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갈라디아서 강해

갈라디아서 강해-23

윤주만목사 2016. 12. 5. 19:26

갈라디아서3:23절을 보겠습니다. (305)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죄 아래 가두는 어리석은 사람의 행위라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분명히 세상에서 법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의 생각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법대로 사는 순간에 죄 아래 갇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분명히 법대로 사는 것이 옳기 때문에 그리고 성경에서도 문자적으로 율법을 지키라고 하기 때문에 더욱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고 그 안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는 성도는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율법대로 살지 않고 있습니다.

 

저주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는 사람은 반드시 저주를 받습니다. 왜 저주를 받는가 하면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는 순간 우리는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켜야 하는 의무가 따르기 때문에 그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킬 수 없어 저주를 받고 또 율법의 문자보다는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알게 되면 내가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을 범한 자라는 것이 분명해서 저주를 받습니다.

 

율법을 지켰습니까?

거짓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알면 죄 아래 갇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죄 아래 갇혀 있다는 말씀은 나는 율법을 지킨다고 지켰는데 실상은 율법을 어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살인을 분명히 하지 않았는데 성경을 보니까 내가 살인자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살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도는 내가 살인자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살인한 자라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십일조를 내고 있으면 그 십일조를 범한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입니다.

우리는 어느 단 한 가지의 율법도 지킬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 한 가지는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씀을 드리면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것이지 실상은 지키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지키면 뭐 합니까?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처럼 내가 이레에 이틀을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다고 하면 뭐 합니까? 역시 그들도 죄인입니다 율법의 의미를 모르고 그저 문자적으로 지키고 있는 율법이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를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아담과 같이 범죄 한 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야곱과 같은 지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욥과 같이 벌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내가 율법을 지킨다고 해서 그것으로 깨끗해 질 수 있느냐는 것을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니 조금 지킨다 해서 그 지렁이가, 벌레가 깨끗한 사람이 될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는 율법의 감시를 받으면서, 장차 올 믿음이 나타날 때까지 갇혀 있었습니다.”

 

죄 아래 갇혔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시지 전까지는 율법 아래 매인바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죄 아래 가두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오셔서 우리가 믿기 전까지는 우리는 율법의 죄 아래 갇혀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율법주의입니다.

교회 안에 있던 교회 밖에 있던 모든 사람은 율법주의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 어느 종교가 율법을 폐하라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이 세상 어느 국가가 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태어나면서 율법 아래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설령 세상이 그렇지 않다 해도 어린 아이도 스스로 죄를 알고 있습니다,

 

잘못을 합니까?

그것을 모르는 아이가 있습니까?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 이상은 자기가 죄를 지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는 율법의 감시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

그 율법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성경을 보지 않아도 또 세상에서 배우지 않아도 남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이렇게 율법에 매여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우리 안에 오면 이제는 율법에서 자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8:2절을 보겠습니다. (249)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믿음이 오기까지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믿음의 비밀을 깨닫기 전에는 죄와 사망의 법아래 매인바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성경이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믿음이 오기 전까지는 모두가 죄와 사망의 법아래 매인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입술로 큰 소리를 친다 해도 그는 아직 믿음이 오지 않은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믿음이 오기 까지는 율법에 매인바 되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법에 매여 있는 사람은 믿음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매고 있습니다.

그물로 그리고 포승으로 우리를 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믿음밖에는 없습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이 그물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의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비밀을 모르면 죽을 때까지 율법에 의해서 매인바 되다가 저주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 안에 들어와서 주여 주여 하면서도 믿음이 없어서 아직까지도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아직 그들에게는 믿음이 오지 않았고 율법에 매여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죄와 사망의 법입니다.

물론 율법을 항상 다 지키면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에 성경은 죄와 사망의 법이라고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율법에 매여서 꼼짝을 못하고 있는 것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마귀에게 사로 잡혀 있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은 마귀의 자식들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유대인들을 사단의 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마귀의 자식들인가 하면 율법에 매인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 역시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도 율법을 지킨다면 더 이상 복음의 말씀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핑계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는 복음을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복음을 안다 해도 그것에 대한 행함이 없다면 그가 알고 있는 믿음이라는 것은 죽은 것임을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에서입니다.

반드시 해방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만은 괜찮겠지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한 가지가 나를 죄와 사망의 법아래 가두어 있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단 한 가지의 외식이 나를 죄와 사망의 법아래 가두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매여 있는 사람은 믿음의 비밀을 도무지 깨달을 수도 없고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단이 얼마나 지혜로운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지혜로는 사단에게 당할 수 없습니다. 그는 어떻게 하든지 우리 인생들을 율법에 매이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와 사망의 법아래 있게 함으로 해서 저주를 받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율법을 너무 미화하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는 사단에게 매여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율법 아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온 성도는 이 율법이 저주를 받게 한다는 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깨닫기 때문에 절대로 지키지 않습니다. 저주를 받게 하는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는 절대로 안 지킵니다, 몰랐을 때는 자기에게 독이 되는 것을 먹을지라도 일단 알게 되면 절대로 안 먹습니다.

 

그것을 고린도전서에서는 우상의 제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초대교회에 벌써 그렇게 우상의 제물을 먹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단은 어떻게 하든지 율법을 미화해서 우상의 제물로 먹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서도 성경에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그저 주는 그대로 받아먹고 있습니다.

 

율법 우상의 제물입니다.

십일조를 많이 낸 사람이 우상입니다, 십일조를 이야기할 때 록펠러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기도 록펠러와 같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아니 록펠러와 같이는 못되더라도 그렇게 십일조를 내고 싶어 합니다. 바로 이렇게 우상을 만들어서 제물로 먹이고 있지만 사람들은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단입니다.

록펠러 같은 우상을 만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그 우상의 제물을 먹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상의 제물을 먹은 사람은 이제 그것에 매여서 벗어나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한번 매이면 그것을 스스로 끊어 버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해방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 그것을 성경에서 밝히 보이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우상의 제물이 너무도 맛있기 때문에 율법에 매여 갇혀 있습니다. 아니 스스로가 우상이 되려고 하나님께 눈물을 흘려 가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24절을 보겠습니다. (305)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개인교사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게 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다시 국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성경을 보면서 이 시대 목사들이 국어를 얼마나 모르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이 말씀을 보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믿음이 오기까지 몽학선생이 되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에 나오면 먼저 율법을 배우고 그것이 몽학선생이 되어서 이제 믿을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다입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목사들이 갈라디아에서 몽학선생을 이야기를 할 때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앞뒤 문장은 생각하지도 않고 율법이 몽학선생이 되어서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해서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되어서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몽학선생에게 배워야 합니다, 그러니까 교회에 나오면 율법에 대해서 먼저 배워야 한다고 하면서 율법에 십일조가 있고 안식일이 있고 율법에 절기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율법을 지켜야 이제 우리 안에 믿음이 생겨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황당합니까?

국어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 국어를 모르더라도 갈라디아서를 계속해서 읽어왔다면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를 깨달을 수 있지만 그들은 율법에 매인바 되어서 어떻게 하든지 율법을 지키게 하려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율법이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키라고 했습니까? 지키지 말라고 했습니까? 아니 그것조차 깨달을 수 있는 기초적인 지식이 없다 보니까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자기들의 생각대로 하고 있고 사람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서 아!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먼저 몽학선생의 인도함을 받아야 하는구나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몽학선생의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다.

아니 당연히 몽학선생의 인도함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면서 목사들이 율법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고 율법을 지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고 있고 율법을 지키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몽학선생의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개인교사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너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한글도 모르는 그들이 히브리어로 헬라어로 지식의 부자가 되어서 그것을 교회 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몽학선생입니다.

우리가 몽학선생의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율법에 속한 자들은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자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율법은 범법함을 더하게 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율법은 우리를 능히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죽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율법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몽학선생입니다.

그런데 그가 한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앞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율법은 몽학선생인데 그가 한 것은 우리를 저주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가 이제까지 우리의 몽학선생이 되었는데 그것은 우리를 저주 받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개인교사 역할을 했습니다.

어떤 개인교사였습니까? 율법을 지키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율법은 범법함을 더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율법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었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이 몽학선생이니까 우리가 교회에 나오면 먼저 율법을 배우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 맞습니까?

 

아닙니다,

절대로 그런 뜻으로 몽학선생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율법은 몽학선생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율법을 지키라는 뜻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정말 이 시대 목사들은 무식할 정도로 국어를 모르고 있습니다. 국어를 모르다 보니까 성경을 바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몽학선생이 아닙니다,

선생이라고 하니까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이라는 그 단어만을 생각하고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면서 당연히 율법을 먼저 배워야 하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들이 교회 안에서 율법을 가르치고 있고 또 지키게 만들고 있습니다.

 

율법은 몽학선생입니다.

그러나 그 선생은 저주를 받게 했습니다. 그리고 범법함을 더하게 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를 모두 죄 아래 가두었습니다.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그것을 알고 있는 성도는 그 몽학선생이 가르치는 것을 알다보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몽학선생을 통해서 저주를 받고, 범법함을 더하고, 죄 아래 갇혀 있다 보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밖에 없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키라고 했습니까?

갈라디아서 시작부터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누구든지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다른 복음이 무엇인가 하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유대에서 온 거짓 형제가 가만히 들어와 할례를 받게 한 그것이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몽학선생의 인도함을 받게 했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그는 할례라는 단 한 가지의 율법 때문에 지금 이 말씀을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국어를 모르고 성경을 잘못해석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는 말씀을 이 시대 목사들은 국어를 모르다 보니까 율법을 지키라는 말씀으로 알고 교인들을 다 몽학선생에게로 인도를 해서 저주를 받게 만들고 있습니다.

 

몽학선생 아래 있었습니다.

이 세상 사상이 다 몽학선생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들은 성도들이 왜 다시 몽학선생에게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까? 성도는 이 세상에서 율법 아래 살다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그런 성도가 왜 다시 몽학선생에게로 가야 합니까?

 

몽학선생 아래 있었습니다.

그가 가르쳐 준 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의 행위로는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천국의 유업을 율법으로는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율법으로는 범법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이 아니라 죽게 하는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또 율법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몽학선생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율법을 통해서 그것을 깨달은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마치 율법을 지켜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단 한 가지의 율법을 지키는 것을 가지고 이 갈라디아서를 기록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오히려 몽학선생의 인도함을 받아야 그리스도께로 갈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에서 율법을 알고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보면 그가 몽학선생이 되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게 가르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율법을 알면 어떻게 됩니까?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를 받습니다. 율법은 범법함을 더하게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능히 우리를 살리지 못하게 하고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율법은 죄 아래 가두었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알고 있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몽학선생입니다.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데 선생이라는 단어가 좋은 의미를 갖다보니까 사람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그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줄로 알고 율법을 지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과는 전혀 다르게 이해를 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지혜 있다하면서 그것이 저주를 받게 하는 줄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5:55-56절을 보겠습니다, (284)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율법은 사망입니다.

몽학선생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몽학선생이 무엇을 가르쳐 주는 줄을 모르고 몽학선생을 따라가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계속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이 어떻게 하는 가를 몽학선생이 되어서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고 하기 보다는 율법의 행위에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율법을 보고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선생인데도 그것을 모르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율법이 사망을 가져 온다는 것을 성경에서 누누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을 지키는 것을 조금 더 의롭게 산다고 하는 그 생각을 떨쳐 버리지를 못하기 때문에 사망에 이르는 그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 합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지키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물론 그 율법이 사람의 이성에는 다른 사람보다 더 의롭게 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월등하게 의롭게 보인다 해도 역시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을 말아야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 죄가 어디서부터 오는가 하면 바로 율법이 있기 때문에 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사망을 당한다는 것을 아는 성도는 어느 누가 율법을 지키라 해도 그것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율법이 나에게 어떻게 몽학선생이 되는 줄도 모르고 그저 선생이라는 말에 좋은 의미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율법은 몽학선생이 되어서 그리스도께로 인도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아는 성도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거꾸로 보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는, 율법을 지키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아는 성도만이 율법이 몽학선생이 되어서 그리스도에게로 인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를 죽이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죽이는 것을 먹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죽인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은 주는 대로 그냥 받아먹고 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독을 주어도 받아먹는 것과 같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서 사망의 독으로 쏘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입니다.

그것은 율법을 통해서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사망으로 쏘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율법이 몽학선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망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축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저주가 함께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했습니다.

그렇게 인도함을 받은 성도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율법이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아는 성도는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믿음에 의지하고 있고 믿음에 굳게 서 있게 됩니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율법을 보고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저주를 받게 하는 율법을 지키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율법이 어떻게 나에게 몽학선생이 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오히려 율법을 지켜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말로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25절을 보겠습니다. (30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이미 왔으므로, 우리가 이제는 개인교사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이제 믿음이 왔습니다.

율법이 몽학선생이 되어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인도를 해 주니까 이제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이 몽학선생이 되지 않고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율법이 몽학 선생이 되는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율법이 몽학선생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몽학선생이 되어야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와서 믿을 수 있는데 율법이 전혀 몽학 선생이 되지 않다 보니까 믿음도 오지 않고 계속해서 율법에 매인바 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음이 왔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몽학 선생 아래 있지 않습니다. 더 이상 율법을 통해서 배울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에 대해서 다 배우지 않았습니까? 율법에 속한 자들은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자들은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율법으로는 유업을 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은 능히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망의 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율법으로는 범법함을 더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율법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습니다. 몽학 선생이 되어서 이것을 다 가르쳐 주었으면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말씀대로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왔습니다.

이러고도 믿음이 안 온다면 그가 더 이상한 사람입니다. 앞에서 말씀을 한 것을 몽학선생을 통해서 배웠는데도 믿음이 안 온다면 그는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몽학선생에게서 배웠는데도 믿음이 오지 않는다면 그는 정말로 이상한 사람입니다.

 

믿음이 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율법이 나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었습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온 성도는 이제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더 분명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까? 갈라디아서를 보고도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니 갈라디아서 뿐 아니라 모든 성경이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야고보서 강해에서 배워서 알겠지만 행함이 있는 믿음이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것 아닙니까?

 

누가 율법을 지키라고 합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지 않습니다, 저주를 받게 하는 그것을 왜 지키라고 하겠습니까? 사람들이 자기들의 이성을 가지고 성경을 보다보니까 성경을 오해를 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지 성경은 우리에게 절대로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말로만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믿음이 온 이후에는 몽학 선생 아래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안 지킨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나 모든 사도들은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 사도라도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왜 믿습니까?

어차피 율법 아래 있으면 저주를 받는데 왜 믿습니까? 몽학선생이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이 세상에서 신학 박사라 해도 율법이 몽학 선생이 되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을 모른다면 그는 아직 믿음이 오지 않은 사람이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함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처음부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지으실 때부터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주를 받는 율법을 지키게 하겠습니까? 어차피 저주를 받아서 모두가 사망에 이른다면 하나님께서는 애초부터 아담을 창조하시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율법입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율법입니다. 이제 믿음이 오고 나니까 더 이상은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믿음의 비밀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세상의 지혜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얼마나 오묘합니까?

사실 이 믿음이 온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율법을 깨닫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몽학 선생에게서 배우지 않고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유다서1:3절을 보겠습니다. (39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믿음이 왔습니다.

아니 믿음을 주셨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어떻게 주시는가 하면 반드시 몽학선생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율법으로는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가 율법을 지키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을 합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만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폐하여 졌다고 하는 사람은 혹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안 지키는 사람이 정말 어쩌다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것이 저주를 받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믿음이 온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단번이 주신 믿음의 도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있습니다. 믿음이 먼저냐 성령이 오시는 것이 먼저냐 하는 것은 논쟁의 의미가 없습니다. 동시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믿음이 오게 되면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 하는 것은 그가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면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처음이지만 나중에는 내 행위의 의까지도 버려야 합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외식으로 하고 있는 모든 행위도 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와 야고보서는 거의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역시도 행함이 있는 믿음을 말씀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이제 행함을 보임으로 해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갈라디아에서는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었는데 이제 그리스도에게 온 성도는 더 이상 몽학 선생 아래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이 문제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영혼이 생명을 얻느냐 사망에 이르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율법만 아닙니다. 성도는 외식도 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시대 역시 외식을 하면 반드시 화를 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싸우시기 바랍니다.

정말 처절할 정도로 이 문제를 가지고 싸워야 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는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것이 외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오면 그 싸움을 하게 됩니다. 그 싸움에서 지는 순간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성도는 싸워서 이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싸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율법을 지키고 있고 외식에 너무 깊이 빠져 있습니다, 힘써 싸워도 지는 것이 이 싸움입니다, 어느 정도로 싸워야 하는가 하면 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야 할 정도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행위만 보아도 그가 예수를 믿는지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 사람이 보아도 모를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 정도로 싸우지 않고는 여러분에게서 반드시 외식이 나타나게 되고 결국에는 화가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싸움에서 이기면 어떻게 됩니까?

더 이상 몽학 선생 아래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면 율법 아래 있습니다. 내가 어디 있는가를 모른다면 그는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 생명이 죽을 때 까지 이 싸움을 해야 하고 이기는 성도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26절을 보겠습니다, (305)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오직 믿음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은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그저 종교적으로 믿는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율법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일한 방법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물론 율법을 항상 다 지켜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다면 역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생명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키는 사람은 반드시 의롭다 함을 받아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사람이 없다고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죄인을 찾아 오셨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로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의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자기가 의인과 같이 보일지라도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의인이 없기 때문에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성경은 계속해서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자녀입니다.

그것은 우리 육체가 아닙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가 자녀가 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영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육체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죄인입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의인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된 것은 내 육체가 아니라 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치 내 육체가 의롭게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군가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도 그 사람은 구원파에서 조금 배웠던 사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는데 왜 우리를 죄인이라고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직 영과 육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 해도 이 육체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럼 누가 삽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육체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 죽은 육체를 의롭다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를 의롭다 한다는 말씀입니다,

 

아주 미묘합니다.

그러나 이런 한 가지 잘못된 사상을 가지게 됨으로 해서 영과 육을 정확하게 분별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또 마치 자기 육체의 어느 것이 포함이 되어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것 같이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육체가 아니라 내 안에 탄생한 그리스도 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것은 육체의 내가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직 영의 비밀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상이 다 샤머니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또 자기 육체가 아직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반드시 썩습니다,

지금은 살아 있다 해도 반드시 썩어 없어집니다, 그 중에 남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행한 어떠한 행위도 남아 있지 않고 또 마음도 남아 있지 않고 지적인 것도 남아 있지 않고 경건의 모양도 남아 있지 않고 모든 것이 다 썩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너희는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 합니다.

아니 목사들부터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육체를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도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말씀은 하와가 아담으로 탄생이 된 것같이 우리 역시 전혀 다른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탄생이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영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 육체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사랑하셔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아닙니다,

내 육체는 아담의 자녀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사람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영의 일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 육체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12절을 보겠습니다, (14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너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권세를 주셨다고 하니까 마치 이 세상에서 자기에게 어떤 능력이 임해서 그것을 행사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서 권세가 있다고 하면서 별의 별것을 다 하고 있습니다. 샤머니즘을 은사라고 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어떠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권세를 주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육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가지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성장을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많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고 있고 병자를 고친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았다고 하면서 그런 표적들을 보면서 마치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마귀도 역사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은 실상은 다 마귀의 역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귀가 주는 권세가 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에 사도들이 병자들을 안수해서 고치는 것을 보고 이 시대도 자기들이 그렇게 하는 일들을 통해서 마치 사도들의 권세가 자기들에게 임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게 하기 위해서 나타났던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지금과 같이 성경이 있었던 때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디어가 발달을 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라는 것을 알았던 때도 아닙니다, 그런 때에 사도들이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했던 능력입니다.

 

무슨 권세를 주셨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권세를 행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권세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는데 그 권세가 무엇인가 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권세라는 말씀입니다,

 

천국은 아무나 못 들어갑니다.

분명히 천사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가지게 되면 천사들도 우리에게 판단을 받기 때문에 능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이 부활을 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그 자체가 권세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권세가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는 세상 권세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을 대단한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는 종교가 너무 정치에 관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다 이 세상에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세를 나타내기 위해서 하고 있는 어리석은 일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 권세가 얼마나 큰 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누리는 권세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는 오히려 성도들이 얼마나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가지고 육의 일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습니다.

 

그것은 영의 부활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영접을 받아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비록 나그네로 험난하게 살아갈지라도 주님께서 오셨을 때는 그 권세가 얼마나 큰 가를 알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화해서 천국에서 썩지 않는 몸으로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세입니다.

 

갈라디아서3:27절을 보겠습니다. (306)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습니다.”

 

성경의 번역입니다.

제가 늘 말씀을 드리지만 한글개역성경은 정말로 잘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경을 다 이해하기가 힘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지금 새번역과 공동번역에서의 번역이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왜 제가 이 둘 다를 말씀하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글개역성경만으로도 성령의 감동을 받는 성도들은 충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성경에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참고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우리가 더 쉽게 복음을 알게 번역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이제 아들이 되었는데 어떻게 되었는가를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막연하게 보고 있고 또 너무 자기들이 알고 있는 문자를 보면서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자를 아는 것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성경에 있는 문자를 얼마나 많이 아는 가는 영혼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성경을 많이 아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가 믿음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또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이 말씀을 끄집어내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앞뒤에 있는 말씀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이 말씀을 아는 것으로 아니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이 말씀을 보고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무나 됩니까?

그냥 이 말씀만 가지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까? 믿음이라는 것을 갈라디아에서 계속해서 율법과 대비를 하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는 반드시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말씀을 가지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교회 안에서 물세례를 받는 그런 의식을 함으로 해서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으로 표적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물세례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것은 세례의 예표였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사도 바울이 모세에게 속하여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세례는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물세례입니다, 그 세례를 받았지만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세례는 그런 물세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물세례를 받았습니까?

그것으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의 종교 의식에 불과합니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그런 의식으로 말미암아 더욱 더 종교로 빠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내가 세례를 주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1:15-16절을 보겠습니다, (206)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성령론을 아카데미 강의에서 했습니다.

10회 이상을 강의를 했기 때문에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자기가 성령 세례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은 물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그가 성령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고 와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인 고넬료가 어떻게 성령 세례를 받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순절이 임해서 다락방에 있던 120여 문도가 성령을 받을 때와 같이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니까 고넬료의 가정에 성령이 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세례는 종교적인 행위입니다.

그것은 성령세례를 예표로 가르쳐 주는 세례입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 것과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가 교회 안에서 물로 세례를 받은 것으로 마치 성령세례를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

베드로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고넬료의 가정에서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입니다, 그는 율법적으로 살지도 않았고 그저 이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의롭게 산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도덕적으로도 의롭게 살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에게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청해서 말씀을 들으라고 해서 종을 보내서 베드로를 청해서 지금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자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어떻게 임하는가 하면 복음을 들을 때 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순절이 임하여 성령이 불의 혀 같이 임하는 것과 같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임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 세례는 말씀 그대로 물세례입니다, 요한의 세례를 받은 것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시대는 그 세례를 행하는 것으로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이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하셔서 천국에 올라가신 후에 우리에게 임하는 성령세례를 예표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주님이 승천하시고 난 후에 오순절이 임하니까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렇게 성령이 오시는 것을 성령세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물세례를 받았다 해도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베드로는 성령세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말씀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우리 안에 성령이 임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령이 임하면 성령으로 난 자가 되어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한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6:4절을 보겠습니다. (246)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는가 하면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례를 받은 자는 반드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죽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은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살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썩을 육체의 생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늘로부터 온 새 생명이 우리 안에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 육체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내 육체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 안에도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새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고 썩을 생명이 아니라 썩지 않고 영원히 사는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옷 입듯이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입니다. 의롭다 함을 얻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려다보니까 옷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옷을 입었다고 하니까 마치 우리가 진짜 흰 옷을 입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유입니다.

옷을 입는 것 같이 우리 안에 새 생명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말씀은 갈라디아서32절에서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고 묻고 있는 그 말씀의 대답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너희에게 성령이 임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새 생명이 옷 입었다는 말씀입니다.

의롭다 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옷 입었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실제 어떤 옷을 입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새 생명이 탄생한 것을 옷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우리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는 믿을 때 받습니다.

그냥 교회에 나와서 믿는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을 때 세례를 받을 수 있고 그때 내 안에 새 생명이 탄생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새 생명으로 행하는 성도는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새 생명 가운데 행할 수 없습니다. 믿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이 사실을 누가 믿을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은 믿을 수 없고 믿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의가 아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성도는 믿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이것이 믿어진다는 것은 스스로 속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문자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믿는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28절을 보겠습니다. (306)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가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육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차별이 없이 다 하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심어지는 십일조를 내지 않는다고 하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목사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방인이 십일조를 냈습니까?

아니 종이 십일조를 냈습니까? 종은 십일조를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육체의 모양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불행하게도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종교인만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종교에서 하고 있는 행위를 가지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과 같은 행위를 하면 천국에 간다고 말을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스스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기를 싫어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내는 것으로 하나가 되어 있고 주일이라는 날을 만들어서 11시에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식사할 때 기도를 하는 것으로 하나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종교로 하나가 되는 행위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까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율법의 행위냐 아니면 믿음이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유대인과 헬라인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또 종과 자주자 역시도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 또한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에서는 여자는 계수로 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라는 것은 용납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구조사를 합니다,

여자는 인구조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남자나 여자가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말씀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저 문자적으로 하나라고 하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형제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적으로 하나입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와 율법을 지키는 교회 안에 가라지는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믿는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는 믿음은 반드시 율법을 행위를 버렸을 때를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하나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믿음이 있는 성도라야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의 말씀을 듣고 성령이 임해서 믿고 있는 성도만이 새 생명이 탄생이 되고 그런 성도들을 하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하나라고 하는 것이지 육체의 모습을 보고 하나라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안에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렇게 믿는 믿음으로 하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율법을 지키거나 어떤 행위를 하는 것으로 하나라고 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성도만이 하나입니다.

 

그 세례가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이렇게 성령이 임해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을 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모두가 하나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내 안에서 역사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는 것이지 종교적인 행위를 보고 하나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안에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동일하게 믿는 믿음으로 새 생명이 탄생이 되는 것을 하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아담이 하와를 보고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한 것과 같이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이 임해서 하나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저 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또 교회에 나와서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말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가지고 이용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만 가지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물세례를 주고 자기들의 교회 안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마치 하나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고 그것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과 같이 우리 안에 새 생명이 탄생이 되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3:29절을 보겠습니다, (306)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약속을 따라 정해진 상속자들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교회 안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율법에 속해 있는 사람이 있고 그리스도께 속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율법에 속한 자는 자기 육체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그리스도께 속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마음으로 믿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다 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잘 믿고 율법도 잘 지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까지 무슨 말씀을 했습니까?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에 속한 자냐 아니면 믿음에 속한 자냐고 묻고 있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하나에 속하면 하나는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율법에 속한 자입니다. 그가 아무리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 해도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에 속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율법에 속한 자이지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두 주인입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성경에서 계속해서 그것을 말씀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인은 반드시 하나입니다.

어느 주인을 섬기느냐는 여러분이 결정할 일입니다, 그리고 한 주인은 반드시 저주를 주고 있고 한 주인은 반드시 생명을 주고 있습니다. 이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기면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세상의 지혜로 성경을 보면서 이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을 하나님을 잘 믿는 믿음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는 생명을 얻습니다. 갈라디아서3장은 계속해서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냐 듣고 믿음이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가 듣고 믿기도 하고 있고 율법의 행위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의 행위가 저주를 가져온다는 것을 모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데 있어 조금 더 의롭게 할 수 있는 선생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입니다,

그는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고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어디 속해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 율법을 모르는데서 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저 율법을 이 세상의 이성으로 생각하면서 누가 조금 더 의롭게 사는가 하는 차원에서 받아들이고 있고 그것이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아담에게 속한 자였습니다. 아담에게 속한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육체적으로 지켜야 하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지 못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죽은 성도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의 유업을 이을 자입니다.

15절에서 창세기의 예언의 말씀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그 자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영의 일입니다, 육체로는 우리 이방인은 절대로 아브라함이 자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 자손만이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입니다. 그 자손이 예수 그리스도인데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가 된 성도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인들은 자기가 어디에 속해 있는 줄을 전혀 모르고 그저 율법의 행위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나는 하나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한 몸인 것 같이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됩니다, 그렇게 하나가 된 성도는 창세기에서 예언을 하신 그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하나가 된 성도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천국의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을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이며 우리가 받을 하늘의 유업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의 일입니다.

육의 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내세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다시 태어나서 어떠한 형상으로 변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영의 비밀을 알려 하기 보다는 그저 종교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탄생한 새 생명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3:26절을 보겠습니다, (305)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오직 믿음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은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그저 종교적으로 믿는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율법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일한 방법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물론 율법을 항상 다 지켜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다면 역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생명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키는 사람은 반드시 의롭다 함을 받아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사람이 없다고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죄인을 찾아 오셨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로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의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자기가 의인과 같이 보일지라도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의인이 없기 때문에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성경은 계속해서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자녀입니다.

그것은 우리 육체가 아닙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가 자녀가 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영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육체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죄인입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의인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된 것은 내 육체가 아니라 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치 내 육체가 의롭게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군가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도 그 사람은 구원파에서 조금 배웠던 사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는데 왜 우리를 죄인이라고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직 영과 육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 해도 이 육체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럼 누가 삽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육체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 죽은 육체를 의롭다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를 의롭다 한다는 말씀입니다,

 

아주 미묘합니다.

그러나 이런 한 가지 잘못된 사상을 가지게 됨으로 해서 영과 육을 정확하게 분별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또 마치 자기 육체의 어느 것이 포함이 되어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것 같이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육체가 아니라 내 안에 탄생한 그리스도 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것은 육체의 내가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직 영의 비밀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상이 다 샤머니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또 자기 육체가 아직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반드시 썩습니다,

지금은 살아 있다 해도 반드시 썩어 없어집니다, 그 중에 남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행한 어떠한 행위도 남아 있지 않고 또 마음도 남아 있지 않고 지적인 것도 남아 있지 않고 경건의 모양도 남아 있지 않고 모든 것이 다 썩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너희는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 합니다.

 아니 목사들부터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육체를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도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말씀은 하와가 아담으로 탄생이 된 것같이 우리 역시 전혀 다른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탄생이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영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 육체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사랑하셔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아닙니다,

내 육체는 아담의 자녀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사람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영의 일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 육체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12절을 보겠습니다, (14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너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권세를 주셨다고 하니까 마치 이 세상에서 자기에게 어떤 능력이 임해서 그것을 행사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서 권세가 있다고 하면서 별의 별것을 다 하고 있습니다. 샤머니즘을 은사라고 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어떠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권세를 주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육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가지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성장을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많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고 있고 병자를 고친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았다고 하면서 그런 표적들을 보면서 마치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마귀도 역사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은 실상은 다 마귀의 역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귀가 주는 권세가 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에 사도들이 병자들을 안수해서 고치는 것을 보고 이 시대도 자기들이 그렇게 하는 일들을 통해서 마치 사도들의 권세가 자기들에게 임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게 하기 위해서 나타났던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지금과 같이 성경이 있었던 때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디어가 발달을 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라는 것을 알았던 때도 아닙니다, 그런 때에 사도들이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했던 능력입니다.

 

무슨 권세를 주셨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권세를 행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권세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는데 그 권세가 무엇인가 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권세라는 말씀입니다,

 

천국은 아무나 못 들어갑니다.

분명히 천사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가지게 되면 천사들도 우리에게 판단을 받기 때문에 능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이 부활을 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그 자체가 권세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권세가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는 세상 권세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을 대단한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는 종교가 너무 정치에 관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다 이 세상에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세를 나타내기 위해서 하고 있는 어리석은 일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 권세가 얼마나 큰 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누리는 권세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는 오히려 성도들이 얼마나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가지고 육의 일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습니다.

 

그것은 영의 부활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영접을 받아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비록 나그네로 험난하게 살아갈지라도 주님께서 오셨을 때는 그 권세가 얼마나 큰 가를 알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화해서 천국에서 썩지 않는 몸으로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세입니다.

 

갈라디아서 3:27절을 보겠습니다. (306)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습니다.”

성경의 번역입니다.

제가 늘 말씀을 드리지만 한글개역성경은 정말로 잘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경을 다 이해하기가 힘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지금 새번역과 공동번역에서의 번역이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왜 제가 이 둘 다를 말씀하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글개역성경만으로도 성령의 감동을 받는 성도들은 충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성경에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참고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우리가 더 쉽게 복음을 알게 번역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이제 아들이 되었는데 어떻게 되었는가를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막연하게 보고 있고 또 너무 자기들이 알고 있는 문자를 보면서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자를 아는 것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성경에 있는 문자를 얼마나 많이 아는 가는 영혼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성경을 많이 아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가 믿음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또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이 말씀을 끄집어내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앞뒤에 있는 말씀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이 말씀을 아는 것으로 아니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이 말씀을 보고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무나 됩니까?

그냥 이 말씀만 가지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까? 믿음이라는 것을 갈라디아에서 계속해서 율법과 대비를 하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는 반드시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말씀을 가지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교회 안에서 물세례를 받는 그런 의식을 함으로 해서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으로 표적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물세례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것은 세례의 예표였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사도 바울이 모세에게 속하여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세례는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물세례입니다, 그 세례를 받았지만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세례는 그런 물세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물세례를 받았습니까?

그것으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의 종교 의식에 불과합니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그런 의식으로 말미암아 더욱 더 종교로 빠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내가 세례를 주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1:15-16절을 보겠습니다, (206)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성령론을 아카데미 강의에서 했습니다.

10회 이상을 강의를 했기 때문에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자기가 성령 세례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은 물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그가 성령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고 와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인 고넬료가 어떻게 성령 세례를 받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순절이 임해서 다락방에 있던 120여 문도가 성령을 받을 때와 같이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니까 고넬료의 가정에 성령이 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세례는 종교적인 행위입니다.

그것은 성령세례를 예표로 가르쳐 주는 세례입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 것과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가 교회 안에서 물로 세례를 받은 것으로 마치 성령세례를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

베드로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고넬료의 가정에서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입니다, 그는 율법적으로 살지도 않았고 그저 이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의롭게 산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도덕적으로도 의롭게 살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에게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청해서 말씀을 들으라고 해서 종을 보내서 베드로를 청해서 지금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자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어떻게 임하는가 하면 복음을 들을 때 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순절이 임하여 성령이 불의 혀 같이 임하는 것과 같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임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 세례는 말씀 그대로 물세례입니다, 요한의 세례를 받은 것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시대는 그 세례를 행하는 것으로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이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하셔서 천국에 올라가신 후에 우리에게 임하는 성령세례를 예표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주님이 승천하시고 난 후에 오순절이 임하니까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렇게 성령이 오시는 것을 성령세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물세례를 받았다 해도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베드로는 성령세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말씀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우리 안에 성령이 임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령이 임하면 성령으로 난 자가 되어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한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6:4절을 보겠습니다. (246)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는가 하면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례를 받은 자는 반드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죽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은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살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썩을 육체의 생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늘로부터 온 새 생명이 우리 안에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 육체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내 육체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 안에도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새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고 썩을 생명이 아니라 썩지 않고 영원히 사는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옷 입듯이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입니다. 의롭다 함을 얻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려다보니까 옷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옷을 입었다고 하니까 마치 우리가 진짜 흰 옷을 입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유입니다.

옷을 입는 것 같이 우리 안에 새 생명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말씀은 갈라디아서 32절에서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고 묻고 있는 그 말씀의 대답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너희에게 성령이 임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새 생명이 옷 입었다는 말씀입니다.

의롭다 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옷 입었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실제 어떤 옷을 입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새 생명이 탄생한 것을 옷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우리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는 믿을 때 받습니다.

그냥 교회에 나와서 믿는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을 때 세례를 받을 수 있고 그때 내 안에 새 생명이 탄생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새 생명으로 행하는 성도는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새 생명 가운데 행할 수 없습니다. 믿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이 사실을 누가 믿을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은 믿을 수 없고 믿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의가 아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성도는 믿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이것이 믿어진다는 것은 스스로 속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문자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믿는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28절을 보겠습니다. (306)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가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육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차별이 없이 다 하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심어지는 십일조를 내지 않는다고 하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목사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방인이 십일조를 냈습니까?

아니 종이 십일조를 냈습니까? 종은 십일조를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육체의 모양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불행하게도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종교인만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종교에서 하고 있는 행위를 가지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과 같은 행위를 하면 천국에 간다고 말을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스스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기를 싫어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내는 것으로 하나가 되어 있고 주일이라는 날을 만들어서 11시에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식사할 때 기도를 하는 것으로 하나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종교로 하나가 되는 행위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까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율법의 행위냐 아니면 믿음이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유대인과 헬라인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또 종과 자주자 역시도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 또한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에서는 여자는 계수로 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라는 것은 용납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구조사를 합니다,

여자는 인구조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남자나 여자가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말씀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저 문자적으로 하나라고 하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형제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적으로 하나입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와 율법을 지키는 교회 안에 가라지는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믿는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는 믿음은 반드시 율법을 행위를 버렸을 때를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하나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믿음이 있는 성도라야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의 말씀을 듣고 성령이 임해서 믿고 있는 성도만이 새 생명이 탄생이 되고 그런 성도들을 하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하나라고 하는 것이지 육체의 모습을 보고 하나라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안에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렇게 믿는 믿음으로 하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율법을 지키거나 어떤 행위를 하는 것으로 하나라고 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성도만이 하나입니다.

 

그 세례가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이렇게 성령이 임해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을 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모두가 하나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내 안에서 역사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는 것이지 종교적인 행위를 보고 하나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안에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동일하게 믿는 믿음으로 새 생명이 탄생이 되는 것을 하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아담이 하와를 보고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한 것과 같이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이 임해서 하나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저 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또 교회에 나와서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말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가지고 이용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만 가지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물세례를 주고 자기들의 교회 안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마치 하나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고 그것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과 같이 우리 안에 새 생명이 탄생이 되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3:29절을 보겠습니다, (306)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약속을 따라 정해진 상속자들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교회 안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율법에 속해 있는 사람이 있고 그리스도께 속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율법에 속한 자는 자기 육체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그리스도께 속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마음으로 믿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다 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잘 믿고 율법도 잘 지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까지 무슨 말씀을 했습니까?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에 속한 자냐 아니면 믿음에 속한 자냐고 묻고 있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하나에 속하면 하나는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율법에 속한 자입니다. 그가 아무리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 해도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에 속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율법에 속한 자이지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두 주인입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성경에서 계속해서 그것을 말씀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인은 반드시 하나입니다.

어느 주인을 섬기느냐는 여러분이 결정할 일입니다, 그리고 한 주인은 반드시 저주를 주고 있고 한 주인은 반드시 생명을 주고 있습니다. 이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기면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세상의 지혜로 성경을 보면서 이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을 하나님을 잘 믿는 믿음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는 생명을 얻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은 계속해서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냐 듣고 믿음이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가 듣고 믿기도 하고 있고 율법의 행위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의 행위가 저주를 가져온다는 것을 모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데 있어 조금 더 의롭게 할 수 있는 선생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입니다,

그는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고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어디 속해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 율법을 모르는데서 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저 율법을 이 세상의 이성으로 생각하면서 누가 조금 더 의롭게 사는가 하는 차원에서 받아들이고 있고 그것이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아담에게 속한 자였습니다. 아담에게 속한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육체적으로 지켜야 하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지 못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죽은 성도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의 유업을 이을 자입니다.

15절에서 창세기의 예언의 말씀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그 자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영의 일입니다, 육체로는 우리 이방인은 절대로 아브라함이 자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 자손만이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입니다. 그 자손이 예수 그리스도인데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가 된 성도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인들은 자기가 어디에 속해 있는 줄을 전혀 모르고 그저 율법의 행위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나는 하나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한 몸인 것 같이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됩니다, 그렇게 하나가 된 성도는 창세기에서 예언을 하신 그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하나가 된 성도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천국의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을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이며 우리가 받을 하늘의 유업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의 일입니다.

육의 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내세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다시 태어나서 어떠한 형상으로 변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영의 비밀을 알려 하기 보다는 그저 종교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탄생한 새 생명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갈라디아서 강해-25  (0) 2016.12.06
갈라디아서 강해-24  (0) 2016.12.05
갈라디아서 강해-22  (0) 2016.12.05
갈라디아서 강해-21  (0) 2016.12.05
갈라디아서 강해-20  (0) 2016.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