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1과 한 본문입니다. 반드시 -1을 먼저 보셔야 이해가 됩니다)
요한복음19:24절을 보겠습니다. (신 182쪽)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병들은 이런 일을 하고”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들은 서로 말하기를 "이것은 찢지 말고, 누가 차지할지 제비를 뽑자" 하였다. 이는 '그들이 나의 겉옷을 서로 나누어 가지고, 나의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았다' 하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병정들이 이런 일을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성도는 요한복음을 통해서 그분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증거를 받고 믿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바다 모래 같이 많은 수많은 종교인들이 그들의 교리에 따라 만든 신을 믿는다고 하고 또 우리를 핍박을 한다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분은 창조주이십니다.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피조물과 창조주는 상상이 안 되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피조물들이 지적인 능력이 아주 조금 있는 것으로 마치 자기들의 대단한 존재나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입니다
우리는 아담의 자손입니다. 이 아담의 자손은 죽은 자라는 것을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어도 종교인들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피조물의 과학에서는 분명히 산자로서 살아가고 있는데 죽은 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면 누가 그 말씀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천문학에 대해서 조금은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밤하늘에 보고 있는 별의 빛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빛이 심지어는 수백억 광년 전에 있었던 빛이었다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 빛을 보고 있습니까? 백억 광년 전에 빛을 보고 있습니다. 백억 광년이라는 말을 하니까 말로는 참 쉽게 들릴 수 있지만 상상이 안 되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수십 년 전에도 보았고 어제도 보고 한 그 별이 실제로는 이미 사라져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별은 빛이 나고 있지만 죽은 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줄은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사도 요한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일을 환상으로 보고 성경에 기록하였고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다면 지금 살아 있는 우리는 다 죽은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백억 광년 전에 빛을 보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입니다
이미 다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생에 대해서 다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할 때도 성경을 보면 과거형으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성경 말씀의 의미를 모르고 천문학에서 하늘의 별을 보는 것을 모르고 성경을 본다는 것은 그저 현실에 매여 있는 사람들이고 그들은 믿음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세계를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일을 믿게 하기 위해서 사도 요한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생명을 얻는 자 되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때 영광의 부활에 참예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게 하시고 그럼으로 우리가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을 사도 바울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시지 않았다면 이 영생에 대해서 전혀 알 수 없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성령을 보내주시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게 하심으로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고 있고 생명을 얻은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영생에 대해서 너무도 쉽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앞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했지만 우리는 유월절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성도만이 그 아는 것이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너무 쉽게 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성경에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제가 영생을 얻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영생을 얻는 일은 너무도 쉬운데 다만 복음을 전하는 자가 없어서 들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고아입니다
그리고 과부와 나그네입니다. 가난한 자입니다. 그들이 무슨 헬라어를 하고 히브리어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그들에게 의복과 음식을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생명의 떡을 먹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그렇게 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자가 은사대로 일을 함으로 해서 그가 복음을 전하면 듣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그렇게 하심은 우리로 그의 의로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이제 다 이루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있는 것을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군병들입니다
로마의 병사들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주님의 옷을 찢어서 네 깃으로 나눠 가지고 있고 속옷은 통으로 짠 것으로서 찢지 못하고 그것을 제비를 뽑아 가진다고 이미 시편에 예언이 되어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버리셨습니다. 왜 버리셨는가 하면 주님을 버리심으로 해서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실 수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다윗이 쓴 시편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였사오나 응답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버지와 동등하신 분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기를 낮추시고 동등 됨으로 취하시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입니다
그런데 피조물들이 지금 십자가에 못 박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편에서도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백성의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버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버리심으로 해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버리시지 않았다면 주님은 아무리 우리 피조물과 같은 형상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해도 로마의 병사들에게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일입니다
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일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육체는 돕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주님을 통해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실제 주님만 돕지 않은 것이 아니라 초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 역시 십자가에서 죽고 사자 밥이 될 때도 돕지 않았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가신 길을 우리도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꼭 이렇게 십자가에 달려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육체가 버림을 받은 것과 같이 도울 자가 없었던 것과 같이 혹시라도 우리 육체도 그렇게 되는 일이 있으면 받아들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우리 피조물들은 다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고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 복음을 믿고 있는 그래서 생명을 얻은 우리 성도들 역시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육체를 하나님께서 버리시고 있고 환난을 당할 때 돕지를 않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22:18절을 보겠습니다. (구 817쪽)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저 종교 안에 있는 자기의 행위를 보고 믿는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 영생에 대해서 충분히 말씀을 했습니다. 사실 이 시대를 보면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던 것과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이 거의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믿습니까?
믿음이라는 기초도 모르면서 그저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하는데 이방의 종교인들은 이미 초기 교회가 지나가면서부터 종교가 되기 시작을 했고 그들이 종교가 되어 교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교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리는 성경보다 더 권위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그들의 교리를 보고 성경과 반대가 되는 교리가 있어서 말을 해도 그들은 무조건 교리만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저 막연하게 믿으라고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아니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물론 저 역시 신학교에서 그들이 가르치는 교리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그들이 가르쳐 주는 대로 교리에 따라 배웠습니다. 물론 때로는 의심이 되고 성경과 전혀 다른 교리가 있어도 그것을 질문할 수도 없었고 교수가 말을 하면 학생은 그저 듣는 자로 그들이 가르치는 것을 그대로 배워야만 했습니다.
그리스도편지 사이트입니다
제가 이 사이트를 처음 만들었던 때가 벌써 20년이 넘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저 역시 이 사이트의 중심에 칼뱅의 오대강령을 큰 글자로 써 놓았습니다. 그리고 오대 강령을 기초로 해서 성경을 해석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습니다.
계속해서 성경을 보면서 성경을 풀어가기 시작을 하면서 이 교리에 대해서 의심을 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아니 성경과는 전혀 다른 교리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심으로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음으로 종교의 교리가 성경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경험입니다
단 한 번에 모든 것이 알아진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을 풀어가면서 하나씩 잘못 된 것에 대해서 깨닫기를 시작을 했고 그리고 나서 종교의 교리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사이트를 완전히 새로 만들면서 종교의 교리에 대한 부분은 다 지워 버리고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 교리로는 도무지 제가 풀고 있는 성경과 모순이 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고보서입니다
그 강해를 시작하면서부터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서 성경을 풀 수 있게 되었고 그리고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정말 저도 제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를 정도로 지금 와서 생각을 해보면 그냥 순식간에 지나간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종교의 교리를 다 버렸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도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성경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사도 요한이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씀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종교의 교리도 이 말씀 외에 더한 것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더하거나 뺀 것이 되면 그는 절대로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왜 성경을 주셨습니까?
이미 앞에서 다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경을 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종교는 성경을 보고 교리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선지자들이 기록을 했고 종교의 교리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을 사람들이 보고 사람들의 지식으로 교리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리책입니다.
이래도 그 교리책을 보겠습니까? 우리 성도는 성경만 보면 됩니다. 성경만 보고도 얼마든지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 왜 사람들은 성경을 보는 것보다 자기들이 철학적 지식으로 배운 교리를 아는 것을 더 중요시 하고 심지어는 성경을 가지고 말씀을 하는데 교리를 가지고 대답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리책입니다
그것은 인생들이 성경을 보고 자기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말 그대로 교리를 만든 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감동을 해서 기록하게 하셨고 이 성경을 보고 우리가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교리를 배웁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지식밖에는 안 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것은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전할 때 베뢰아 사람들은 그 말씀이 성경과 맞는가 하여 성경을 상고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유대교의 교리가 있었지만 유대교의 교리를 본 것이 아니라 성경을 보고 그 말씀이 성경과 맞는가 하여 성경을 상고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안에 많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 의미를 성경에서 알아서 듣고 믿고 있습니다. 시편에서 다윗이 기록을 하고 있는 저희가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이다. 라고 하는 이 말씀에 대한 의미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시편22편18절의 말씀만 보아서 안 것이 아니라 시편22편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보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라는 문자를 아는 것으로 그리고 실제 요한복음에서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는 것을 보고 아는 것으로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님의 육체를 버리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 23절부터의 말씀은 하나님이 주님의 육체를 버리신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봅니다.
그리고 시편22편을 봅니다. 성경을 많이 본 사람은 이 두 말씀이 같은 말씀이라는 것 정도는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인용이 되어 있는 구절을 아래에 표시를 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시편의 말씀에서 인용이 되었다는 것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일을 알 수 있습니까?
초등학생입니다
그 정도는 성경을 많이 읽으면 어느 누구라도 시편에 말씀을 사도 요한이 그대로 인용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의미를 알아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데 전혀 모르는 그들이 그저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입니다
분명히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 피조물과 같은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지금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는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 피조물의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을 버리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통해서 육체를 돕지 않으시겠다고 그 육체의 기도를 응답지 아니하시겠다는 것을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시편입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표면적으로 이 일을 이루시는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적인 말씀은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그 육체를 어떻게 버리시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시고 이 세상에 나타내신 독생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의로우신 육체지만 우리를 위해서 지금 십자가에서 수치를 당하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독생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육체를 어떻게 버리시는가를 우리에게 십자가에서 나타내 보여주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로마의 군병들에 의해서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는 일을 당하시면서 그 육체를 버리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압니까?
이 의미에 대해서 어느 누가 말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 알지를 못하니까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종교 안에서 자기들의 육체의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서 응답해 달라고 하고 있고 또 응답을 받았다고 하면서 아주 유식한 말로 간증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그런 의미도 모르고 성경을 아무리 보아야 그것은 소경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신학을 공부를 하고 종교인으로 안수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되면 주님의 말씀과 같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다가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육체입니다
그것은 다 버려졌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 육체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는 일을 당하시면서 이 세상에 피조물의 형상으로 오신 육체를 버리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육체입니다
그것을 버리심으로서 이제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나를 사자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락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서 이 세상 임금이라고 하는 종교가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 피조물은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는 순간 죽었습니다. 그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조물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얻게 하심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9:25절을 보겠습니다. (신 182쪽)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예수의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서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는 일을 말씀으로 보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안다고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 그 십자가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에 대한 말씀의 의미를 가능한 다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중심입니다
정말 이제까지 여러 가지 십자가에서 일어나는 일의 영적인 의미를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 성도는 표면적으로 2000년 전에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일을 성경에서 보고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영적인 창세 전에 아버지와 주님이 가지셨던 영화를 알고 믿음으로 해서 영생을 얻고 있습니다.
저주입니다
우리가 받을 저주입니다.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저주를 받은 자라고 신명기의 율법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가 받아야 하는 저주를 대신 받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성경이 응하게 하려고 십자가형을 받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지 사형제도입니다
십자가를 특별하게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시에도 교수형도 있었고 참형도 있었고 여러 가지 형벌이 있었지만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하니까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에 마치 특별함이 있는 것과 같이 이방의 종교인들은 그것을 형상으로 만들어서 교회에도 걸어 놓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이 십자가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신명기에서 율법에 아무 형상이라도 만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지 주님께서 십자가형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특별하다고 생각을 하는 그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주님께서는 그때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입니다
아무도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이 없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당시 로마 시대에 보편적인 사형제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전에도 일반 범죄자들이 그리고 정치범들이 이 십자가형을 받아서 죽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종교는 마치 이 십자가가 특별한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고 교인들에게 우상의 형상을 만들어서 그것을 보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이 정도는 아무리 종교가 되어 있다고 해도 이 십자가가 형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명기에서 아무 형상이든지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율법에 해당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어느 누구도 이 십자가에 대해서 형상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더 신기할 뿐입니다. 물론 신명기의 율법에 어떤 물건은 기록이 되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참 종교라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가르치는 자가 이야기를 하면 배우는 사람이 감히 그것에 대해서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종교의 속성입니다.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가 주님만이 달리신 것이라면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럴지라도 우리가 일반적인 상식으로 생각을 해도 이것이 형상이라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만 달리신 것도 아니고 그 이전부터 사형 제도로 사용이 되었던 것을 가지고 종교는 형상을 만들어서 자기들이 지은 건물에 십자가를 걸어 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때입니다
이 십자가를 거는 것으로 이단 시비가 붙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모 교단 어느 신학교에서는 십자가를 거는 것을 반대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 교단에서는 강단 앞에 십자가 형상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건물 밖에는 이 십자가를 걸어 교회당이라는 표식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다른가요? 저는 이 십자가도 분명히 형상이라고 보고 있고 십자가를 형상으로 만든 것 역시 우상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조금만 상식을 가지고 생각해도 알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형 제도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해서 특별한 의미를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 역시 제가 설령 저주를 받는다 해도 저는 이 십자가가 형상이라고 말씀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로마의 병정들 입장에서는 그저 사형수이고 그래서 그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이 곁에서 보는 것을 허락을 했던 것으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는 사형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 사형을 집행을 하지 않아서 사형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형을 당하는 사람이 있으면 최소한 그 가족은 사형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큰 의미는 없습니다.
마리아가 있고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들이기 때문에 로마 병정들도 아무 제지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형을 받는 죄수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는 어디에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9:26절을 보겠습니다. (신 182쪽)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고 말씀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의미는 이제까지 충분히 말씀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성경을 다 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어서는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그러니까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분명히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누가 뭐라고 해도 그렇게 믿습니다. 제가 삼위일체를 안 믿어서 영생을 얻지 못한다 해도 저는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고 성경에도 없는 비유로도 없는 삼위일체를 믿으라고 하면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 십자가입니다
이제까지 여러 가지 의미에 대해서는 말씀을 했습니다. 그 의미는 영적인 일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을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음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25절에서 그 모친과 이모와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와 형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사도 요한은 주님과는 인간적으로는 이종사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종사촌이기 때문에 가족의 일원으로서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요한의 어머니도 있었고 사도 요한도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쉽게 죽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가 성경을 보고 다른 복음서를 보아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당시 전승에 내려오는 것을 보아도 십자가형을 받으면 길게는 일주일 이상 생존을 해 있는 경우도 있다는 자료가 있습니다.
다른 사형제도입니다
그 자리에서 죽는 사형제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형 제도들이 더 편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형은 말 그대로 피를 말려서 죽이는 형벌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 몸에 있는 수분이 다 말라서 죽는 것이 이 형벌이고 그러다보니까 그 고통도 클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죄수들도 살아 있는 상태고 주님도 살아계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형제도 중에서는 가장 잔인하게 죽이는 방법 중에 하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영생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영생과 관계가 없는 말씀들은 굳이 그렇게 깊이 생각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굳이 알아야 할 필요성이 없는 것을 알려고 하는 것도 더 중요한 영생에 대한 말씀을 아는데 있어서 방해가 된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종교인들은 성경을 참으로 이상하게 보고 있습니다. 굳이 중요하지도 않은 말씀을 가지고 집착을 하고 있고 그것을 원어의 뜻을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 헬라어를 보고 히브리어를 보면서 그 언어의 뜻을 알려고 집착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 원어가 어떤 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이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선지자들로 기록하게 하셨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상하게 종교인들은 중요하지 않은 것을 알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뭔가를 알면 마치 대단한 것을 안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인간적인 것은 우리가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무용지물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철학적 지식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주님께서는 이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사도 요한을 가리키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버리시기 때문에 그리고 이제 사도 요한에게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마리아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입니다
너무 큰 의미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감성을 가지고 말씀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마리아를 위해서 제자인 사도 요한을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next 2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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