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8:36절을 보겠습니다. (신 180쪽)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저 성경에 있는 문자를 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 상고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주님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고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믿음으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생입니다
성경을 보고는 있지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으니까 이 세상초등학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에 대해서 증거를 받기 위해서 성경을 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초등학문으로 보다가 종교의 교리를 따라가고 결국에는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상고하지 않습니다. 제가 성경의 문자를 안 본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교리가 우선시 되고 있고 교리를 먼저 배우고 나서 성경을 보다보니까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진리로 인도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종교의 교리가 성경을 보아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유대교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왜 주님을 죽이려고 하는가 하면 바로 교리의 문제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는데 자기들의 교리와 상충이 되니까 결국에는 종교를 위해서 주님을 죽이기 위해서 당시 자기들을 지배를 하고 있는 로마의 법정으로 끌고 가서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오시는 이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다윗과 같은 왕이 오심으로 해서 자기들의 나라가 세상에서 으뜸이 된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육의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적입니다
많은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보리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이 소문이 유대인들에게 다 퍼졌고 주님께서 이제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니까 백성들이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외치고 있는 상태에서 들어오셨습니다.
만왕의 왕입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그 말씀이 창조하신 일의 영광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그런 말씀들을 다 육의 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주님을 왕이라고 하면서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 역시 주님에게 가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주님을 죽이려고 하고 있고 주님을 죽일 수 있는 죄는 주님 스스로 왕이라고 하든지 아니면 다수가 왕이라고 해야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묻고 있습니다.
철학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하신 일을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가 세상의 상식으로도 주님은 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종교인들에 의해서 자기 종교 유대교가 영향을 받으니까 아무런 이유 없이 고소를 당했다고 생각을 하고 지금 주님을 심문하고 있고 그러나 유대인들의 민란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 지방 총독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빌라도입니다.
자기는 의로운 사람으로서 정의롭게 모든 일을 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고 있고 유대인들이 고소를 하는 것을 보고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나는 네가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데 내가 모르는 일이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빌라도의 생각입니다
자기 딴에는 의롭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서에서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을 얻게 하심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고자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금 빌라도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하면서 괜스레 애를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아니 모든 피조물들은 본능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지혜가 있고 생각하는 사고가 있다고 해도 짐승보다 뛰어날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빌라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유대교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몰라서 그리고 선지자들의 말씀을 몰라서 지금 주님을 고소를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율법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난 시간에도 신명기의 율법을 보았지만 그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종교에 의해서 행악자라 고소를 당하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19장입니다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8장에서 이미 내가 나를 증거하고 아버지께서 나를 증거를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인생들이 어떻게 하는가를 신명기의 율법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아무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 말함이 있으면 재판장은 자세히 사실하여 그 증인이 위증을 하거나 그 형제를 거짓으로 무함한 것이 판명되거든 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생명의 도이고 교회 안에 있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 성도는 이제 율법을 성문법으로 보고 있지 않고 있고 생명의 도로 모세의 율법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면 어느 누구도 성경을 그렇게 볼 수 없고 성경에서 무엇을 말씀을 하는지를 인생의 철학으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결론입니다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고 무함하는 자가 있으면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증을 함으로 해서 이렇게 주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고 그럼으로 해서 생명을 잃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우리 인생과 같은 육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그 생명을 누가 죽이는가 하면 종교를 대표로 하는 유대교인들이 무함을 하고 위증을 해서 그렇게 죽인다는 것을 요한복음18장에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나의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나의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오. 그러나 사실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빌라도입니다
그는 당시 유대 총독이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그 문장의 독해를 보면 알겠지만 빌라도는 주님을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도리어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을 살리려고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인생으로는 어떻게 했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은 창조하신 일대로 이루어지는 일을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하는 일을 이루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그리고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그 표면적인 언어는 다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보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그것을 아는 것으로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으로 심지어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먼저 종교의 포로에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철학은 종교성을 가지고 있고 율법주의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먼저 복음을 듣고 믿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저 표면적으로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2: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89쪽)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29절부터의 말씀입니다
빌라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바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세상의 총독이고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권세가 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행하시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고 성경에 기록이 되는 모든 일은 태초에 있는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 성도는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 인생의 모습을 입고 오셨지만 사도 요한은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함으로 취하시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실 것을 예언을 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생은 그분이 이루시고자 하는 일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대제사장들이 보낸 군대들에게 잡혀 오시면서도 제자들을 다 보내게 하시고 홀로 잡혀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그럼으로 해서 모든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시고 있습니다.
인간 빌라도입니다
그가 사람을 죽이는 권세도 있고 사람을 살리는 권세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 피조물이 인생의 철학으로는 의로운 일을 하려고 하고 있지만 도리어 창조주께서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일에 있어서는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빌라도는 압니다.
이 재판이 종교의 모함에 의해서 고소가 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시다는 것을 이미 소문을 통해서 다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피조물이 알고 있는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가 무엇을 압니까?
짐승이 알고 있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저 본능에 따라 알고 있는 것을 가지고 정의라고 하면서 그것을 실행을 하려고 하고 있지만 도리어 주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아버지의 일을 방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끝까지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런 빌라도에게 말씀합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을 해서 빌라도가 애를 쓰고 있는 것을 보면서 네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나라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지금 빌라도가 애를 쓰고 있는 그 일이 맞습니다. 그러나 빌라도가 자기가 정의롭다고 하면서 정의로운 일을 하려고 하는 것으로 주님의 구속의 일이 방해가 되고 있으니까 이제 주님께서 결정적으로 말씀을 하시면서 내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빌라도는 세상에 속한 일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빌라도에게 더 이상 네가 관여를 하지 말라고 하면서 내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성경대로 이루시는 일이라는 것을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고 있지만 우리 성도는 율법에서 그리고 선지자의 말씀에서 충분히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합니다.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에게 네가 나를 살리려고 하지 않아도 만일 내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었으면 내가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창조를 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충분히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피조물은 말 그대로 피조된 것들이 있는 세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나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피조물들의 나라가 있고 창조주께서 계시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나라는 바로 이 나라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고 알고 있고 보고 있는 나라는 피조물의 나라입니다. 빌라도 역시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래서 주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입니다
주님께서는 빌라도가 말을 하고 있는 그 나라의 왕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창조주시라는 것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분이 이 모든 피조물들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은 헛것이고 지나가는 그림자인데 유대인들과 빌라도는 그 피조물의 나라와 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한계입니다
우리는 창조주의 나라를 알 수 없습니다. 볼 수도 없고 우리의 언어로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이 나라에 대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있고 마치 이 세상의 나라와 같이 연결선상에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래서 신체의 구원을 주장을 하고 있고 그것은 이 세상 모든 종교가 다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으로는 태초에 있는 생명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그 신체가 영의 형상으로 변해서 부활을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입니다
우리 성도는 주님께서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신 일을 믿고 있고 그분이 우리에게 나타내신 것이 바로 태초에 있는 생명이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태초에 있는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으로는 깨달을 수도 없고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입니다
창조된 세상입니다. 그 나라의 모든 것은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인생들이 성경을 보면서도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줄을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입니다
헬라어로 보더라도 코스모스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코스모스라는 단어는 우주 전체를 의미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도 창조가 된 세상을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요한 역시 창조된 세상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의 나라입니다
창조된 세상과 하나님 나라가 연결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인생의 철학적 사고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창세전에 주님과 아버지가 함께 영화를 가지셨던 일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일서입니다
그 시작을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생명이 있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영원한 생명이 바로 태초에 있는 생명이라고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예수의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빛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은 바로 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무슨 말씀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세상입니다
육체의 생명입니다. 그 육체의 생명을 버리시는 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육체를 버리시면서 빌라도에게 내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너는 성경대로 나를 십자가에서 죽게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나라입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가 이 육체와 연결이 되어 있다면 주님을 죽게 두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신체의 구원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신체의 구원을 주장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육체를 버리시겠다고 말씀을 하는데 인생들은 그 육체를 너무도 사랑해서 성경을 보면서도 세상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사랑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것이 종교 안에 있는 인생들의 철학입니다.
요한일서5:4절을 보겠습니다. (신 393쪽)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하나님 나라입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졌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구입니다
저 우주에서 보면 작고 푸른 점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보이저호가 태양계를 떠나가면서 잠시 돌려서 지구를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정말 작고 푸른 점 하나로 보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태양계 안에서도 지구가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은하입니다
그리고 또 우주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피조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피조물들은 이 피조물에 애착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피조물을 헛것이라고 그리고 지나가는 그림자라고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헛것입니다
실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 헛것을 가지고 빌라도가 애착을 가지고 주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런 빌라도에게 주님께서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나라입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십니다. 그리고 장사 지낸지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십니다. 영으로 부활을 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되신다는 말씀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나타내시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고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빌라도에게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더 이상 말을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나라에 대해서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주
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오실 때는 이 피조물들은 다 사라지고 맙니다. 그리고 이제 실제인 새 하늘과 새 땅에 하나님에게서 내려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철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정도로 말씀을 하고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하늘입니다
우주를 보고 있습니다. 우주를 본다고 해도 그 끝을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과학적으로도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의 끝이 어디까지인줄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은 거룩한 성이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음으로 해서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상고를 한다고 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받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먼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복음을 전하는 자가 거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지금 이 말씀도 그렇습니다. 요한복음5장에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말을 하니까 주님께서 아버지와 아들의 동등하심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보더라도 어느 누구도 아버지와 아들의 동등하심을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내 나라입니다
주님의 나라는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의 동등하심을 믿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어느 누구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인생들은 성경을 보고 자기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교리를 만들고 하나님도 만들어서 믿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주님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이제 십자가를 지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시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더욱 빌라도는 주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도 그렇고 이방인들 역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성경에서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인생들의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를 해서 자기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마음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이제 십자가를 지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우리 성도가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창조된 세상은 주님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빌라도가 깨닫지 못하는 것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나 같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정말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입니다
이 아들에 대해서도 인생의 언어로만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안다고 하고 있고 자기들의 신체를 보고 아들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육체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문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독해력이 있다면 이 생명은 육체의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누구라도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요한일서를 보면서 이 생명을 육체의 생명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신체가 부활을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 나라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는 나라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저 하나님 나라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표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내가 죽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는 막연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생명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기는 자를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믿음이 있는 성도와 그렇지 않은 자를 비교를 해서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생명은 인생의 신체가 아니라 태초에 있는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이 태초에 있는 생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를 시작하면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빌라도에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너는 나를 십자가에서 죽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산다는 말씀은 우리 신체가 영의 형태로 부활을 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태초에 있는 생명을 그러니까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생명이 거하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창조주시고 우리에게 역시 창세전에 있는 생명을 얻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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