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86-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윤주만목사 2025. 1. 8. 09:41

로마서9:11절을 보겠습니다. (25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선택

이것은 칼뱅주의의 핵심 교리입니다. 로마서를 보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선택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고 교인들은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배우고는 있지만 실상은 선택에 대해서 강하게 주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선택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선택을 그들이 주장할 때는 인류를 생각하면서 이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인류를 선택하시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류 중에서 얼마를 선택하시고 나머지는 유기를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 자체는 이미 버림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학부터가 모순입니다

칼뱅주의가 맞냐 아니면 알미니안주의가 맞느냐는 사실은 성경적으로 볼 때는 이 둘 다 틀리다고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도 한 동안은 칼뱅주의의 선택에 대해서 동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영의 일을 깨닫고 보니까 칼뱅주의의 선택 역시도 잘못된 교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편지 사이트입니다

제가 아카데미에 칼뱅의 오대강령을 기초로 삼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사이트를 개편하면서 다 없애 버렸습니다. 칼뱅주의의 교리 역시도 성경과 잘못 되었다는 것을 영의 일이 계시가 되니까 깨닫게 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칼뱅주의를 따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니 칼뱅주의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우리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까? 우리 신체가 구원을 받습니까? 그것이 구원을 받는다 하면 칼뱅주의가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에서 이제 알게 된 것은 우리 신체의 구원이 아니라 영의 구원입니다. 이 영이 구원을 받는다면 칼뱅주의는 모순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인류의 얼마가 선택이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류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까지도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류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는 다 죽습니다. 그 죽은 것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은 것은 썩어 없어집니다.

우리는 영의 일을 알아야 합니다.

육체로 보면 칼뱅주의의 선택이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육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까지 육체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고 그 육체가 선택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않았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리브가는 교회입니다. 어느 교회인가 하면 이삭과 같은 영원한 생명이 있는 성도가 복음을 전하는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그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창세기에서 리브가는 에서와 야곱을 났지만 그것은 예표와 그림자고 리브가는 교회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 안에서 복음을 듣고 있는 두 사람을 에서와 야곱으로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서와 야곱이 태어날 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장자를 삼으시고 에서를 버리셨습니다. 그때 그들이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잘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마귀의 자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아직 선이나 악을 행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것은 영의 일입니다.

교회입니다

이삭이 복음에 대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그때 이제 처음 교회에 나온 사람은 이삭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그 교회가 바로 리브라가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듣고 있을 때는 아직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않고 그저 듣고만 있는 때라는 말씀입니다. 아니 아직 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런 비유를 모르면 진리에 대해서, 영의 일에 대해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삭은 별입니다. 그리고 리브가는 그 별이 복음을 전하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에서도 있고 야곱도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있는데 아직 그들이 선도 모르고 악도 모르기 때문에 무엇을 하지 않았습니다.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왜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리브가의 배속에 있어서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에서와 야곱은 맞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 처음 복음을 듣던 사람들이 무슨 선이나 악을 행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그들은 복음을 듣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해산의 수고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에 나온 사람들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선이나 악을 알고 있습니까? 마치 어머니 배속에 있는 것과 같이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직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삭입니다

그는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제 막 복음을 전파할 때는 그들이 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그것을 리브가가 잉태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는 거짓 선지자가 있는 교회는 이 말씀과 아예 해당이 안 되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삭과 같이 영원한 생명이 있는 약속의 자녀가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해당이 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 기독교는 이 말씀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육체의 선택에 대해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5:13-14절을 보겠습니다. (357쪽을 보겠습니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젖을 먹는 자가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는 거의 다 젖을 먹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단단한 식물을 주고 있는 사람도 없고 그것을 먹고 있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 기독교라는 교회는 단단한 식물을 전혀 먹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런 교회는 사실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리브가가 아닙니다.

이삭입니다

그는 단단한 식물을 먹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의 일에 대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단단한 식물을 먹이고 있는 교회 안에 일이 리브가라는 말씀입니다. 이삭과 같이 영의 생명이 있는 자가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리브가이고 그 안에는 아직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 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생명이 탄생이 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에서와 야곱이 나지도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이삭이 복음을 전하는 교회에서 아직 생명이 탄생이 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약속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이 탄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생명이 탄생이 되지 않은 상태는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않은 때입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젖을 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단단한 식물을 먹이고 있습니다. 영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음으로 해서 장성한 자가 되어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 짐으로 해서 그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탄생이 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탄생이 됩니까?

선을 행해야 탄생이 됩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믿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을 행하는 것은 복음을 듣고 율법주의에 빠져 자기의 육체로 죄의 법을 섬기고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행위를 하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이고 듣고 믿음으로 자기 안에 생명이 탄생이 되는 것은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행하기도 전입니다. 그러니까 아직은 지각을 분별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없는 상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리브가의 배속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 이제 막 들어왔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서 이삭이 전하는 단단한 식물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때가 오래 되었습니다. 이제 해산을 할 때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안에는 단단한 식물을 먹는 장성한 자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선입니다

그리고 악입니다. 이제 교회에 나와서 리브가의 배 속에 있는 사람은 아직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막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로부터 복음을 듣는데 그가 무엇을 알아서 선이나 악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이제 막 복음을 듣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택하심을 따라 부르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 택하심을 따라 부르시고 있습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교회에 나와서 복음을 듣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듣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 전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선이나 악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선이나 악을 육체의 행위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리브가라는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어머니 배속에서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 전에가 아니라 교회라는 어머니 배속에 있을 때 아직 영원한 생명이 탄생이 되지 않았을 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탄생이 됩니까?

선을 행해야 탄생이 됩니다. 그러나 아직 선을 행할 수 있는 지각이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탄생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치 어머니 배 속에서 열 달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것과 같이 교회 안에서 정말 어머니의 정성이 있는 태교가 있어야 건강한 아이가 태어납니다.

세상이 아닙니다.

리브가가 잉태를 하고 있는 것은 이제 교회 안에서 복음을 듣고 있는 것을 말씀합니다. 언제까지 들어야 합니까?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 전까지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교회에만 들어오면 악을 행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을 모릅니다.

아니 선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삭과 같이 영원한 생명이 있는 별이 없다 보니까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를 가르쳐 주지를 않고 있습니다. 도리어 교회에 나오자마자 가르치는 것이 악을 행하는 일입니다.

성경의 비유입니다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면 영의 일을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모든 신학자들이 이 로마서의 말씀을 가지고 무조건적인 선택이다. 사람도 그 선택에 부응을 해야 한다고 싸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알미니안주의는 세상 종교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칼뱅주의가 낫지만 그것 역시 성경에서 영의 일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어머니 배속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리브가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에서 이삭과 같은 영원한 생명이 있는 자가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복음을 듣고 있을 때 아직 그에게 영원한 생명이 탄생이 되지 않을 때를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않은 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1:4-5절을 보겠습니다. (329쪽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택하심입니다.

그저 단어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로마서의 말씀을 보고 택하심이라는 단어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칼뱅은 오대강령을 이야기를 하면서 그 두 번째로 무조건적인 선택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육체의 선택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 육체를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도 선택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불자가 선택을 받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택하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있습니까? 칼뱅의 교리에서와 같이 다수가 있는데 그 중에서 택하시고 있습니까? 성경은 늘 말씀을 드리지만 육의 말씀이 아니라 영의 말씀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선택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기 때문에 영의 일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로마서에서도 택하심이라고 하지 않고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셨다고 하지 않고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간단하게 택하심이라고 하면 되는데 왜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을 했는가 하면 그것은 사도 바울이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이 있습니다.

단순하게 그 중에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단순하게 둘 중에 하나를 택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형제들에게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택하심을 받는 사람인가 하면 먼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사람이 택하심을 입은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성도가 택하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택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저 성경의 단어를 보고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분명히 데살로니가에 있는 형제들에게 너희를 택하심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반드시 그 답이 있어야지 막연하게 단어를 보고 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막연함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문자를 이성적으로 아는 것을 가지고 얼마나 막연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마도 데살로니가에 있는 말씀을 보고도 또 역시 그렇게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자기들도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안다고 말할 것입니다.

택하심을 아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고 하니까 마치 복음을 안 전해도 아니 복음을 조금 잘못 전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 복음이 말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반드시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하고 그것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1:20절을 보겠습니다. (311쪽을 보겠습니다.)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택하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택하심을 아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먼저 복음이 전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복음이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능력이 무엇인가를 에베소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능력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듣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능력으로 역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더라도 하나님의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택하심을 입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능력입니다

어떤 일을 해 낼 수 있는 힘이라고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형제들에게 택하심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택하심을 아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데살로니가에 있는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 복음이 능력이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능력이 어떤 능력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도 안에서 역사를 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주님은 육체가 산 것이 아닙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하니까 육체가 산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분명히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살아야 합니다.

아니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 영이 없다면 그는 택하심을 입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막연하게 택하심을 입었다고 하면서 나는 하나님께서 택하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 육체가 아니라 영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 복음을 말로만 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들음으로 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서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있는 확신이 있으면 그것을 알고 있다면 그는 택하심을 입은 성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아닙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에서와 야곱을 비유로 한다고 해서 마치 야곱의 육체를 말씀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을 비유로 해서 육체가 되어 있는 에서와 그리고 영의 생명이 있는 약속의 씨가 있는 야곱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리심을 입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6:8절을 보겠습니다. (309쪽을 보겠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택하심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는데 데살로니가에 있는 형제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서 그들이 살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택하심을 입는 자인가를 사도 바울이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그가 와서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고 있는가 하면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택하심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택하심을 아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다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가 택하심을 입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리심을 받고 또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영생을 얻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누구를 택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영의 생명이 있는 성도를 사도 바울이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육체가 아닙니다. 육체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 육체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는다고 하면서 그 육체를 보고 택하심을 입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데살로니가에 있는 성도들에게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생명이 없는 사람은 택하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가치도 없다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복음이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되어서 그들에게 영생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원한 생명이 있는 데살로니가에 있는 형제들에게 사도 바울은 너희를 택하심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에서는 칼뱅의 오대강령을 배우고 있고 그것을 철썩 같이 믿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육체가 무조건 적인 선택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자기 육체가 선택을 받았다고 하면서 그것에 인간의 지성까지 더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무조건 적인 선택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하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들이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을 무조건적으로 선택을 하셨으니까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그래서 말을 합니다.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은혜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 중에서 자기들을 무조건적으로 선택을 하셨다고 하면서 은혜라고 하고 있고 로마서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택하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보고 봉창을 두드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을 보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 육체의 일로 생각을 하면서 자기들의 육체를 보고 교회 안에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무조건적으로 선택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그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있는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에 형제들에게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에게 영의 생명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택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9:11절 킹제임스 성경을 보겠습니다.

“(아직 자식들이 나지 아니하였고 또한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도 아니하였을 때에 택하심을 따른 하나님의 목적이 행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르시는 그 분에 의해서 있게 하시려고)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렵습니다.

설명을 하는 저 역시도 무척 어렵습니다. 한 마디로 정의를 해서 말씀을 드릴 수 없기 때문에 어렵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선택의 교리가 우리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어서 머릿속에서는 생각이 나도 설명을 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이삭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났습니다.

그 이삭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 사라로부터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이삭은 생명이 있는 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있는 자가 이 세상에서 또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교회가 세워지고 있고 그 교회 안에는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때에 택하심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에는 야곱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그가 택하심을 받았는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그가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택하심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군가 하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선택이라고 하지 마시고 이 택하심이 무엇인가 하면 그가 택하심을 받는 자인가를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행위를 하지 않고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 있는 자인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너무 강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로마서911절의 말씀은 칼뱅의 오대강령으로 우리에게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벗겨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설명이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이 영의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택하셨다고 하지 않고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147:4절을 보겠습니다. (909쪽을 보겠습니다.)

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영의 일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로마서911절의 말씀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를 선택하셨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을 확실하게 정리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 말씀을 깨달을 수 없고 도리어 혼란만 가중이 됩니다.

하나님입니다

로마서4장에서 아브라함을 말씀을 하면서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과 같이 부르십니다.

영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영은 정말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아니 우리 인생의 언어로 표현이 될 수 있는 것이 영이라는 단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영에 대해서 알 수도 없고 느끼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영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별입니다

그 별에 대해서는 이미 요한계시록에서 충분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별은 구원을 받은 성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하늘의 뭇별들을 보이시면서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성경은 다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의 뭇별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영의 생명을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육체의 사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생명이 있는 성도는 없는 것이지만 있는 것과 같이 부르시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은 없습니다.

물론 그 생명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없는 것과 같이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없는 것을 있는 것과 같이 부르시고 있습니다. 더구나 하늘의 뭇별들을 세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을 생명이 얼마나 되는지를 세시고 있고 또 그들의 이름을 다 알고 있어서 이름대로 부르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십니다.

행위는 누가 하고 있습니까? 우리 육체가 있는 인생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택하심은 우리 육체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택하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말씀을 보고 칼뱅은 무조건적인 선택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부르시고 있습니까?

우리 육체를 부르시고 있습니까? 시편을 보면서 우리 육체를 부르신다고 하는 사람은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그 이름대로 부르신다고 말씀하는 이 별은 영의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별은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이삭과 같은 약속의 씨가 있는 자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9장입니다

6-13절까지는 영의 씨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영의 씨를 말씀을 하면서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누군가 하면 육체가 아니라 영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행위로 말미암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 하늘의 별의 수효를 세시고 그 이름대로 부르시는 그 별이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입니다.

next 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