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11:2절을 보겠습니다. (신 254쪽)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이 엘리야를 두고 하신 말씀을 알지 못합니까? 그가 이스라엘을 고발하여,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신 것과 같이 자기도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자기도 역시 그들과 같이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면서 거스리는 율법을 지키면서 살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모태신앙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참 그럴 듯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기 집안이 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것이 자랑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어느 누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사실 모태 신앙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어떤 말입니까?
자기는 태어나기 전부터 복음을 알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어느 누가 태어나지 전부터 복음을 알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어머니 태에서 나를 택정하셨다고 하는 그 말씀을 가지고 마치 자기들이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을 믿은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태에서 택정하셨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까지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의 열심으로는 바리새인이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모태에서 택정을 하신 것은 맞지만 그는 바리새인으로 살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택정함을 입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는 말씀은 자기도 역시 율법주의로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은혜를 받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어머니 태에서부터 택하셨습니다. 어머니 태에서부터 택하셨지만 사도 바울은 율법주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주셔서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데 아니 저주를 받아야 마땅한데 구원을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모태신앙이 아닙니다.
누가 모태에서부터 복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마치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그에게 복음을 알게 역사를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비록 어머니 태에서부터 택정함을 입었지만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까지는 지독한 율법주의자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삶 자체가 복음에 순종치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가 지혜가 있어서 처음부터 복음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절대로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부터 교회에 다녔다고 해서 그가 날 때부터 하나님을 믿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령 그렇습니다.
이 시대 우리 중에 누가 이제 결혼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아이를 낳는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복음을 깨닫고 태어납니까? 내가 비록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가 되었어도 그 아이는 절대로 복음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미리 아신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복음을 보고 있습니다. 얼마나 적은 수가 구원을 받는가를 보았습니다. 때로 이런 말씀을 보다보면 나 역시도 이스라엘과 같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생각을 하는 로마에 있는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습니다.
그러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는 그 택함을 입은 자가 얼마나 적은 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전부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고 진리를 거스리는 율법주의에 빠져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과 같이 보입니다.
그 말씀입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버림을 받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하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시지 않는다고 하면서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리 아신 자기 백성입니다.
누구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을 어떻게 봅니까? 성경에 문자적으로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그냥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하나님이 자기들을 미리 아시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로 버림을 받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이가 없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고 하니까 막연하게 자기들을 버리지 않는다고 하면서 자기들은 어떻게 해도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자의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거기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너무도 태평하게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막연하게 교회 안에 있는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참 좋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참 쉽습니다. 그런 맹목적인 믿음이 있으니까 이 시대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면서 진리를 거스리는 율법을 지키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아셔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시기 않습니다.
그러나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들의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버리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미리 아신 자가 되어야 버리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시편37:28절을 보겠습니다. (구 829쪽)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고린도전서1:2절을 보겠습니다. (신 263쪽)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지 육의 일이 아닙니다. 육의 이스라엘을 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하는데 이제까지의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성경을 풀다보니까 그것이 그대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기독교인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알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될 것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보면서 이스라엘은 그렇게 되었어도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다수가 버림을 받았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성경에서 그렇게 볼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기 때문에 버림을 받은 것과 같이 보이고 있습니다. 버림을 받은 것과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자를 절대로 버리시지 않습니다.
성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 성도입니까? 교회 안에 있다고 다 성도입니까? 사람이 아무리 성도라고 해도 성경에서 성도가 누군가를 모르고 있다면 그는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성도가 누군가를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볼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성도라고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안 버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를 절대로 안 버립니다. 버린다고 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약에 성도를 버리시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버리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 진 자를 성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거룩해집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을 단번에 드리시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는 성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성도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성도가 되고 싶다고 해서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내 노력으로는 성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입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 방법 외에는 어느 누구도 성도라 부르심을 입을 수 없습니다.
성도입니까?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율법으로는 우리를 온전케 할 수 없어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입었다는 것을 믿어서 성도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어떠한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주님이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거룩한 영이 우리 안에 거하는 역사가 있어서 성도라 부르심을 입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안에서 거룩함을 입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드리심으로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그 영이 거룩한 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거룩한 영이 있는 성도를 하나님께서 버리시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신체가 아닙니다. 우리 신체는 버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우리 신체가 버림을 받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거룩한 영이 있어야 성도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거룩함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자기들이 거룩해 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육체의 모양을 내면서 교회 안에서 얼마나 거룩하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거룩하게 찬양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안에 있는 자가 아니라 바리새인과 같이 겉을 회 칠하고 있는 외식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거룩함을 입어야 합니다.
내가 거룩해 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거룩해 지려고 하는 모든 행위가 외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자기 육체로 거룩해 지려고 하다가 주님으로부터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라는 말씀을 들은 것을 성경을 통해서 빤히 보고 있으면서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이 하면 불륜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면 로맨스입니다 이스라엘이 한 것은 외식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외식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너무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고 하니까 자기들이 마치 하나님의 백성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율법을 지켰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마귀의 자식들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시지 않는다고 하니까 교회 안에 있는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고 하면서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맹목입니다.
믿음과 맹목을 알아야 합니다.
맹목은 성경의 문자를 보고 믿는 것을 맹목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믿음은 성경에서 복음을 보아야 합니다. 그 복음을 알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알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시대는 믿음이 있는 자는 없고 다 맹목에 빠져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사야41:17절을 보겠습니다. (구 1017쪽)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게 이 성경을 주셨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성경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목사들부터가 신학에서 성경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먼저 기독교의 교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 교리가 성경과 맞습니까?
사도행전에서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니까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어서 그 말씀이 성경과 맞는가 하여 성경을 상고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목사들부터가 교리를 배울 때 그것이 성경과 맞는가 하여 성경을 상고하지 않고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목사가 되기 위해서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안 받아들이면 어떻게 됩니까?
더 이상 기독교에서 목사를 할 수 없으니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과 맞는가 하여 성경을 상고하지를 않습니다.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교리들을 아무 생각이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기독교에서 목사를 하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가련하고 빈핍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가련하고 빈핍한 자를 버리시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버림을 받지 않으려면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나 역시도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이 이렇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에서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로마서의 말씀만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가당치 않습니까?
그런 그들이 아주 자신 만만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천국은 따 놓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엎어져도 천국은 간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면서 진리를 거스리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가련합니까?
누가 빈핍합니까? 빈핍의 사전적인 뜻은 너무나 가난하여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련하다는 슬픈 마음이 들 정도로 가엾고 불쌍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 중에 누가 이런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누가 아무 것도 없었습니까? 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나사로를 거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거지 나사로를 하나님께서 버리시지 않아서 죽은 후에 아브라함의 품에 있다고 비유로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지가 되어야 합니다.
율법주의자가 볼 때 우리는 율법의 의가 하나도 없어서 가엽고 불쌍한 생각이 들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율법의 재물이 하나도 없어서 그들이 볼 때 거지와 같아야 합니다. 이렇게 거지가 되어 있는 성도를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모두가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얼마나 부자가 되어 있는 줄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율법의 의에 대해서는 그리스도편지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말씀을 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 가난합니다.
우리 성도는 너무 가난해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재물이 하나도 없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의 눈에는 우리는 거지와 같아서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자와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빈핍한 자를 버리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버리지 않는가 하면 그 빈핍한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부자입니다
유대교인들은 부자였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기독교인들 역시도 부자가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 잠시를 빼고는 모두가 부자가 되어 있으면서도 그 부자가 되는 것을 성도의 삶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바리새인들보다 더 외식에 빠져 있습니다.
재물입니다
사람이 교회 안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가 재물이 되고 있습니다. 왜 제가 이렇게까지 율법에 대해서 강경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이 율법이 저주를 받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빈핍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버리심을 받지 말아야 하는데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이 부자가 되게 해서 저주를 받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는 율법의 의가 없는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을 버리지 않으십니까?
교회 안에는 부자가 있고 거지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거지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도 안 지키고 있고 또 외식의 모양도 없고 종교적인 행위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조차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를 보고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자기 손에 장을 지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우리는 성경에서 복음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에 순종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순종하는 것이 거지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거지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의가 하나도 없어서 거지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 거지를 하나님께서는 버리시지 않습니다. 이 거지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거지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절대로 버리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를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교회 안에는 수많은 율법이 세워지고 있고 그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부자가 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버림을 받아 지옥의 자식들이 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4:9절을 보겠습니다. (신 306쪽)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로 인하여 너무도 쉽게 다른 복음에 빠지는 것을 사도 바울이 보고 이 서신을 보냈습니다. 초대 교회의 사도들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복음과 다른 복음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성경에 있는 문자를 아는 것을 전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복음을 전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기독교라는 종교는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저를 비난을 해도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이 시대 기독교는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령을 받은 성도를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다른 복음을 가진 자들이 들어왔고 그들로 말미암아 복음을 들었던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면서 진리를 거스렸습니다.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입니다
무엇에 대해서 약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율법은 초등학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하다는 말씀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에서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이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초등학문입니까?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이 초등학문입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지키라고 해서 율법을 지킨 것이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신 봐 된 성도는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알고 계십니까?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율법의 의로 거지같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거지가 되려면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됩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게 되면 율법을 전혀 지키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부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막연하게 하나님께서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런 막연함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에 대해서 성경에서 충분히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로마서만 보고 있습니다. 로마서만 보고 어떻게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이 누군지 알 수 있습니까? 로마서를 보고 누가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인가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로마서만 보고 자기들이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이라고 하면서 성도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성경입니다
문제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성경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의 인용구절을 성경 아래에 적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만 인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만 인용을 했습니까?
그리스도편지에서 이렇게 인용을 성경에서 찾아서 말씀을 드리면 어떻게 말을 하고 있습니까? 알레고리하게 해석을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알레고리하게 해석을 한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면 로마서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이 누군지를 알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누가 그것에 대해서 말할 수 있습니까?
그저 자기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을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알레고리하게 해석을 하지 않는다는 그들이 어떻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까? 너무 막연하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알레고리하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까? 알레고리하게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가 누군가를 찾고 있습니다.
누가 맞습니까?
로마서만 보고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는데 그 백성이 누군지 정확하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막연한 것을 믿으라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성경에서 다 가르쳐 주고 그것을 알아서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용입니다
거의 모든 성경이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꼭 구약만 인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에서도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얼마나 오묘하게 기록이 되어 있는가를 모르고 이 시대는 맹목적인 믿음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시지 않는데 그 백성이 누군가를 알고 있습니다.
로마서를 보고 있습니까?
이 말씀을 보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자기 백성이 누군가를 알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입니다 교회 안에는 분명히 청함을 받은 자와 택함을 입은 자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비유를 보아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그리고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그 비유가 어디를 비유로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양이 있고 염소가 있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비유들을 보면서도 막연하게 자기들은 구원을 받는 양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다섯 처녀가 누군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달란트를 남긴 자와 다섯 달란트를 남긴 자가 누군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 양이 누군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그 비유의 말씀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절대로 모릅니다.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로마서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미리 아신 자를 버리지 않는다고 하면 그 미리 아신 자가 누군가를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는데 왜 그런가 하면 이런 로마서의 말씀을 보고 막연하게 자기들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용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의 말씀만 보고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이 누군가를 알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다 거짓에 불과합니다. 알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사망에 이르고 있는데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성경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의 바리새인을 마귀의 자식이라고 말씀한 성경을 보고도 율법을 담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2:19절을 보겠습니다. (신 345쪽)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아시는 것과 이 시대 교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시는 자기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하나님이 미리 아시는 자기 백성이 누군가를 알아야 합니다.
유대교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이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그들은 종교인이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다 종교에 의해서 미혹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거짓을 전하는 목사도 속고 있고 그것을 듣고 있는 교인들도 속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왜 성경을 안 봅니까?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성경을 안 보고 자기들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의 생각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시대 거의 모든 교인들이 속고 있습니다. 지혜가 있다고 하는 그들이 지식이 있다고 하는 그들이 다 종교에 의해서 포승으로 묶여 끌려가고 있습니다.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십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그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시는데 그 백성이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데 그렇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불의에서 떠나 있다는 말씀입니다
불의입니다
주의 백성이 누군지 알면 뭐 합니까? 또 이 불의가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를 어떻게 해서 알면 그 다음을 알아야 하는데 거의 모든 목사들이 딱 거기까지입니다 막연하게 불의에서 떠나라고 하면서 교회 안에 있는 자기들이 불의에서 떠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장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모든 불의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기서 다시 모든 불의에 대해서 말씀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우리 성도는 불의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사람의 이성 때문에 이 불의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의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모든 일이 의입니다 그러면 불의는 내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불의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이 불의에서 떠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떠나지를 못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리 아신 자기 백성입니다
이제까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이 누군가를 알아보았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그대로 하나님의 미리 아신 자가 되어서 버림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next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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