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85-1,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윤주만목사 2025. 1. 4. 18:24

로마서9:9절을 보겠습니다. (251쪽을 보겠습니다.)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육신의 자녀입니다

그 자녀를 보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이 시대는 부활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육신의 자녀가 무엇인지 그리고 약속의 씨가 무엇인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계속해서 말씀을 드렸듯이 우리의 부활은 신체가 아니라 영이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을 합니다.

육신의 자녀는 부활을 하지 못 합니다

영원한 생명이 없어서 부활을 하지 못하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육신은 부활을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 영이 부활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육신은 어떻게 되는가 하면 썩어 없어지게 됩니다.

썩습니다.

그 썩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육신의 자녀라고 하니까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삭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했다고 해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이삭이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역시 육신의 자녀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육신을 가지고 있는 모든 인생은 육신의 자녀입니다. 내가 아무리 하나님을 믿고 있고 내 안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어 있는 영의 생명이 있다 해도 역시 육신의 자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육신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육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 모두는 육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육신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육신의 자녀를 마치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육신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녀입니다

그 부모로부터 태어나야 자녀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육신을 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육신은 우리 부모로부터 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육신의 부모로부터 태어난 그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습니까?

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육신의 자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육신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 그 육신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말씀할 수도 있습니다.

육신입니다

다른 하나는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는 사람을 말씀할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우리 육신은 죄의 법을 섬기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는가 하면 그 육신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의 생명이 있다 해도 우리 육신은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그 육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육신이 주님이 오시는 날에 깨어서 천국에 들어가서 예수님도 만나고 자기와 같이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도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부활을 하는 줄도 모르고 있으면서 교회 안에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육신입니다

반드시 썩어 없어집니다. 우리 육신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까지만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 영혼과 연결 고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육신은 썩어 없어집니다. 그리고 내 안에 성령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난 영이 있어서 그 영이 주님이 오실 때 부활을 합니다.

그 영이 생명입니다

그리고 그 영이 진짜 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진짜 나라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나는 이 세상을 살다가 죽으면 썩어 없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서 난 내가 있어서 그 생명이 주님이 오실 때 부활을 해서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영원히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오직 약속의 씨로 여기심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씨가 무엇입니까? 요한일서에서 사도 요한이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 육신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육신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던 사람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던 사람이나 육신은 그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것이 깨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영원한 생명을 모르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생명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육신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생명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것을 적절하게 섞어 버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육으로 난 것과 성령으로 난 것이 적당히 섞여서 그것이 마치 하나가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기초가 되는 말씀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육으로 난 것과 성령으로 난 것은 전혀 다른 본질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섞여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으로 끝이 나고 성령으로 난 것은 영원한 생명이 있어서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은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육으로 난 사람이 있고 성령으로 난 사람이 있습니다. 육으로 난 사람은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이 육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난 사람은 우리가 그 생명에 대해서는 아직 느끼거나 알 수 없지만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그것이 믿어지고 있습니다.

오직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입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속을 믿음으로 내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이 믿어짐으로 해서 있는 생명이 씨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형체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씨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은 "내년에 내가 다시 올 때쯤에는,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한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는데 그 약속이 무엇인가 하면 내년 이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누구를 예표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라입니다. 그는 누구를 예표하고 있습니까? 교회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태어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5:32절을 보겠습니다. (316쪽을 보겠습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비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남편과 아내입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에서는 이 사라를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사라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라는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명년 이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한 그것은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탄생이 되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이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인 면을 말씀을 했습니다. 이 교회가 음녀가 된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교회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음녀가 되어 있는 교회, 율법의 종이 되어 있는 교회에 들어가는 순간에 그 교회에서는 아들을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라입니다

반드시 사라에게서 아들을 낳을 수 있습니다. 사라가 아닌 교회에서는 절대로 아들을 낳을 수 없습니다.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로마서를 통해서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반드시 사라의 교회에서만 아들을 낳을 수 있고 그 아들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라의 교회입니다

그 교회 안에만 약속이 있습니다. 다른 교회에 약속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라의 교회에만 약속이 있고 그 약속이 무엇인가 하면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사라의 교회는 거의 사라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종노릇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땅에 있는 교회는 종노릇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땅에 있는 교회는 모두가 종노릇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땅에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종노릇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누구와 같습니까?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에게 진리가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을 하시니까 바리새인들이 듣고 있다고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똑같은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어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디에 계십니까? 하늘에 계십니다. 그러면 그의 아내가 어디에 있습니까? 역시 하늘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사라를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땅에 있는 교회에 있으면 안 됩니다.

이 시대 교회입니다

다 땅에 있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에는 약속의 말씀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셨는가 하면 하늘에 있는 교회에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다 땅에 있는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종입니다.

종에게서는 종만 낳습니다. 반드시 종이 태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야 약속의 씨가 태어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의 씨가 아브라함의 씨고 이 씨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밀입니다

교회는 정말 비밀입니다. 이 시대 교회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모두가 자기들의 눈으로 보고 있는 그 교회를 보고 교회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또 성경에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나도 함께 있고 그것이 교회라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들이 모여 있는 것을 교회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되려면 반드시 약속의 자녀가 태어나야 합니다. 약속의 자녀가 없는 교회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아브라함에게 명년 이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아들이 누구인가 하면 영원한 생명이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라는 교회입니다

반드시 사라의 교회에서만 아들이 탄생이 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은 육신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가 어디에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주님과 교회를 남편과 아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내를 볼 수 있는 눈이 그들에게는 없고 아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에베소서5:24절을 보겠습니다. (316쪽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디도서1:10절을 보겠습니다. (349쪽을 보겠습니다.)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

디도서3:9절을 보겠습니다. (350쪽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명년 이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라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셨지만 그 사라는 교회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있는 교회인가 하면 땅에 있는 교회가 아니라 하늘에 있는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교회가 음녀가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음녀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녀라는 단어가 아주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교회는 쉽게 음녀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 우리 성도들에게 음녀가 누군가를 가르쳐 주면서 음녀를 따라가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녀에게서는 절대로 아들이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라에게 아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아들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갈은 종을 낳았습니다. 반드시 사라에게 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사라와 하갈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교회를 보면서도 그것이 하갈인가 아니면 위에 있는 예루살렘인가를 분별을 못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분별을 못하면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년 이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사라의 교회에 있어야 아들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라의 교회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모두가 종의 교회에서 종노릇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라의 교회입니다

남편에게 복종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가 아니 우리가 예배를 하고 있는 교회가 남편에게 복종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 남편을 주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로마서에서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 복음입니다. 사라의 교회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복종을 하고 있으면 그것은 사라의 교회입니다. 그 남편에게 복종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로 속이는 자가 할례당 가운데 많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체의 할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복음에 복종치 않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복종하는가 아니면 복종치 아니하는가를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이 할례라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헛된 말로 속이고 있습니다.

누가 헛된 말에 속았습니까?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헛된 말에 속아서 육체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육체의 할례를 받았다는 말씀은 율법을 지켰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헛된 말로 속입니다.

복종치 아니하는 자들은 다 헛된 말에 속고 있습니다. 그 헛된 말이 무엇인가 하면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복종을 해야 하는데 교회가 어떻게 되고 있는가 하면 다 헛된 말에 속아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입니까?

반드시 그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복음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 복음에 복종을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헛된 말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 헛된 말이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말이 헛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라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명년 이 때에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라의 교회가 되어 있어야 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는 사라의 교회가 아니라 다 헛된 말에 속아서 복음에 복종치 아니하고 있는 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단 한 가지를 지켜도 사라의 교회가 아닙니다. 갈라디아에서 자유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무거운 짐에서 자유하는 자가 사라의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 안에서 아들이 태어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복종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에 복종한다는 말씀은 율법에 대해서 자유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종이 되어 있으면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그 교회는 사라의 교회가 될 수 없고 사라의 교회가 아니면 아들을 낳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년 이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입니다

이 세상에 건물을 지어 놓은 교회는 다 하갈의 교회입니다. 예루살렘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성전이 있었습니다. 그 보이는 성전이 있는 교회는 다 종노릇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자유하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교회 안에서는 아들이 태어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교회입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복음에 복종을 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거의 모든 교회가 다 헛된 말에 속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헛된 말에 속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율법의 종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 교회는 사라의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사라의 교회가 되지 못하면 아들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은 사라에게 아들에 있으리라고 하셨지 다른 사람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라에게만 있습니다.

그런데 자유 하는 자가 없습니다. 갈라디아에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교회는 율법에 대해서 자유 해야 합니다. 그런 자유 하는 교회를 사라의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교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명년 이 때에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4:26절을 보겠습니다. (307쪽을 보겠습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사라입니다

누구의 어머니입니까? 이삭의 어머니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사라는 곧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명년 이 때에 사라가 아들을 낳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라가 누군가 하면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의 어머니 사라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사라는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우리 역시 사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하늘의 씨가 탄생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유대인들이 아니라 이방의 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이방의 교회를 보고 사도 바울이 사라를 가르쳐서 곧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로마서에서 육신으로 이삭을 낳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어떻게 아들이 태어나는 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어떻게 태어나는 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의 어머니가 아닙니다.

사라는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으로 이삭을 낳은 것은 교회를 통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이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영원한 생명이 어떻게 탄생이 되는가 하면 자유하면서 복음에 복종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성경에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을 알고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를 말씀하고 있습니까?

로마서는 우리가 누구의 자녀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태어나고 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어떻게 탄생이 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이 무엇인가 하면 명년 이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그 사라를 통해서 우리 아들들이 태어났습니다. 이삭에게 있어 사라가 어머니가 아니라 그리스도 영이 있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서도 이 영의 일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라가 누구의 어머니라는 것을 모르고 막연하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알고 있는 것으로 자기가 사라의 아들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4:28절을 보겠습니다. (307쪽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우리 성도입니다

어떤 자녀입니까? 우리는 육신의 자녀가 아닙니다. 우리는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약속의 자녀인가 하면 우리도 이삭과 같이 사라를 통해서 낳기 때문에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육신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있는 성도들의 육신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는 육의 일과 영의 일을 전혀 분별을 못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자기 육신이 약속의 자녀가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요한일서에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은 이것이니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약속의 자녀입니까?

내 육신이 약속의 자녀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내 육신은 약속의 자녀가 아니라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난 자녀입니다. 약속의 자녀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난 자녀를 바로 분별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 교회는 다 육체가 되어서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누구에게서 난 약속의 자녀인가 하면 위에 있는 예루살렘 자유 하는 자 곧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를 보고도 자기들이 사라의 자녀가 어떻게 되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어떤 약속입니까? 영원한 생명이 있는 약속의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육신이 약속의 자녀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영원한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이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릅니다.

자기가 누군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영의 일을 말씀을 하면 이 시대는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고 하니까 어떻게 해서 낳은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는 것도 모르고 무조건 약속의 자녀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사라에게서 낳아야 합니다.

사라는 우리의 어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누구에게서 낳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라가 의미하는 것도 모르고 약속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가 구원을 받은 성도라고 막연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분명해야 합니다.

영의 일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육신과 영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형제들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너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을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고 한 것이 아니라 자유 하는 여자 사라에게서 난 하늘의 생명이 있는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자녀입니다

우리 안에 탄생이 된 영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내 노력으로는 태어날 수 없는 생명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약속을 해 주셔서 그 능력으로 태어날 수 있는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라의 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사라는 이 세상에 있는 교회가 아닙니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는 말씀은 영의 일을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사라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는 성도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만 아닙니다.

로마서는 지금 이삭 한 사람을 가지고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명년 이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하신 말씀이 이삭에 대해서 말씀을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가 약속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4:19절을 보겠습니다. (307쪽을 보겠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성도의 탄생입니다

그러니까 내 안에 그리스도의 약속의 생명이 탄생이 되는 역사입니다.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그냥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라가 이삭을 낳기까지 명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성경은 다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명년입니다

물론 다음 해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라가 이삭을 낳을 때도 명년이라는 시간이 필요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해산입니다

그러니까 사라에게 명년 이 때에 아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는 해산의 수고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해산의 수고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정말 한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데리고 들어왔습니까?

그가 구원을 받았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이 시대 교회는 다 종이 되어 있습니다. 사라의 교회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해산의 수고를 한다고 하는 말씀은 복음에 복종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라도 해산을 하기 까지는 명년이라는 시간이 필요 했습니다.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해산의 수고도 하지 않고 그저 교회에 나와서 남들이 시키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형 교회 같은 경우에는 새 신자를 위한 결신의 시간이 있어서 그때 그들이 고백하는 것으로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탄생 물론 쉽습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재능을 주셨습니다. 누구나 믿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아침에 성경을 보고 그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탄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탄생입니다

물론 우리는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명년 이 때에 반드시 사라를 통해서 태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라를 통해서 태어나는 영이 어떻게 태어나는가 하면 해산의 수고를 해야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해산의 수고입니다

사라의 교회에서 성도가 그냥 태어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후에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라로 말미암아 한 영혼이 탄생이 되는 고통이 크게 더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입니다

너무도 쉽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해산의 수고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하와에게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다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잉태하는 고통입니다

한 생명이 탄생이 되기까지는 정말 어머니가 해산을 하는 것과 같이 고통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약속의 자녀로 어떻게 태어나는가 하면 해산의 고통이 반드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를 보면 너무도 안타깝기만 합니다.

며칠 전에도 문자를 하나 받았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말씀을 잘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강한 외압에 견디지를 못하고 더 이상 그리스도 편지의 말씀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에게 계속해서 수고를 해 주시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냥 태어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알기에도 많은 분들이 환경에 넘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주변에서 너무 강하게 압박을 하면 혼자서의 힘으로는 견디지를 못하고 결국에는 그들에게 굴복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와 함께 예배를 했다면 그래도 조금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약속의 자녀가 될 것이면 어떻게 해서라도 구원을 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마음으로 너무 안타깝기만 합니다. 사실 혼자서 이 복음을 보고 주위에 사람들로부터 당하는 고난을 견딘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가까이 계신 분들에게 예배에 꼭 참석을 해 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입니다.

예배에 참석을 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다 나중에는 다시 뒤로 물러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나 혼자서 이 복음을 보고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해산의 고통을 다시 하면서까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명년 이 때까지입니다

사실 그 해산의 날까지 견딘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교제를 하고 있지만 안타깝기만 합니다. 명년 이 때가 되기 전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중간에 다시 뒤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혼자서 이 복음을 보고 듣고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부탁입니다

가까이 계신 분들은 꼭 예배에 참석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을 글로만 보고 또 음성으로 듣는다 해도 정말 고난이 다가오기 시작을 하면 견디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하시면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그래도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을 보았지만 역시 예배에 참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고난입니다

거의 다 견디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 환경과 처지를 주시면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라는 것을 늘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를 주셨는가 하면 그 교회를 통해서 해산의 수고를 하더라도 생명이 탄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그냥 탄생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사라를 통해서 탄생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라가 있는데도 참석을 하지 않고 있다면 고난이 오면 견디지를 못하고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대해서 너무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그리스도편지에서 복음을 말씀하니까 교회를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타깝기만 합니다. next 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