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계20:9.)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106-2,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윤주만목사 2025. 3. 19. 08:08

106-1와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열왕기상19:10절을 보겠습니다. (550)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입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인용을 하고 있습니까?

이제는 그런 일이 없다면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인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역시 똑같이 주의 선지자를 죽이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여자 이세벨이 있어서 주의 종을 꾀어 행음하게 하고 있고 우상의 제물을 먹여서 죽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만 남았나이다

이 시대도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엘리야 시대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똑같은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여자 이세벨이 꾀어 행음하게 하고 있고 우상의 제물을 먹이면서 죽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행음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고 우상의 제물을 먹고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구약에 보이는 그 일이 이렇게 보이지 않게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사람들은 모두가 여자 이세벨에 의해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나만 홀로 남았습니다.

정말 이 말씀이 실감이 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보더라도 우리만 남아 있습니다. 행음을 하지 않고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여기 우리 성도님들 빼고는 모두가 행음을 하고 있고 우상의 제물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저희가 내 생명까지 찾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마귀는 우리의 생명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어떠한 구원입니까?

누가 이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아니 그리스도편지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지만 이 말씀을 보아도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해서 가르쳐 주어도 교회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우상의 제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찾고 있습니다.

우리 대적 마귀는 지금도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깨어 있지 않으면 이 사자에게 어떻게 삼키는 줄도 모르고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엘리야 시대에 그 모습을 이 시대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경을 정말 바로 알아야 합니다.

엘리야 시대에 주의 선지자들이 죽었습니다. 누구에게 죽었는가 하면 아합 왕의 왕비 이세벨에게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역시 여자 이세벨이 있어서 주의 종을 꾀어 행음하게 하고 있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해서 죽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그들이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의 일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어느 누구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어느 신학자가 율법을 우상의 제물이라고 했습니까? 그 유명하다고 이름을 남긴 신학자들이 우상의 제물을 문자 그대로 보고 이교도들이 하고 있는 제사 음식을 먹는 것을 우상의 제물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교회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였던 장본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죽었습니다.

육의 사람입니다

그가 아무리 뛰어난 지혜가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으면 성경은 풀어지지가 않습니다. 누가 주의 선지자들을 어떻게 죽이고 있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이 풀어지지가 않으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말을 합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라고 말을 하면서 오직 예수가 아니면 이단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오직 예수라는 말만 하면 우상의 제물을 먹이면서도 자기가 진리의 영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정말 가슴에 와 닫습니다.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나만 남았나이다. 엘리야가 하고 있는 이 말씀이 이 시대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도무지 무슨 말씀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여자 이세벨과 행음을 하고 있고 그가 먹이는 우상의 제물을 아주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로마서11:4절을 보겠습니다. (254)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내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 칠천 명을 내 앞에 남겨 두었다" 하셨습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를 했습니다.

성경은 비유와 예표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 비유와 예표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를 하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세벨입니다

그가 바알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들을 남겨 두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알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입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선지자 엘리야 시대에 있었던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그렇게 바알을 섬겼는데 이제는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어서 이스라엘과 같이 바알을 섬기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사도 바울이 그렇게 멍청합니까?

아니 하나님께서 이 시대 교회 안에 이스라엘이 섬겼던 보이는 바알을 섬지지 않을 것을 모르시고 이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습니까?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교회가 이스라엘이 섬겼던 바알을 형상으로 만들어서 섬기고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방의 교회는 바알을 섬기는 교회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모르시고 있지도 않을 일을 사도 바울을 통해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과연 그런 하나님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까? 있지도 않을 일을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바알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역시 모두가 바알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엘리야 시대에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남겨 두셨다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남겨 두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마 반문할 것입니다

이 시대 어느 교회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고 있느냐고 반문할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있지도 않을 일을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는 시각부터 바꾸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속되 말로 짱구입니까? 이 시대 있지도 않을 일을 우리에게 보라고 성경에 기록했습니까? 그런데 이 시대는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는 거의 모든 목사들이 이스라엘의 일로 치부를 하고 있고 자기들은 바알을 섬기지 않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지극히 일부의 사람이 그런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교회 안에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사사기2:11절을 보겠습니다. (362)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요한복음3:20절을 보겠습니다. (146)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바알입니다

이 시대는 바알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바알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섬겼던 바알을 종류들을 다 알고 있습니다. 성경 대백과사전을 보면 바알의 종류들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생긴 형상들을 나름대로 연구를 해서 그림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학자들입니다

실제 고고학적으로 출토가 되는 바알을 형상들을 보면서 이스라엘이 이렇게 바알을 섬겼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출토가 되어 있는 것을 사진으로 찍은 것도 물론 보았습니다. 그것이 진짜 이스라엘이 섬겼던 바알인지는 모르겠지만 바알을 그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사사기입니다.

이제 여호수아와 요단강을 건넜던 세대가 다 죽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실제 있었던 일들 예표로 해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겼습니다.

이것은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그 일을 통해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바알을 섬기지 말라는 예표입니다 이 시대 역시 바알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그렇게 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스라엘만 바알을 섬겼습니까?

이방의 교회는 바알을 섬기지 않았습니까? 이방의 교회가 바알을 섬기지 않은데 왜 사도 바울이 이 바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바알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바알입니다

풍요의 신입니다 그러니까 재물이 많기를 바라는 신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실제 가나안에 들어가서 풍요의 신인 이 바알을 섬겼습니다. 그것은 실제 있는 일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바알을 섬기도록 그냥 두셨습니까? 아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바알을 섬길 것을 이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재물입니다.

이스라엘은 재물이 많기를 원해서 바알을 섬겼습니다. 당시 가나안에는 풍요를 위해서 이 바알들을 섬겼습니다. 실제로 이 신을 섬김으로 해서 가나안에 사는 사람들은 풍요를 누렸습니다. 사사기에서 이스라엘이 악을 행하여 바알을 섬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일입니다

풍요를 위해서 섬기는 것은 악을 행하는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복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분복을 주셨습니다. 우선은 재물에 대해서 분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부자로 사느냐 가난하게 사느냐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구약의 이 일이 다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물질의 풍요를 누리기 위해서 바알을 섬긴 것이 이 시대는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신약에 와서는 부자와 가난한 자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려고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다 부자가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바알을 섬겼는가 하면 부자가 되기 위해서 섬겼습니다. 물론 육적으로 부자가 되기 위해서 바알을 섬겼습니다. 육적으로 부자가 되기 위해서 섬긴 그것이 바알이라는 말씀입니다

바알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을 받아들이지 않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악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무엇이 악한 행위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물질의 부자가 되기 위해서 섬긴 바알이 악한 행위입니다

그것이 신약에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이스라엘이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기 위해서 행한 모든 행위가 악한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율법의 행위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 시대 기독교는 가나안에 있던 그 바알을 그대로 섬기면서 교회 안에서 기복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입니다

그들은 악을 행했습니다. 그것은 사사기에서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기면서 악을 행한 일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이 행하는 악을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 해서 진짜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이 섬긴 바알이 교회 안에 깊숙이 들어와서 기복주의에 빠져 들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일입니다

바알을 섬기는 일도 악을 행하는 일이고 또 율법으로 부자가 되려고 했던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도 악을 행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거기에 한술 더 떠서 교회 안에 진짜 가나안에서 섬겼던 바알이 그대로 들어와 기복을 바라고 있습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 들어줍니까?

바알은 풍요의 신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와서 세계 역사상 이렇게 빨리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가 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어서 우리나라가 경제 발전을 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알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바알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는 바알의 종교라 해도 별로 틀리지 않습니다. 자기들의 필요에 의해서 오직 예수를 믿으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그들이 기도하는 모든 것이 사실은 바알이 주고 있는 것임을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기도를 했어도 그것을 주는 자가 누군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직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어느 것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누가 주는 것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는가 하면 바알이 주는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바알이 주는 것을 구하고 있다면 그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레미야7:8-9절을 보겠습니다. (1061)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디도서3:9절을 보겠습니다. (350)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바알이 없습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 바알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로 성경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방의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들이 바알을 섬기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바알에 대해서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문자만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보고 있는 말씀의 문자만 보니까 바알에 대해서 전혀 깨달을 수 없습니다. 바알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기독교라는 종교는 바알에게 완전히 빠져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무익한 거짓말이 무엇인가 하면 그들이 살인을 하고 있고 도적질을 하고 있고 간음 하며 거짓 맹세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알에게 분향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의 어느 개인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면서 도적질을 하고 있고 살인을 하고 있고 간음을 하고 있고 거짓 맹세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무익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알에게 분향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말이 됩니까?

이스라엘 전체가 살인을 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이스라엘 전체가 간음을 하고 도적질을 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러나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는 살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도적질과 간음을 하고 거짓 맹세를 했습니다. 또한 바알에게 분향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무익한 거짓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를 함으로 해서 살인을 하는 자가 되었고 간음을 하는 자가 되었고 도적질 하는 자가 되었고 바알에게 분향하는 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이스라엘만의 일로 치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입니다

이스라엘은 우리에게 예표와 경계가 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를 했으면 우리 역시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고 있습니다. 그 무익한 거짓말을 디도서에서 율법에 대한 다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했는데 그것이 율법에 대한 다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8:12절을 보겠습니다. (126)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바알에게 분향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바알에게 분향을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이 예레미야 시대와 마찬가지로 바알에게 분향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런 비유의 말씀들을 깨닫지를 못하면 평생을 바알에게 분향만 하다가 지옥에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풍요의 신입니다.

자기가 누리는 풍요에 감사해서 이스라엘의 바리새인이 바알에게 분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엘리야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남겨 두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바알에게 분향을 많이 하고 있는 줄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분향하고 있습니까?

율법을 잘 지키게 해 달라고 분향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은 자기들이 잘 지킨 율법을 가지고 바알에게 분향을 했고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율법을 잘 지키게 해 달라고 바알에게 분향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렇게 바알에게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바알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르면 죽습니다.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면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온통 바알로 가득한데도 이 시대는 바알이 교회 안에 어떻게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으면서도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무익합니다.

그리고 헛된 것입니다 그것을 예레미야에서는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한다고 말씀을 하면서 바알에게 분향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어떻게 바알에게 분향을 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보고 있는 성경이 얼마나 모순되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너희입니다

이스라엘이 도적질을 하고 살인을 하고 간음을 하며 우상을 숭배 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것을 어떻게 문자 그대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까? 이 너희는 이스라엘 전체를 가르쳐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다 살인을 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어떻습니까?

문자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말이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말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지금 어느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독해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바알에게 분향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익한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오셔서 실제 바리새인의 기도를 예를 들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는 이스라엘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역시 바알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한다고 하면서 바알에게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바알에게 분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 전체가 바알에게 분향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는 그들의 행위가 다 바알에게 분향을 하는 일이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아닙니다. 그들은 바알에게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기복도 물론 바알입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을 포기하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분복을 주셨으면 그것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물질을 구하는 기복적인 기도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알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재물을 버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분복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와서 재물을 구하는 기도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 역시 바알에게 분향을 하는 것임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율법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이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이 진짜 바알을 섬겼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그들은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잘 지키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바알에게 분향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면서 무익한 거짓말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알은 부자가 되기를 원해서 섬기는 신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부자 청년도 주님께서 십계명을 말씀을 하니까 자기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청년이 살인한 자요 도적질한 자요 간음한 자요 거짓 맹세를 하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왜 지킵니까?

바알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는 것이 너무도 좋기 때문에 사람들이 바알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들이 진짜 바알의 형상을 섬기지 않는다고 하면서 바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6:9절을 보겠습니다. (341)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누가복음16:19절을 보겠습니다. (123)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부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부자가 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0장 마지막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누군가를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거지가 되어야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싫어하고 있고 모두가 바알을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율법을 성경은 여러 가지로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율법을 이렇게 많은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사사기를 통해서 보아서 알겠지만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갔던 세대가 죽자 말자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겼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스라엘이 율법주의에 빠졌다는 말씀입니다 바알은 율법주의를 상징하는 신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율법주의에 빠져 저주를 받고 있는가를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 볼수록 더욱 더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습니다.

구약의 바알입니다

그것이 신약에 와서는 부자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한 부자는 교회 안에 있는 율법을 지키는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는 거지 나사로는 없고 모두가 부자만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자를 따르고 있는 개들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유입니다

누가 천국에 들어갑니까? 부자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주님께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으로 거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거지가 되라고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빈핍한 자가 자기 백성이라고 하시고 또 주님께서도 거지 나사로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모두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부하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행위로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회는 온통 바알로 물들어 있으면서도 주의 이름만 부르면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가 침륜과 멸망에 빠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이 이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지혜가 없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성령이 오시지도 않았는데 종교의 샤머니즘에 빠져 성령이 오신 것으로 생각하고 사람의 이성을 따라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뼈 속부터 율법주의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인생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율법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가지 예표를 통해서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 못 버립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절대로 율법을 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율법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것을 성경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역시 이방의 교회도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자하는 그 행위가 바알을 섬기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열왕기상19:18절을 보겠습니다. (550)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칠천을 남겨 두셨습니다.

이 시대 칠천을 남겨 두셨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이런 숫자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셨는데 그 숫자의 의미로 칠천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칠이라는 숫자가 들어가면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습니다.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이스라엘이 모두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모두가 바알에게 분향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시대에는 공의를 구하고 진리를 찾는 자가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엘리야 시대입니다

그때에 칠천은 의미의 숫자입니다 우리가 예레미야 시대를 보아서도 잘 알겠지만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자가 있습니다. 엘리야가 자기 혼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을 남겨 두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역시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그 일이 바알을 섬기는 일이라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남겨 두시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남겨 두시고 있습니다. 그것이 몇 명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겨주시기 때문입니다

남은 자입니다

우리가 지혜가 있어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뼈 속까지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도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 우리를 남겨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우리를 남겨 주셨습니다. next 1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