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갈라디아서 강해

갈라디아서 강해-9

윤주만목사 2016. 12. 3. 20:53

갈라디아서2:4절을 보겠습니다. (303)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종교는 거대합니다.

종교만 거대한 것이 아니라 종교 지도자들 역시 거대한 산과 같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가 한 마디를 하면 모든 사람이 다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에게서 배운 모든 사람은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따라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억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도에게나 이방의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정말 천사와도 같고 그리스도와도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이지만 헬라인인 디도에게도 억지로 할례를 강요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갈라디아서는 할례를 말씀하고 있지만 그것은 율법 중에 어느 한 율법을 예로 들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누가 할례를 강요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마치 이 갈라디아서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당시 초대 교회에 할례라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다른 복음이 들어온 것이지 이 시대는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너무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강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에게 행위를 강요하는 것은 다 억지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직접적으로 강요를 하지 않더라도 다수가 그렇게 하고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억지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어느 한 가지도 억지로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어느 누구에게 단 한 가지라도 행위를 강요한 적이 있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계시가 된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오히려 율법주의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질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복음에 다 빠져 들어가 있으면서도 자기가 다른 복음을 듣고 있는지 아니면 복음을 듣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종교라는 거대한 힘에 의해서 끌려가고 있습니다. 마치 도살장으로 가는 소가 그저 앞을 보고 끌려가듯이 그렇게 이 시대 교인들은 율법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진노를 받습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반드시 진노를 받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교회는 어떻게 운영이 되고 누가 일을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왜 그것을 걱정하고 있습니까?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까지 누가 걱정을 했습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그것을 걱정했습니까?

아니면 이방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복음이 안 전해진다고 걱정을 했습니다. 그들이 걱정을 하든 안 하든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어머니 태로부터 택정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방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섭리를 하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전했습니까?

 

그들은 다른 복음이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 있으면 됩니다. 왜 그 외에 다른 것을 가지고 걱정을 하고 있습니까? 그 걱정이 결국에는 억지가 되고 있고 강요가 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감동이라는 말로 포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순전히 사람의 이성적인 감동이지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지키라고 감동하시지 않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몰래 들어온 거짓 신도들 때문에 할례를 강요받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자 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자유를 엿보려고 몰래 끼여든 자들입니다.”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도에게도 할례를 억지로 받게 하지 않았는데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가 할례를 강요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강요를 하는 할례가 다른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할례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한 가지라도 율법을 가지고 지키라고 강요를 하고 있다면 그는 거짓 형제라는 말씀입니다.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까닭이라

초대 교회에 벌써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가만히 들어왔다는 말씀은 들어왔는지 안 들어 왔는지도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사단은 이렇게 거짓 선지자들을 가만히 교회 안에 들여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몰래 들어옵니다,

어느 정도로 몰래 들어오는 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종교가 되어 있어서 그것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사실 이 갈라디아서를 사도 바울이 보낼 때만 해도 복음이 전파가 되었습니다. 먼저 복음이 전파가 되고 난 후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린도후서11:13-15절을 보겠습니다. (297)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고린도후서11장은 10장부터 연결이 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가 육체대로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않는다고 103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계속 연결해서 11장까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거짓의 사도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대로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육체대로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의 사도는, 거짓 형제는 육체대로 행하고 육체대로 싸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육체대로 싸우지 않고 있지만 거짓 형제는 육체대로 싸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냥 쉽게 지나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해가 안 되면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사람의 지식으로 보려하다가는 반드시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내가 세상에서 알고 있는 지식으로 보았을 때 성경이 그냥 해석이 되고 있다면 그것은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거짓 형제는 가만히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할 수만 있다면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고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큰 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쉬운 가를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쉬운가 하면 사람들이 이 거짓 사도나 선지자들에게 너무도 쉽게 빠져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그가 광명의 천사로 보입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보입니다. 그가 의의 일꾼으로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가 있는 석학이라 해도 이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아주 쉽게 이렇게 가장을 하고 있고 사람들을 교인들이 보면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광명의 천사로 의의 일꾼으로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기들이 거짓 선지자를 분별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들이 속이는 것이 아주 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쉬운가 하면 마치 어린 아이를 가르치는 것과 같이 쉽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합니까?

육체대로 행하면서 육체대로 싸우고 있습니다. 그 육체대로 싸우는 것이 사람의 이성에는 너무도 좋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단이 속이기도 전에 이미 그런 생각으로 사로 잡혀 있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쉬운가 하면 우리말에 누워서 떡먹기라는 말이 있지만 그 보다 더 쉬운 것이 바로 종교에서 거짓을 행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체대로 싸웁니다,

이것이 너무도 사람의 이성에는 바릅니다. 이 말씀이 무엇인가 하면 자기 육체로 율법을 지키려고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죄를 안 짓기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의롭게 살기 위해서 육체대로 싸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거짓은 이렇게 육체로 싸우는 그 모습을 보이면서 자기들이 성도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싸운다고 하니까 나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의롭게 살고자 하는 것 역시 싸우는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싸우는 것은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 강력한 진을 파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너무 육체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니 모르고 있습니다.

육체의 싸움을 하면서도 그것을 마치 영의 싸움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싸움이 다 육체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육체가 행하고 있는 것은 다 육체의 싸움입니다. 어느 행위에 대해서 통일을 하려고 하는 것은 다 육체의 싸움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까?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가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이 육체대로 싸우고 있으니까 광명의 천사와 같이 보이고 의의 일꾼과 같이 보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 싸움을 하는 그들을 보고 참 목사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싸움을 하는 종교가 바로 불교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주장합니까?

자기 육체와 싸워서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절에 가서 보시기 바랍니다, 스님들이 얼마나 육체와 잘 싸우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땡 중도 있겠지만 육체로 싸우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소유를 주장하고 있고 실제 성철 스님이라는 사람은 무소유를 실천을 해서 존경을 받았습니다.

 

무소유가 무엇입니까?

육체로 싸워서 이기는 것입니다. 무소유 그 자체가 싸움에서 이겼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두 가지 재물에 대해서 늘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의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무소유를 했으면 뭐 합니까? 그것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예레미야7:8절을 보겠습니다. (1061)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선지자들과 제사장들과 방백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육체로 싸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을 지키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입니다. 이스라엘의 방백들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 광명의 천사와 같은 목사들입니다, 또한 자기를 의의 일꾼인 것처럼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무익한 거짓말을 하고 있지만 그 무익한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이 시대 교인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거짓 형제는 무익한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7:18절을 보겠습니다. (359)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무익한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가 누군가 하면 전엣 계명을 지키라고 하는 사람이 거짓 형제라는 말씀입니다. 이 거짓 형제가 얼마나 가만히 들어왔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정말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가 있는 사람도 거짓 형제를 분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전엣 계명이 사람의 이성으로는 좋기 때문입니다.

십계명 중에 나쁜 것이 있습니까?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너무도 당연한 계명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계명이라고 할 것도 없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려하고 있습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 누가 도적질을 하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이 계명들이 무익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익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다면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의를 줄 수 없는 그것은 무익하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도덕책이 아니라 생명을 주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전엣 계명은 무익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율법을 폐해야 하는가 하면 그것은 무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광명의 천사로 가장을 해서 이 율법을 아주 잘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너희도 나와 같이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율법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의롭게 사는가 하는 문제의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고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생명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냥 도덕을 가르치는 이 세상의 책이 아니라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덕을 가르치면 율법을 지키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광명의 천사를 보면 아니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을 보면 존경을 하게 되고 그를 보고 나도 저와 같이 율법을 잘 지켜서 의롭게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익하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생명을 줄 수 있다면 무익하지 않지만 없기 때문에 무익하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성이 있습니다, 왜 저라고 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싶겠습니까? 남들과 같이 율법을 잘 지키고 하나님의 성도와 같이 살라는 말씀을 하는 것이 어렵겠습니까? 저도 사람들의 이성에 맞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익하다고 하면 무익하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성경을 보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악이라고 말씀을 합니까?

이 자체가 이단으로 공격을 받을 일입니다, 저도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감성적으로 그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말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아니라고 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습니다. 무익한 것을 말하는 자는 다 거짓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거짓이 무엇입니까?

무익한 것을 의뢰하는 것이 거짓입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율법을 잘 지키려고 노력을 했습니까?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익한 전엣 계명을 지키고자 노력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거짓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교회 안에 거짓이 난무하고 있지만 그것을 광명의 천사로 보고 있습니다.

 

율법도 빛이 납니다,

광명의 천사와 같다는 말씀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율법도 빛이 나기 때문에 그가 복음을 전하면서 다른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이 그 빛을 보고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 누가 감히 반대를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거짓입니다.

그렇게 육체로 싸워서 빛이 나는 것은 무익한 것이고 거짓이라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어떻게 하든지 이 빛을 더 내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자기에게서 그 빛이 나기 시작을 하면 너무 기뻐하고 있고 자기가 하나님을 아주 잘 믿는 것으로 착각을 하면서 그 일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거짓 형제입니다

할례를 받으라는 것이 얼마나 무익한 일입니까?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 할례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표징이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유월절을 먹으려면 이방인이라도 할례를 받으라고 말씀을 하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할레를 받는 것은 이성적으로 볼 때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누가 더 잘하는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는 할례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일이라는 날이 있고 또 십일조라는 것이 있습니다. 누가 주일을 반대를 합니까? 반대를 하는 사람이 옳습니까? 주일에 예배를 드리라고 하는 사람이 옳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고 그가 성경을 이 세상의 지식으로 배웠다면 당연히 주일에 예배를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들어왔습니다,

몰래 들어왔다는 말씀입니다, 이 주일을 지키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악을 행하는 것인지 사람의 이성으로 모르게 들어왔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악한 일이라고 하면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저를 공격할 것이 분명합니다, 할례를 하라고 하는 거짓 형제들이 사도 바울과 다툰 것 같이 공격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도 초대 교회는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성경을 가지고 정의를 내려 줄 사람이 없습니다, 이단이고 정통이고 할 것 없이 자기들이 주장하는 것이 다 옳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이단이고 정통이고 할 것 없이 한 결 같이 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율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어떻게 지키느냐의 차이입니다.

마치 구더기를 보면서 누가 더 깨끗한가를 논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그것을 가지고 다투고 있습니다, 그 무익한 것을 가지고 싸우고 있습니다. 거짓 형제가 누구인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정통이고 이단이고 할 것 없이 다 율법을 지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무익한 것을 가지고 지키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무익한 거짓말입니다,

거짓 형제는 그렇게 교회에 가만히 들어와서 어떻게 하든지 율법을 지키게 만들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 복음을 전한 교회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이 시대는 완전히 종교가 되었기 때문에 모두가 다 거짓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거짓인가 하면 무익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6:63절을 보겠습니다. (155)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주님은 생명의 떡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주님이 생명이 떡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떻게 알고 있는가 하면 성경에 그렇게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생명의 떡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이 지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생명의 떡이면 그것을 먹어야 합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이 생명의 떡이 아니라 주님만이 생명의 떡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저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그 말씀을 사람의 지식으로 알고 있고 생명의 떡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생명의 떡이면 생명을 얻기 원하는 사람은 성경에서 주님에 대해서 알아야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의 떡을 알면 뭐 합니까?

그것을 먹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에 나와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하고 그 안에서 전해지는 설교를 들으면 마치 생명의 떡을 먹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 교회 안에서 전해지고 있는 거의 모든 말들이 무익한 것들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설교 중간에 오직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 생명의 떡을 먹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이 밥을 먹고 있습니다. 그것은 육체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 음식에 독이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는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먹고 있는 음식에 청산가리가 조금이라고 들어 있다면 그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해도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독을 많이 먹어야 죽습니까?

밥에 아주 적은 양의 독만 있어도 사람은 죽습니다. 우리가 왕들을 독살하는 것을 보아서 알고 있습니다. 독살할 때 왕이 모르게 하기 위해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독을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어떤 것을 먹게 함으로 해서 아주 천천히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을 위해서 음식을 먹습니다.

그 먹는 중에 독이 아주 조금 들어가 있습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들어가 있지만 그것이 치사량이 되면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직 예수라는 말을 듣고서 마치 자기가 생명의 떡을 먹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교묘하게 그 떡에 치사량에 이르는 독을 넣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누룩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교병을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교병을 먹으라는 그 말씀은 독이 없는 떡을 먹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가 무교병을 먹고 있는지 독이 있는 무교병을 먹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무리 무교병이라 해도 그 안에 독이 들어 있다면 그 무교병을 먹고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아니 최고의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독이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굳이 제가 더 이상 설명을 안 드려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독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 독이 무익한 것입니다.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익한 것이기 때문에 피하라고 말씀을 합니다. 무익하다는 말씀은 그 안에 독이 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 독에 마비가 되어서 이제는 독이 없는 음식은 먹지도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리스도편지에서 오직 예수를 전하는데 왜 독을 안 집어넣느냐고 따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오직 예수를 믿으라고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독을 안 넣었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그 무익한 것에 너무 취해 있어서 그 독을 먹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치 마약에 중독이 되어서 자기 육체가 서서히 죽어가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영혼도 그렇게 죽어가고 있으면서도 그 영혼을 느끼고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독을 넣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무익합니다.

그것은 독이라는 말씀입니다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은 진노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진노를 자청하면서 독이 든 무교병을 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예수입니다.

예수라는 말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용납이 되고 있습니다. 무교병에다가 누룩을 잔뜩 섞어 넣었는데도 그것을 먹으면서 은혜를 받았다고 말 합니다. 얼마나 많은 무익한 것을 먹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오히려 감사해 하고 있고 은혜라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게 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그들에게는 없는 것 같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육은 무익하고 죽이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육체로 하는 모든 행위는 다 죽이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 해도 그것을 육체로 하는 사람은 독이 든 무교병을 먹고 있기 때문에 죽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백해무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흔히 담배를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담배를 기호 식품으로 즐기면서 그것으로 인하여 얼마나 해로운 것이 많이 있습니까? 많은 암의 원인이 그리고 심장병의 원인이 바로 담배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담배를 백해무익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로운 것이 없이 다 해롭다는 뜻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무엇이 그렇습니까?

율법의 모든 행위가 다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무익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살리는 영이 있는데 왜 백해무익한 육으로 하는 행위를 함으로 해서 스스로 사망의 길로 가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의 문자가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문자 그대로 보고 그것을 교회 안에서 행위로 하는 모든 것이 다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무교병을 못 먹게 하고 있고 그것으로 사망에 이르고 있지만 그 백해무익한 것을 사람들은 너무도 좋아하고 있습니다.

 

왜 좋아합니까?

사람들의 이성으로는 그것이 유익하게 판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백해무익한 그것이 좋은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깨닫지를 못하고 소경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이 말씀은 순수한 무교병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먹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무교병을 찾아서 먹지 않고 백해무익한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다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율법의 단 한 가지의 행위가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뭐가 오직 예수입니까? 백해무익한 것을 자기 육체로 행하면서 오직 예수라고 하는 것은 마치 마약을 하는 사람이 나는 마약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분명히 마약에 취해 있으면서도 자기는 마약을 하지 않고 정신이 멀쩡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이것을 먹입니까?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가 먹이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은 정말 세상 사람들이 들을 때 이성적으로 들려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백해무익한 것을 먹게 하는 거짓 형제를 광명의 천사로 보고 있고 의의 일꾼으로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이 말씀은 오직 예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이외에 성경에서 문자적으로 알고 있는 그것을 육체로 행하는 모든 행위는 육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육은 무익하다고 말씀을 하면 성도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육으로 하는 모든 행위를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살리는 영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의 말씀을 성경에서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가만히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키는 있는 그 율법이 그리고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무엇인가 하면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가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엿보고 종으로 삼고자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2:12절을 보겠습니다. (373)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우리의 자유를 엿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엿보고 있습니까? 이 사람들이 자유하는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는가를 엿보고 있습니다. 이 자유 하는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한다는 말씀은 야보고서에 이미 강해를 했기 때문에 자세히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모든 말씀은 다 복음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자유 하는 율법이 무엇입니까?

율법을 지켜서 자유 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 없지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요구를 이루시고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성도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었기 때문에 율법에 대해서 자유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안 지킵니다.

그리고 율법을 폐하여졌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의 이성에는 이 자유 하는 율법을 가지고 있는 성도는 율법을 지키지도 않고 심판을 받을 자처럼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면 아마도 거의 모든 율법주의자들은 저가 결국에는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입니다.

성도는 자유 하는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을 하고 있고 또 그것을 안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 형제는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저가 정말 심판 받을 자처럼 말을 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고 있습니다,

 

왜 보고 있습니까?

자유 하는 율법대로 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 틈을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은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율법에서 자유 했습니다. 그런데 거짓 형제가 들어와서 가만히 엿보다가 그 틈을 이용한 것이 바로 할례라는 말씀입니다, 왜 할례를 행하라고 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종으로 삼으려고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할례 그까짓 것 하나 어떻겠느냐고 말 합니다. 그런데 그까짓 것 좋은 것이 좋다고 하는 그 하나가 결국에는 온 덩이에 퍼지게 만든다는 것을 갈라디아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 그 하나로 끝이 나는 것을 아니라 할례를 하면 그 다음의 것을 요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종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초대교회에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이 전해져 있는 교회에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지금과 같이 모든 교회가 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엿보고 말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모두가 종이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가 종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교병을 먹였습니다. 지금 그런 교회에 거짓 형제가 들어왔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들어왔는가 하면 단 한 가지의 율법 할례를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마치 에덴에서 아담에게 선악과라는 단 한 가지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말씀을 하신 것과 같이 거짓 형제도 이렇게 단 한 가지를 가지고 들어온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율법주의 교회입니다.

이 시대는 율법주의가 아닌 교회가 없습니다. 아마도 교인들은 목사들의 말을 너무도 신뢰를 하다 보니까 구원파라는 교회가 마치 영지주의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구원파 역시도 율법주의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구원파 역시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주의가 아닌 교회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말로 율법을 폐했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것은 아주 교활한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차라리 이스라엘과 같은 율법주의가 그래도 더 솔직하고 낫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물론 제가 모르는 교회에서 복음이 전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교회는 다 율법주의가 되어 있고 이미 사단에 의해서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서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의 모양이 있다면 종입니다. 그런데 종으로 살고 있으면서도 자유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유하다고 말을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무식한 말인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유라고 하는 말의 뜻에서는 법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법이 있는 상태에서는 자유라고 하는 말은 절대로 성립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종교의 자유를 가지고 마치 자기들이 자유하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8:32절을 보겠습니다. (159)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진리이십니다, 또 진리의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아야 자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이 자유하다고 말을 하고 있으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정말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진리가 자유케 합니다.

그것은 진리를 알 때 가능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이 진리에 대해서 전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진리를 전해서 자유하고 있는 그 교회 안에 다른 복음을 가진 거짓 형제들이 들어와 그 자유를 엿보고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종을 삼으려고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그들이 자유하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온전히 지키지도 못하고 무거운 멍에를 매고 있는 그들이 자유하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라는 것은 자유를 누리 수 있어야 자유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 말로 자유 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 하는 것이 아니라 구속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유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그가 자유를 행하고 있어야 합니다. 구속이 되어 있으면서 종이 되어 있으면서도 자유 한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율법에 의해서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자유 한다는 것은 성립이 될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 진리가 무엇입니까? 조금 전에 말씀을 한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이런 말씀을 깨닫지도 못하는 그가 어떻게 자유할 수 있습니까? 성경에서 진리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진리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모든 구속의 일들이 포함이 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야고보서의 말씀도 이해를 못하는 그들이 어떻게 자유할 수 있습니까? 아니 어떻게 진리를 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중요한 일 중에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자유하게 하는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유하게 하는 율법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오히려 율법을 지키면서 자유 한다고 아주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들을 알고 믿는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유 하는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을 하고 행하기도 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이 말씀을 보고 오히려 거꾸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자유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것은 한 마디로 희극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그리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아무리 많이 알면 뭐 합니까? 또 히브리어를 알고 헬라어를 알면 뭐 합니까? 그것은 다 이 세상의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문자는 진리가 아닙니다, 그것을 진리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비유와 은유입니다, 그것을 아는 것을 가지고 마치 진리를 아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말씀에서 그림자를 걷어내고 또 은유와 비유를 바로 알아야 진리가 보일 수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는 진리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유를 빼앗기고 있고 종교에 의해서 종이 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모르면 죽습니다.

그러나 알면 삽니다. 성경에서 진리를 모르면 죽고 진리를 알면 살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의 문자는 절대로 진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책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을 아는 것으로 자기가 마치 진리를 아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다 보니까 종이 되어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11:20절을 보겠습니다. (298)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 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종으로 삼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진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종으로 삼으려고 하는 자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스스로 종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니 종이 안 되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종이 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아주 잘 용납을 하고 있습니다.

 

용납합니다.

그것은 스스로 종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거짓 형제가 들어와서 종을 삼기도 전에 스스로 종이 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말씀은 복음이 전해진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이미 313년을 지나오면서 아니 그 이전부터 종이 되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미 용납을 했습니다,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지도 너그럽게 용납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기를 종으로 삼고 자기의 뺨을 치는데도 그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인 다는 것이 어떻게 상식으로 이해가 됩니까?

 

하지만 그렇게 됩니다.

왜 그렇게 되는가 하면 그것이 바로 육체의 자랑이기 때문입니다.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의 이성으로는 너무도 좋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고 그 율법으로 자기 육체가 더 좋아지는 것을 사람들이 보기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 종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다 무엇입니까?

육체의 자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종이 되는 것도 육체의 자랑입니다. 잡아먹는 것도 육체의 자랑입니다 사로잡히는 것 역시도 육체의 자랑입니다, 뺨을 치는 것 역시 육체의 자랑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교회 안에서 육체의 자랑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체대로 싸우는 것입니다.

육체대로 싸우려고 종이 되고 있고 육체대로 싸우다 보니까 잡아먹히고 육체대로 싸우다 보니까 사로잡히고 육체대로 싸우다 보니까 뺨을 맞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나쁜 의미로 기록된 말씀들은 사람의 이성으로는 좋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육체로 싸우는 것에서 나옵니다.

또 그 싸워서 이긴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 안에서 너무도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진 초대 교회에 벌써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교회는 초대 교회와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있습니까?

물론 어딘가에는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눈으로 보고 있는 지금 한국에 있는 교회에서는 없다는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이 판단을 잘못 했다면 그것은 제가 주님으로부터 받을 벌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설교를 보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좋은 것이 좋다고 하는 사람은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초대교회는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이 들어오니까 너그럽게 받아들였습니다, 왜 그렇게 쉽게 너그럽게 받아들였는가 하면 사람의 이성으로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하니까 그것이 옳기 때문에 받아들였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라는 것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라고 하는 것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 은사가 나타내는 것을 누가 나쁘다 할 수 있습니까?

 

율법은 백해무익입니다,

그러나 은사는 필요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은사 자체를 전혀 부정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은사가 필요악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모르면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도 필요악이 되고 있고 기도도 필요악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이 시대 부르고 있는 찬양이라고 하는 것은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는 것도 은사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 은사가 필요는 합니다, 하지만 이 은사가 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게 되면 결국에는 악으로 변해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백해무익하고 필요악인 그것들이 너무도 좋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종이 되기를 원하고 있고 그런 것을 행하는 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다릅니다.

복음이 전해지지도 않는 상태에서는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말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교회에서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지 이 시대 교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복음이 없고 다른 복음만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구원을 받을 사람 없습니다. 장로교인도 안 되고 감리교인도 안 되고 침례교인도 안 되고 성결 교인도 안 됩니다, 이단은 아예 제가 말씀을 드리지도 않겠습니다. 거짓 형제들은 이렇게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엿보고 종교로 만들어서 모든 사람을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요한계시록13장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가 짐승이 되어서 모두가 사망이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교회가 또 짐승이 되었습니다. 성도가 얼마나 적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이미 이방의 교회는 짐승에게 절하고 있고 그에게 표를 받아서 매매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짐승에게 들어가고 있습니다.

복음이 있는 주님의 교회가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시대 교회에 나간다는 것은 그대로 짐승에게 사로잡힌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이 있는 교회가 있어야 그 안에서 복음을 듣고 그 이후에 짐승에게 사로잡히고 말 것이 있는데 이 시대는 교회에 들어가는 순간에 모두가 짐승에게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복음이 없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불행한 사실입니다, 차라리 이 나라에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복음이 들어와도 구원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는데 기독교라는 종교가 들어와서 인구의 3분의 1일 다 짐승에게 사로잡히게 만들고 있습니다.

 

종이 되었습니다.

사로 잡혔습니다. 그러면서도 너그럽게 용납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너무 좋아서 그 안에서 그렇게 사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있고 자기들이 성도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작은 소자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그런데 그 짐승에게 사로잡혀서 그 안으로 많은 소자들을 경쟁적으로 이끌어 들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차라리 예수를 안 믿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 주님께서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던지는 것이 낫다고 하셨는가 하면 그들이 받을 형벌이 너무 크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대한 짐승은 이스라엘을 다 종으로 삼고 사로잡았습니다. 또 다른 짐승 하나가 이방의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종으로 삼고 사로잡았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짐승에게 사로잡히는 자는 차라리 그가 낳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누리고 있는 그 기쁨이 반드시 통곡의 날로 다가올 것입니다.

 

갈라디아서2:5절을 보겠습니다, (303)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잠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진리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의 진리를 보존하려고 우리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복음입니다.

그들은 거짓 형제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성도들을 미혹을 하고 있는가 하면 아주 타당성이 있는 율법 한 가지를 가지고 들어와서 그것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종을 삼고 있습니다, 그 하나에 종이 되는 순간에 점점 더 많은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고 결국에는 짐승에게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잠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조금도 양복하지 않았습니다, 새번역이나 공동번역이나 똑같이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거짓 형제들이 들어왔지만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믿음에 든든히 서 있어서 잠시도 굴복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갈라디아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가지고 들어온 것이 무엇인가 하면 할례입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유월절을 먹으려면 반드시 이방인이라도 할례를 받고 먹어야 한다는 구약의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고 거짓 형제들이 들어와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성도들을 종으로 삼고자 했다는 말씀입니다,

 

초대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격려를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는 분명히 일시라도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부는 할례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어떻게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주 작은 것 양보 하나가 결국에는 종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조금도 양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복음을 듣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많은 것으로 넘어진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단 한 가지의 양보가 결국에는 짐승의 종이 되고 그에게 사로잡혀서 사망으로 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은 또 다른 양면이 있습니다. 이 성경을 보고 이스라엘이 율법주의가 되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역시 율법주의가 되었고 이스라엘에 하나를 더 얹어서 은사주의까지 성행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하나가 지금의 교회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너무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육체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육체의 싸움이라는 것을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 육체로 행하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사람은 성경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습니다.

거짓 형제가 무엇을 가지고 이야기를 합니까?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종으로 삼으려고 하고 있고 굴복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없는 말씀을 가지고 하면 절대로 종이 되지도 않고 사로잡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종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할례 얼마나 타당성이 있습니까?

아브라함에게 이미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집에 있는 종이라도 다 할례를 받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할례를 받은 사람만이 유월절을 먹을 수 있습니다. 이제 막 이방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때에 할례는 그들에게 있어 너무도 당연한 표징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지금 이 시대와 같이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너무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사단에게 세뇌가 되어 있는지 율법이 믿음이 되어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지각이 없어 성경을 보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단 한 가지의 율법이고 단 한 가지의 행위고 단 한 가지의 은사가 그렇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금도 양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에 대해서 양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다른 복음에 대해서 양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교회는 양보하고 말 것이 없습니다, 이미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 안에서는 은사를 서로 자랑하고 있고 그 은사를 통해 감성적으로 감동을 받는 그것으로 자기가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이성을 상실하게 만들어서 복음을 알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내가 진리에 서 있을 때입니다,

그때 양보하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진리에서 멀어진 사람들은 양보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미 종이 되어 있고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양보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미 다른 복음에 복종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지금 갈라디아서의 이 말씀이 해당이 안 됩니다.

 

율법을 모릅니까?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 율법을 모릅니까? 그것을 믿음이라는 말로 복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아무리 믿음이라고 강변을 해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율법으로 정하셨으면 율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는데 내가 믿음이라고 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겠다는 사람입니다.

 

안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을 합니까?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성경 어디에도 율법을 믿음으로 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누가 그런 말씀을 기록했는지 성경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왜 성경에도 없는 말을 자기들이 만들어서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되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로마서10:3절을 보겠습니다. (25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복종치 않았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을 해야 합니다. 나의 의와 하나님의 의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늘 말씀을 드렸습니다. 내 의가 나타나면 하나님의 의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면 내 의는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 의와 하나님의 의는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지금 로마서에서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을 하니까 내 의에 복종을 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내 의가 어디서 나오는가 하면 율법에서 가장 먼저 나오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나오고 있고 은사에서도 나옵니다, 그러나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것에 복종을 하는가 하는 싸움입니다.

내 의를 세우려고 율법에 복종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를 세우려고 복음에 복종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내 의도 세우고 하나님의 의도 세운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얼마나 사람의 이성으로는 좋게 받아들여집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종이 되고 사로잡히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옳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입니다, 성경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왜 사람의 이성을 이야기 합니까?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것에 복종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구원을 받기도 하고 또 저주를 받기도 합니다,

 

할례 사람의 의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육체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말 복음에 복종을 하고 있는 성도는 이런 사람의 육체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그 의에 복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을 하니까 사람의 육체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그것에 복종치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할례입니다.

그것은 율법을 대표하는 한 가지입니다. 할례에 복종을 하는 것은 그 할례 한 가지에 복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율법에 복종을 하게 되고 율법에 종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하나님의 의를 가르쳤습니다, 이 복음을 들었기 때문에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다른 복음에 복종치 아니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러면 다른 복음은 무엇인가 하면 바로 내 의입니다. 내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내가 성화가 되기 위해서 성도로서 살아가는 모양을 내고 있습니다, 내 육체를 통해서 은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켜라

은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는 것 내 육체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모든 것을 하라고 하는 것이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주님께서 부탁하신 말씀과 같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써 행해야 합니다. 제가 그것까지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복음을 전합니까?

그러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어느 교회는 선교사를 많이 파송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교회 건물도 짓지 않고 외국에는 교회를 짓고 또 선교사들을 파송하면서 복음을 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선교사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 해외에서 복음을 잘 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율법에 있는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은 자기들이 하는 십일조를 아까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가 내고 있는 십일조를 통해서 복음이 전파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으면서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십일조를 냈습니다, 그것은 내가 믿음으로 했든 아니면 하나님께 감사를 해서 했든 아니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든 내가 했으면 내 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십일조는 분명히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율법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까?

그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다른 복음을 듣고 있고 그 다른 복음에 복종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선교 좋습니다. 제가 그것을 반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을 가지고 하는 그 선교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것을 통해서 영혼이 구원을 받습니까? 기독교라는 교인을 많이 교회 안으로 불러들일지 몰라도 성도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다른 복음에 복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자기들은 다른 복음에 복종을 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다른 복음에 복종이 되어 있는 사람은 아니 짐승에게 사로 잡혀 있는 사람은 성경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아니 종교인으로 평생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살다가 지옥으로 가서 고통 중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 십일조를 내기 위해서 얼마나 힘쓰고 있습니까? 정말 그 십일조를 내서 다른 나라에 교회가 하나 세워지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감동을 받고 있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내 의고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십일조를 믿음으로 드린다는 정신 나간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이지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내 의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어서 했다고 해도 그것은 내 의고 율법을 지키는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이며 그것을 오직 믿음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율법으로 기록이 되어 있으면 율법입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다른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다른 복음에 복종을 해서 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용납 하시겠습니까? 그것은 잘하는 일이 아니라 저주를 받을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복음에 복종을 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사도 바울이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싸움입니다.

내의와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의 싸움입니다. 어느 것에 복종을 하느냐에 따라 그 영혼이 구원을 받기도 하고 진노를 받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반드시 하나에 복종을 하면 하나는 복종치 않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편40:11절을 보겠습니다. (831)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 그치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다른 복음에 복종치 마시기 바랍니다.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로 항상 함께 있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진리로 있어야 하는데 다른 복음이 이 시대는 교회 안에 가득차 있어 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거짓 형제의 종이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가 누구의 종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

이것을 사람의 이성으로는 분별하지 못 합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주의 긍휼을 네게 그치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해 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다른 복음에 빠지는 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다른 복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오히려 스스로 그 다른 복음 안으로 들어가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정말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우리가 복음의 진리로 항상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성경을 보고 복음을 깨달았습니까? 또 그 복음을 듣고 있습니까? 이것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은혜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기독교라는 종교가 세상에 전파되는 것을 보면서 다수가 그 종교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한다 해서 사람들은 자기들이 복음 안에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계속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자기들은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이 세상에 죄인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서 율법주의가 되었고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율법주의가 되어 자기의 의를 가지고 있는 것을 주님께서는 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역시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 자기들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그것을 믿음으로 행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복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다 계시를 해 주셨지만 그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다가 결국에는 스스로 율법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주의 은혜로 복음 안에 있어야 하는데 성경을 보면서 스스로 다른 복음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항상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가 항상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양보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복음의 진리에 든든히 서 있지 않으면 반드시 다른 복음에 굴복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복음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복음도 모르고 있고 진리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종교만 있습니다.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고 있고 그 외에 모든 것은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로 사람들을 전도하고 있고 그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가 또 다른 나라에 선교를 하러 가고 있습니다. 그 종교가 우리나라에 기독교라는 종교를 전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복음과 다른 복음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들의 입으로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주여 주여 하고 부르고는 있지만 실상은 믿음이 없는 다른 복음에 의해서 종이 되었고 사로잡혀 있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기독교인이지 그리스도의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가 항상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다른 복음에 복종을 해서는 안 됩니다, 단 한 가지의 율법이 그리고 행위가 또 은사가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그 모든 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할례만 다른 복음이 아니라 율법에 어느 한 가지라도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율법에다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또 다른 행위들이 있습니다.

 

요한복음17:26절을 보겠습니다. (178)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입니까? 물론 그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이름은 나를 구원하실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이 세상을 사랑 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확증하셨다고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주의 이름입니다. 성경에서 그 이름의 뜻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그것을 다 설명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이름의 결국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신 사랑이 우리 안에 있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은 진리입니다.

진리가 항상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 진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보고 있습니까?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그저 문자적으로 보고 그것을 우리의 몸으로 행하라고 하면 그것은 다 다른 복음입니다.

 

이 다른 복음에 복종치 아니하였습니다.

조금이라고 양보를 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항상 우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복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다른 복음에 복종하지 않게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진리가 항상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진리를 아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이 무엇이라는 것도 또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실 진리를 아는 것만큼 다른 복음을 아는 것도 어렵습니다. 아니 이 두 가지는 늘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항상 진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다른 복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진리 안에 있지 않으면 반드시 다른 복음에 종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그래도 사도 바울이 진리를 전하니까 다른 복음이 들어왔을 때 그것에 굴복하지도 않았고 잠시도 양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는 이미 313년이 지나면서 다른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 다른 복음이 1700년 가까지 계속해서 전해졌다고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가 항상 있게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도 나도 저희 안에 있는 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가 되어 있는 성도는 거짓 형제가 다른 복음을 가지고 가만히 들어올 때 잠시도 굴복하지 않을 수 있고 양보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8:32절을 보겠습니다. (159)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진리이십니다, 또 진리의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아야 자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이 자유하다고 말을 하고 있으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정말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진리가 자유케 합니다.

그것은 진리를 알 때 가능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이 진리에 대해서 전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진리를 전해서 자유하고 있는 그 교회 안에 다른 복음을 가진 거짓 형제들이 들어와 그 자유를 엿보고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종을 삼으려고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그들이 자유하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온전히 지키지도 못하고 무거운 멍에를 매고 있는 그들이 자유하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라는 것은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자유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 말로 자유 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 하는 것이 아니라 구속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유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그가 자유를 행하고 있어야 합니다. 구속이 되어 있으면서 종이 되어 있으면서도 자유 한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율법에 의해서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자유 한다는 것은 성립이 될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 진리가 무엇입니까? 조금 전에 말씀을 한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이런 말씀을 깨닫지도 못하는 그가 어떻게 자유 할 수 있습니까? 성경에서 진리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진리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모든 구속의 일들이 포함이 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야고보서의 말씀도 이해를 못하는 그들이 어떻게 자유 할 수 있습니까? 아니 어떻게 진리를 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중요한 일 중에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자유하게 하는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유하게 하는 율법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오히려 율법을 지키면서 자유 한다고 아주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들을 알고 믿는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유 하는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을 하고 행하기도 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이 말씀을 보고 오히려 거꾸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자유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것은 한 마디로 희극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그리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아무리 많이 알면 뭐 합니까? 또 히브리어를 알고 헬라어를 알면 뭐 합니까? 그것은 다 이 세상의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문자는 진리가 아닙니다, 그것을 진리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비유와 은유입니다, 그것을 아는 것을 가지고 마치 진리를 아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말씀에서 그림자를 걷어내고 또 은유와 비유를 바로 알아야 진리가 보일 수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는 진리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유를 빼앗기고 있고 종교에 의해서 종이 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모르면 죽습니다.

그러나 알면 삽니다. 성경에서 진리를 모르면 죽고 진리를 알면 살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의 문자는 절대로 진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책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을 아는 것으로 자기가 마치 진리를 아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다 보니까 종이 되어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20절을 보겠습니다. (298)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종으로 삼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진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종으로 삼으려고 하는 자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스스로 종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니 종이 안 되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종이 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아주 잘 용납을 하고 있습니다.

 

용납합니다.

그것은 스스로 종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거짓 형제가 들어와서 종을 삼기도 전에 스스로 종이 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말씀은 복음이 전해진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이미 313년을 지나오면서 아니 그 이전부터 종이 되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미 용납을 했습니다,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지도 너그럽게 용납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기를 종으로 삼고 자기의 뺨을 치는데도 그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인 다는 것이 어떻게 상식으로 이해가 됩니까?

 

 하지만 그렇게 됩니다.

왜 그렇게 되는가 하면 그것이 바로 육체의 자랑이기 때문입니다.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의 이성으로는 너무도 좋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고 그 율법으로 자기 육체가 더 좋아지는 것을 사람들이 보기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 종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다 무엇입니까?

육체의 자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종이 되는 것도 육체의 자랑입니다. 잡아먹는 것도 육체의 자랑입니다 사로잡히는 것 역시도 육체의 자랑입니다, 뺨을 치는 것 역시 육체의 자랑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교회 안에서 육체의 자랑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체대로 싸우는 것입니다.

육체대로 싸우려고 종이 되고 있고 육체대로 싸우다 보니까 잡아먹히고 육체대로 싸우다 보니까 사로잡히고 육체대로 싸우다 보니까 뺨을 맞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나쁜 의미로 기록된 말씀들은 사람의 이성으로는 좋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육체로 싸우는 것에서 나옵니다.

또 그 싸워서 이긴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 안에서 너무도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진 초대 교회에 벌써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교회는 초대 교회와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있습니까?

물론 어딘가에는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눈으로 보고 있는 지금 한국에 있는 교회에서는 없다는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이 판단을 잘못 했다면 그것은 제가 주님으로부터 받을 벌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설교를 보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좋은 것이 좋다고 하는 사람은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초대교회는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이 들어오니까 너그럽게 받아들였습니다, 왜 그렇게 쉽게 너그럽게 받아들였는가 하면 사람의 이성으로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하니까 그것이 옳기 때문에 받아들였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라는 것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라고 하는 것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 은사가 나타내는 것을 누가 나쁘다 할 수 있습니까?

 

율법은 백해무익입니다,

그러나 은사는 필요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은사 자체를 전혀 부정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은사가 필요악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모르면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도 필요악이 되고 있고 기도도 필요악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이 시대 부르고 있는 찬양이라고 하는 것은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는 것도 은사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 은사가 필요는 합니다, 하지만 이 은사가 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게 되면 결국에는 악으로 변해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백해무익하고 필요악인 그것들이 너무도 좋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종이 되기를 원하고 있고 그런 것을 행하는 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다릅니다.

복음이 전해지지도 않는 상태에서는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말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교회에서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지 이 시대 교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복음이 없고 다른 복음만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구원을 받을 사람 없습니다. 장로교인도 안 되고 감리교인도 안 되고 침례교인도 안 되고 성결 교인도 안 됩니다, 이단은 아예 제가 말씀을 드리지도 않겠습니다. 거짓 형제들은 이렇게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엿보고 종교로 만들어서 모든 사람을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요한계시록 13장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가 짐승이 되어서 모두가 사망이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교회가 또 짐승이 되었습니다. 성도가 얼마나 적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이미 이방의 교회는 짐승에게 절하고 있고 그에게 표를 받아서 매매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짐승에게 들어가고 있습니다.

복음이 있는 주님의 교회가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시대 교회에 나간다는 것은 그대로 짐승에게 사로잡힌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이 있는 교회가 있어야 그 안에서 복음을 듣고 그 이후에 짐승에게 사로잡히고 말 것이 있는데 이 시대는 교회에 들어가는 순간에 모두가 짐승에게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복음이 없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불행한 사실입니다, 차라리 이 나라에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복음이 들어와도 구원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는데 기독교라는 종교가 들어와서 인구의 3분의 1일 다 짐승에게 사로잡히게 만들고 있습니다.

 

종이 되었습니다.

사로 잡혔습니다. 그러면서도 너그럽게 용납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너무 좋아서 그 안에서 그렇게 사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있고 자기들이 성도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작은 소자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그런데 그 짐승에게 사로잡혀서 그 안으로 많은 소자들을 경쟁적으로 이끌어 들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차라리 예수를 안 믿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 주님께서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던지는 것이 낫다고 하셨는가 하면 그들이 받을 형벌이 너무 크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대한 짐승은 이스라엘을 다 종으로 삼고 사로잡았습니다. 또 다른 짐승 하나가 이방의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종으로 삼고 사로잡았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짐승에게 사로잡히는 자는 차라리 그가 낳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누리고 있는 그 기쁨이 반드시 통곡의 날로 다가올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5절을 보겠습니다, (303)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잠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진리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의 진리를 보존하려고 우리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복음입니다.

그들은 거짓 형제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성도들을 미혹을 하고 있는가 하면 아주 타당성이 있는 율법 한 가지를 가지고 들어와서 그것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종을 삼고 있습니다, 그 하나에 종이 되는 순간에 점점 더 많은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고 결국에는 짐승에게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잠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새번역이나 공동번역이나 똑같이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거짓 형제들이 들어왔지만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믿음에 든든히 서 있어서 잠시도 굴복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갈라디아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가지고 들어온 것이 무엇인가 하면 할례입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유월절을 먹으려면 반드시 이방인이라도 할례를 받고 먹어야 한다는 구약의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고 거짓 형제들이 들어와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성도들을 종으로 삼고자 했다는 말씀입니다,


초대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격려를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는 분명히 일시라도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부는 할례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어떻게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주 작은 것 양보 하나가 결국에는 종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조금도 양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복음을 듣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많은 것으로 넘어진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단 한 가지의 양보가 결국에는 짐승의 종이 되고 그에게 사로잡혀서 사망으로 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은 또 다른 양면이 있습니다. 이 성경을 보고 이스라엘이 율법주의가 되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역시 율법주의가 되었고 이스라엘에 하나를 더 얹어서 은사주의까지 성행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하나가 지금의 교회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너무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육체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육체의 싸움이라는 것을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 육체로 행하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사람은 성경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습니다.

거짓 형제가 무엇을 가지고 이야기를 합니까?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종으로 삼으려고 하고 있고 굴복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없는 말씀을 가지고 하면 절대로 종이 되지도 않고 사로잡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종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할례 얼마나 타당성이 있습니까?

아브라함에게 이미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집에 있는 종이라도 다 할례를 받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할례를 받은 사람만이 유월절을 먹을 수 있습니다. 이제 막 이방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때에 할례는 그들에게 있어 너무도 당연한 표징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지금 이 시대와 같이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너무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사단에게 세뇌가 되어 있는지 율법이 믿음이 되어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지각이 없어 성경을 보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단 한 가지의 율법이고 단 한 가지의 행위고 단 한 가지의 은사가 그렇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금도 양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에 대해서 양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다른 복음에 대해서 양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교회는 양보하고 말 것이 없습니다, 이미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 안에서는 은사를 서로 자랑하고 있고 그 은사를 통해 감성적으로 감동을 받는 그것으로 자기가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이성을 상실하게 만들어서 복음을 알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내가 진리에 서 있을 때입니다,

그때 양보하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진리에서 멀어진 사람들은 양보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미 종이 되어 있고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양보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미 다른 복음에 복종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지금 갈라디아서의 이 말씀이 해당이 안 됩니다.

 

율법을 모릅니까?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 율법을 모릅니까? 그것을 믿음이라는 말로 복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아무리 믿음이라고 강변을 해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율법으로 정하셨으면 율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는데 내가 믿음이라고 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겠다는 사람입니다.

 

안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을 합니까?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성경 어디에도 율법을 믿음으로 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누가 그런 말씀을 기록했는지 성경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왜 성경에도 없는 말을 자기들이 만들어서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되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로마서 10:3절을 보겠습니다. (25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복종치 않았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을 해야 합니다. 나의 의와 하나님의 의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늘 말씀을 드렸습니다. 내 의가 나타나면 하나님의 의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면 내 의는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 의와 하나님의 의는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지금 로마서에서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을 하니까 내 의에 복종을 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내 의가 어디서 나오는가 하면 율법에서 가장 먼저 나오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나오고 있고 은사에서도 나옵니다, 그러나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것에 복종을 하는가 하는 싸움입니다.

 내 의를 세우려고 율법에 복종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를 세우려고 복음에 복종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내 의도 세우고 하나님의 의도 세운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얼마나 사람의 이성으로는 좋게 받아들여집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종이 되고 사로잡히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옳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입니다, 성경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왜 사람의 이성을 이야기 합니까?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것에 복종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구원을 받기도 하고 또 저주를 받기도 합니다,

 

할례 사람의 의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육체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말 복음에 복종을 하고 있는 성도는 이런 사람의 육체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그 의에 복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을 하니까 사람의 육체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그것에 복종치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할례입니다.

그것은 율법을 대표하는 한 가지입니다. 할례에 복종을 하는 것은 그 할례 한 가지에 복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율법에 복종을 하게 되고 율법에 종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하나님의 의를 가르쳤습니다, 이 복음을 들었기 때문에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다른 복음에 복종치 아니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러면 다른 복음은 무엇인가 하면 바로 내 의입니다. 내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내가 성화가 되기 위해서 성도로서 살아가는 모양을 내고 있습니다, 내 육체를 통해서 은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켜라

은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는 것 내 육체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모든 것을 하라고 하는 것이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주님께서 부탁하신 말씀과 같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써 행해야 합니다. 제가 그것까지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복음을 전합니까?

그러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어느 교회는 선교사를 많이 파송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교회 건물도 짓지 않고 외국에는 교회를 짓고 또 선교사들을 파송하면서 복음을 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선교사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 해외에서 복음을 잘 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율법에 있는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은 자기들이 하는 십일조를 아까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가 내고 있는 십일조를 통해서 복음이 전파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으면서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십일조를 냈습니다, 그것은 내가 믿음으로 했든 아니면 하나님께 감사를 해서 했든 아니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든 내가 했으면 내 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십일조는 분명히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율법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까?

그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다른 복음을 듣고 있고 그 다른 복음에 복종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선교 좋습니다. 제가 그것을 반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을 가지고 하는 그 선교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것을 통해서 영혼이 구원을 받습니까? 기독교라는 교인을 많이 교회 안으로 불러들일지 몰라도 성도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다른 복음에 복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자기들은 다른 복음에 복종을 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다른 복음에 복종이 되어 있는 사람은 아니 짐승에게 사로 잡혀 있는 사람은 성경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아니 종교인으로 평생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살다가 지옥으로 가서 고통 중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 십일조를 내기 위해서 얼마나 힘쓰고 있습니까? 정말 그 십일조를 내서 다른 나라에 교회가 하나 세워지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감동을 받고 있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내 의고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십일조를 믿음으로 드린다는 정신 나간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이지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내 의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어서 했다고 해도 그것은 내 의고 율법을 지키는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이며 그것을 오직 믿음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율법으로 기록이 되어 있으면 율법입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다른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다른 복음에 복종을 해서 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용납 하시겠습니까? 그것은 잘하는 일이 아니라 저주를 받을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복음에 복종을 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사도 바울이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싸움입니다.

내의와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의 싸움입니다. 어느 것에 복종을 하느냐에 따라 그 영혼이 구원을 받기도 하고 진노를 받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반드시 하나에 복종을 하면 하나는 복종치 않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편 40:11절을 보겠습니다. (831)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 그치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다른 복음에 복종치 마시기 바랍니다.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로 항상 함께 있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진리로 있어야 하는데 다른 복음이 이 시대는 교회 안에 가득차 있어 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거짓 형제의 종이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가 누구의 종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

이것을 사람의 이성으로는 분별하지 못 합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주의 긍휼을 네게 그치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해 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다른 복음에 빠지는 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다른 복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오히려 스스로 그 다른 복음 안으로 들어가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정말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우리가 복음의 진리로 항상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성경을 보고 복음을 깨달았습니까? 또 그 복음을 듣고 있습니까? 이것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은혜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기독교라는 종교가 세상에 전파되는 것을 보면서 다수가 그 종교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한다 해서 사람들은 자기들이 복음 안에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계속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자기들은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이 세상에 죄인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서 율법주의가 되었고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율법주의가 되어 자기의 의를 가지고 있는 것을 주님께서는 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역시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 자기들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그것을 믿음으로 행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복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다 계시를 해 주셨지만 그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다가 결국에는 스스로 율법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주의 은혜로 복음 안에 있어야 하는데 성경을 보면서 스스로 다른 복음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항상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가 항상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양보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복음의 진리에 든든히 서 있지 않으면 반드시 다른 복음에 굴복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복음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복음도 모르고 있고 진리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종교만 있습니다.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고 있고 그 외에 모든 것은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로 사람들을 전도하고 있고 그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가 또 다른 나라에 선교를 하러 가고 있습니다. 그 종교가 우리나라에 기독교라는 종교를 전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복음과 다른 복음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들의 입으로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주여 주여 하고 부르고는 있지만 실상은 믿음이 없는 다른 복음에 의해서 종이 되었고 사로잡혀 있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기독교인이지 그리스도의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가 항상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다른 복음에 복종을 해서는 안 됩니다, 단 한 가지의 율법이 그리고 행위가 또 은사가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그 모든 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할례만 다른 복음이 아니라 율법에 어느 한 가지라도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율법에다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또 다른 행위들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7:26절을 보겠습니다. (178)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입니까? 물론 그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이름은 나를 구원하실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이 세상을 사랑 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확증하셨다고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주의 이름입니다. 성경에서 그 이름의 뜻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그것을 다 설명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이름의 결국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신 사랑이 우리 안에 있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은 진리입니다.

진리가 항상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 진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보고 있습니까?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그저 문자적으로 보고 그것을 우리의 몸으로 행하라고 하면 그것은 다 다른 복음입니다.

 

이 다른 복음에 복종치 아니하였습니다.

조금이라고 양보를 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항상 우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복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다른 복음에 복종하지 않게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진리가 항상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진리를 아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이 무엇이라는 것도 또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실 진리를 아는 것만큼 다른 복음을 아는 것도 어렵습니다. 아니 이 두 가지는 늘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항상 진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다른 복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진리 안에 있지 않으면 반드시 다른 복음에 종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그래도 사도 바울이 진리를 전하니까 다른 복음이 들어왔을 때 그것에 굴복하지도 않았고 잠시도 양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는 이미 313년이 지나면서 다른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 다른 복음이 1700년 가까지 계속해서 전해졌다고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가 항상 있게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도 나도 저희 안에 있는 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가 되어 있는 성도는 거짓 형제가 다른 복음을 가지고 가만히 들어올 때 잠시도 굴복하지 않을 수 있고 양보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8:32절을 보겠습니다. (159)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진리이십니다, 또 진리의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아야 자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이 자유하다고 말을 하고 있으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정말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진리가 자유케 합니다.

그것은 진리를 알 때 가능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이 진리에 대해서 전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진리를 전해서 자유하고 있는 그 교회 안에 다른 복음을 가진 거짓 형제들이 들어와 그 자유를 엿보고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종을 삼으려고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그들이 자유하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온전히 지키지도 못하고 무거운 멍에를 매고 있는 그들이 자유하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라는 것은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자유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 말로 자유 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 하는 것이 아니라 구속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유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그가 자유를 행하고 있어야 합니다. 구속이 되어 있으면서 종이 되어 있으면서도 자유 한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율법에 의해서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자유 한다는 것은 성립이 될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 진리가 무엇입니까? 조금 전에 말씀을 한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이런 말씀을 깨닫지도 못하는 그가 어떻게 자유 할 수 있습니까? 성경에서 진리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진리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모든 구속의 일들이 포함이 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야고보서의 말씀도 이해를 못하는 그들이 어떻게 자유 할 수 있습니까? 아니 어떻게 진리를 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중요한 일 중에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자유하게 하는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유하게 하는 율법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오히려 율법을 지키면서 자유 한다고 아주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들을 알고 믿는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유 하는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을 하고 행하기도 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이 말씀을 보고 오히려 거꾸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자유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것은 한 마디로 희극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그리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아무리 많이 알면 뭐 합니까? 또 히브리어를 알고 헬라어를 알면 뭐 합니까? 그것은 다 이 세상의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문자는 진리가 아닙니다, 그것을 진리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비유와 은유입니다, 그것을 아는 것을 가지고 마치 진리를 아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말씀에서 그림자를 걷어내고 또 은유와 비유를 바로 알아야 진리가 보일 수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는 진리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유를 빼앗기고 있고 종교에 의해서 종이 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모르면 죽습니다.

그러나 알면 삽니다. 성경에서 진리를 모르면 죽고 진리를 알면 살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의 문자는 절대로 진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책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을 아는 것으로 자기가 마치 진리를 아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다 보니까 종이 되어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20절을 보겠습니다. (298)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종으로 삼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진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종으로 삼으려고 하는 자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스스로 종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니 종이 안 되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종이 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아주 잘 용납을 하고 있습니다.

 

용납합니다.

그것은 스스로 종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거짓 형제가 들어와서 종을 삼기도 전에 스스로 종이 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말씀은 복음이 전해진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이미 313년을 지나오면서 아니 그 이전부터 종이 되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미 용납을 했습니다,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지도 너그럽게 용납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기를 종으로 삼고 자기의 뺨을 치는데도 그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인 다는 것이 어떻게 상식으로 이해가 됩니까?

  

하지만 그렇게 됩니다.

왜 그렇게 되는가 하면 그것이 바로 육체의 자랑이기 때문입니다.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의 이성으로는 너무도 좋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고 그 율법으로 자기 육체가 더 좋아지는 것을 사람들이 보기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 종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다 무엇입니까?

육체의 자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종이 되는 것도 육체의 자랑입니다. 잡아먹는 것도 육체의 자랑입니다 사로잡히는 것 역시도 육체의 자랑입니다, 뺨을 치는 것 역시 육체의 자랑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교회 안에서 육체의 자랑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체대로 싸우는 것입니다.

육체대로 싸우려고 종이 되고 있고 육체대로 싸우다 보니까 잡아먹히고 육체대로 싸우다 보니까 사로잡히고 육체대로 싸우다 보니까 뺨을 맞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나쁜 의미로 기록된 말씀들은 사람의 이성으로는 좋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육체로 싸우는 것에서 나옵니다.

또 그 싸워서 이긴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 안에서 너무도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진 초대 교회에 벌써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교회는 초대 교회와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있습니까?

물론 어딘가에는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눈으로 보고 있는 지금 한국에 있는 교회에서는 없다는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이 판단을 잘못 했다면 그것은 제가 주님으로부터 받을 벌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설교를 보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좋은 것이 좋다고 하는 사람은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초대교회는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이 들어오니까 너그럽게 받아들였습니다, 왜 그렇게 쉽게 너그럽게 받아들였는가 하면 사람의 이성으로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하니까 그것이 옳기 때문에 받아들였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라는 것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라고 하는 것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 은사가 나타내는 것을 누가 나쁘다 할 수 있습니까?

 

율법은 백해무익입니다,

그러나 은사는 필요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은사 자체를 전혀 부정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은사가 필요악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모르면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도 필요악이 되고 있고 기도도 필요악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이 시대 부르고 있는 찬양이라고 하는 것은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는 것도 은사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 은사가 필요는 합니다, 하지만 이 은사가 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게 되면 결국에는 악으로 변해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백해무익하고 필요악인 그것들이 너무도 좋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종이 되기를 원하고 있고 그런 것을 행하는 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다릅니다.

복음이 전해지지도 않는 상태에서는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말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교회에서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지 이 시대 교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복음이 없고 다른 복음만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구원을 받을 사람 없습니다. 장로교인도 안 되고 감리교인도 안 되고 침례교인도 안 되고 성결 교인도 안 됩니다, 이단은 아예 제가 말씀을 드리지도 않겠습니다. 거짓 형제들은 이렇게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엿보고 종교로 만들어서 모든 사람을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요한계시록 13장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가 짐승이 되어서 모두가 사망이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교회가 또 짐승이 되었습니다. 성도가 얼마나 적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이미 이방의 교회는 짐승에게 절하고 있고 그에게 표를 받아서 매매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짐승에게 들어가고 있습니다.

복음이 있는 주님의 교회가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시대 교회에 나간다는 것은 그대로 짐승에게 사로잡힌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이 있는 교회가 있어야 그 안에서 복음을 듣고 그 이후에 짐승에게 사로잡히고 말 것이 있는데 이 시대는 교회에 들어가는 순간에 모두가 짐승에게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복음이 없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불행한 사실입니다, 차라리 이 나라에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복음이 들어와도 구원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는데 기독교라는 종교가 들어와서 인구의 3분의 1일 다 짐승에게 사로잡히게 만들고 있습니다.

 

종이 되었습니다.

사로 잡혔습니다. 그러면서도 너그럽게 용납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너무 좋아서 그 안에서 그렇게 사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있고 자기들이 성도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작은 소자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그런데 그 짐승에게 사로잡혀서 그 안으로 많은 소자들을 경쟁적으로 이끌어 들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차라리 예수를 안 믿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 주님께서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던지는 것이 낫다고 하셨는가 하면 그들이 받을 형벌이 너무 크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대한 짐승은 이스라엘을 다 종으로 삼고 사로잡았습니다. 또 다른 짐승 하나가 이방의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종으로 삼고 사로잡았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짐승에게 사로잡히는 자는 차라리 그가 낳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누리고 있는 그 기쁨이 반드시 통곡의 날로 다가올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5절을 보겠습니다, (303)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잠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진리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의 진리를 보존하려고 우리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복음입니다.

그들은 거짓 형제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성도들을 미혹을 하고 있는가 하면 아주 타당성이 있는 율법 한 가지를 가지고 들어와서 그것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종을 삼고 있습니다, 그 하나에 종이 되는 순간에 점점 더 많은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고 결국에는 짐승에게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잠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새번역이나 공동번역이나 똑같이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거짓 형제들이 들어왔지만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믿음에 든든히 서 있어서 잠시도 굴복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갈라디아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가지고 들어온 것이 무엇인가 하면 할례입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유월절을 먹으려면 반드시 이방인이라도 할례를 받고 먹어야 한다는 구약의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고 거짓 형제들이 들어와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성도들을 종으로 삼고자 했다는 말씀입니다,


초대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격려를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는 분명히 일시라도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부는 할례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어떻게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주 작은 것 양보 하나가 결국에는 종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조금도 양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복음을 듣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많은 것으로 넘어진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단 한 가지의 양보가 결국에는 짐승의 종이 되고 그에게 사로잡혀서 사망으로 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은 또 다른 양면이 있습니다. 이 성경을 보고 이스라엘이 율법주의가 되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역시 율법주의가 되었고 이스라엘에 하나를 더 얹어서 은사주의까지 성행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하나가 지금의 교회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너무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육체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육체의 싸움이라는 것을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 육체로 행하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사람은 성경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습니다.

거짓 형제가 무엇을 가지고 이야기를 합니까?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종으로 삼으려고 하고 있고 굴복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없는 말씀을 가지고 하면 절대로 종이 되지도 않고 사로잡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종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할례 얼마나 타당성이 있습니까?

아브라함에게 이미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집에 있는 종이라도 다 할례를 받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할례를 받은 사람만이 유월절을 먹을 수 있습니다. 이제 막 이방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때에 할례는 그들에게 있어 너무도 당연한 표징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지금 이 시대와 같이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너무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사단에게 세뇌가 되어 있는지 율법이 믿음이 되어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지각이 없어 성경을 보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단 한 가지의 율법이고 단 한 가지의 행위고 단 한 가지의 은사가 그렇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금도 양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에 대해서 양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다른 복음에 대해서 양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교회는 양보하고 말 것이 없습니다, 이미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 안에서는 은사를 서로 자랑하고 있고 그 은사를 통해 감성적으로 감동을 받는 그것으로 자기가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이성을 상실하게 만들어서 복음을 알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내가 진리에 서 있을 때입니다,

그때 양보하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진리에서 멀어진 사람들은 양보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미 종이 되어 있고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양보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미 다른 복음에 복종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지금 갈라디아서의 이 말씀이 해당이 안 됩니다.

 

율법을 모릅니까?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 율법을 모릅니까? 그것을 믿음이라는 말로 복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아무리 믿음이라고 강변을 해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율법으로 정하셨으면 율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는데 내가 믿음이라고 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겠다는 사람입니다.

 

안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을 합니까?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성경 어디에도 율법을 믿음으로 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누가 그런 말씀을 기록했는지 성경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왜 성경에도 없는 말을 자기들이 만들어서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되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로마서 10:3절을 보겠습니다. (25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복종치 않았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을 해야 합니다. 나의 의와 하나님의 의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늘 말씀을 드렸습니다. 내 의가 나타나면 하나님의 의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면 내 의는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 의와 하나님의 의는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지금 로마서에서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을 하니까 내 의에 복종을 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내 의가 어디서 나오는가 하면 율법에서 가장 먼저 나오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나오고 있고 은사에서도 나옵니다, 그러나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것에 복종을 하는가 하는 싸움입니다.

 내 의를 세우려고 율법에 복종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를 세우려고 복음에 복종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내 의도 세우고 하나님의 의도 세운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얼마나 사람의 이성으로는 좋게 받아들여집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종이 되고 사로잡히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옳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입니다, 성경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왜 사람의 이성을 이야기 합니까?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것에 복종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구원을 받기도 하고 또 저주를 받기도 합니다,

 

할례 사람의 의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육체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말 복음에 복종을 하고 있는 성도는 이런 사람의 육체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그 의에 복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을 하니까 사람의 육체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그것에 복종치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할례입니다.

그것은 율법을 대표하는 한 가지입니다. 할례에 복종을 하는 것은 그 할례 한 가지에 복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율법에 복종을 하게 되고 율법에 종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하나님의 의를 가르쳤습니다, 이 복음을 들었기 때문에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다른 복음에 복종치 아니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러면 다른 복음은 무엇인가 하면 바로 내 의입니다. 내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내가 성화가 되기 위해서 성도로서 살아가는 모양을 내고 있습니다, 내 육체를 통해서 은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켜라

은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는 것 내 육체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모든 것을 하라고 하는 것이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주님께서 부탁하신 말씀과 같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써 행해야 합니다. 제가 그것까지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복음을 전합니까?

그러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어느 교회는 선교사를 많이 파송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교회 건물도 짓지 않고 외국에는 교회를 짓고 또 선교사들을 파송하면서 복음을 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선교사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 해외에서 복음을 잘 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율법에 있는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은 자기들이 하는 십일조를 아까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가 내고 있는 십일조를 통해서 복음이 전파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으면서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십일조를 냈습니다, 그것은 내가 믿음으로 했든 아니면 하나님께 감사를 해서 했든 아니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든 내가 했으면 내 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십일조는 분명히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율법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까?

그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다른 복음을 듣고 있고 그 다른 복음에 복종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선교 좋습니다. 제가 그것을 반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을 가지고 하는 그 선교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것을 통해서 영혼이 구원을 받습니까? 기독교라는 교인을 많이 교회 안으로 불러들일지 몰라도 성도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다른 복음에 복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자기들은 다른 복음에 복종을 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다른 복음에 복종이 되어 있는 사람은 아니 짐승에게 사로 잡혀 있는 사람은 성경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아니 종교인으로 평생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살다가 지옥으로 가서 고통 중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 십일조를 내기 위해서 얼마나 힘쓰고 있습니까? 정말 그 십일조를 내서 다른 나라에 교회가 하나 세워지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감동을 받고 있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내 의고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십일조를 믿음으로 드린다는 정신 나간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이지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내 의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어서 했다고 해도 그것은 내 의고 율법을 지키는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이며 그것을 오직 믿음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율법으로 기록이 되어 있으면 율법입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다른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다른 복음에 복종을 해서 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용납 하시겠습니까? 그것은 잘하는 일이 아니라 저주를 받을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복음에 복종을 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사도 바울이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싸움입니다.

내의와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의 싸움입니다. 어느 것에 복종을 하느냐에 따라 그 영혼이 구원을 받기도 하고 진노를 받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반드시 하나에 복종을 하면 하나는 복종치 않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편 40:11절을 보겠습니다. (831)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 그치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다른 복음에 복종치 마시기 바랍니다.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로 항상 함께 있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진리로 있어야 하는데 다른 복음이 이 시대는 교회 안에 가득차 있어 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거짓 형제의 종이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가 누구의 종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

이것을 사람의 이성으로는 분별하지 못 합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주의 긍휼을 네게 그치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해 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다른 복음에 빠지는 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다른 복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오히려 스스로 그 다른 복음 안으로 들어가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정말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우리가 복음의 진리로 항상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성경을 보고 복음을 깨달았습니까? 또 그 복음을 듣고 있습니까? 이것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은혜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기독교라는 종교가 세상에 전파되는 것을 보면서 다수가 그 종교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한다 해서 사람들은 자기들이 복음 안에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계속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자기들은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이 세상에 죄인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서 율법주의가 되었고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율법주의가 되어 자기의 의를 가지고 있는 것을 주님께서는 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역시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 자기들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그것을 믿음으로 행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복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다 계시를 해 주셨지만 그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다가 결국에는 스스로 율법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주의 은혜로 복음 안에 있어야 하는데 성경을 보면서 스스로 다른 복음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항상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가 항상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양보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복음의 진리에 든든히 서 있지 않으면 반드시 다른 복음에 굴복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복음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복음도 모르고 있고 진리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종교만 있습니다.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고 있고 그 외에 모든 것은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로 사람들을 전도하고 있고 그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가 또 다른 나라에 선교를 하러 가고 있습니다. 그 종교가 우리나라에 기독교라는 종교를 전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복음과 다른 복음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들의 입으로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주여 주여 하고 부르고는 있지만 실상은 믿음이 없는 다른 복음에 의해서 종이 되었고 사로잡혀 있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기독교인이지 그리스도의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가 항상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다른 복음에 복종을 해서는 안 됩니다, 단 한 가지의 율법이 그리고 행위가 또 은사가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그 모든 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할례만 다른 복음이 아니라 율법에 어느 한 가지라도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율법에다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또 다른 행위들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7:26절을 보겠습니다. (178)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입니까? 물론 그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이름은 나를 구원하실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이 세상을 사랑 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확증하셨다고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주의 이름입니다. 성경에서 그 이름의 뜻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그것을 다 설명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이름의 결국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신 사랑이 우리 안에 있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은 진리입니다.

진리가 항상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 진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보고 있습니까?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그저 문자적으로 보고 그것을 우리의 몸으로 행하라고 하면 그것은 다 다른 복음입니다.

 

이 다른 복음에 복종치 아니하였습니다.

조금이라고 양보를 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항상 우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복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다른 복음에 복종하지 않게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진리가 항상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진리를 아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이 무엇이라는 것도 또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실 진리를 아는 것만큼 다른 복음을 아는 것도 어렵습니다. 아니 이 두 가지는 늘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항상 진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다른 복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진리 안에 있지 않으면 반드시 다른 복음에 종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그래도 사도 바울이 진리를 전하니까 다른 복음이 들어왔을 때 그것에 굴복하지도 않았고 잠시도 양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는 이미 313년이 지나면서 다른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 다른 복음이 1700년 가까지 계속해서 전해졌다고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가 항상 있게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도 나도 저희 안에 있는 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가 되어 있는 성도는 거짓 형제가 다른 복음을 가지고 가만히 들어올 때 잠시도 굴복하지 않을 수 있고 양보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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