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3:14절을 보겠습니다. (신 289쪽)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강퍅하다
까다롭고 고집이 센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완고하다 역시 비슷합니다. 용통성이 없고 고집이 센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늘 성경을 볼 때마다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혜가 있습니까?
누가 이 시대 복음을 깨닫고 그 안에서 교제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으면 정말 사람의 지혜라는 것이 얼마나 무지한 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만큼 성경은 오묘합니다.
이 성경에서 복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복음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자기들이 하고 있는 종교적인 행위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인가 하면 복음이 계시가 되기 전까지는 모두가 다 강퍅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신다는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강퍅케 하십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은 모두가 다 강퍅한 자입니다. 왜 강퍅한 자인가 하면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져서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다 강퍅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기 전에 우리는 강퍅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강퍅케 하셔서 강퍅한 자가 아니라 본래 강퍅한 자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본래 강퍅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강퍅케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본래가 강퍅한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너무 쉽게 보다보니까 누구는 긍휼히 여기시고 누구는 강퍅케 하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강퍅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강퍅한 자 중에서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면 이상하게 해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아담의 씨로 태어난 모든 사람은 다 강퍅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은 긍휼을 입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강퍅케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라 해도 우리는 본래 강퍅한 자이지만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겨 주셔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강퍅하다
완고하다. 거의 비슷한 말입니다.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아직까지 수건이 벗겨지지가 않은 사람이 너무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을 거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혜가 있어서 수건을 스스로 벗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은 뼈 속부터 율법주의라서 그것을 벗기가 완고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완고합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율법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면 사람들은 율법주의에서 절대로 벗어나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율법을 의미하는 수건을 벗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면 자연스럽게 벗어집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완고하기 때문에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이성입니다. 사람은 율법을 지키지 않고는 불안해서 견디지를 못 합니다. 율법을 지켜야 자기가 하나님을 믿는 것과 같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완고하다고 그리고 강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강퍅합니다.
그리고 완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으면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가 되어서 긍휼히 여김을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 절대 안 벗겨집니다.
이제까지 교회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 유명하다고 하는 신학자들도 이 율법이 벗겨지지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본성입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가 아니라 그들은 긍휼을 입은 자가 되지 못해서 그렇게 유명한 신학자로서 평생을 살았지만 수건이 벗겨지지가 않았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수건이 벗겨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얼마나 완고한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스라엘이 완고해서 그들은 율법주의가 되어서 율법을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율법을 지켰습니까? 그리고 이 시대는 성경적으로 성도로서 살아가야 하는 율법만 지키고 있습니까? 역시 율법을 지키는 것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에서 사도 바울이 할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성경에 있는 모든 율법을 항상 지킬 의무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있습니다. 어떻게 긍휼히 여겨주시고 있는가 하면 성령을 보내 주셔서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닌 믿음의 비밀을 알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서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한다는 이상한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십일조를 내면서 믿음으로 한다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믿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수건이 벗겨질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긍휼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가 누군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직 완고해서 수건이 벗겨지지가 않은 상태에 있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단 한가지의 율법입니다
그것만 보아도 그가 누군가를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아직 완고해서 수건이 벗겨지기가 않은 사람이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아직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자가 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강퍅한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있습니다. 그가 누군가 하면 이삭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 리브가의 교회 안에 있는 야곱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야곱은 이삭과 같이 가나안을 유업으로 받은 영원한 생명이 있는 약속의 씨가 있는 성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9:19절을 보겠습니다. (신 252쪽)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내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책망하시는가? 누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강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고 있습니다. 아니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마음이 강퍅합니다. 복음에 대해서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있습니다.
참 사람이 볼 때는 불공평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성경을 주시지 않았다면 교회 안에 있는 어느 사람에게는 강퍅하게 그대로 두시고 어느 사람은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셨다면 불공평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를 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볼 때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다 하시고서 어떻게 사람을 책망하실 수 있느냐고 말할 사람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셔서 그를 구원해 주시고 구원을 못 받은 사람을 허물한다면 그것이 잘못 된 것이 아니냐고 말할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참 이성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그렇게 하시고 어떻게 우리를 허물하시겠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서 허물을 찾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선택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거기에 또 운명론자들이 있기도 합니다. 선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운명론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반대하는 나름대로의 말씀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지금 이 운명론자들이 나올 것을 알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대로 됩니다.
그런 모든 것이 다 정해져 있습니다.
그럼 우리의 운명은 이렇게 정해져 있으니까 우리는 이제 포기를 하면서 살아가야겠다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아니 복음을 전하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대로 모든 것이 다 이미 운명처럼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박을 하면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까지 복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것까지도 보았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은 아직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럼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 잘못을 말씀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참 설득력이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지 않으면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우리의 허물에 대해서 말씀을 할 수 있느냐고 말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이 말씀이 이해가 안 됩니다
아니 지금 로마서9장에서 사도 바울이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복음이 없는 사람은 로마서를 아무리 보아도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도 이 정도의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그것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잘못된 선택론을 교리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이 시대 기독교의 교리가 얼마나 잘못 되었는가를 목사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억지로 성경을 풀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리와 성경이 맞지를 않으니까 스스로도 성경을 보면서 앞뒤가 맞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이미 로마서 강해를 하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이 부활을 하시고 이제 천국에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각자의 재능대로 달란트를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 재능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재능이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는 육체로는 강퍅한 자입니다. 하나님이 하고자 하셔서 강퍅한 자가 아니라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는 순간 우리 인생은 모두가 강퍅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재능을 다 주셨습니다.
정말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혼인 잔치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해야 합니다. 반드시 리브가의 배 속에는 야곱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리브가의 배 속에 있는 자는 누구나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 재능을 주셨습니다.
거지입니까?
고아입니까? 과부입니까? 나그네입니까? 그가 어떠한 자라 해도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 재능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그 재능을 사용하지 않고 나서 나중에 하나님이 어찌하여 나를 허물하느냐고 말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5:39절을 보겠습니다. (신 151쪽)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어찌하여 하나님이 허물합니까?
당연히 허물하실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당연히 허물을 하시는가 하면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만약에 세상 사람들의 문제라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허물하신다면 그것이 잘못입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로마서를 하나님이 사도 바울에게 기록하게 하셨는데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셨는데 이것이 교회 안에 와 교회 밖이라면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허물을 찾지 않습니다.
천국과 지옥입니다
누가 천국에 가고 누가 지옥에 갑니까?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긴 자가 천국에 갑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신 자는 지옥에 갑니다. 그런데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에게 재능을 주셨습니다. 재능을 주시고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밖이 아닙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세상 죄인은 이 지구에 종말이 오면 그들은 불못에 들어가 소멸이 됩니다. 그들에게 복음이 안 전해졌다고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듬어서 찾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먼저 알고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왔습니다.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에 분명히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리고 재능도 주셨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다. 아니 본다고 해도 영생을 얻기 위해서 상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또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물하시는 것이 잘못입니까?
사람들은 운명론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운명론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육체의 선택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며 그들에게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물론 중세시대에는 성경을 못 보게 했습니다.
천주교의 신부가 아니고 성경을 본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생을 사모하는 성도는 성경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가난해서 못 보았습니까? 그것까지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성경에서 영생을 얻기를 위해서 상고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종교를 위해서는 성경을 그렇게 열심을 다해서 보고 있지만 영생을 얻기 위해서 보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성경을 보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상고를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성경으로 보기가 참으로 어렵게 편찬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에 너무 많은 첨삭이 들어가 있고 그것을 아무 생각이 없이 목사들까지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로마서9장입니다
1절부터13절까지가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대해서 14절에서 그런즉, 16절에서 그런즉, 18절에서 그런즉, 30절에서 그런즉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8절에서 그런즉을 말씀하고 있는데 19절에서 시작하면서 동그라미를 쳐 놓고 그 위에 제목을 달아 놓아서 18절과 19절의 말씀이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즉 입니다.
그 다음 그런즉이 나올 때까지 한 문장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18절에서 29절까지는 같은 내용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19절에서 동그라미를 쳐 놓고 제목을 달아 놓았습니다. 이런 것들이 성경을 보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립니다.
이런 성경을 보면서 과연 구원을 받을 사람이 나오겠습니까? 정말 우리는 성경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목사들도 성경을 보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의 일부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꾸짖지 아니하시고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설령 그런 성경을 보고 있다고 해도 영생을 얻는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그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또 성경을 바로 볼 수 있게 역사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입니다
영생을 사모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똑같이 성경을 보고 있지만 성경에 대해서 전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이야기를 합니까? 자기에게 불리하게 생각이 되면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에게 강퍅케 하시고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다 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허물하겠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허물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달란트의 비유에서 한 달란트를 받은 자에게 주님께서 게으르고 악한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 재능까지 주셨는데도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재능을 주시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허물하시는 것이 분명히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22:12절을 보겠습니다. (신 37쪽)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혼인 잔치의 비유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안 읽었다 해도 누구나 그래도 마태복음 정도는 읽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처음 교회에 나온 사람이 성경을 보겠다고 하면서 읽는 것이 마태복음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정도는 누구나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혼인 잔치의 비유입니다.
하나님께서 혼인 잔치를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천국에 들어가게 잔치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나 교회에 나오면 천국에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천국에 대해서 알고자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이스라엘을 청했는데 그들이 오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청했다는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먼저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안 오니까 종들을 보내서 사거리에서 만나는 자를 혼인 잔치에 청해서 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주님과 혼인을 하는데 그 잔치에 청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악한 자입니다. 그리고 선한 자입니다. 만나는 대로 모두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원래 청함을 받은 이스라엘이 오지를 않으니까 사거리에 나가서 아무나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혼인 잔치의 예복을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예복을 안 주었습니까?
약속의 씨를 안 주셨습니까?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할 수 있게 예복을 준비를 해서 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예복을 주는데도 안 입고 있습니다.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입니다. 그것이 어느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있는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한 사람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오면 성경을 보게 됩니다. 그 성경에 이미 예복이 다 준비가 되어서 값없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예복을 준비 하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예복을 입지를 않고 있습니다. 혼인 잔치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예복을 주시고 있지만 사람들이 안 입고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묻고 있습니다.
왜 예복을 입지 않았느냐고 하자 유구무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데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나중에 유구무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깨닫지를 못하고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을 하겠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로마서의 말씀을 보고 있지만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신체의 선택이니 운명이니 하면서 격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막연하게 자기들을 구원하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말 합니까?
자기들이 긍휼하심을 입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도 모르고 예복도 입지 않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셨다고 하면서 자기들의 신체가 선택을 받았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반드시 마태복음의 말씀과 같이 유구무언이 됩니다.
나중에 할 말이 있을 것 같습니까?
여러분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아니 한글을 배울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겼다고 하면서 나를 어찌하여 허물하느냐고 하는 말이 통할 것 같습니까? 반드시 이 한 사람과 같이 유구무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 팔십년입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아니 영생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부지런하게 성경에서 영생을 얻기를 상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은 영생에 대해서 게으르게 하다가 주님이 오셨을 때 예복을 입지 않은 것이 발견이 되어서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았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게 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운 곳에 내어 던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국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천국은 우리에게 영광이 넘치는 곳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이 천국에 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천국이 좋다고 해도 교회 안에는 지옥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차라리 세상에 살면 그 수족을 결박당하지 않을 수 있고 바깥 어두운 곳에 내어 던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입을 수 있는 예복을 준비하셨습니다. 아니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적습니까?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자가 적어서 적습니까? 절대로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고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영생에 대해서 사모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안 입습니다.
예복을 은혜로 거저 주셔도 안 입습니다. 왜 안 입는가 하면 자기들의 지혜로 이 성경을 보니까 도무지 입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물하신다고 따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예복까지 준비를 해 주셨습니다.
누가복음11:13절을 보겠습니다. (신 112쪽)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을 안 보내 주셨습니까?
그래서 성경을 보아도 도무지 무슨 말씀인가를 알 수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셔서 그렇게 긍휼히 여기시는 자에게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까? 우리는 정말 성경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성경으로 보고 있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성령을 안 보내 주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령을 구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성령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보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말씀들이 너무 많은데 그런 것을 생각하지를 않고 스스로 포기를 하거나 자기에게 믿음이 없는 것으로 치부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안 봅니까?
그러면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성경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왜 성경을 보는가 하면 이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복음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러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게 역사를 하는데 어떻게 성경을 안 볼 수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 뭐합니까?
이미 기독교라는 종교에 너무 세뇌가 되어 있습니다. 목사들은 자기들이 배운 신학을 기초로 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핑계를 대고 운명론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 선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것이 곧 운명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말장난입니다.
내 신체를 선택하신 것이나 운명론이나 무엇이 다릅니까? 고상한 척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선택이라는 고상한 말을 하면서 스스로 포기를 하고 있다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는 성령을 구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은사가 아닙니다. 아니 이 시대는 은사가 아니라 종교의 샤머니즘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자기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그런 현상을 보고 성령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영을 이 시대는 구하지도 않습니다. 아니 진리의 영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감히 구할 생각도 못 합니다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구합니까?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면 감지덕지 하고 받는 것이고 자기가 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냥 보내 주시면 되지 무엇 하려고 우리에게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알아서 보내 주시면 되는데 왜 굳이 우리에게 성령을 구하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구해야 합니다.
반드시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나는 구하지도 않는데 하늘에서 도깨비 방망이 두드리듯이 뚝딱하고 주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라고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십니까?
당연히 허물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 그리스도편지에 와서 같이 교제를 하고 있는 성도들이 그냥 왔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는 모두가 지혜를 구했습니다.
늘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늘 영생에 대해서 그리고 성경을 바로 알기를 사모 했습니다. 아니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언가 왠지 모르게 찜찜했기 때문에 바로 알고 싶어서 찾아 다녔습니다. 직접적으로 성령을 구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내가 듣고 있는 이 말씀이 성경과 같지 않았기 때문에 찾아다녔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물하십니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 모두가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진리를 알고 영생을 받는 것을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복음을 밝히 보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입니다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왜 강퍅한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허물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허물을 하시는데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안 보고 있고 성경을 보아도 이미 기독교의 교리에 가득 차 있는 상태에서 보고 있어서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같이 소경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편19:12절을 보겠습니다. (구 816쪽)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생 모두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구원에 대해서 무지합니다. 이것이 영의 일이다보니까 사람의 지혜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은혜라는 말씀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자기 허물을 깨달아야 하는데 사람의 이성으로는 어느 누구도 자기 허물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구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답이 다 나와 있습니다. 누가 자기 허물을 깨닫습니까? 허물을 깨닫지를 못하니까 나의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간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시대 누가 자기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구하고 있습니까? 제가 알기에는 자기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구하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허물이라고 하니까 어떻게 합니까?
자기 육신의 죄가 숨은 것이 있으면 그것이 생각나서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까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 하면 마음이 강퍅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긍휼을 구해야 하는데 긍휼을 구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신다면 어떻게 나를 허물하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는데 누가 그 뜻을 대적할 수 있겠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말합니까?
이 시대 자기 신체의 선택을 주장하는 자들이 그렇게 말을 합니다. 아니 자기들이 신체의 선택의 당위성을 설명하려고 하나님께서 그 뜻을 정하셔서 우리를 선택하셨는데 누가 대적하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전혀 모르는 그들이 육의 일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들이 마치 대단한 존재나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먼저 허물을 깨닫기 바랍니다.
아니 내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자기들의 허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허물진 백성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에서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들의 허물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허물진 백성입니다
왜 허물진 백성인가 하면 우리 스스로 복음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강퍅해서 율법을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그것을 깨달을 수 있게 복음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있지만 이 복음이 전혀 보이지가 않아서 자기 허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약속의 씨입니다.
우리에게는 이삭과 같은 생명을 가진 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리브라가 있습니다. 그 안에서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삭과 같이 약속의 씨가 있는 야곱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약속의 씨가 없는 에서를 미워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도리로 생각해도 너무도 당연한 말씀입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사실 누구나 다 얻을 수 있게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안 보니까 성령이 그들에게 임할 수 없습니다. 아니 성경을 보더라도 이 영생에 대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육체의 이를 위해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 하고자 하는 자가 누군가 하면 성경을 보면서 영생을 얻기를 위해서 상고를 하는 자입니다. 그렇게 성경을 보는 사람은 성령을 구하게 되어 있고 자기 허물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성경을 안 보고 있고 성경을 봐도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물하십니까?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누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대적하겠느냐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밝히 보이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운명론자도 아니고 육체의 선택을 믿는 자도 아니고 천국의 보화를 성경에서 찾은 성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next 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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