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7:19절을 보겠습니다. (신 248쪽)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우리 인생입니다
선한 것이 거하지 않습니다. 선한 것을 했어야 선한 것이 거할 수 있는데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선한 것을 쌓지를 못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선한 것을 쌓아서 선한 것을 내고 있다고 마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분에게서 선한 것이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분을 믿어서 선한 것을 내려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를 원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을 수도 없고 그분이 쌓은 선한 것을 낼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무가 좋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실과가 좋습니다. 우리 육신의 나무는 좋은 나무가 아닙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 자기들이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자기들의 나무가 좋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행위로 마치 자기들이 좋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성경은 그런 육적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 영적인 일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내 속 곧 내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선한 사람이나 되는 것과 같이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입니다
그것은 선한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육신은 바리새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만 그 쌓은 것에서 악한 것을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려 악한 것만 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자기를 대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교인들은 자기들의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 선한 것을 내보이기 위해서 더 악한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한 것을 나타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결국 율법주의가 되고 성화주의가 되어서 사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속과 육신에도 없는 것을 이 시대 교인들은 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내려고 하는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속에도 육신에도 없는 것을 이 시대 교인들은 선한 것을 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선하다고 합니다.
누가 선합니까? 어느 인생이 선하다고 말을 합니까? 하나님 한 분 이외는 선하신 이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선한 것을 쌓아서 선한 것을 내고 있습니다. 그 선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영의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육신입니다
우리 마음입니다. 독사의 자식입니다 그것에서는 선한 것이 조금도 거하지 않고 있습니다. 거기에 선한 것이 있다고 하면서 자기가 선한 것을 내려고 하는 사람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경에 없다고 하면 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내 속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안다고 분명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들에게서 선한 것을 내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열심히 지키고 있습니다. 선한 것을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쌓는 것에서 악한 것만 내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정의입니다 우리 인생은 선을 행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도서에서도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아주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 의인이 세상에 아주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없다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제가 지금 이 세상에서 알고 있는 그런 선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선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선한 것은 주님이 쌓아서 내고 있는 선입니다. 그 외에 사람이 하고 있는 모든 행위는 다 악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그것만이 선한 것입니다 그 외에 우리 육체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은 다 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내가 원하고는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하지 못하는 선을 이 시대는 자기들이 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고 선하게 살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선입니까?
우리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일들 중에서 무엇이 선한 것입니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도리어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도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왜 악합니까? 선한 것이 없는 그들이 선한 것을 내려고 했기 때문에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만이 지키실 수 있는 율법을 자기들이 지켜서 선한 것을 내겠다고 하는 그들이 악한 자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지켜서 선한 일을 하겠다고 하는 그들이 악한 자라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사람입니다
그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우리 인생 중에서 선한 사람이 있어서 그 쌓은 것에서 선한 것을 낸다는 말씀이 아니라 주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은 나쁜 나무입니다 그러나 영으로 살리심을 받은 주님은 좋은 나무고 그 실과가 좋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그 선한 것을 내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우리 육신은 다 악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만 악한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의 육신도 악하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육신도 악합니다. 선한 것을 낼 수 없습니다. 물론 구원을 받고는 싶지만 그러나 우리 육신으로는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주님께서 성령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으로는 안 됩니다 안 되기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난 후에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하늘에 올라가시고 유월절을 먹은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을 탄생을 시키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 성령이 어떻게 오셨습니까? 내가 가면 너희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는가 하면 우리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을 보내 주셔서 주님으로 말미암아 선한 것이 우리에게 있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시고 있습니다.
내 속 육신에는 없습니다.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어떤 능력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다 육체에 빠져 교회 안에서 육체의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오셔야지만 선한 것이 거할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성령을 모르고 있고 교회에 나오면 마치 자기들이 성령을 받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도 육신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기 속에는 그리고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어서 영생을 얻고 싶지만 자기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악한 일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입니다
선한 일을 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 속 곧 육신으로는 선한 것을 하지 못하고 악한 일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인생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악만 행하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신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전도서7:20절을 보겠습니다. (구 955쪽)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사도 바울입니다
로마서7장은 그의 고백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가 자기 육신을 보면서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느끼면서 아니 영생에 있어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가지고 있는 육신의 한계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어떻게 산 사람입니까? 그는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는 율법을 지키면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러 가는 도중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이전의 삶과 그 이후의 삶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는데 있어 자기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볼 때는 사도 바울은 정말 선하게 산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지금 자기 육신을 보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나서 이제 그 율법을 마무리 하면서 자기 육신을 보고 있습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함은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는 그것도 선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가 영생을 얼마나 바라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오직 이 영생만을 바라고 산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받은 그 생명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만 전하면서 살았습니다.
그가 어떻게 살았습니까?
복음을 전하면서 그가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유대인으로부터 받은 고난과 핍박을 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일을 다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순교를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생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안질에 걸려 눈이 잘 안 보이는 가운데서도 이 복음을 전하는 일만 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방에 복음을 전했는가를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을 하기 위해서 눈물로서 가르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이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내 속 곧 내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자기가 선을 하나도 행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에게는 선한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사도 바울은 그 누구보다도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생명에 있어서는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 합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원하고 있습니까? 그가 얼마나 이 영생에 대해서 원하고 있었는가를 성경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생명을 전하는 일만 평생을 하다가 순교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그가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고 있습니까?
전도서에서 그 정의를 내려 주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아주 없다는 것이 성경의 정의입니다 아니 이 시대 복음을 깨닫고 있는 성도는 이 말씀이 가슴에 와 박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교인들은 자기들이 선한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선한 것을 쌓은 것이 없기 때문에 선한 것을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선한 일을 하겠다고 하고 있고 선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못 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 육신을 보면서 선을 하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 교인들은 자기들이 선을 행하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선을 행하는 자가 아주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선하다고 하면서 세상의 이성을 따라 선을 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육신에 속하여 있는 우리 인생은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아주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행위를 보고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그런 행위를 하게 함으로 해서 마치 선을 행할 수 있는 것같이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선을 행하는 사람이 아주 없다고 하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선을 행하려고 하고 있다면 그는 악한 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육신입니다
사람의 육신은 아무리 선을 행하고 싶어도 안 되고 선을 행하고자 할 때 도리어 악만 행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선을 행하는 자가 아주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 그렇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내 이성의 생각이 아니라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5:29절을 보겠습니다. (신 151쪽)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내 육신에 선한 것이 없습니다.
선한 것을 원하고는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것은 육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한 것이 마치 서로 반대가 되는 것으로 생각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선을 원하는 바 하지 않고 도리어 악만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선을 행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말씀합니다.
선한 일을 누가 합니까?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육신에 선한 것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감동을 해 주는 역사를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은 육신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입니다
우리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선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육신에 선한 것이 있어서 선한 일을 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선한 일을 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이 탄생을 해서 생명의 부활로 나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내 속 곧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의 육신은 선한 것이 거하지 않고 악만 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성령이 선한 일을 믿게 해서 영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선한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선한 일은 우리 육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한 자가 누구입니까? 그가 생명의 부활로 나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까? 누가 부활을 합니까? 이 시대는 누가 부활을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내 육신이 아닙니다.
분명히 성경은 성령으로 난 영이 부활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선한 일을 한 자가 누구입니까? 내 육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육신은 악한 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자입니다 그 육신은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자가 선한 일을 한 자입니다 그것은 내 육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사도 바울과 같이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선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하고 있는가 하면 내 안에 성령이 오셔서 하고 있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이 탄생이 되어서 그 영이 생명의 부활로 나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오시지 않은 사람은 다 악한 일만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우리 육신입니다.
성령이 오시고 안 오시고를 떠나 우리 육신은 악한 일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오셔서 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해서 선한 일을 하고 있을지라도 내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어서 악만 행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내세를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내세를 생각하고 있는가 하면 육신이 죽기 때문에 내세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내세를 생각하면서 생명을 얻고자 하지만 우리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어서 선은 행하지 못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만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선한 일을 합니까?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신 자만이 선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선한 일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이 선한 일을 누가 할 수 있는가 하면 내 육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선한 일을 해서 영이 탄생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입니다
모두가 죽음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천국을 사모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천국을 사모하고 있지만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어서 선을 행하는 것이 없습니다.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은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육신에 대해서 명확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성경을 가장 많이 기록한 사람이고 이방에 복음을 전한 사도입니다 그런 그도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들의 육신으로 선한 것을 나타내고자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선한 것이 아니라 다 악한 일을 하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뒤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1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 육신은 선한 것이 없어서 악만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육신은 어쩔 수 없이 악만 행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7:16절을 보겠습니다. (신 359쪽)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육신입니다
우리 육신은 육체에 상관된 계명을 따라 살게 되어 있습니다. 육신을 가지고 있는 모든 인생의 육신은 육체에 상관된 계명을 지킨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에 상관된 계명으로는 생명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입니다
사람들이 이 육체와 영을 잘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육체와 영을 구분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육체와 영이 섞이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육체와 영이 서로 교감을 이루고 소통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가 하면 이 육체로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 밖에는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고 원함은 사도 바울에게 있으나 선은 행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습니다.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신은 선한 것이 거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 육신은 육체에 상관된 계명 밖에는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습니다. 육체에 상관된 계명으로는 어느 누구도 의롭다 하심을 얻어 생명에 이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만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육신에만 선한 것이 거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난 우리 인생의 육체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기 때문에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천국에 가려고 육체로 무엇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도리어 악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선은 영생입니다
선한 것은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영생을 얻지 못하는 모든 육체의 행위는 다 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도 전엣 계명은 연약하여 무익하므로 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익하다는 것은 악하다는 것과 같습니다. 선을 이룰 수 없어 무익한 것은 악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악합니까?
그것이 무익하기 때문에 악합니다. 우리에게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 육체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무익한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입니다
그것으로 여러분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전엣 계명을 지키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 우리 육신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우리 육신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익한 율법을 지키는 일 밖에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생명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우리 육신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만약에 한다면 도리어 악은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인생이기 때문에 원하고 있습니다. 육신으로도 원하는 것을 하고 싶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육신으로 하게 되면 그것이 무익한 것이 되어서 영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육신에 속하여 있습니다. 그들이 육신으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악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육신으로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온전케 하지 못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육신으로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고 있다는 그런 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진리를 알아 영생을 얻는 그것입니다 우리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해야 하는 일은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했을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육신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사도 바울이 육신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내가 가면 너희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신다고 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육신이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내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기 때문에 악만 행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선한 것은 오직 성령이 오셔서 역사를 해야 이룰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 쪽에서 어느 것을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역사로 성령이 감동을 하심으로 해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육신이 하면 무엇을 합니까?
그것은 히브리서에 있는 말씀과 같이 무익하고 연약한 전엣 계명을 지키는 일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육신으로 한 그것이 영생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악만 행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육신입니다
그 육신으로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을 지키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육신으로 그 이상을 생각학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그 육신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다가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을 더 많이 행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육신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지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속고 있습니다. 내가 이성적 지식이 있고 또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만 행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5:26절을 보겠습니다. (신 44쪽)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아카데미 강의에서 달란트가 무엇이라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거의 문자적으로 해석을 해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25장에서 말씀하신 3가지 비유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모두가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문자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달란트는 금을 말씀하고 있고 이 금은 우리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3명에게 각각의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한 달란트를 주시고 두 달란트를 주시고 다섯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회계할 때가 되어서 보니까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두 달란트를 남겼고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재능이 있습니다.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 재능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것을 땅에 감추어 두었다고 말을 하면서 예수님께서 맡기신 한 달란트를 그대로 내 놓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게으르고 악한 종입니다
충분히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 재능이 있었는데도 이 종은 생명을 얻지 못 했습니다. 왜 얻지 못했는가 하면 그는 악한 일을 했기 때문에 생명의 달란트를 남기지 못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어떻게 악한 일을 했는가 하면 교회 인에서 무익하고 연약한 율법을 자기 육체로 지키면서 육신에 속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을 얻지 못 합니다
그가 한 모든 행위가 다 악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었을지라도 내 육신의 행위는 다 악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종이 땅에 감추어 두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땅은 그 사람의 육신을 말하는 것이고 이 종은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려서 원치 아니하는 일만 하다가 생명의 달란트를 남기지 못 했습니다
우리 육신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은 선한 것이 없어서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육신으로 교회 안에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땅에 감추어 두면 땅이 할 수 있는 일로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지 못하면 그것은 다 악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도 육신으로 선을 행해서 해 보려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내 속 곧 내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아서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을 지키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내 육신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생명을 얻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과 같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 자기들의 육신으로 어려서부터 율법을 지키는 그 일밖에는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4:18절을 보겠습니다. (신 347쪽)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무슨 악을 그렇게 행했겠습니까? 그는 구약 성경에서 율법을 보고 신령한 줄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율법을 지켰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지독한 율법주의자였지만 주님을 만나고 난 이후로는 단 한 가지의 율법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갈라디아서입니다
단 하나의 율법 할례가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서신을 보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에 대해서 얼마나 강경했는가를 그가 쓴 성경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로는 어느 율법도 지키지 않았고 자기가 복음을 전한 이방인들에게도 율법을 지키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이 신령한 줄 압니다.
율법은 법대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당연히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무슨 악을 행했겠습니까? 디모데 후서는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가장 나중에 쓴 편지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까?
악입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실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행한 일 중에서 모든 악한 일에서 자기를 건져내셔서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실 것을 확신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악한 일을 했습니까? 그래서 그 모든 악에서 건져 달라고 구하고 있습니까? 아니 우리가 율법이 신령한 것인 줄 알고 있는 대로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켜서 자기가 지킨 율법을 생각하면서 모든 악에서 건져 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의 육신입니다
그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육신으로 한 모든 일이 무엇입니까?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줄 알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육신으로 한 모든 일이 악이라는 말씀이며 그래서 모든 악한 일에서 주께서 건져내셔서 그의 천국으로 구원을 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에 찬 말씀으로 그가 기록한 성경을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육신입니다
사람의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한 그 모든 일 역시도 선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선한 일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는 그가 한 모든 일이 선한 일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분명히 그 일은 선한 일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사도 바울이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복음의 사도로 세우시고 부탁을 하신 일을 한 것이고 그의 육신은 선한 것이 거하지 않아서 악만 행했기 때문에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셔서 그의 천국으로 구원하실 줄 믿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것입니다
우리 육신에는 없습니다. 오직 성령이 오셔야지만 그가 역사를 해서 선한 것을 내 안에서 이루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구원을 받은 것과 그리고 그가 이방에 복음을 전한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선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들이 한 행위를 가지고 천국에 가서 주님께 자랑까지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구원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우리 육신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정의를 해 주고 있습니다. 자기 속 곧 자기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아서 정말 천국에 가고 싶어서 선한 일을 하고 싶지만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한 일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으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자기 육신으로 선한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선한 것이 거하지도 않은 그 육신으로 어떻게 선한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그 속에도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마음을 중요시 하면서 교회 안에서 성화가 된 마음을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악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원합니까?
선한 일을 하고 싶습니까? 내 육신에는 거하지 않아서 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이제 그것을 8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속 곧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지만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내 안에서 선한 일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선한 것을 한다고 하지만 육신으로 무엇을 하면 할수록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은 행하게 된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정말 복음을 전하는 일 외에는 우리가 육신으로 교회 안에서 그 어떠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육신으로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못해서 구원을 못 받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원치 않는 일을 함으로 해서 구원을 못 받는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하게 하셨고 그것을 우리가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 이루신 그것을 믿음으로 우리가 영생을 얻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가능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해도 되는가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인가를 잘 모르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교회에만 들어오면 하나님을 믿는 열심이 너무 지나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그 육신으로 선한 것을 하려고 하다가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여서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로마서7:20절을 보겠습니다. (신 248쪽)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만일입니다.
다시 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은 없지만 만약에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을 가정으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원치 아니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만일을 가정으로 해서 우리에게 육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치 아니하는 일입니다
그것을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악을 누가 행하고 있는가 하면 교회 안에서 생명의 달란트를 얻지 못하고 있는 육신에 속한 자가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제 율법이 신령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정말 만일이라도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할 수 있다는 뜻에서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신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선한 것이 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육신으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다 악한 일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만일이라는 단어를 써가면서 율법을 깨달은 성도는 절대로 악을 행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일입니다
단 한 가지를 지켜도 그것은 악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율법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복음을 전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모든 사역을 마치면서 마지막에 쓴 서신에서 자기가 행한 모든 악에서 주님께서 자기를 건져내셔서 천국으로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육신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육신은 원치 아니하는 악만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실상은 다 악에서 나오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아서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이라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혹시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늘 주의해야 합니다. 단 하나의 악이 나를 사망으로 끌고 가기 때문에 우리는 이 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육신으로 너무 많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으로 하는 모든 행위입니다
그것은 다 악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주님께서 부탁하신 일까지도 하지 말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히 예배도 해야 하고 또 복음을 전하는 일도 해야 합니다. 그것은 부탁하셨기 때문에 성도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어떠한 일을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5:22절을 보겠습니다. (신 333쪽)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육신이 어떤 모양을 내고 있다면 그것은 다 악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내 육신으로 어떤 모양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것은 다 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 교회는 너무 많은 모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모양
겉으로 나타나는 생김새나 형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 속 곧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육신에 겉으로 나타나는 생김새나 형상이 모양이라는 말씀입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더 많은 모양을 나타내면서 그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행위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 육신입니다
그것이 하고 있는 모든 일이 다 악한 일입니다 설령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도 그것을 선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성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은혜를 주시고 부탁하셨기 때문에 하고 있는 것이지 우리가 원하는 선한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원 합니까?
그러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능한 모든 일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원하면 하지 않은 것이 좋습니다. 원하는 것을 하려고 하니까 사도 바울이 도리어 원치 아나하는 악은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천국에 가고 싶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다면 여러분의 육신에 어떤 모양이 나타나서는 안 됩니다
선을 모릅니다.
그리고 악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악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도 무엇이 악인 줄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교회 안에서 악의 모양만 나타내다가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악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이성입니다
그것으로 알고 있는 악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것이 악이라면 성경은 더 이상 비밀이 될 수도 없고 굳이 성령이 오시지 않아도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성령을 구할 필요도 지혜를 구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악이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비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면 선을 행하고 싶어서 육신으로 무엇인가를 하는데 그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아서 악은 행하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면서도 자기들은 악을 행하지 않고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물론 데살로니가가 있는 교회에 성도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악의 모양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또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물론 그 교회를 주님이 세우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가 다 음녀가 된다는 것을 성경이 또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음녀가 되어 있는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육신으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육체에 상관된 계명을 지키는 모든 행위가 다 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못 버립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절대로 못 버립니다. 왜 못 버리는가 하면 사람의 이성에는 그것이 악이 아니라 선하고 의로운 일이기 때문에 절대로 못 버립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이 악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보시기 바랍니다.
육체에 상관된 계명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조차 인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율법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어도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그 정당성을 말하면서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서도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생명의 달란트를 남기지 못하는 악하고 게으른 종과 같이 살아가면서 교회 안에서 자기 육신으로 여러 가지 모양을 내고 있습니다.
십일조도 모양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도 모양입니다 찬송가를 부르는 것도 모양입니다 헌금을 하는 행위도 모양입니다 제가 일일이 다 열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시대는 여러 가지 모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모양이 교회 안에서 사람의 육신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생명을 바라보면 이 악은 정말 원치 않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악인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이 악인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악하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일입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악을 행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악인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이 나오고 있습니까? 셀 수 없을 정도로 악인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지만 악이 무엇인지 누가 악의 모양을 내고 있는지도 모르고 교회 안에만 있으면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육신입니다
속과 겉을 포함해서 모는 것이 다 악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한 것이 거하지 않은 그 육신으로 모양을 내고 있다면 그것은 다 악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이 악의 모양만 내다가 사망에 이르고 있지만 사람들의 이성에는 그것이 선하고 의롭기 때문에 더욱 열심을 내서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7:20-23절을 보겠습니다. (신 65쪽)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마음이 꽤나 깨끗한 것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자기들의 마음을 감동해 주면 그 마음이 선한 것을 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속에 무엇이 있습니까? 18절에서 내 속 곧 내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은 줄로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속입니다.
그러면 우리 속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주님 제 마음을 아시지요? 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은데 자기 속에 선한 것이 거하는 것과 같이 말하면서 주님께서 자기 마음을 알아 달라고 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고 그것을 잘하는 기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입니까?
그것은 쓰레기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쓰레기보다 더 더럽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사람이 악을 행하고 있는가 하면 그 마음이 더럽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고 있지만 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고 또 자기 마음이 어떻다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토입니다
썩어 없어지는 사람입니다 그 썩어 없어지는 것에서 무슨 선한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이 마음과 영을 결합을 해서 마치 자기 마음이 깨끗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자기 마음이 선한 것으로 바뀌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성령이 오셔서 감동을 한다 해도 내 본래의 마음은 바꾸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악을 행하는 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할 때는 이미 마음에서 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만 사람이고 이 시대 기독교인은 사람이 아닙니까? 바리새인의 마음만 더럽고 이 시대 기독교인의 마음은 더럽지 않습니까?
바리새인만 악을 행했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전혀 악을 행하지 않고 있습니까?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다보니까 자기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이 무엇을 해서 주님께서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먹을 때 손을 씻지 않은 것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조상 대대로 유전으로 먹을 때 손을 씻고 먹었습니다. 그러면 바리새인이 먹을 때 손을 씻는 것은 악한 일이고 이 시대 먹을 때 기도를 하는 것은 선한 일입니까? 사도 바울이 내 속 곧 내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자기 육신으로 하는 것을 선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속입니다.
이것이 바리새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 역시도 자기 속에는 선한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것이 없는데 선한 것을 하려고 하는 그 자체가 악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이 손을 씻고 먹는 것은 악한 일이고 자기들이 기도를 하고 먹는 것은 악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바리새인만 이렇습니까?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가 있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하나도 해당이 안 됩니까? 이것은 사람의 마음에 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에도 바리새인의 마음에 있는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가 있어서 내가 원치 아니하는 것을 행하면 내 속에 있는 죄가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율법이 신령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런 것을 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만일이라는 가정 하에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입니다
사도 바울도 안 합니다 이 시대 역시 성령의 감동을 받고 사도 바울과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려 있다는 것도 늘 생각해야 합니다. 확연하게 타나나는 것은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니 성령을 받은 성도라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디모데후서에서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셔서 천국으로 구원해 주실 줄 확신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의 속에는 아니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악한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우리 육신은 죄 아래 팔렸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의 속입니다.
그것이 바뀐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거의 불교의 사상이 그대로 교회 안에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리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이 바뀐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바꾸려고 하고 있고 그것을 자기들의 육신의 모양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속이 바뀝니다.
그것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육신의 모양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그것을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령이 오시면 자기 속이 바뀌어서 그런 모양이 나타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어떻게 해도 육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은 아무리 성령이 오신다 해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가 원치 아니하는 것을 행하면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입니다.
모두가 이것이 들어 있습니다. 나는 성령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오신 것은 영의 일이지 우리 육을 변화 시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 육체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성경 어디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오셔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을 낳게 하고 있습니다. 그 영이 하늘의 생명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하는 일이 그 일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령이 오셔서 자기 속이 변해서 자기가 겉으로 모양을 내고 있다고 하면서 그 악한 행위를 더 많이 하고 있습니다.
내 속에 거하는 죄입니다.
사도 바울의 속에만 죄가 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똑같이 거하고 있습니다. 그 죄가 악의 모양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선하다고 하고 있고 의롭다고 하고 있습니다. 원치 아니하는 것을 하면서도 그것을 간절히 원하면서 하나님께 자기들이 더 많은 악을 행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밤을 새워가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내 속도 육신입니다
그것이 마치 육신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내 안에 오셨다 해도 내 육신은 육으로 난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 육신은 원치 아니하는 일만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신령하다는 것을 깨달은 성도는 이제 더 이상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일입니다
또 하고 있다면 만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는 악의 모양을 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악을 행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악한 일이라고 하면 도리어 핍박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절대로 이 악에 대해서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악의 모양을 내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속에는 악만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설령 성령이 오셨다 해도 그래서 생명이 있다 해도 우리 마음은 역시 악한 것이 있습니다.
나오지 않게 하시기 바랍니다.
내 속에 있는 그 악한 것이 나오지 않게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이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럽게 하고 있다는 말씀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또 악한 것이 나오지 않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7:21절을 보겠습니다. (신 248쪽)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깨달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깨달은 그것을 이 시대는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고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다보니까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도 바울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죄고 악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도덕적인 죄를 짓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못 보면 사망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고 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면 그는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죄를 짓고 악만 행하다가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전혀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이 성경을 억지로 해석하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그리고 성령이 오시지 않은 사람이 성경을 보고 푸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재앙이고 남도 죽이는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냥 깨달아 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내가 성경을 많이 본다고 해서 깨달아 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성령을 보내 주신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늘 깨어 성경을 보면서 그 안에서 영생을 얻기를 구해야 합니다. 그런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고 있습니다.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목사들 뿐 아니라 이제까지 글로 남겨놓은 신학자들을 보아도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은 성경을 성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지혜를 가지고 보았습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보면 늘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들도 지혜를 구했다고 말하겠지만 지혜를 얻지 못했다면 구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깨달아야 합니다.
깨달으라고 하니까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깨달아 지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주님께서 내가 가면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 주신다고 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성경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시는 조건이 있습니다. 반드시 오순절이 되어야 성령이 오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이 오려면 반드시 유월절을 먹어야 합니다. 유월절을 먹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도 성령이 오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갈라디아에서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고 묻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오시려면 반드시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합니다. 그 복음이 바로 무교병입니다 누룩이 섞이지 않은 무교병을 먹어야 유월절을 먹을 수 있고 그 유월절을 먹은 성도에게만 오순절이 임하여 성령이 오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오셔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가 오시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오시면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데 까지 자라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주님을 만나고 나서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자기가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 지켰던 율법이 신령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난 이후로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한 법을 깨달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육신으로 율법을 지켰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난 후에 주님을 만나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에게 계시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이 한 법을 깨달았는데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3:28절을 보겠습니다. (신 40쪽)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내가 한 법을 깨달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곧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육신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은 내 안에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선을 행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육신은 악만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입니다
그들만 안에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역시 육신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 순간에 악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왜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려고 했습니까? 그들도 영생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만 그 속에 외식과 불법이 가득합니까?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 육신으로 무엇인가를 하려는 순간에 우리 역시 어떻게 하는가 하면 사람들에게 옳게 보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행위들이 누구에게 옳게 보이려고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에게 보이려고 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에게 옳게 보이려고 하고 있습니까?
사람입니다
하나님께는 우리가 옳게 보이고 말고 할 것이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심장과 폐부까지도 감찰하시고 우리의 체질을 다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말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지으셨는데 모르시겠습니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나쁜 의미의 일들이 이 시대 그대로 교회에서 나나타고 있습니다.
악이 있습니다.
그 악이 무엇인가 하면 사람이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양으로 나타나고 있는 모든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들도 구원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살았지만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에게 옳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고 그 안에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바리새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을 행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바리새인과 같이 겉으로는 옳게 보이려고 하나 그 속에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합니다. 그것이 육신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옳게 보이려고 하는 그 모든 행위가 사실은 우리 속에 있는 외식과 불법으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생을 얻고자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그런 구원을 바라면서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여 주여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옳게 보고 있는 그 행위가 속에 있는 외식과 불법이며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이 있습니다.
그것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것이 육신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사도 바울이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든 사람이 천국에 가기를 원하고 있지만 육신에는 악만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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