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1서2:25)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요한복음 강해

270-1, 예수를 데려다가

윤주만목사 2025. 3. 2. 18:10

요한복음19:1절을 보겠습니다. (18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성경에서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죄를 진 순간부터 어떻게 해도 영생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흙입니다

그래서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니 창조적 개념에서 보면 우리 피조물들은 이미 다 죽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이 드는 말씀이지만 주님께서도 그 제자에게 아버지가 죽은 것을 들으시고 죽은 자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우리는 죽은 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우리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은 자이고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 환상으로 보여주시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은 죽은 자들에게 전해지고 있고 그들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생명을 얻습니다.

 

어느 생명입니까?

피조물의 생명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태초에 있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주님께서 요한복음5장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동등하심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면서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실 우리 피조물들은 성경의 말씀과 같이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습니다. 그런 인생들에게 그러니까 죽은 자들에게 오셔서 그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아들을 믿음으로 선한 일을 하게 하심으로 해서 그 생명을 얻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16장까지입니다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17장에서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는 대로 창조하신 목적대로 되는 것을 주님께서는 아버지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마치 주님께서 기도를 하시는 것과 같이 기록이 되었지만 16장까지의 말씀을 확인을 하는 말씀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습니다.

 

그리고 18장입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다 이루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기드론 시내 저편에 있는 동산으로 들어가십니다. 거기는 제자들과 가끔 모이셨던 곳으로 주님을 파는 가룟 유다도 알고 있는 곳으로 그가 대제사장들이 보낸 군대를 이끌고 와서 주님을 잡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반드시 주님께서 홀로 이루셔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군대에게 제자들을 보내는 것을 용납을 하게 하시고 나서 주님께서 그 밤에 잡히셔서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가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당시 종교인들은 대제사장들과 그리고 바리새인과 서기관 등 여러 종파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 종교가 이 세상에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을 하는 것을 우리가 보았고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모든 구속의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생명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피조물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은 우리 피조물들이 가지고 있는 생명이 아니라 우리가 언어적으로도 설명할 수 없고 인생의 지적인 철학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생명입니다.

 

주님께서 하셔야 하는 일입니다

실제 구약 성경을 보면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것을 예언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무에 달려 죽으심으로 해서 우리가 받아야 하는 저주를 주님께서 대신 받으심으로 해서 우리 죄를 사해 주시고 우리로 아들 속에 있는 생명을 얻게 하신다는 말씀이고 그 생명을 얻은 자는 이 피조물의 세계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주님께서 이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해서 창세기부터 선지자들이 예언을 한 그 말씀이 다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영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그저 종교적인 믿음으로 믿는다고 하고 있고 그 십자가를 우상으로 만들어서 사용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주님께서 이제 십자가에서 죽으신다는 것을 알고 자기도 따라 죽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는 일이 아니었다면 사도 베드로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사도 베드로가 아무리 원해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물론 나중입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후에 주님의 말씀과 같이 종교인들에 의해서 죽은 것이지 십자가의 구속의 일을 도울 수는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시고 주님께서 사도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말씀을 하시고 주님의 말씀과 같이 인간 베드로는 세 번을 부인하는 일을 하고 말았지만 후에 주님의 제자로서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성경에서 증거를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일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고 그대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 성도는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선지자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성경대로 이루시는 일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성경의 중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믿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엇을 말씀을 하는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방의 종교는 이 십자가를 형상으로 만들어서 우상과 같이 섬기고 있지만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의미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표면적으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피조물의 형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그 피조물의 육체를 버리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육체를 버리심으로 우리 믿는 성도 역시 이 육체가 죽었다는 말씀을 믿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육체를 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입니다

영으로 부활하시는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 성도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일과 같이 우리 역시 생명으로 부활을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믿고 있습니다.

 

세 번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나라에서 만왕의 왕으로 계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 성도가 믿어야 하는 너무도 중요한 세 가지 말씀이지만 종교가 되어 있는 인생들은 그들의 교리를 따라 성경과는 전혀 다른 인생의 철학적 사고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빌라도는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으로 쳤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철학이 있습니다. 우리는 18장에서 빌라도라는 로마의 총독을 통해서 이 두 가지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당시 로마 총독이었지만 인간적으로는 참으로 정직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아는 선과 악입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말을 하고 있는 선과 악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속을 이루시는데 있어서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는 그 선과 악으로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하든지 주님을 풀어 주려고 했지만 결국에는 종교의 힘에 굴복을 하면서 십자가형을 내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이루시는 일입니다

그것이 사람이 알고 있는 선과 악으로 막을 수 있습니까? 아니 사람이 알고 있는 선과 악과 같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18장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빌라도가 아무리 정직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리고 자기가 알고 있는 선과 악으로 주님을 구하려고 했지만 주님께서는 결국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들이 알고 있는 이성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 피조물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심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입니다

성경을 보고 있지만 그들은 다 인생들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지식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 선과 악의 개념으로 성경을 보다보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을 깨달을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가를 증거를 받을 수 없고 또 우리 피조물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17:7절을 보겠습니다. (812)

주께 피하는 자를 그 일어나 치는 자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인자를 나타내소서

 

빌라도입니다

그는 로마 총독으로서 유대인들의 고소에서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기 위해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사람을 살리고 죽이고 할 수 있는 권세를 가졌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그러니까 태초에 있는 말씀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정의입니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니 그럴 일은 없지만 만약에 빌라도가 끝까지 정의를 내세워 예수 그리스도를 빼돌리고 살렸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인생의 정의로 인하여 인생들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빌라도 아니더라도 주님께서는 성경대로 십자가를 지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정의입니다

인생이 도덕을 이야기를 하고 법을 이야기를 하고 정의를 이야기를 한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우리는 헛것이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그런 단어가 없어서 그렇지 버츄얼 리얼리티(virtual reality)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습니다. 거기서 본다면 우리 인생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는 성경말씀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인생들이 도덕을 그리고 법을 그리고 의를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똑똑히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도 도무지 무슨 말씀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무엇입니까?

그 역시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헛것에 불과합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일을 자기의 철학적 정의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빌라도는 유대교라는 거대한 종교의 힘에 의해서 결국에는 굴복을 하고 주님을 십자가형을 내린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그래도 로마 총독입니다

그러나 당시 종교에 빠져 있던 유대인들을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열심으로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자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 생각에서는 그 일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인생의 철학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지만 그들이 철학으로 생각을 했던 율법의 의와는 전혀 다르게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이런 말씀을 볼 때마다 저라는 존재가 얼마나 미약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니 헛것이라는, 지나가는 그림자라는 성경말씀이 실감이 나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데 있어서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사실 방해를 하지 않으면 다행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전하는 이 복음으로 사람들이 영생을 얻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무리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하심을 입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복음을 전하고 있어도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는다면 제가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이 그렇습니다.

설령 자기가 복음을 전한다고 해도 자랑할 것이 없는 그런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을 얻는 일은 이미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성경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전하고 있을 뿐입니다.

 

생명을 얻게 하는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이 하는 모든 일은 그저 헛것이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법을 말하고 도덕을 말하고 의를 말하고 선을 말하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구원하시는 모든 일을 알아 믿는 역사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전도서의 말씀과 같이 짐승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벌레입니다. 구더기입니다. 그것과 생명을 얻지 못하고 죽은 인생과 무엇이 다릅니까?

 

그가 의롭습니까?

그가 선한 사람입니까? 그가 하나님을 잘 믿었습니까? 다 웃기는 이야기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더기가 이 세상에 보여서 꿈틀거리다가 죽었는데 자기 구더기들끼리 모여서 저가 하나님을 잘 믿었다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하는지 우리는 잘 생각을 해야 합니다.

 

종교의 힘입니다

이 세상 총독이라고 하는 빌라도가 막지를 못 했습니다. 그가 이제 뒤에서 주님에게 자기가 사람을 죽이는 권세도 있고 살리는 권세도 있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자기 입으로 그에게서 아무 죄를 찾지 못했다고 하는 그 역시도 결국에는 주님에게 십자가형을 내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성경입니다. 세상을 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다 헛것이고 지나가는 그림자입니다. 오직 성경만이 우리에게 참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경을 보려 고는 하지 않고 그저 자기들의 눈으로 보고 철학으로 아는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형을 내립니다.

이 일은 빌라도가 아무리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하는데 그것을 빌라도라는 사람의 정의를 이야기를 하면서 막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십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입니까?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인생 전체를 대신 해서 대표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담당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도 스스로가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신체의 구원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는 그 사상 자체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하는데도 인생들은 이율배반적인 사고를 가지고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채찍을 맞으십니다.

그냥 우연히 맞으신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맞으시는가를 이미 성경에 다 예언을 하셨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성경은 태초에 있는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시편입니다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좇아 스스로 삼가서 강포한 자의 길에 행치 아니하였사오며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지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태초에 있는 말씀대로 아버지의 말씀대로 이루시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중심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주께 피하는 자를 그 일어나 치는 자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인자를 나타내소서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의 법정입니다

이 일이 우연이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이라고도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제가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우리가 보는 성경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하고 그 일을 증거를 받는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빌라도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잠깐 말씀을 했지만 그는 정말 세상 사람들로서는 최고의 판결을 내리고 있고 그래서 당시 가장 심했던 강도라고 할 수 있는 바라바를 주님과 바꾸기를 원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런 인생의 철학보다도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이 우선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채찍질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편의 말씀이 직접 채찍질을 하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충분히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있고 그 일에서 주님을 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2:24절을 보겠습니다. (379)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람들은 종교 안에 들어와서 그저 그들이 하는 행위를 따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이 하는 행위를 보고 자기도 그대로 하는 것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을 했다고 말을 하는데 그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냥 믿는다는 것은 우상을 보고 믿는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냥 믿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을 보아도 주님께서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영생을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종교가 거대해지다보니까 다른 목적을 가지고 종교 안에 들어온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어가 있는 종교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대해서 영생을 얻는 일을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입니다

거의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사도 요한이 기록한 성경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시고 또 우리가 어떻게 이 생명을 얻어 영생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보는 모든 성경이 이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모르고 믿는다는 것은 우상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보이는 것을 보고 믿는다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아는 것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고 믿음으로 해서 선한 일을 한 자가 되어 영생을 얻은 자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얼마나 무지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르면서도 남들이 믿는다고 하니까 나도 그 안에 있는 것으로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생각을 하는 무지함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어느 때부터 복음이 보이기 시작을 했고 이제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고 믿는 자로 살게 하시고 보이지 않은 것들의 실상에 대해서 그러니까 내가 얻은 생명과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알기 때문입니다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고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돌감람나무 가지에 있는 저를 꺾어 참 감람나무 가지에 접붙이셨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소경일 수밖에 없고 지금까지 종교 안에서 그들과 같이 그저 우상을 보고 믿는다고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는 예표라는 말씀입니다 아담은 육체의 예표가 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는 영의 생명에 있어 예표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일을 사도 바울은 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입니다

아담과 같이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 영의 일을 믿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삶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알고 믿음으로 삶을 얻는데 그것이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육체 역시 모두가 죽는 순간 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런 아담의 자손인 피조물들의 죄악을 담당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누가 지은 죄를 담당하셨습니까? 아담의 자손인 우리 육체가 지은 죄를 담당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나무에 달리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채찍으로 맞으심으로 해서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나음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어야 합니다.

아니 우리 아담의 자손은 죽은 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해서 우리가 나음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렇게 채찍에 맞으심으로 해서 우리가 나음을 얻고 이제 그 결과로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로 돌아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죽은 자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해서 우리가 나음을 얻음으로 해서 이제는 우리 영혼의 목자 되신 그러니까 영이신 하나님의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채찍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분명히 맞으신 일입니다. 그러나 왜 맞으셨습니까?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우리를 대신해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해서 우리가 나음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렇게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분은 우리의 길입니다. 그러니까 그분이 하신 일은 결국에는 우리가 한 일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면서 맞은 채찍은 결국에 따지고 보면 우리가 맞은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나음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피조물인 나입니다. 따로 떼어서 성경을 보면 우리는 절대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을 수 없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의 예표가 되고 그분이 하신 일이 우리가 한 일이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생명을 얻는 선한 일을 행한 자가 되어서 생명의 부활로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셨습니까?

아니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그 육체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도 역시 우리가 같이 죽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함께입니다.

성경은 그래서 함께 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나와 따로 떼어서 생각을 하면 절대로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함께가 되면 우리는 쉽게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 역시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채찍에 맞았습니다.

누가 맞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만 혼자 맞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같이 맞은 것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나음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에게 성령이 오시고 우리의 영혼의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일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그럼으로 해서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로 돌아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도 역시 과거형으로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가 육체의 사람에서 이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그 육체에서 영의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는 헛것이고 그림자입니다. 그러나 영은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그것이 실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헛것에서 실상으로 돌아옴으로 해서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고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앉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하신 일입니다

다 내가 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아니 그렇게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죽으셨으면 우리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영으로 부활을 하셨으면 우리 역시 그 영의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일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영생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주님이 하신 일을 보면서도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과 같이 마치 딴 사람의 이야기 같이 성경을 보고 있고 그런 그들이 종교에 빠져 그저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믿음의 비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 안에는 심지어는 성인으로 보는 사람들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니 그들이 만든 교리 삼위일체라는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가에 대해서 증거를 받지 못하게 하고 있고 그럼으로 해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영의 일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게 만들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저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했습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우리 피조물과 같은 육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에서는 든든하고 견고한 휘장 안으로 들어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께서 들어가신 것과 같이 우리도 영의 생명을 얻은 자가 되어서 휘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들어가신 것을 믿음으로 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부활의 영광에 참예를 할 때 우리도 그렇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만 들어가셨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들어가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주님만 장사 되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도 함께 장사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죽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이런 말씀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함께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해서 우리가 함께 한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의 생명을 얻음으로 해서 우리도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것과 같이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씀들을 알고 19장의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채찍입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채찍에 맞으심으로 해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고 우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보고 있고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전에는 길을 잃은 양과 같았는데 이제는 우리의 목자에게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해서 우리가 영적인 병에서 나음을 잊고 이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내가 육체를 버리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우리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맞으시고 또 죽으시고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이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의 맞으심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다 태초에 있는 말씀대로 이루시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참으로 놀라운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그저 자기들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마치 성령이 오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채찍입니다

공동번역에서는 그분이 매 맞고 상처를 입으신 덕택으로 여러분의 상처는 나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위해서 채찍으로 맞으신 일의 결과가 무엇인가 하면 전에는 여러분은 길 잃은 양과 같았으나, 이제는 여러분의 영혼의 목자이며 감독이신 그에게로 돌아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중심입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음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우리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영적인 병에서 나음을 입고 그것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는가 하면 바로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빌라도의 법정입니다

그저 당시 사형 제도에서 채찍을 맞으셨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 당시 사형 제도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영적인 의미는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시는 일을 통해서 우리가 나음을 입을 수 있었고 그럼으로 해서 주님께서 장시 지내시고 부활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시고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next 2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