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88-2,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윤주만목사 2025. 1. 14. 07:54

에베소서2:4-5절을 보겠습니다. (311)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긍휼입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하는 자와 달음박질을 하는 자는 우리 육체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은 우리의 육체가 아니라 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원하는 자도 없습니다. 그리고 달음박질하는 자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 안에 이삭과 같은 약속의 씨가 탄생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육체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셨다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십계명을 지키지 못해서 다 죽어야 하는데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복음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해 주셨습니다.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 안에 생명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에베소서에서는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정말 이 구원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구원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너무 막연하게 보고 있고 그저 교회 안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자기가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 구원도 영의 구원이 아니라 자기들의 신체가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베드로전서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고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영을 함께 살리시는데 원하는 자가 없고 달음박질하는 자도 없는데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그것이 안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소경이 되어서 소경을 인도하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자기들이 원하지도 않고 달음박질도 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이 말씀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긍휼히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어떻게 살아났는가 하면 육체는 죽고 영으로 살아났다는 말씀입니다.

전제 조건입니다.

육체로는 먼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말로는 죽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죽지를 않고 있습니다. 죽어야 살리실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죽지를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전혀 죽지를 않고 살아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누가 긍휼하심을 입습니까?

그것을 출애굽기에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십계명을 지키지 못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기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구입니까?

원하는 자도 아닙니다. 달음박질하는 자도 아닙니다.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았습니다. 그런데 누가 긍휼히 여김을 받는가 하면 십계명을 지키지 못해서 죽어야 하는 우리가 긍휼히 여기심을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 십계명을 자기들이 지키겠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는 것은 우리가 십계명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긍휼히 여기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자기들이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십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교회 안에서 문자 그대로의 십계명을 지키면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고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바늘귀로 들어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을 보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로만 자기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하심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9:17절을 보겠습니다. (252)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바로를 두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일을 하려고 너를 세웠다.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나타내고, 내 이름을 온 땅에 전파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의 육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영의 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육의 일로 보고 있습니다. 구약을 보면서 예표와 그림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그리고 예표입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은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 세상 초등학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문자를 아는 것으로 마치 영의 일을 아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이 어떠한가 하면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은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바로를 세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위해서 바로를 세웠습니까?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는 일을 위해서 바로를 세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닙니다. 그리고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닙니다.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는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바로를 세우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온 땅에 전파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일입니까?

구원입니다. 구약은 그림자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는 구약을 볼 때는 늘 그림자와 비유와 예표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구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보다보니까 성경이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거의 다 삼천포로 빠져 갈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위해서 바로를 세우셨는지를 모르고 그저 문자 그대로 설교를 할 것이 분명합니다. 앞에 있는 말씀이 깨달아져야 이 일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데 앞에 있는 말씀을 모르면 이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그 일을 위하여 바로를 세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9:16절을 보겠습니다. (94)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바로입니다

지금의 이집트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당시는 애굽이라는 나라가 가장 강대했습니다. 주변 거의 모든 국가가 애굽의 포로가 되거나 아니면 조공을 바치고 있었습니다. 당시 바로는 모든 나라를 통치할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바로의 포로가 된 것은 아닙니다. 요셉 때에 기근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살게 하심으로 해서 갔습니다. 아직 가나안 땅에 죄악이 관영하지를 않아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내려가게 하셨지만 요셉을 모르는 왕이 나타남으로 해서 이스라엘은 포로가 아닌 포로가 되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내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바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능력을 보이시고 내 이름을 온 땅에 알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능력입니까? 하나님께서 바로를 육적으로 이기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능력을 보이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은 애굽에게서 이스라엘을 꺼내 주신 일입니다.

어떤 능력을 보이셨습니까?

이스라엘이 바로의 포로가 되어서 노역에 시달렸는데 하나님께서 그 바로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건져 주셨습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가 아니라 그 당시에 포로라는 것은 아무 힘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비록 포로가 아니었지만 포로와 같이 살았으며 나중에는 아들을 나면 죽이라고 까지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들입니다

그것은 천국의 백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애굽은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아서 노역을 시키려고 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을 하신 것이 있지만 그들의 힘으로는 애굽에서 나올 수도 없고 가나안에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너를 세웠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바로를 세우셨는가 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시기 위해서 세우셨습니다. 애굽이 아무리 강대한 나라라 해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구원해 주시는가를 보여 주시기 위해서 바로를 세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을 보이시기 위해서 바로를 세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성경의 거의 모든 비유는 율법에 대한 비유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를 통해서 비유로 해서 율법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율법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출애굽기6:5절을 보겠습니다. (89)

"이제 애굽 사람이 종을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시편126:1절을 보겠습니다. (898)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이스라엘입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나오더니 이스라엘을 포로로 삼았습니다. 애굽은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은 나라입니다. 포로가 되면 어떻게 됩니까? 포로로 잡힌 자는 자기의 뜻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포로로 잡은 자가 죽여도 할 말이 없이 그대로 죽어야 합니다.

바로입니다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를 하고 있습니까? 사단은 우리 인생들을 모두 포로로 잡았습니다. 사단의 종이 되어 있는 우리 인생은 모두가 사망을 당해야 합니다. 사단이 죽인다 해도 우리에게는 저항 할 수 있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우리가 누구의 포로가 되어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종은 포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능력을 바로를 통해서 보이셨습니까? 이스라엘이 바로의 포로가 되어 있었는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로의 포로에서 꺼내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능력으로는 아무리 하나님께서 그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해 주셨어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나올 수 없습니다.

포로는 그렇습니다.

군대가 있어야 싸울 수 있는데 이스라엘은 군대도 없고 또 무기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로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꿈꾸는 것 같습니까?

포로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나올 수 없습니다. 마치 근대사의 우리나라와 같습니다. 우리는 일본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군대도 없고 또 일본이라는 나라와 싸울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함으로 해서 일본의 포로에서 우리가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와 같습니다.

우리는 잘 상상이 안 됩니다. 그런데 해방을 맞이했던 사람들은 그것을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반 백성들은 살기가 힘들어서 그런 것을 잘 모를 수 있겠지만 나라를 생각하면서 독립군에서 싸움을 했던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광복이 되었다는 것은 이 시편의 말씀과 같이 꿈을 꾸는 것과 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육의 일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누구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데 누군가 더 강대한 사람이 와서 우리를 건져 준다면 정말 꿈만 같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를 이 일을 위해서 세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바로에게서 나올 수 없고 노역에 시달리면서 신음을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영의 일입니다

우리는 다 사단에게 잡힌바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인생은 율법에 의해서 모두가 저주를 받았습니다. 율법으로 하면 우리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능력을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자기가 율법주의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지독한 율법주의입니다

그렇게 율법에 포로가 되어 있던 사람이 포로에서 풀려났을 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애굽의 포로가 되어서 노역을 하면서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포로가 되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이제 율법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성도는 자기가 얼마나 율법에 매여 있었던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리스도편지에서 교제를 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정말 꿈만 같다고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지혜가 있습니까?

아니 율법의 포로가 되어 있으면서도 내가 포로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조차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계시가 되니까 이제 그 율법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이 시대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것은 꿈과 같은 일입니다. 왜 꿈같은가 하면 그래도 이스라엘이 애굽에 포로가 되어 있는 것은 인지라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우리는 수십 년을 포로로 살면서도 포로가 되어 있었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았습니다. 애굽에 포로가 되어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육적으로 포로가 되어서 살았기 때문에 알 수 있었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어떤 능력을 보이셨는가 하면 포로가 되어 있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 육체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셔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 인생은 포로입니다

율법에 의해서 모두가 사단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 자유케 하신 것을 아는 성도는 그것이 꿈과 같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율법을 안 지킬 수 있습니까?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능력을 바로에게 나타내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율법에 의해서 저주를 받고 소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그 저주를 받은 육체의 생명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꿈과 같은 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편지에서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하는 성도님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얼마나 꿈과 같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포로가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어떻게 종이 되어 있는 줄을 모르고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아들과 함께 유업을 얻지 못하고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율법을 안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너무도 자유롭기만 합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너무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포로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바로에게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어떤 능력을 보이셨는가 하면 우리가 율법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는데 거기서 꺼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바로라는 강한 자를 세우시고 우리를 거기서 꺼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2:5절을 보겠습니다. (26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바로의 포로에서 스스로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가 스스로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우리를 저주 받게 하는 그 율법을 우리 스스로는 절대로 지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능력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것이 이 시대 우리에게 무엇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하면 믿음입니다. 성도는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서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평안할 수 있고 구원에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바로를 세워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그것이 이제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고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으로 보여 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으로 어떻게 보여 지고 있는가 하면 율법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야고보서의 말씀과 같이 우리는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온전케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육적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바로의 손에서 꺼냄을 받아서 광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누가 강합니까? 율법이 강합니다. 우리 인생의 지혜로는 어느 누구도 이 강한 자에게서 스스로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행함이 있는 믿음, 율법을 지키지 않는 믿음을 주셔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지 않고는 우리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일 수 없습니다. 이 시대 모든 사람이 율법의 포로가 되어 있으면서도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빠져 나오지를 못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에게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로입니다

율법은 그 바로보다 더 강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 모두가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바로는 포로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율법에 포로가 되어 있는 사람은 자기가 포로가 되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바로보다 더 강한 자가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육적으로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믿음으로 보이시고 있습니다. 이 믿음이 우리의 능력이 되어서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포로가 되어서 저주를 받아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서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이 시대 누가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이고 있습니까? 아무도 안 보이고 있습니다. 왜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이지를 못하고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에게는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율법의 포로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보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하나님의 능력이 전혀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행함이 있는 능력을 보여야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보이지가 않아서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이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야고보의 말씀과 같이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인다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했다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5절을 보겠습니다. (304)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를 세우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그 능력이 그때만 보이신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하나님의 능력이 보이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능력입니다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면서 이상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령의 은사라고 하면서 성령 체험이라고 하면서 샤머니즘적인 행위들을 하면서 마치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물론 육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영의 일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능력을 너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를 세워서 하나님께서 능력을 보이셨다고 하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면 자기들에게도 육적으로 바로를 이긴 것과 같은 능력이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표와 그림자입니다

구약의 문자를 그대로 보면서 하나님께서도 이 시대 자기들에게 능력이 임하시면 이스라엘이 육적으로 바로를 이기고 나온 것과 같이 육적으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누구의 종이 되어 있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구원을 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믿음에서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합니까?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에서냐 믿음에서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믿음에서냐를 묻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하시는 이의 일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에서냐 믿음에서냐고 묻고 있습니다. 분명히 믿음에서라고 모든 사람이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바로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바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보이시고 있는가 하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믿음의 비밀을 주시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행함을 통해서 보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21절을 보겠습니다. (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구원입니다

원하는 자가 없습니다. 달음박질하는 자도 없습니다. 물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천국에 가기를 원하고 있고 나름대로 천국에 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사람은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습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고 아니 육체는 저주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 영의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으로 살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도 같은 영을 주셨습니다.

바로에게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바로에게 그렇게 능력을 보이신 것은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이 무엇입니까? 물론 성경에는 하나님에 대한 여러 가지 이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고 그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십니다.

어떤 능력을 보이셨습니까?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로 보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 전파가 되었습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이 시대는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믿는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로만 믿는다고 하고 있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위해서 율법을 세우시고 그 율법을 완전히 지키심으로 해서 의인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이 시대는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내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의 지식으로 외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하나님의 이름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 전파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왜 전파가 되지 않고 있는가 하면 이 일을 위하여 바로를 세우시고 바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야 하는데 이 시대는 전혀 그렇지가 않고 있습니다.

이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는 자를 구원해 주시는 일입니다. 그 일을 바로를 세우시고 바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이 보여야 하는데 이 시대는 전혀 그렇지가 않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그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하나님의 능력이 교회 안에서 나타나지를 않고 모두가 율법의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지키시고 십자가에서 구속을 이루셨습니다. 그 이름만이 나를 구원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next 8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