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4:5절을 보겠습니다, (306쪽)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어렸을 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것을 우리도 어렸을 때 초등학문 아래서 종노릇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 나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모르고 있는 모든 사람을 어렸을 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온 것은 어렸을 때와 같이 평생을 그렇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데 이르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영혼 구원입니다,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하늘의 지혜를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에 누구에게서 배우느냐에 따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데 이르러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유업으로 주신 것을 후견인과 청지기에게서 찾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모두가 율법주의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에게서 나게 하신 것은 죄악의 종자인 아담의 씨를 받지 않고 하늘로부터 오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태어나는 순간 모두가 율법 아래 놓이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다는 말씀은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의의 씨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율법 아래 놓이셨습니다, 그렇게 율법 아래 놓이셨지만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 내가 율법을 완전케 하러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없으신 하늘의 씨로 오셔서 율법 아래 있었지만 주님은 죄가 없다고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죄가 없으신 것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흠 없는 어린 양으로서 대속 제물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냥 여자에게서 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정말 주의 깊게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마리아에게 태어났다고 하니까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리아가 죄인인데 어떻게 주님이 의인일 수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영의 일은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내가 정의를 내리려고 하면 스스로 자기 꾀에 빠질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입니까?
그것을 가지고 성경을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고 우리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면 이 영의 일이 믿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따지기 시작을 하면 절대로 답이 안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여자에게서 나셨습니다.
그것은 이미 창세기에서 예언을 하셨습니다, 아담을 미혹해서 죄에 빠뜨린 사단에게 하나님께서 내가 너로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리라고 말씀을 하셨고 이 말씀 그대로 때가 차매 주님이 이 세상에 마리아를 통해서 오셨습니다.
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습니까?
사단과 원수가 되게 하셔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려고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사단은 주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일로 사단은 머리가 상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다시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단은 머리가 상해서 이제 죽은 자와 같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머리가 상하면 죽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단은 완전히 죽지 않았습니다, 그럴지라도 그의 머리가 상하게 되어서 더 이상 우리 성도들을 사망으로 끌고 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심으로 악한 자가 우리를 만지지도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에게 나신 이유입니다,
그것은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사단의 머리가 상함으로 해서 우리가 더 이상 사단으로 말미암아 죽지 않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남자에게서 나면 아담의 씨로 나면 아무리 주님이라 해도 죄악의 종자이기 때문에 사단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여자에게서 나셔서 아담의 죄악의 종자가 아닌 의의 종자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렇게 여자에게서 나시고 율법 아래 있으셨습니다.
그것은 율법을 다 지키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서 우리를 율법의 멍에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율법 아래 계셨지만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습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면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늘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영생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아는 것으로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모르면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알아야 합니다,
정말 우리는 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영생을 어떻게 받는가를 성경에서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영생을 얻으려 하기 보다는 종교적인 행위에 너무 깊이 빠져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 그리고 이 세상에 오셔서 어떠한 일을 하셨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주님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문자적으로 예수를 믿으면 너와 네 가족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그런 문자를 아는 것으로 마치 영생을 얻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종교적인 행위가 아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 늘 힘써야 합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평생을 다해도 어려운 일인데 거기에다 종교적인 행위를 하려고 하니까 도무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종교는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미혹을 하고 있고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은 자기들이 지혜가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면서 스스로 속고 있습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으로 속고 있는가 하면 바로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행위를 아는 것으로 자기가 믿음에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문자적으로 보면 종교적인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주님의 구속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왜 오셨는가부터 해서 구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말씀들이 신약에 와서 다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갈라디아서 역시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신 이유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자녀의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 아래 나셨습니다.
이 지구라는 곳에서 태어나는 모든 생명체는 다 율법 아래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지구라는 별은 태양계에 의해서 정확하게 법을 따라 움직이고 있고 그 법이 사람이 살 수 있는 이 우주에서 유일한 별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태양계라는 아주 오묘한 법이 사람이 살 수 있는 지구를 만들어 냈습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사실 율법을 알고 있는 성도라면 그 율법을 누가 완전케 할 수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율법을 완전케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은 오직 주님만이 완전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 기초도 모르면서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것은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속량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값으로 사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31:11절을 보겠습니다, (구 1101쪽)
“여호와께서 야곱을 속량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구속하셨으니”
속량
몸 삯을 주고 사서 놓아준다는 사전적인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의 몸값을 십자가에서 지불 하시고 우리를 놓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속량했습니까?
주님은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습니다. 그 부요함으로 우리 가난한 자들을 부요하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율법대로 하면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그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이 성경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율법의 착시현상에 속아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것은 율법의 요구를 내가 다 이루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예수와 나를 별개로 생각하겠다는 뜻입니다. 주님과 내가 하나라면 주님이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으면 나 또한 율법의 요구를 이루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어떻게 샀습니까?
주님의 육체를 십자가에 내어 주면서 우리를 샀습니다. 그러니까 의인의 몸을 죽이면서 우리 죄인을 값으로 샀다는 말씀입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값으로 사시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나를 샀다는 것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단어로는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믿어지지가 않아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속량 하셨습니다.
누구에게서 속량을 하셨는가 하면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구속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다 육적으로 보여 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예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와 율법과의 관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의인이 되지 못 합니까?
그리고 세상에 의인이 하나도 없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율법이 우리 인생들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우리 인생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죄인이 되어서 율법으로 하면 저주를 받아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실제우리 육체는 율법의 저주를 그대로 받아서 다 사망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교회 안에서 몇 가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율법을 지키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은 음악으로 하면 세미클래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통클래식이 아니라 세미클래식입니다, 그것이 세미클래식이라고 해도 엄밀히 말해서는 그것 역시 클래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그것을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대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저 소득의 십일조를 내는 것으로 자기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지켰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일이라는 날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 줄였습니다.
십일조의 규례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다 줄이고 이제는 그저 소득의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율법을 지켰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에서는 통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마치 세미클래식을 듣는 것 같이 감동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율법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통이어야 합니다.
아니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해야 합니다,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키지 않으면 용납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세미클레식이 통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율법을 마치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세미클래식에 취해 있습니다.
클래식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이 들으려면 너무 지루하고 그것을 다 감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클래식에 조금 더 친숙하게 하려고 해서 세미클래식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듣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에서는 통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율법은 그것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강한 자입니다.
야곱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구속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인생들을 속량 하시되 우리보다 더 강한 자에게서 구속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세미클래식에 취해서 율법이 얼마나 강한 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시편18:17절을 보겠습니다. (구 814쪽)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저희는 나보다 힘센 연고로다”
원수가 누구입니까?
야곱을 속량 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에게서 구속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시편에서는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강한 원수는 나보다 힘이 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다윗이 적과의 싸움에서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마치 이런 말씀을 보고 세상에 누가 강한데 그에게 내가 육체적으로 지는 것을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그런 육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육을 통해서 우리의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강한 원수입니다,
육체적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기가 육체적으로 강한 자에게서 지는 것을 보고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나를 강한 원수에게서 건져 달라고 기도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바로 그렇게 기도를 하는 사람은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육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육체를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육체가 강한 자에게서 핍박을 받더라도 도와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육체를 도와주시고 건져 주신다면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도라고 하기 보다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강한 자가 누구고 원수가 누구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원수입니다.
에베소서에서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습니다. 그것은 육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율법 강한 원수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이방이 강한 원수가 아니라 율법이 강한 원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은 나를 공연히 미워하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지 못하는 나를 저주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 없는데 율법은 우리 인생들의 마음을 감동을 해서 지킬 수 있는 것처럼 하고 있고 실제 사람들이 몇 가지 지키는 것에 속고 있습니다,
우리를 속량 하셨습니다.
원수된 것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에서 우리를 속량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으로는 반드시 저주를 받아 사망에 이르러야 하는데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속량 하셨습니다, 그렇게 속량 하신 것으로 우리 육체를 구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육체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이 세상을 살면서 조금 강한 자에게서 지기라도 하고 또 핍박을 받으면 그것을 이기게 해 달라고 하면서 성경말씀을 자기들 마음대로 인용을 하면서 나를 강한 원수에게서 건져 달라고 눈물을 흘려가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육입니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 모두가 영의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체를 따라 사는 자는 그렇게 육체의 일을 가지고 생각하고 있고 영을 따라 사는 성도는 이 모든 말씀들을 영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 원수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이 원수입니까?
성경은 그들을 세상 죄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가 있으면 언제라도 복음을 듣고 믿어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세상 사람이 원수가 아니라 나를 저주받게 하는 것이 원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저주받게 하고 있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너무 좋아서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이 저주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서 원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이방의 원수는 이 율법을 가르쳐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모릅니다,
정말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이 자기를 어떻게 한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그저 종교에 빠져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그것을 믿음이라는 말로 미혹을 하면서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폐했다고 말을 하면서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은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이 자기를 저주받게 하는 원수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한 원수입니다.
얼마나 강한 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에덴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단 한 가지의 율법을 주셨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지 말라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죄를 한 번도 안 지어본 아담이 그것을 따 먹었습니다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나는 안 따먹을 것 같습니까?
우리 인생의 체질로는 선악과를 안 따먹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세미클래식과 같은 율법을 몇 가지 지키는 것으로 마치 자기들이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것을 믿음이라는 말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서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황당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저주를 받게 하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율법을 모르게 되면 사람이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 줄도 모르고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원수가 저주를 받게 하기 위해서 지키게 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그리고 율법으로 하면 우리는 다 저주를 받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여자에게서 나시고 율법을 완전케 하심으로 해서 우리를 의인의 값을 주고 다시 사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다시 사신 것은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명분입니다,
아주 타당성이 있는 명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명분이 아니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이 아니고는 우리가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우리를 값으로 샀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를 속량하셨습니까?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 하셨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은 그런 일이 없지만 옛날에는 종이 있었습니다. 그 종을 누군가 값으로 사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제는 자유하게 살라고 했는데 이 종이 다시 이전 주인에게 가서 굴복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종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서 놓아 주었는데 다시 예전의 주인에게 가서 일을 하고 있다면 그는 자기를 사서 놓아준 사람의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않습니까? 거금을 들여서 자기를 사서 놓아주었는데 다시 옛 주인의 종으로 살고 있다면 은혜를 저버리고 다시 그 주인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 하셨습니다. 율법에게 값을 주고 사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제 율법을 다시 지켜서는 안 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하는 악한 행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 아래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는 그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거절하겠다는 뜻입니다, 율법이라는 강한 원수에게서 우리를 값으로 사셔서 건져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성도라면 이제는 당연히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4:6절을 보겠습니다. (신 306쪽)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자녀입니다,
아들로서의 명분을 얻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 하셨습니다, 그러한 명분을 분명히 주셨는데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악이라는 것을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경륜을 안 믿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에게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습니다 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원수 율법에서 건져 주셨는데도 다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저버리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종교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다 율법을 지키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순간 교회도 역시 세상의 종교로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면 이미 하나님과는 단절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아무리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자기 마음의 진심을 이야기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받아들이지 않는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원수에게 붙잡혀서 꼼짝을 못하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셔서 자유를 주셨지만 사람들이 믿지를 않아서 아니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몰라서 다시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은 아들이 아닙니다,
강한 원수에게 붙잡혀 있는 종은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를지라도 그것은 종입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해서 하나님이 아버지가 됩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려면 반드시 율법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하셔서 자유를 주신 것을 받아들이고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아들의 명분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 해 주셨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구속의 은혜를 믿는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너희가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아들이라고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의 조건입니다.
그것을 명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3장까지 율법에 대해서 정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4장에 와서는 너희가 어떻게 아들이 되는 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율법 아래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다는 말씀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율법을 지키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 하나는 우리는 율법으로는 모두가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이렇게 법에 의해서 저주를 받아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예수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저주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이 지구라는 별에 사는 모든 사람은 다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속량을 받는 우리를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조건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 아래 있지 않는 것입니다,
율법을 안 지킬 때입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치 이와 같습니다. 아스마엘도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불렀고 이삭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업을 주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원수의 종이 되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육체를 버리시고 우리를 값으로 사셨는데 그것을 거절하고 다시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은 악한 자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명분을 자기 발로 차버리는 사람입니다.
아들입니까?
아들이면 아들답게 해야 합니다, 말로는 아들이라고 하면서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면 그는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하나님께 로서 난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께 로서 나야 하는데 그러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믿어야 합니다,
에베소서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10쪽)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아들이 되었는가 하면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육의 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은 우리 육체의 어느 모양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새 생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셨습니다.
사람도 아들이 태어나면 얼마나 기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이 세상에서 성도가 탄생이 되면 그것을 기뻐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 인생이 아들을 낳는 것보다 하나님께서는 더 기뻐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정도 기뻐하시는 가를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를 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기뻐하십니다.
아들이 되었을 때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하나를 구원하시고 얼마나 기뻐하시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를 하는 것이 하늘에서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다는 것보다 더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아들이 된 것입니다.
왜 그렇게 기뻐하시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구원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예정에 대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니 이해를 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왜 예정을 부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이루시는 약속을 믿지를 못하기 때문에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복주고 복주시겠다는 말씀 그대로 복을 주셨지만 사람들은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구원을 받은 나 한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으로 예정을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 하셔서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아니 주님이 우리의 죄 값을 속량 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이스라엘이 누구의 자식이었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마귀의 자식입니다,
주님께서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새끼들아 말씀을 하시고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마귀의 자식들이 된 것 같이 이 시대 교회 안에도 하나님의 아들보다는 마귀의 자녀들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의 저주 아래 있습니까?
그것은 마귀의 자식들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속량 해 주셨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내가 누구의 자녀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했던 이스라엘이 마귀의 자녀였습니다.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가 바로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초대 교회의 성도들을 이단이라고 공격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이단의 괴수라고까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셔서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해 주셨는데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 있는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 하셔서 의롭다 함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거절을 하는가 하면 율법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 해 주셨는데 믿지를 않고 점점 더 율법주의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을 이루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가 아니고는 우리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
육적인 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육체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지만 아니 자기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부를 했지만 마귀의 자식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 마귀의 자식이 되었는가 하면 영의 일을 깨닫지 못하고 육체로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로마서8:9절을 보겠습니다. (신 249쪽)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아들의 영을 우리 가운데 보내 주셨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 하셔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믿어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아들의 영이 내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 아들의 영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거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아들의 영이 거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다고 스스로에게 속고 있습니다.
육신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육신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에 있지 않다는 말씀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어떻게 지키고 있습니까? 내 육신이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육체로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육신에 있는 것인지 영에 있는 것인지도 분별이 안 되고 그저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하면 다 영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육신에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율법은 내 육신으로 지키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은 내 마음으로 믿어지는 역사입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찬양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교회에서 자기 육신으로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육신으로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육신으로 율법을 지킨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자기들의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내 마음에서 믿어지는 역사가 믿음입니다, 내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것이 육신으로 하고 있다면 그는 육신에 있는 자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육신에 있는 자는 아무리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신에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 아래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하는 것, 예배를 드리는 것, 찬양을 부르는 것 역시도 율법 아래 있는 것임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예배라는 형식에 맞추어서 기도를 하고 있고 찬양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 내 육신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이 시대는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육신에 있지 않습니다.
그 말씀은 육체적으로 어떤 형식이나 모양을 내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육체의 모양입니다. 다 자기들의 육신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육신으로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사도바울이 분명히 가르쳐 주면 뭐 합니까?
이 말씀을 모르는 목사가 있습니까?
그런데도 육신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육신에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심각할 정도로 육신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육신이 아니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육신에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육신에 있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다 할지라도 아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거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거한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이 말씀을 다 문자적으로 알고 있어서 다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다고 하면 맹목적으로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보내시는 진리의 성령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율법 아래 있던 사람들에게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알고 믿는 역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버리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육신에 있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을 문자로 아는 것을 가지고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에 있는 사람은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량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율법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는 성도들에게 아들의 영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성도만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를 이제까지 배웠습니다.
다른 복음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 들어온 단 한 가지의 율법 할레를 받으라고 한 것이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율법이 들어와서 성도들이 미혹을 당하니까 사도 바울이 율법과 믿음을 비교하면서 3장까지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장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육신에 있지 말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육신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누가 보고 있는 가를 알면 육신에 있는 자가 누군가를 쉽게 알 수 있는데 교회 안에서 하는 행위는 육신에 있는 것이 아닌 것으로 알고 더욱 더 육신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종교인들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표면적 성도는 성도가 아닙니다. 반드시 이면적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알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율법과 믿음 두 가지를 가지고 비교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8:15절을 보겠습니다. (신 249쪽)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양자의 영입니다,
무서워하는 종의 영입니다, 양자의 영은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라고 하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종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율법의 종이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종의 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표면적 유대인으로 분명히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었지만 그런 유대인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종과 아들입니다,
갈라디아서4장의 주제는 종과 아들입니다, 종이 누구고 아들이 누군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종은 무서워하고 있고 아들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산 욥은 어떤 고백을 했습니까?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종은 무서워합니다.
율법주의자는 반드시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는 안 무서워한다고 해도 욥을 통해서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욥과 같이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도 무서워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얼마나 율법을 잘 지켰는가 하는 것은 우리가 욥기를 보면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서워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반드시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안 무서워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가장 잘 지켰던 욥도 무서워했다고 하는데 아니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주의 사상은 늘 생각 속에서 무서워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하셨다고 분명히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도 율법을 지키는 이유는 바로 무섭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믿음에 굳게 서 있기 때문에 율법이 나를 저주한다 해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늘 무서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영을 받았습니까?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았습니까?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까? 내가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양자의 영을 받은 성도는 육신을 따라 하는 모든 율법을 안 지켜도 반드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율법을 안 지켜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안 지키면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법을 알고 있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경찰의 추격을 받고 있는 범죄자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진 사람은 그가 아무리 강한 자라도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죄를 졌는데도 안 무서워합니다,
이것이 양자의 영입니다, 이 세상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은 아버지라고 부르면서도 무서워하고 있고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은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전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종의 영과 양자의 영 둘 중에 하나를 반드시 받고 있습니다.
죄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볼 때는 누구는 죄인과 같이 보이고 누구는 의인과 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어느 사람을 보면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까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성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저울에 달아보면 입김보다 더 경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어떻게 히틀러가 진 죄와 내가 진 죄가 입김보다 더 경할 수 있습니까?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이 듭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율법을 바로 알고 있고 그 율법에서 자기가 어떠한 죄를 지었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입김보다 더 경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입김보다 더 경한 죄를 가지고 누구는 무서워하고 있고 누구는 담대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담대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보다 죄를 적게 지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죄의 경량을 달아보면 입김보다 더 경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는 것을 알고 있고 율법 아래 있어서 죄를 진 나를 값을 주고 사서 이제 자유하게 하시고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다는 것을 믿는 성도는 담대합니다,
믿음의 차이입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그렇게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은 늘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실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자기가 이렇게 믿다가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무서워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주셔서 율법 아래 있는 나를 속량 하시고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율법에서 벗어나야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교회 안에서 아무리 아버지라고 불러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마음 가운데 보내 주셨습니다,
그런 성도만이 마음으로 믿어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주셔서 우리 마음이 믿어지는 역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이렇게 마음 가운데 와 있는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그런 성도만이 율법을 버리고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4:7절을 보겠습니다. (신 306쪽)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각 사람은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자녀이면,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런 성도는 이제 종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후입니까? 어렸을 때는 아들일지라도 종과 다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종과 다름이 없는가 하면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기 때문에 종과 다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종노릇하였습니다,
이 세상 초등학문에 종노릇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여자에게 나셔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습니다, 그렇게 여자에게 나셔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우리 성도들을 속량 하셔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속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 주셨습니다, 이렇게 아들의 영을 받은 성도는 이제는 종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종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진리를 알지 못해서 아니 진리의 영이 오시지 않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지 못해서 율법의 종이 되었는데 우리를 율법에서 속량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아들입니다,
3장까지 율법과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4장에 와서는 율법을 지키는 자들을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의 영을 받지 않은 사람은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며 그런 사람은 진리로 인도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8:36절을 보겠습니다, (신 159쪽)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이스라엘은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누구의 종이 되었는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다 율법에 의해서 종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종이 된 것을 주님께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종입니다,
우리도 어렸을 때는 이 세상 초등학문 아래 종노릇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실제 어린 나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막 교회에 나왔거나 복음을 들은 사람을 어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래 했을지라도 계속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아직까지 어린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들이 자유케 했습니다.
어디서 자유하게 하셨는가 하면 율법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그냥 자유하라고 해서 자유하게 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어떻게 자유케 하셨는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입니다.
그들을 주님께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우리가 율법을 지킨 것으로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값을 지불하고 자유하게 하셨는데도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보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종이 아닙니다.
이제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를 지나오면서 교회는 급속하게 타락을 해서 다시 종으로 돌아가서 이제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솔직히 이 시대 종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율법의 종이 되어서 그것을 지키느라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들이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제는 종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말로만 종이 아니라고 하지 마시고 종이 아니면 종이 아닌 것처럼 행동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말로는 아들이라고 하면서 종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며 이런 사람은 반드시 종으로 살다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자유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을 보고 그 안에서 자기들이 종교생활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을 보면서 마치 자유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육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는 계속해서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이 누구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결국에는 가장 무서워하는 지옥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종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는 말씀을 안다고 해서 자유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 말씀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지금 이 시대 교회에서 자유하는 성도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자유한다는 것은 말이 성립 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아들이 자유케 해도 종이 되어 있습니다.
그냥 성경에 있는 말씀을 안다고 해서 자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 아무리 자유한다고 해도 종이 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면 그는 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들을 보내사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 하셨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회의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할례 단 한 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에 대해서 얼마나 강경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저주를 받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저주를 받지 않는다면 사도 바울은 절대로 이렇게 강하게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성도로서 조금 더 의롭게 사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율법은 의롭다 함을 받아서 생명을 얻느냐 아니면 저주를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도로서 조금 더 의롭게 살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다면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은 우리가 보아서는 안 됩니다 아니 그것은 성경이라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왜 종이 아닙니까?
이제 저주 아래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었는데 주님이 오셔서 율법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하시고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 아들의 명분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아들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는 종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 시대는 거의 모든 사람이 율법의 종이 돼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들입니다.
아들이 자유케 하면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자유하라고 하는데도 율법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해 주셨는데도 믿지를 않는다면 그는 어쩔 수 없이 종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종이 된 적이 없다고 했지만 실상은 율법의 종이 되어 있었습니다.
율법과 믿음입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묻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있는 사람은 종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주님이 율법 아래 있는 나를 속량해 주셨다는 것을 믿는 성도는 이제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 한 가지를 가지고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때문에 이 갈라디아서를 기록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십일조가 아닙니다.
주일이라는 날이 아닙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사도 바울이 가르친 갈라디아교회인데 왜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몰랐겠습니까? 그런데 생각하지도 않았던 할례를 가지고 온 거짓 형제가 들어온 것입니다,
사실 할례는 율법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 내 육체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할레는 일생이 단 한번 내 육체에 하면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입니다, 일생에 한번 하는 할례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들어옴으로 해서 사도 바울이 그것이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할례를 행한다면 너희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할례는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시작으로 해서 솔직히 양 잡아서 제사 드리는 것 빼고는 거의 모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양자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종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들입니다.
반드시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종이 있고 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종은 유업을 받지 못하고 아들만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도 천국을 갈 수 있다면 좋은데 할례라는 단 한 가지의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유업을 받지 못한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1:8-9절을 보겠습니다, (신 365쪽)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아들입니다.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업이 천국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 유업을 어떻게 받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어떻게 가는가 하면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도 계속해서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를 묻고 있습니다.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누군가 하면 아브라함과 같이 갈바를 알지 못하나 믿음으로 간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 믿음에 행위를 포함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서 그가 어떻게 유업을 받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믿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믿는다고는 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이라는 것의 실상을 보면 종교적인 행위를 가지고 믿는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런 종교적인 행위가 없으면 반드시 믿음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데 그들이 하는 종교적인 행위를 하나도 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믿음이 없다고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자기들도 믿음으로 천국에 간다는 것은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드리는 예배를 자주 빠지고 있고 또 십일조를 내기 않고 있고 찬양도 부르지 않고 기도도 별로 하지 않고 하면 믿음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무엇입니까?
사실은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종교적인 행위를 할지 모르는 것이지 믿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을 가지고 믿음이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은 결국에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뜻이 되고 있지만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말하는 믿음이라는 것은 행위가 포함이 되어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마음으로 믿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으로 믿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가나 저가 동일한 약속을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거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속을 함께 받았습니다.
아브라함만 받은 것이 아니라 이삭도 받고 야곱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 유업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천국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유업을 어떻게 받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삭과 야곱이 있습니다. 이들이 동일한 약속으로 함께 유업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유업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유업이나 이삭이 받은 유업이나 야곱이 받은 유업이나 동일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생각으로 천국을 상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정도 다릅니까?
우리는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들의 언어로는 표현이 안 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 믿음이 내 안에서 역사를 해서 천국을 믿고 바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동일한 유업입니다.
천국은 누구에게나 동일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은 우리가 보는 눈과 지적인 능력이 있어서 그 어떤 것도 동일하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천국은 동일한 유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이성을 가지고 천국을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 거짓입니다.
천국에 대해서 간증을 하는 사람도 거짓이고 천국을 갔다 왔다고 하면서 책을 쓴 사람도 거짓입니다, 만약에 그렇게 표현이 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성경에 천국에 대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기록하게 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들이면 다 유업을 받습니다.
그 아들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오직 믿음으로 아들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들이 된 성도는 누구나 동일하게 약속을 유업으로 받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의 생각으로는 아니 언어로는 이것을 표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밖에 말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가 천국을 갔다 왔다고 하면서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갔다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가 상상하는 천국이지 실제 천국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종교에 너무 깊이 빠지면 사단이 그런 사람들에게 환상이나 꿈으로 보여 주게 됩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이 간증을 하러 다니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업입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누구는 더 많이 누구는 적게 받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사람들이 오해를 해서 누구는 열 고을의 권세를 받고 누구는 다섯 고을의 권세를 받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유입니다.
실제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마치 천국에서 이 세상의 계량의 단위로 그렇게 받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약속으로 유업을 받았습니다, 누가 더 많이 받고 누구는 적게 받는 것이 아니라 동일하게 약속으로 유업을 받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21:7절을 보겠습니다, (신 421쪽)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유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 반드시 유업을 받습니다. 이 유업은 주님이 오셨을 때 우리가 들어갈 천국입니다, 이 유업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반드시 예수님께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 하셔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야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은 못 들어갑니다.
교회 안에는 종이 있고 아들이 있습니다, 종은 율법을 지키는 자를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는 성도입니다,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율법 아래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속량 해 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합니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하고 이것들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내려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정한 것 같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정도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천국을 누가 받는가하면 이기는 자가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에서 하나님께 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니 우리의 이김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기는가 하면 믿음이 있는 성도가 이긴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이겼습니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사단을 이기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내가 이긴 것으로 믿는 성도가 이기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기신 것이 내가 이긴 것인데 이 시대는 자기들이 율법을 지켜서 죄를 안 져서 이기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유업을 받았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유업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종은 반드시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되어야 유업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누군가 하면 율법 아래 있는 자를 주님께서 속량해 주신 자가 아들이고 그 아들은 오직 믿음으로 이겨서 유업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 이김을 믿는 성도는 이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 예수를 믿어서 천국에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정말 많이 있지만 실제 아들이 되어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사람은 아주 적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실제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율법을 지키는 그 자체가 사단에게 종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만이 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속량해 주신 성도만이 그 마음 가운데 하나님께서 아들의 영을 보내 주시고 있습니다. 내가 속량을 받았는가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아직까지 율법 아래 있다면 그는 절대로 속량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을 유업으로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8:9절을 보겠습니다. (신 249쪽)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아들의 영을 우리 가운데 보내 주셨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 하셔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믿어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아들의 영이 내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 아들의 영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거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아들의 영이 거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다고 스스로에게 속고 있습니다.
육신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육신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에 있지 않다는 말씀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어떻게 지키고 있습니까? 내 육신이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육체로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육신에 있는 것인지 영에 있는 것인지도 분별이 안 되고 그저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하면 다 영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육신에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율법은 내 육신으로 지키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은 내 마음으로 믿어지는 역사입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찬양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교회에서 자기 육신으로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육신으로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육신으로 율법을 지킨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자기들의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내 마음에서 믿어지는 역사가 믿음입니다, 내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것이 육신으로 하고 있다면 그는 육신에 있는 자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육신에 있는 자는 아무리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신에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 아래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하는 것, 예배를 드리는 것, 찬양을 부르는 것 역시도 율법 아래 있는 것임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예배라는 형식에 맞추어서 기도를 하고 있고 찬양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 내 육신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이 시대는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육신에 있지 않습니다.
그 말씀은 육체적으로 어떤 형식이나 모양을 내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육체의 모양입니다. 다 자기들의 육신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육신으로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사도바울이 분명히 가르쳐 주면 뭐 합니까?
이 말씀을 모르는 목사가 있습니까?
그런데도 육신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육신에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심각할 정도로 육신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육신이 아니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육신에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육신에 있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다 할지라도 아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거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거한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이 말씀을 다 문자적으로 알고 있어서 다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다고 하면 맹목적으로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보내시는 진리의 성령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율법 아래 있던 사람들에게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알고 믿는 역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버리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육신에 있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을 문자로 아는 것을 가지고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에 있는 사람은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량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율법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는 성도들에게 아들의 영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성도만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를 이제까지 배웠습니다.
다른 복음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 들어온 단 한 가지의 율법 할레를 받으라고 한 것이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율법이 들어와서 성도들이 미혹을 당하니까 사도 바울이 율법과 믿음을 비교하면서 3장까지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장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육신에 있지 말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육신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누가 보고 있는 가를 알면 육신에 있는 자가 누군가를 쉽게 알 수 있는데 교회 안에서 하는 행위는 육신에 있는 것이 아닌 것으로 알고 더욱 더 육신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종교인들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표면적 성도는 성도가 아닙니다. 반드시 이면적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알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율법과 믿음 두 가지를 가지고 비교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15절을 보겠습니다. (신 249쪽)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양자의 영입니다,
무서워하는 종의 영입니다, 양자의 영은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라고 하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종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율법의 종이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종의 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표면적 유대인으로 분명히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었지만 그런 유대인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종과 아들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의 주제는 종과 아들입니다, 종이 누구고 아들이 누군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종은 무서워하고 있고 아들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산 욥은 어떤 고백을 했습니까?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종은 무서워합니다.
율법주의자는 반드시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는 안 무서워한다고 해도 욥을 통해서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욥과 같이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도 무서워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얼마나 율법을 잘 지켰는가 하는 것은 우리가 욥기를 보면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서워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반드시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안 무서워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가장 잘 지켰던 욥도 무서워했다고 하는데 아니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주의 사상은 늘 생각 속에서 무서워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하셨다고 분명히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도 율법을 지키는 이유는 바로 무섭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믿음에 굳게 서 있기 때문에 율법이 나를 저주한다 해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늘 무서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영을 받았습니까?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았습니까?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까? 내가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양자의 영을 받은 성도는 육신을 따라 하는 모든 율법을 안 지켜도 반드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율법을 안 지켜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안 지키면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법을 알고 있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경찰의 추격을 받고 있는 범죄자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진 사람은 그가 아무리 강한 자라도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죄를 졌는데도 안 무서워합니다,
이것이 양자의 영입니다, 이 세상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은 아버지라고 부르면서도 무서워하고 있고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은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전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종의 영과 양자의 영 둘 중에 하나를 반드시 받고 있습니다.
죄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볼 때는 누구는 죄인과 같이 보이고 누구는 의인과 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어느 사람을 보면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까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성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저울에 달아보면 입김보다 더 경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어떻게 히틀러가 진 죄와 내가 진 죄가 입김보다 더 경할 수 있습니까?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이 듭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율법을 바로 알고 있고 그 율법에서 자기가 어떠한 죄를 지었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입김보다 더 경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입김보다 더 경한 죄를 가지고 누구는 무서워하고 있고 누구는 담대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담대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보다 죄를 적게 지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죄의 경량을 달아보면 입김보다 더 경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는 것을 알고 있고 율법 아래 있어서 죄를 진 나를 값을 주고 사서 이제 자유하게 하시고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다는 것을 믿는 성도는 담대합니다,
믿음의 차이입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그렇게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은 늘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실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자기가 이렇게 믿다가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무서워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주셔서 율법 아래 있는 나를 속량 하시고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율법에서 벗어나야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교회 안에서 아무리 아버지라고 불러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마음 가운데 보내 주셨습니다,
그런 성도만이 마음으로 믿어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주셔서 우리 마음이 믿어지는 역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이렇게 마음 가운데 와 있는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그런 성도만이 율법을 버리고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4:7절을 보겠습니다. (신 306쪽)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각 사람은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자녀이면,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런 성도는 이제 종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후입니까? 어렸을 때는 아들일지라도 종과 다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종과 다름이 없는가 하면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기 때문에 종과 다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종노릇하였습니다,
이 세상 초등학문에 종노릇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여자에게 나셔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습니다, 그렇게 여자에게 나셔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우리 성도들을 속량 하셔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속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 주셨습니다, 이렇게 아들의 영을 받은 성도는 이제는 종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종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진리를 알지 못해서 아니 진리의 영이 오시지 않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지 못해서 율법의 종이 되었는데 우리를 율법에서 속량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아들입니다,
3장까지 율법과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4장에 와서는 율법을 지키는 자들을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의 영을 받지 않은 사람은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며 그런 사람은 진리로 인도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8:36절을 보겠습니다, (신 159쪽)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이스라엘은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누구의 종이 되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다 율법에 의해서 종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종이 된 것을 주님께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종입니다,
우리도 어렸을 때는 이 세상 초등학문 아래 종노릇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실제 어린 나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막 교회에 나왔거나 복음을 들은 사람을 어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래 했을지라도 계속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아직까지 어린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들이 자유케 했습니다.
어디서 자유하게 하셨는가 하면 율법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그냥 자유 하라고 해서 자유하게 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어떻게 자유케 하셨는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입니다.
그들을 주님께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우리가 율법을 지킨 것으로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값을 지불하고 자유하게 하셨는데도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보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종이 아닙니다.
이제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를 지나오면서 교회는 급속하게 타락을 해서 다시 종으로 돌아가서 이제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솔직히 이 시대 종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율법의 종이 되어서 그것을 지키느라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들이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제는 종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말로만 종이 아니라고 하지 마시고 종이 아니면 종이 아닌 것처럼 행동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말로는 아들이라고 하면서 종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며 이런 사람은 반드시 종으로 살다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자유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을 보고 그 안에서 자기들이 종교생활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을 보면서 마치 자유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육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는 계속해서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이 누구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결국에는 가장 무서워하는 지옥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종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는 말씀을 안다고 해서 자유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 말씀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지금 이 시대 교회에서 자유 하는 성도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자유 한다는 것은 말이 성립 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아들이 자유케 해도 종이 되어 있습니다.
그냥 성경에 있는 말씀을 안다고 해서 자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 아무리 자유 한다고 해도 종이 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면 그는 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들을 보내사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 하셨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회의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할례 단 한 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에 대해서 얼마나 강경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저주를 받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저주를 받지 않는다면 사도 바울은 절대로 이렇게 강하게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성도로서 조금 더 의롭게 사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율법은 의롭다 함을 받아서 생명을 얻느냐 아니면 저주를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도로서 조금 더 의롭게 살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다면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은 우리가 보아서는 안 됩니다 아니 그것은 성경이라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왜 종이 아닙니까?
이제 저주 아래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었는데 주님이 오셔서 율법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하시고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 아들의 명분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아들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는 종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 시대는 거의 모든 사람이 율법의 종이 돼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들입니다.
아들이 자유케 하면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자유 하라고 하는데도 율법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해 주셨는데도 믿지를 않는다면 그는 어쩔 수 없이 종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종이 된 적이 없다고 했지만 실상은 율법의 종이 되어 있었습니다.
율법과 믿음입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묻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있는 사람은 종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주님이 율법 아래 있는 나를 속량해 주셨다는 것을 믿는 성도는 이제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 한 가지를 가지고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때문에 이 갈라디아서를 기록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십일조가 아닙니다.
주일이라는 날이 아닙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사도 바울이 가르친 갈라디아 교회인데 왜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몰랐겠습니까? 그런데 생각하지도 않았던 할례를 가지고 온 거짓 형제가 들어온 것입니다,
사실 할례는 율법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 내 육체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할레는 일생이 단 한번 내 육체에 하면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입니다, 일생에 한번 하는 할례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들어옴으로 해서 사도 바울이 그것이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할례를 행한다면 너희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할례는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시작으로 해서 솔직히 양 잡아서 제사 드리는 것 빼고는 거의 모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양자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종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들입니다.
반드시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종이 있고 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종은 유업을 받지 못하고 아들만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도 천국을 갈 수 있다면 좋은데 할례라는 단 한 가지의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유업을 받지 못한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8-9절을 보겠습니다, (신 365쪽)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아들입니다.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업이 천국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 유업을 어떻게 받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어떻게 가는가 하면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도 계속해서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를 묻고 있습니다.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누군가 하면 아브라함과 같이 갈바를 알지 못하나 믿음으로 간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 믿음에 행위를 포함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서 그가 어떻게 유업을 받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믿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믿는다고는 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이라는 것의 실상을 보면 종교적인 행위를 가지고 믿는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런 종교적인 행위가 없으면 반드시 믿음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데 그들이 하는 종교적인 행위를 하나도 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믿음이 없다고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자기들도 믿음으로 천국에 간다는 것은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드리는 예배를 자주 빠지고 있고 또 십일조를 내지 않고 있고 찬양도 부르지 않고 기도도 별로 하지 않고 하면 믿음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무엇입니까?
사실은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종교적인 행위를 할지 모르는 것이지 믿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을 가지고 믿음이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은 결국에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뜻이 되고 있지만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말하는 믿음이라는 것은 행위가 포함이 되어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마음으로 믿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으로 믿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가나 저가 동일한 약속을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거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속을 함께 받았습니다.
아브라함만 받은 것이 아니라 이삭도 받고 야곱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 유업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천국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유업을 어떻게 받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삭과 야곱이 있습니다. 이들이 동일한 약속으로 함께 유업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유업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유업이나 이삭이 받은 유업이나 야곱이 받은 유업이나 동일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생각으로 천국을 상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정도 다릅니까?
우리는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들의 언어로는 표현이 안 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 믿음이 내 안에서 역사를 해서 천국을 믿고 바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동일한 유업입니다.
천국은 누구에게나 동일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은 우리가 보는 눈과 지적인 능력이 있어서 그 어떤 것도 동일하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천국은 동일한 유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이성을 가지고 천국을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 거짓입니다.
천국에 대해서 간증을 하는 사람도 거짓이고 천국을 갔다 왔다고 하면서 책을 쓴 사람도 거짓입니다, 만약에 그렇게 표현이 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성경에 천국에 대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기록하게 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들이면 다 유업을 받습니다.
그 아들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오직 믿음으로 아들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들이 된 성도는 누구나 동일하게 약속을 유업으로 받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의 생각으로는 아니 언어로는 이것을 표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밖에 말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가 천국을 갔다 왔다고 하면서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갔다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가 상상하는 천국이지 실제 천국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종교에 너무 깊이 빠지면 사단이 그런 사람들에게 환상이나 꿈으로 보여 주게 됩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이 간증을 하러 다니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업입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누구는 더 많이 누구는 적게 받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사람들이 오해를 해서 누구는 열 고을의 권세를 받고 누구는 다섯 고을의 권세를 받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유입니다.
실제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마치 천국에서 이 세상의 계량의 단위로 그렇게 받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약속으로 유업을 받았습니다, 누가 더 많이 받고 누구는 적게 받는 것이 아니라 동일하게 약속으로 유업을 받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1:7절을 보겠습니다, (신 421쪽)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유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 반드시 유업을 받습니다. 이 유업은 주님이 오셨을 때 우리가 들어갈 천국입니다, 이 유업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반드시 예수님께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 하셔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야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은 못 들어갑니다.
교회 안에는 종이 있고 아들이 있습니다, 종은 율법을 지키는 자를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는 성도입니다,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율법 아래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속량 해 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합니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하고 이것들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내려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정한 것 같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정도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천국을 누가 받는가하면 이기는 자가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에서 하나님께 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니 우리의 이김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기는가 하면 믿음이 있는 성도가 이긴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이겼습니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사단을 이기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내가 이긴 것으로 믿는 성도가 이기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기신 것이 내가 이긴 것인데 이 시대는 자기들이 율법을 지켜서 죄를 안 져서 이기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유업을 받았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유업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종은 반드시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되어야 유업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누군가 하면 율법 아래 있는 자를 주님께서 속량해 주신 자가 아들이고 그 아들은 오직 믿음으로 이겨서 유업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 이김을 믿는 성도는 이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 예수를 믿어서 천국에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정말 많이 있지만 실제 아들이 되어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사람은 아주 적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실제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율법을 지키는 그 자체가 사단에게 종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만이 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속량해 주신 성도만이 그 마음 가운데 하나님께서 아들의 영을 보내 주시고 있습니다. 내가 속량을 받았는가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아직까지 율법 아래 있다면 그는 절대로 속량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을 유업으로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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