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9:10절을 보겠습니다. (신 251쪽)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리브가도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에게서 쌍둥이 아들을 수태하였는데,”
사라입니다
그리고 이제 리브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다 교회를 예표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표와 비유입니다. 성경에서 그 예표와 비유를 못 보면 그는 소경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모두가 영의 일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족보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족보를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생명을 주시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영의 일을 깨닫지를 못하면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영의 일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육으로 빠져 버리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부인이 사라입니다. 그리고 그 사라가 약속의 자녀로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삭의 부인이 리브가 입니다. 이제 이삭을 통해서 리브가가 어떻게 아들을 낳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라를 통해서 이삭을 낳았습니다.
약속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약속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이 있는 약속의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우리 안에 하늘에 생명이 있는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그 성도가 어떻게 합니까? 사도 바울을 이방의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했습니까?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방에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입니까?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러니까 영원한 생명이 있는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해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통해서 우리가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라를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는 약속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그 약속의 자녀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리브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누구입니까?
약속의 자녀입니다. 어떤 약속의 자녀인가 하면 사라로부터 낳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사라로부터 낳은 자녀는 어디서 낳는가 하면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도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고 이 시대 영원한 생명이 있는 우리 성도도 역시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방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교회에서 해산의 수고를 해서 성도들이 탄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그곳이 교회가 되었고 그 교회가 해산의 수고를 해서 아들을 낳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곳에 자연스럽게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교회를 지금 사도 바울이 리브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정말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사라로부터 낳은 약속의 자녀가 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우리는 약속의 자녀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을 보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이삭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이삭이 또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그때 세워진 교회가 리브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이제 리브가가 이삭으로 말미암아 아들을 잉태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이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교회가 세워졌다는 말씀입니다.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주님께서 부탁하신 말씀을 듣고 이제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그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것을 잉태라고 합니다.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영의 생명이 있는 자녀가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이제 그 복음을 들은 사람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하니까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가 세워진 것과 같습니다.
성경의 비유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성경을 본다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니 소경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삭이 누군지도 모르고 리브가가 누군지도 모르고 이 로마서를 보고 있다면 그는 로마서 자체를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삭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은 이삭으로 말미암아 리브가가 잉태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고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반드시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이스마엘과 같은 사람이 복음이라고 전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리브가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누구에 의해서 세워지고 있는가를 사도 바울이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삭입니다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아니면 그가 아무리 복음을 전한다 해도 그것은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는 사람이 복음이라고 전하고 있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반드시 이삭과 같이 영원한 생명이 있는 자가 복음을 전해야 그것이 리브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교회들이 무엇인가 하면 리브가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라의 교회와 리브가의 교회는 다릅니다. 사라의 교회는 반드시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를 낳습니다. 그 사라는 어디에 있는가 하면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라의 교회는 하늘로부터 온 생명이 있는 성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있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사라의 교회가 아니라 리브가의 교회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배를 하고 있는, 주의 만찬을 나누고 있는 이 교회는 리브가 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눈으로 보고 있는, 그리고 교제를 하고 있는 이 교회는 리브가라는 말씀입니다.
이 리브가의 교회는 어떻게 세워집니까?
이삭과 같이 영원한 생명이 있는 성도가 복음을 전함으로서 교회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삭과 같이 영원한 생명이 있는 자가 그 생명에 대해서 전함으로 해서 예배를 하고 있고, 주의 만찬을 나누고 있는 그 모임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20절을 보겠습니다. (신 400쪽)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이삭입니다
그는 약속의 자녀입니다. 약속의 자녀는 누구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서 태어난 생명이 있는 성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늘로부터 온 생명이 있는 성도를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의 자녀를 요한계시록에서는 일곱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별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하늘의 뭇별들을 보이시면서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삭은 누구인가 하면 하늘의 뭇별들 중에 하나라는 말씀입니다. 하늘의 생명이 있는 성도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늘의 영이 탄생이 되어 있는 사람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요한일서에서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 일곱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삭과 같은 약속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생명이 있는 자를 일곱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곱별이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니까 그것이 일곱 교회가 되었고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을 통해서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우리 육체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거의 이스라엘과 같이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본 것과 같이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가끔 가다가 성경을 인용하고 있고 거의 인용을 하지 않고 그 말씀에 있는 문자만을 보고 이해하려고 하니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일곱별입니다.
우리 성도를 일곱 별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생명이 있어서 복음을 전활 수 있는 성도를 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는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이 있는 성도를 일곱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곱별입니다.
그 별이 일곱 교회에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일곱별이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비유를 우리는 정말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교회는 누구를 상징하고 있는가 하면 이삭으로 말미암아 잉태가 되어 있는 리브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일곱 교회입니다
그것은 리브가를 상징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일곱별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곱 교회를 보니까 거의 모든 교회가 타락을 했습니다. 일곱별이 그러니까 이삭으로 말미암아 리브가가 잉태가 되었는데 거의 다 타락한 교회를 보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일곱별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곱별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교회의 대부분이 타락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어떻게 되는 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리브가라는 교회가 세상에는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 중에서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듣지 않는 교회가 거의 없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한 영혼의 구원입니다
이 시대는 구원에 대해서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일곱별이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복음을 전하는데도 교회는 거의 타락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리브가입니다.
교회가 어떻게 되는가를 성경은 아주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은 성경의 비유를 모르다보니까 남의 교회는 그렇더라도 자기들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의 교회는 일곱 교회에 끼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별이 있습니까?
이 시대 별이 있습니까?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있습니까? 사라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어 있는 영원한 생명이 있는 약속의 자녀가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아니 저를 이단이라고 해도 좋지만 이 시대는 별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별이 없는 상태에서는 리브가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이삭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리브가가 잉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별이 없습니다.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거의 없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그런 별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라고 하는 것은 리브가가 아니라 음녀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음녀입니다
그것은 리브라가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이삭과 같은 별이 있어야 리브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리브가도 거의 없습니다.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가 거의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이삭과 같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의 자녀가 탄생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일곱별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일곱별이 없습니다. 구원을 받은 자가 거의 없습니다. 아니 구원을 받은 자는 조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곱별과 같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자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일곱 교회를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곳에는 분명히 일곱 사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삭과 같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있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목사들을 보면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거의 없습니다. 사라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지 않은 사람은 일곱별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 자녀가 이제 복음을 세상에 전하고 있지만 일곱 교회가 어떻게 타락을 하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전혀 모르면서도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거대한 종교의 포승에 묶여 끌려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리브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안에서 구원을 받을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리브가가 보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리브가가 없는 교회에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리브가는 이삭으로부터 잉태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과 같은 자가 복음을 전해서 그 안에 성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입니다
교회의 조건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있지 않으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교회가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 교회는 실상은 리브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있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이 있는 자가 있어야 복음을 전할 수 있고 그런 교회를 리브가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율법을 지키고 있는 교회는 리브가가 될 수 없고 이미 그 자체로 음녀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삭으로 말미암아 잉태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고 있습니다.
로마서9:11절을 보겠습니다. (신 251쪽)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이라는 원리를 따라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이 살아 있게 하시려고,”
이 시대 기독교의 교리입니다
무조건적인 선택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9장11절부터의 말씀을 가지고 선택과 유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신학에서 배우고 있는 선택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 선택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리브가가 누구입니까?
그녀는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 안에 선택을 받는 자와 유기가 되어 있는 자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리브가가 잉태를 했는데 이 중에 하는 선택을 받고 하나는 유기를 당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는 맞을 수 있지만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칼뱅의 예정론입니다
오늘은 이 예정론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가를 말씀을 하겠습니다. 저 역시도 얼마 전까지는 칼뱅의 오대 강령을 기초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오대 강령을 버렸습니다. 왜 버렸는가 하면 그것은 그들이 말하는 예지 예정론 자체가 모순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 모순이 됩니까?
리브가가 이삭으로 말미암아 잉태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실제 리브가가 이삭으로 말미암아 에서와 야곱을 잉태한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비유입니다. 그런데 칼뱅의 예정론은 이것을 비유로 본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보았습니다. 저 역시도 얼마 전까지는 이것을 실제로 보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예지 예정론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제가 굳이 다시 설교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기독교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은 알미니안주의에 있었든지 칼뱅주의에 있었든지 이 예지 예정론에 대해서는 들어 왔고 많은 사람들이 이 선택의 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립니다.
칼뱅의 예지 예정론은 잘못된 교리입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좀 의아해 하실 분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제까지 선택에 대해서 거의 칼뱅주의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칼뱅의 선택입니다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선택과 다르지 않습니다. 불교에 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도 불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하면서 그 선택을 받은 자는 불자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택하심과 무엇이 다릅니까? 사실 이런 선택의 교리 때문에 불교와 기독교가 거의 차이가 없이 같은 말을 쓰고 있습니다.
불자의 선택은 맞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택하심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이 택하심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칼뱅주의에서 말하고 있는 선택의 교리는 거의 불교의 교리와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로마서입니다.
이제까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삭이 누구입니까? 우리 인생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라로 말미암아 탄생이 된 이삭이 창세기에서 말씀하는 그 이삭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삭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난 영원한 생명을 이삭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 그대로 실제 창세기에서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그 이삭이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입니까? 그 이삭이 위에 있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난 자입니까? 그 이삭은 실제 사라라는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누구입니까?
영의 일을 가르쳐 주기 위한 예표입니다. 이 이삭은 실제 이삭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가진 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에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니 자유 하는 여자라고 하면서 곧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라가 우리의 어머니입니까?
사라는 육적으로는 절대로 우리의 어머니가 아닙니다. 사라가 어떻게 우리의 어머니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은 사라를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육신의 어머니라고 하는 것입니까? 내 영의 생명의 어머니라고 하는 것입니까? 내 영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삭입니다
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육체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사라로부터 태어났습니다. 그 이삭이 일곱별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이삭이 이제 또 일곱 교회에 복음을 전하고 있고 그 일곱 교회가 리브가 입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않았습니다.
누구를 말씀하고 있습니까? 물론 표면적으로는 에서와 야곱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표면적인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삭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가 잉태를 했습니다.
그 자식들입니다
그것의 표면적인 것은 에서와 야곱입니다. 그러나 지금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그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자식들이 누구입니까? 교회 안에 두 자식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분명히 두 자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8:44절을 보겠습니다. (신 160쪽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시편128:3절을 보겠습니다. (구 899쪽을 보겠습니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그 자식들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에서와 야곱입니다. 그러나 지금 로마서에서는 에서와 야곱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는 두 자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9장11절 말씀으로 인하여 거의 모든 사람이 선택의 교리를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이 무슨 선택입니까? 육신의 선택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육신을 선택했습니까?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우리 육신을 선택해서 그 육신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육의 일을 말씀을 한다는 것이 모순입니다. 이삭은 분명히 별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의 생명이 있는 약속의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그 자녀가 복음을 전해서 잉태를 했습니다.
그것이 리브가라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 안에는 두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에서와 야곱이 아니라 자식들이 있습니다. 이삭으로부터 복음을 듣고 잉태가 되어 있는 교회 안에는 자식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식이 하나는 에서고 하나는 야곱이라는 말씀입니다.
자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나지도 않았습니다. 리브가가 잉태만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창세기를 통해서 그들이 누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에서와 야곱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는 두 사람이 있는데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에는 누가 있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너무 성경을 편하게 보고 있습니다. 이 시대 뿐 아니라 이제까지 신학자들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종교입니다
그것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그들의 교리가 든든히 서 있고 거기서 더 이상의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아서 성경말씀을 아무리 보아도 도무지 무슨 말씀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에서입니다.
그리고 야곱입니다. 지금 두 육체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셨고 유기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육체는 누구의 자식입니까? 우리 육체는 마귀의 자식이기 때문에 죽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서입니다.
그것은 우리 육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이 두 자식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 실제 에서와 야곱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실제 육체의 에서와 야곱으로 생각하면서 선택이라는 교리를 만들고 또 유기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입니다
그 육체는 유기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야곱의 육체 역시 유기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에서만 유기가 된 것이 아니라 야곱의 육체도 역시 유기가 되어서 썩어 없어졌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야곱이 선택을 받았습니까?
이삭이 누구입니까? 이삭은 영원한 생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삭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생기면서 그 안에 두 자식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자식인가 하면 하나는 마귀의 자식입니다. 우리 육체는 다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신체의 구원이 아닙니다. 칼뱅의 선택의 교리는 신체의 구원을 기초로 두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신체의 구원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에 신체의 구원이 맞는다면 칼뱅의 오대강령이 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체의 구원이 아니기 때문에 칼뱅의 오대강령은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니까 마치 우리 신체가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자식들입니다
아직 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창세기의 에서와 야곱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자식은 하나는 육체를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는 영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두 자식 다 육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한 자식은 영입니다.
사라의 자녀입니다
그 자녀는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리브가의 자녀는 다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예표를 하고 있고 그 교회를 통해서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생명이 있는 이삭을 별이라고 하면서 그가 복음을 전해서 리브가가 잉태를 했습니다.
리브가라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요한계시록에서 보이고 있는 일곱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 안에는 자식들이 있습니다. 이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않은 때에 하나는 마귀의 자식이 되고 하나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주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계속해서 강조를 하고 있지만 성경은 육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육의 야곱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 영의 생명이 탄생을 해서 하나님 앞에 서게 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이제까지 기독교는 육의 일로 만들어서 선택이 맞는가 아니면 틀리는가 하면서 서로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알미니안 주의가 맞습니까?
아니면 칼뱅주의가 맞습니까? 알미니안 주의는 하나님의 선택이 있지만 사람도 거기에 동조를 했다는 것이고 칼뱅주의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선택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둘 다 무엇이 선택을 받았는가 하면 자기들이 신체가 선택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선택의 교리가 시작이 된 것이 바로 로마서9장11절 부터의 말씀입니다.
둘 다 틀립니다.
사도 바울은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에서 말하고 있는 신체의 선택이 아니라 영이 어떻게 탄생이 되고 구원을 받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삭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듣고 영의 생명이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생명의 탄생입니다
그것은 선택에 의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의 생명은 하늘로부터 오는데 어떻게 선택을 하고 있습니까? 선택이라는 것은 나쁜 것과 좋은 것이 있어서 그 중에 좋은 것을 택한다는 것인데 논리적으로 영의 생명을 선택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로마서를 보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end 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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