같이 보이고 그 행위가 진실 되게 보인다 해도 내 육신으로는 다 악만 나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배를 드립니까?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까?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헌금을 내고 있습니까? 그리고 전도를 하고 있습니까? 사람의 이성에는 다 옳은 것과 같이 생각이 됩니다. 아니 옳은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행위가 내 육신으로 하고 있다면 그것은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원하는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악만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을 모릅니까?
우리가 보고 있는 사람이 육신입니다 그 육신이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악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규정을 하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왜 악인가 하면 내 속 곧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악만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선을 행하기를 원합니다.
생명을 얻기를 원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어서 생명을 얻어서 천국에 가고 싶어 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습니다. 그 악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바로 우리 속 육신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이 함께 있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은 다 구원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악이 함께 있습니다. 그 악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우리 육신에 있어서 육신이 무엇인가를 나타내면 그것이 악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육신이 어떠하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이렇게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그 육신으로 많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육신으로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기 때문에 다 악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악이 있습니다.
우리 육신에는 악만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렇다고 말씀하고 있으면 그런 것입니다 나는 선을 행하고 있다고 따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만일 내가 율법을 지키면 그것은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거하는 죄가 지키는 것이고 그것이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다 같습니다. 모두가 선을 행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으로 그것을 하려고 하는 순간에는 악이 되고 있다는 말씀이며 사도 바울이 자기 육신에 있는 악을 보면서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법이라고 하니까 일부 번역에서는 율법으로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경을 번역하는 사람조차도 법하면 율법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도 바울이 자기를 말하면서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이 속사람은 다른 주체를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4:16절을 보겠습니다. (신 290쪽)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겉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속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에게 속사람도 있고 겉사람도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는 속사람으로는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고린도후서에서는 겉사람은 후패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속사람입니다
그리고 겉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모두 사도 바울입니다 속사람도 있고 겉사람도 있는데 이 두 사람이 다 사도바울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내 안에 영이 탄생이 된 사람에게는 이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육신을 말씀했습니다.
그 육신은 겉사람입니다 이 겉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면 악만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고 알고 있는 이 겉사람은 육신인데 이 겉사람은 악만 행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겉사람에게는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악만 행하고 있습니다. 이 겉사람은 원하는 선은 행하지 못하고 원치 아니하는 바 악만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그 사람은 다 겉사람입니다 그것을 속사람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속사람은 보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겉사람은 아담의 종자로 태어났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육신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어서 악만 행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 육신입니다 그것에 포함이 되어 있는 모든 것은 다 겉사람입니다 성경은 육과 영을 구분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에 속해 있는 모든 것은 다 겉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로서 난 자만이 속사람입니다
그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후패하는 겉사람이고 하나는 날로 새로워지는 속사람입니다 겉사람은 악만 행하기 때문에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후패라는 사전적 뜻은 썩어서 문드러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겉사람이 이렇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것은 선한 것이 거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악만 행함으로 해서 썩어 없어집니다.
아담의 나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나입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이 있습니다. 반드시 성령이 오신 성도만이 이 두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과 같이 성령을 받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성도만이 두 사람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아무리 그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하고 또 자기 말로 성령을 받았다 해도 그에게는 겉사람만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속사람이 있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지만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아직 속사람이 탄생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겉사람은 썩어 문드러집니다.
그런데도 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새롭게 하려로 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는 이 썩어 없어지는 것을 새롭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겉사람은 썩어 문드러진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반드시 속사람이 있는 성도만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자기에게 있는 속사람이 무엇이고 겉사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속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고 겉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겉사람과 속사람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사야29:13절을 보겠습니다. (구 1000쪽)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요한일서5:3-4절을 보겠습니다. (신 393쪽)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사람의 계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너무 오해를 하고 있고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사람의 계명을 말씀하고 있고 하나님의 계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법이라고 하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성경을 보고 문자 그대로 사람이 지키고 있는 것을 사람의 계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바리새인들에게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고 하는 그것이 사람이 계명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고 지키는 것이 사람의 계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법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보고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도덕법이 살아 있다고 하면서 십계명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이 알고 지키는 계명을 사람의 계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사람의 계명을 따라 지켰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계명을 즐거워하면서 지켰습니다. 이 시대 역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십계명을 보고 문자 그대로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법인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친히 쓰셔서 더욱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누가 지킵니까?
이것부터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로마서를 통해서도 사도 바울이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달으면 됩니다. 그리고 죄를 깨달았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해서 구원을 받으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율법을 보고 사람의 계명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우리에게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사단에게도 율법대로 하라고 반포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에서 율법을 보면 정신이 혼미해져서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자기들이 먼저 지키겠다고 언약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을 문자 그대로 사람이 지키면 사람이 계명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지키시면 하나님의 법이 됩니다. 이 시대는 율법에 대한 기초가 너무 없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무지한 그들이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다가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다가 모두 악만 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속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즐거워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역시 속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데 그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도 사람들은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속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속사람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모두가 후패하는 겉사람으로 사람의 계명을 지키면서 악만 행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 줄도 모르고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소가 푸주로 가는 것과 같이 끌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로서 난 자입니다
사도 바울의 속사람이 바로 하나님께 로서 난 자입니다 그 속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세상을 이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세상을 이긴 이김이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 로서 난 자라야지만 세상을 이길 수 있고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법이 우리 마음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의 말씀입니다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에서는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속사람은 마음에 있는 법을 즐거워하고 있고 겉사람은 사람의 계명을 따라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법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속사람입니다
우리 아담의 종자는 겉사람입니다 그 겉사람은 썩어 문드러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겉사람이 썩어 문드러져야 내 안에 하나님께 로서 난 자가 탄생이 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다 썩어 문드러지는 그 겉사람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악입니다
썩어 문드러지는 겉사람이 행하는 것은 다 악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는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여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러 생명을 얻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 사람을 하나님께 로서 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로서 난 자는 사람의 계명을 지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로서 난 자입니까?
그가 하나님께 로서 났는가를 알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것이 바로 율법의 행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의 행위와 종교적인 외식이 있다면 그가 아무리 성령을 이야기를 하고 거듭났다고 해도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겉사람은 율법을 지킵니다.
그리고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그래서 속사람이 있는 성도를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반드시 율법에 대해서 죽은 사람만이 하나님께 로서 난 속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께 로서 난 자가 거의 없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 로서 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정의입니다 내가 속사람이 있다고 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속사람은 반드시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사도 바울과 같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어떻게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우리를 부요하게 해 주셨습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법이 있는 성도는 사람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즐거워하는 것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의 계명이 즐거우면 그것을 하게 되어 있고 하나님의 계명이 즐거우면 그것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즐거워하는 것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법을 몰라서 율법을 아주 즐겁게 지키고 있습니다. 그 율법이 악이 되어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로마서7:23절을 보겠습니다. (신 248쪽)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개의 법이 있고 두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자기 속사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고 또 자기 지체에는 무슨 법이 있는 가를 모르면서 문자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속사람입니다
누구나 속사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인 사람만이 속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합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속사람이 있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아직까지 자기 지체에 있는 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체의 법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내 지체 속에서 싸우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법이라고 하니까 내 마음이 지키는 법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사람의 이성에 따르는 마음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내 마음에서 감동을 받고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입니다.
사람들이 이 마음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이 이성이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바리새인들의 마음은 각종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고 자기들의 마음은 그것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의 마음은 같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던 바리새인의 마음이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마음이 같습니다. 아니 성령을 받은 우리 인생의 마음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마음에 법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내 안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이 법이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두 법이 싸우고 있습니다.
내 육신은 율법을 지키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셔서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자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우리 성도도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이 두 법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신 성도는 마음의 법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육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성령이 있습니다. 육신은 아담으로부터 낳은 우리가 보고 느끼고 이성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성령은 내 안에서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늘의 생명인 영을 탄생시키고 있습니다.
성도에게만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는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지체 안에서 두 법이 싸우고 있지를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내 마음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없기 때문에 죄의 법에 사로 잡혀서 율법을 지키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성령이 오신 성도만이 이 두 법이 지체 속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우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야지만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마음의 법과 싸울 수 있는 것이지 성령이 오시지 않은 사람은 한 다른 법에 의해서 모두가 죄의 법 아래로 사로 잡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싸워 이겨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그리고 의지로는 그것을 이길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깨닫지도 못 합니다
그가 아무리 신학을 공부하고 세상에서 지혜가 있다 해도 성령이 오셔서 역사하시는 그 법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회에만 들어오면 자기들이 성령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내 마음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이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6:15절을 보겠습니다. (신 269쪽)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사도 바울의 지체입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켜서 죄의 법 아래 빠져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역시 인생이기 때문에 만약에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입니다
가정으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없지만 만약에 있는 것을 가정으로 해서 사도 바울의 지체를 가지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라도 역시 만일 이런 일이 있다면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로마서7장에서는 만일이라는 단어를 두 번을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가정으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볼 때 전혀 국어의 뜻을 모르고 보다보니까 성경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자기 지체를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어 있는 그 지체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로마서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그리스도의 사람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전제 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벌써 초대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의 교회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했는데 교회에는 벌써 자기 육신으로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창기의 지체를 만들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내 지체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 먼저 선행이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율법을 지키지 않고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데 그 지체에서 다른 한 법이 있어서 마음의 법과 싸워서 그 법에 져서 창기의 지체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초대교회 안에 벌써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오직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법과 싸워서 지게 되면 죄의 법 아래로 사로 잡혀서 율법을 지키게 되고 그것을 사도 바울이 창기의 지체를 만들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듣다가도 이렇게 너무 쉽게 자기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사로 잡혀 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방에 있는 사람들은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먼저 들었습니다. 이 시대와 같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복음을 먼저 듣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보면 맞습니다. 이미 교회는 초대교회를 지나오면서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서 이제까지의 거의 모든 교회가 율법을 지키면서 죄의 법 아래 사로 잡혀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잘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기록할 당시와 지금은 너무도 다른 환경입니다 그때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죄의 법 아래로 팔려 있던 사람이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율법주의가 들어옴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던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고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미 기독교라는 종교는 그럴 수 없는 일을 보편화 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창기의 지체가 되지 않으면 성도라고 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된다고 그럴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럴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창기의 지체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창기의 지체가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창기라고 하니까 마치 이 세상에서 창녀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을 말씀하는 것으로 알고 자기들이 창기의 지체가 되어 있다는 사실 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세상의 창기를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생명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세상의 창기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 말씀을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창기의 지체라고 하니까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창기의 지체를 만들고 있습니까?
누가 그럴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만일이라는 가정하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들었습니까?
이 시대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도 없고 듣는 사람도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듣고 믿어야 내 지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될 수 있는데 아예 복음 자체가 사라져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모두가 창기의 지체가 되어서 죄의 법 아래 사로 잡혀 있으면서도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못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있는 사람을 못 보았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못 보았다는 말씀입니다 모두가 지체에 있는 다른 한 법 율법을 지키는 것에 사로 잡혀서 창기의 지체를 만들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창기의 지체입니다
그는 죄의 법 아래 사로잡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 역시도 육신으로는 그 죄의 법 아래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만일이라는 가정하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안 됩니다
인생의 육신으로는 어느 누구도 여기서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주의에 빠져 바벨론에 사로잡혀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70년이 지난 후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지만 그들은 역시 율법주의에 또 빠져 들어가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11:20절을 보겠습니다. (신 298쪽)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 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사도 바울이 사로잡혔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 육신을 보면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만일이라는 가정하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성령이 오셨고 율법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았고 죄가 기회를 타서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 율법을 지켰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함께 그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 되었습니다.
우리 지체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도 사도 바울과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성도는 절대로 죄 아래 팔리지 않습니다.
누가 종으로 삼아서 사로잡습니까?
고린도교회에도 벌써 다른 복음이 들어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른 복음을 따른 자들이 어떻게 보이는가 하면 광명의 천사와 같이 보이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사람의 이성에는 의의 일꾼과 같이 보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로잡힙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광명의 천사에게 그리고 의의 일꾼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사로잡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자랑을 하는가 하면 자기 육체를 가지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다 육체를 따라 자랑하는 사람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체를 따라 자랑합니다.
그러면 사람의 이성에는 그것이 의로 보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육체도 그렇게 하고 싶어집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그때에 초대교회에 벌써 이렇게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 사로 잡혀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른 복음입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할례라는 그 율법에 사로잡혀서 속히 다른 복음으로 넘어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 착각 속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이것이 영의 일이다 보니까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마치 이스라엘과 같이 자기들이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죄의 종입니다
율법을 지키면 죄의 종이 되어서 사로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육신에 있는 사람은 반드시 죄의 종이 되어서 사로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사단의 일군들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교회 안에 들어온 소자들은 그들을 의의 종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사로잡혀 있다는 것조차 인지를 못하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용납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는 용납하고 말 것이 없습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들어오면서 모두가 죄의 종이 되어서 사로잡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미국이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에게 육신적으로는 고마워해야 하지만 영적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단에게 사로잡혀 있습니다.
아마 제게 그렇게 주장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미국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서 이 시대 우리가 성경을 볼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다른 복음을 전할 바에는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을 하셨습니까?
너희가 산과 바다를 두루 다니며 교인하나를 만들면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열심으로 그들이 다른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배나 지옥 자식이 될 사람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배나 지옥 자식입니다
누가 배나 지옥 자식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배나 지옥 자식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산과 바다를 두루 다니며 교인 하나를 만들면 배나 지옥 자식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차라리 세상에 그냥 두었으면 지옥 자식이 되지 않았을 텐데 산과 바다를 두루 다니며 교인을 만들어서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로잡습니다.
누가 사로잡습니까? 의의 일군으로 가장한 사단의 일군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어서 그들이 사로잡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볼 때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과 같이 보이는데 그가 교회 안에서 사람들을 사로잡아서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합니까?
이 시대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 일에 너무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제 죄인으로 죽어가는 그 사람까지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억지로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사람이 그냥 편히 죽는 것도 못 보고 그렇게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죄의 법입니다
그것에 사로잡히는 순간에 배나 지옥 자식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있습니까? 정말 차라리 그냥 두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죄인으로 살다가 죽으면 됩니다. 그런데 왜 복음도 없는 사람이 열심을 내다가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까?
복음을 들었던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잘도 용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기독교는 복음이 사라진 사람이 만든 종교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종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내 스스로를 종교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기독교라는 종교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 우리를 기독교인이라고 합니까? 우리는 유대교도 아니고 기독교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입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이미 의의 일군으로 가장한 사람들에 의해서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종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요한계시록에서 두 짐승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짐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교회가 또 짐승이 되었습니다. 이 두 짐승에 의해서 사람들이 다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으로 사로잡혀 있는가 하면 내 지체에 다른 한 법 죄의 법에 의해서 모두가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만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로잡혔다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율법을 지키면 사로잡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절대로 사도 바울은 원치 아니하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만약에 육신만 있다면 지체에 있는 한 법에 의해서 죄의 법 아래 사로잡히게 되어서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7:24절을 보겠습니다. (신 249쪽)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우리 인생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아니 우리 육신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육신으로는 어떻게 해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모두가 죄의 법 아래 자기들이 팔려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얼마나 비참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도 자기 육신을 볼 때는 비참하기만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육신은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 비참한 육신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온갖 탐욕과 방탕에 빠져 죄의 법 아래 팔려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나를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내 육신을 먼저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자기 육신을 모르는 사람은 교회 안에서 죄의 법에 팔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을 아는 성도는 절대로 죄의 법에 팔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육신으로는 어떻게 해도 율법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왜 이 시대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육신의 속에 있는 죄가 넘치고 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 비참한 육신으로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 열심이 자기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교회 안에서 그런 육체에 나타나는 표적을 구하고 있고 자기들의 말 따라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가 되어서 그 체험한 그것으로 사망으로 가면서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소가 푸주로 가는 것과 같이 거대한 종교에 끌려가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우리 육신은 반드시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아니 육신이 원하는 것을 하려고 하는 순간에 도리어 원치 않는 것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가지고 있는 육신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믿어 구원을 받고 싶어서 원하는 일을 하려는 그 마음은 진심입니다.
제가 그 진심이 거짓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진심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육신이 원치 아니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믿음으로 역사하지 않으면 우리 인생의 육신은 원치 아니하는 그것에 열심을 내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진심이라는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을 알아 달라는 그런 감성적인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에게 있는 그 진심이라는 것도 마음이라는 것도 다 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진심이 그리고 육신에 있는 그 마음이 우리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않게 하고 있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육신을 아는 성도의 고백입니다 우리 역시 사도 바울과 같은 이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 육신으로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고 하나님을 위해서 찬송을 부르고 있고 기도를 하고 있고 헌금을 드리면서 죄의 법 아래 빠져 팔려 있으면서도 도리어 그런 일을 하는 자기 육신을 보고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육신이 하는 일입니다
우리 인생의 육신이 하는 일입니다 그 일로는 죄의 법 아래 팔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육신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육신을 보니까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곤고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육신을 가지고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육신이 한 일을 가지고 이 시대 교인들이 얼마나 자랑하고 있습니까? 자기 육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 교인들은 그 육신으로 선한 것을 하려고 하다가 모두가 죄 아래 팔려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오호라 나는 비참한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육신이 선한 것을 할 수 있다면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왜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육신으로 교회 안에서 마음껏 죄의 법에 팔려서 사단에게 사로잡히고 있습니다.
육신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 육신이 해방이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얻는다 해도 이 육신은 죄의 법에 사로잡혀서 사망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육신을 가지고 이 시대는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선한 일을 한다고 하면서 죄의 법 아래 점점 더 사로잡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육신입니다
얼마나 비참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구원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자기 육신이 얼마나 비참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 육신이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또 이 육신이 어떤 일을 한 것을 가지고 천국에 가서 칭찬을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선한 것이 있습니까?
선한 것이 없는데 어떻게 칭찬을 받습니까?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원치 않는 악만 행하고 있는 이 육신이 한 것을 가지고 어떻게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까? 악만 행한 그 육신이 한 일을 가지고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겠다고 말을 하고 있고 교회 안에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실상은 그 일이 다 악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우리 육신은 반드시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으로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왜 죽어야 하는가 하면 이 육신으로는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원치 아니하는 바 악만 행하기 때문에 죽어야 합니다.
영생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악만 행하는 이 육신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린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를 진 인생은 혹시 다시 살려 주실 수 있지만 우리 육신은 악만 행했기 때문에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대적하고 있는가 하면 악만 행하고 있는 우리 육신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육신을 구원하십니까?
그것을 알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나는 비참한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육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육신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육신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영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육신의 모양을 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3:17절을 보겠습니다. (신 402쪽)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라오디게아에 있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의 교회가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이 오면 교회는 라오디게아에 있는 교회와 같이 변하고 말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 지금 이 시대 역시 라오디게아에 있는 교회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들의 행위입니다
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습니다. 찬 것은 율법을 상징하는 말씀이고 더운 것은 성령을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잘 지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복음을 듣고 믿는 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그렇게 변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부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부자입니까? 주님께서 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는 그런 교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교회가 되어서 자기들이 성도가 되어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교회입니다
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육신으로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육신이 얼마나 비참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 육신이 비참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교회는 율법을 지키면서 그 의를 보고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곤고합니다.
무엇 때문에 곤고합니까? 이들이 육신으로 율법을 지켜서 그 의로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천국에 들어갈 성도라고 말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얼마나 곤고한 자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라오디게아에 있는 교회는 자기들의 육신이 얼마나 곤고한 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이성은 절대로 깨닫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육신을 보면서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라오디게아에 있는 교회와 같이 전혀 곤고하게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육신이 한 모든 악한 행위를 보면서 도리어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육신을 보면 곤고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교회에만 들어오면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육신이 비참해서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건져 내랴고 탄식을 해야 하는 그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도리어 악을 행하면서 부자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단 하나의 율법입니다
할례 그 한가지로도 부자가 되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 모든 육신으로 하는 행위가 세상 사람과 비교를 해서 부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부자가 아니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부자가 아니라 해도 세상의 이성이 부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고 있고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육신으로 하고 있는 그런 행위들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하고 있고 여러분 또한 그 행위를 함으로 해서 그렇게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이 하는 행위가 그렇습니다.
나는 아니라 해도 그 행위가 나를 부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나는 아니라 해도 그 행위가 죄의 법에 팔려 있는 악한 행위라고 성경이 정의를 내려 주고 있습니다. 내 이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말고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 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입니다
이 사망의 몸입니다 반드시 죽어야 하는 몸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서 죽는다고 하기 보다는 악을 행하기 때문에 죽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가 되기 전까지는 악만 행했습니다. 그것을 행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긍휼히 여기셔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인생이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고 하지 않고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리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보면 그것을 문자적으로 보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그것을 자기 육신으로 지키면서 죄의 법 아래 팔려 사단에게 사로잡히고 있습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건져내랴
우리 육신이 이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을 받은 사도 바울이지만 그 육신은 이렇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신을 보면 선한 것이 없어서 원하는 것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만 행하고 있어서 비참하기만 하고 사망을 당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다는 것을 탄식하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7:25절을 보겠습니다. (신 249쪽)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니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말씀도 거의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건져 내랴고 사도 바울이 탄식을 하고 있는 줄을 목사들이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육신이 원하는 선은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만 행하는 것을 보면서 지금 탄식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목사들이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탄식하고 있는 이 말씀을 마치 도덕적인 죄를 짓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육신이 도덕적인 죄를 짓는 것을 생각하면서 사도 바울도 어쩔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에 탄식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죄가 아닙니다.
로마서7장은 율법을 지키는 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육신은 어쩔 수 없이 율법을 지킬 수밖에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 안에서 육신으로 무엇인가를 하게 되면 반드시 죄의 법을 지키게 되어서 팔리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이 하는 일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그 도덕적인 죄를 안 짓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그 안에 있는 말씀대로 살아가는데 그것이 죄라는 말씀입니다 정말 사람의 육신이 어떠하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도덕적인 죄를 안 짓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이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만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 육신으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내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악만 행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입니다
그것으로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복음을 깨닫고 믿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육신은 선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는 그것까지도 선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다고 정의를 내려 주었으면 그렇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곤고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육신으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곤고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감동을 받아 내 육신에 그 속에 선한 것이 없어서 원하는 것은 하지 못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만 행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기 육신이 얼마나 곤고한가를 알기 때문에 사도 바울과 같이 사망에 몸에서 누가 건져 내랴고 하면서 탄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건져냅니까?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건져 냅니까? 내 스스로가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있습니까? 우리 인생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탄식을 하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없습니다.
아니 안 됩니다 우리는 안 됩니다 그것을 스스로 건져내려고 하는 순간부터 점점 더 악만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 스스로 건짐을 받으려고 하면 마치 사람이 늪에 빠지는 것과 같이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건져 낼 수 있는데 육신으로 하려고 하다가 깊이 빠져 아예 나오지를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까지 죄와 그리고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거기서는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 내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4:18절을 보겠습니다. (신 347쪽)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 악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육신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정의를 내려 주고 있습니다. 선한 것이 거하지 않습니다. 선한 것이 거하지 않기 때문에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만 행하고 있습니다.
악입니다
선을 행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선한 것이 없는데 어떻게 선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성경이 선한 것이 없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선을 행하고 있다고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이성에 따라 선을 행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경이 아니라고 하면 여러분이 하고 있는 모든 행위는 다 악한 일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기도를 주문과 같이 외우고 있습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기도를 예배의 마지막에 아니 자기들의 모임에서 주기도문이라고 하면서 외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누구나 다 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외우는 그것 까지도 악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종교의 형식에 따라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을 누가 하고 있는가 하면 우리 육신이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육신이 하고 있다면 그것 역시 악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의미도 모르고 있습니다.
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만 악에서 구해달라고 자기 육신으로 주문을 외우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시대 우리에게 그 기도를 외워서 주문처럼 하라고 그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까? 이 시대 모든 사람이 악에 빠질 것을 아시고 그 기도를 가르쳐 주셨지만 도리어 그 기도를 육신으로 외우고 있습니다.
악입니다
내 육신으로는 악만 행합니다. 왜 악만 행하는가 하면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악만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건져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악에서 건짐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의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악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악을 알아야 악에서 건짐을 받아 그의 천국으로 구원을 해 주실 수 있는데 악을 모르다 보니까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모두가 육신으로 악만 행하고 있습니다. 그 악을 보면서 도리어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악을 행하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악을 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가능한 육신으로 하는 일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예배를 하는 것을 하지 말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성도들이 모여서 주의 만찬을 나누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서 이제 처음 복음을 듣는 사람들에게 진리가 전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탁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한다고 하니까 내가 꼭 어느 사람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는 것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함께 하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조차도 악입니다
우리는 이것으로도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모든 악에서 건져 주셔서 구원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다는 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정의고 그러면 육신으로 무엇을 해서는 안 됩니다
골로새서1:13절을 보겠습니다. (신 324쪽)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흑암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 내 주셨습니다. 흑암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에서 빛이 어두움을 비추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 어두움에서 빛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빛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모두가 어두움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도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은 이 빛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역시 성경을 보면서도 어두움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얼마나 어두움에 있는 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그것은 곧 사망입니다 그래서 어두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골로새서에서는 흑암의 권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이성으로는 그것이 어두움이라는 것도 흑암이라는 것도 깨달을 수 없어서 이 시대 기독교인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유대교에 빠져 율법을 지킨 것과 같이 육신으로 악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입니다
그것은 흑암의 권세에 빠져 있습니다. 그 육신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아니 그리스도의 예수의 사람은 육체와 그 정과 욕심을 반드시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말로만 감성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하지 마시고 실제 그런 행함이 나에게서 보여야 합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 육신을 보면 우리는 탄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왜 곤고합니까? 도덕적인 죄를 알아서 그것을 안 지려고 하니까 율법을 지키는 그것이 내 속에 내 육신에 선한 것이 없어서 도리어 원치 아니라는 바 악만 행하고 있습니다. 그 곤고한 사람은 반드시 사망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런데 건져 주셨습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하나님께서 건져 주셔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우리를 옮겨 주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만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도리어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면서 육신에 팔려 죄의 종이 되고 있습니다.
내 육신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탄식 속에서 이 감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사도 바울이 기록한 이 로마서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더욱 더 흑암의 깊은 권세에 빠져 사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나를 건져 주십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나를 이 모든 악에서 건져 주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 교인들은 악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신으로 악을 행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두 법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그것을 22절에서 내 속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도 하나님의 법과 사람의 법을 모른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러 천국을 기업으로 얻는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마음의 법은 오직 성령이 오셔서 역사를 해 주셔 야지만 내 마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집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깁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마음의 법은 내 어떤 의지가 아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역사를 하기 때문에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알아 믿고 있습니다.
육신입니다
그 육신은 죄의 법을 섬깁니다. 이 죄의 법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정의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길 수밖에 없지만 마음으로 믿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킨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자기 육신이 원치 아니하는 일을 하게 되면 그렇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선을 행하기를 원하고 있지만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이 행하는 모든 일이 죄의 법을 섬기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의 일을 하지 않습니다.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육신의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 역시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섬기면서 육신의 일을 하지 않습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육신으로 죄의 법을 따라 섬기다가 사망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우리의 믿음의 주가 되게 하셔서 이 시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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