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58-2,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윤주만목사 2024. 10. 2. 11:20

요한계시록21:8절을 보겠습니다. (421)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간음을 하는 자가 어떻게 됩니까?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비유가 다 율법을 지키는 자들을 의미하고 있지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기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에 있어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런 자에 속해 있지 않은가를 생각하면서 두려워하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입니다

성도는 성령의 감동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서는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고 은혜이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선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은혜이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사실에 있어서는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는 은혜로 받기 때문에 그 은혜를 거절하는 우매함을 보이지 않을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아니 내가 받은 은혜를 내 행위로 인하여 거절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를 늘 생각하면서 두려워해야 합니다.

성도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늘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율법이라는 것을 항상 다 지켜야 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욥입니다. 욥은 세상에서 가장 율법을 잘 지킨 사람이지만 늘 두려워하다가 자기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임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왜 믿습니까?

그것은 단 한 가지 천국에 가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 부활의 형상으로 변해서 천국에서 영원히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다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받는 사람은 지극히 적고 유황 못에 거의 모든 사람이 들어갑니다.

다 율법입니다

두려워하는 자는 율법을 지키는 자입니다. 안 믿는 것 역시 율법을 지키기 때문에 안 믿습니다. 흉악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율법주의자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살인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자기만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율법을 지키게 해서 사망을 당하게 하고 있습니다. 행음자 율법입니다. 술객 율법입니다. 우상 숭배 율법입니다. 거짓말 율법입니다.

율법입니다

성경에서 정말 이 율법을 바로 알지 못하면 그는 반드시 사망의 삯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 교회에 나온 절대 다수가 여자 이세벨과 간음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간음을 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의 행위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다른 남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는 전혀 다른 남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남편이지만 율법은 그 삯이 사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나름대로 해석을 하고 있지만 이 율법에 대해서 바로 정의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누구는 말 합니다

목사님은 왜 율법에 대해서 그렇게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런 질문을 왜 합니까? 율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삯이 사망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싶은 것입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는 자기 모습이 하나님의 성도와 같이 생각이 되기 때문에 율법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괜스레 분이 나서 참지를 못해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열심히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의 삯이 사망이라고 하니까 분이 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분명히 율법을 지키는 것이 맞습니다. 저 역시도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의 이성이 아니라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율법에 대해서 강하게 말씀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율법에 대해서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으로 살면서 율법의 의로 흠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고 나서 구약 성경에서 율법을 보니까 이제까지 자기가 지켰던 율법의 의의 삯이 사망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망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강하게 말씀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아들이 독약을 먹는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들은 그것이 독약이라는 것을 모를 때 여러분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분명히 독약인데 아들은 그것을 모르고 먹고 싶어 합니다. 그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냥 아들이 먹든지 말든지 두시겠습니까?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이보다 더 강하게 말씀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우리에게 율법에 대해서 정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을 보고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율법을 지키는 행위의 삯이 사망인데도 아무 거리낌이 없이 교회 안에서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화가 납니다.

솔직히 인간적으로는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을 모두 사망으로 끌고 가는 것을 보면서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내 부모가 그리고 형제가 인척들이 모두가 사망을 당하고 있는데 화가 나지 않는다면 그가 더 이상한 사람입니다.

저는 솔직히 화가 납니다.

가만이나 있으면 사람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지는 않을 수 있는데 더구나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사람들을 끌어 들여서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그 삯이 사망인데도 아무 거리낌이 없이 살인을 하면서도 도리어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것까지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복음 안에서는 받아들이고 있지만 인간적으로는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 시대 교회만 보아도 어느 한 교회라도 율법을 지키지 않은 교회가 없습니다. 모두가 전 남편 생전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지옥이라는 것을 모르고 교인들을 더 끌어 드리려고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8:36절을 보겠습니다. (159)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남편이 생전에 있습니다.

그 상태에서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음부가 되는 사람은 요한계시록의 말씀과 같이 지옥에 던지우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렇게 간음하는 자가 되어서 지옥으로 가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습니다.

그러면 그 남편의 법에서 자유하게 되어서 다른 남자에게 가더라도 음부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쉽게 알 수 있는 말씀이지만 남편과 다른 남자가 누군가를 모르니까 교회 안에서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 남편입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성도님들도 그랬습니다. 예전에는 다 음부로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알고 또 그것이 우리에게 전 남편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이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폐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음부라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 교회에서 음부로 살았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없습니다. 이제까지의 모든 교회가 거의 다 율법을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교회사를 보더라도 이 율법의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를 하고 전 남편이 죽어 있었던 교회는 없었던 것으로 보여 지고 있습니다.

2000년이 되었습니다.

이방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불과 100여 년 만에 교회는 율법주의로 변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을 음부로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는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남편이 죽었습니다.

어떻게 죽었습니까? 아들이 자유하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자유 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누가 사람의 이성으로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제까지의 모든 교회가 율법을 지켜왔던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스도편지입니다

우리 성도가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율법을 단 하나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힘으로 가능하다고 생각을 합니까? 우리도 역시 얼만 전까지만 해도 식사 기도를 했습니다. 정말 이 모든 율법에서 자유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늘 깨닫고 있습니다.

아들이 자유케 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자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유케 하시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있습니까? 2000년 전에 주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깨닫지를 못하니까 진리의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지금 이 세상의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는 교회도 있고 어느 교회는 율법이 폐하였다고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율법을 폐하였다고 하는 그 교회도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지 않는 율법을 폐하였을 뿐이지 실상은 많은 율법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율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율법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도 자기들이 지키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고 하면서 율법이 폐하였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말로 율법을 폐하였다고 한다 할지라도 성경에서 율법으로 정하고 있으면 그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는 간음하는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 전제 조건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남편이 죽으면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생전에 있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음부가 되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입니다.

이 시대는 율법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남편이 죽어야 다른 남자에게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남편이 죽지도 않았는데 아직 생전에 있는데 다른 남자에게 가서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고 있고 자기가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이렇게 됩니다.

얼마나 무지한 일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남편이 죽은 여인이 다른 남자에게 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지금 이 시대 아니 이제까지의 교회는 남편이 죽지도 않은 상태에서 다른 남자에게 가서 사랑을 고백하고 있고 사랑하고 싶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음부가 받을 고난을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지만 자기들은 음부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일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남편의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서 사랑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어느 목사들의 말을 들어 보면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밖에는 안 듭니다. 진리를 알기 위해서 성경을 본다고 하면서도 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구약에서는 진리의 하나님이라고 하고 있고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목사라는 사람들이 성경에서 진리를 찾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라는 기본조차도 모르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이성입니다

그들이 신학에서 거의 10여년을 공부를 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신학이라는 것이 세상 초등학문이 되어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10년을 공부하면서도 진리가 무엇이라는 것도 모르고 목사 안수를 받고 있습니다.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알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자유케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내가 가면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에게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천국에 올라가시고 오순절이 이르자 제자들에게 진리의 성령이 임했습니다.

교회 안에 있습니까?

그들에게 진리의 성령이 임하셨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갈라디아에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 상태만 보아도 진리의 성령이 오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시대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교회사를 통해서 나타난 모든 교회가 율법을 지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켰다는 것은 남편의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서 사랑을 했다는 것밖에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그런 사람을 음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죽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자유 할 수 있게 하셨습니까? 그냥 아들이 자유를 주면 자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기 때문에 남편이 죽어서 다른 남자에게 가서 사랑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남편이 죽은 사람이 있고 아직 남편이 생전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편이 생전에 있는 사람은 음부가 되어서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는 음행하는 자의 벌을 받게 되고 남편이 죽어서 다른 남자에게 가서 은혜를 구한 성도는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남편이 생전에 있으면서도 다른 남자에게 가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1절을 보겠습니다. (307)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음부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음행하는 자가 어떠한 형벌을 받는가를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누가 그 형벌을 받기 위해서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이 시대 모든 사람은 교회에 나와서 음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성경은 그것에서 자유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전 남편에게서 자유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냥 자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자유를 주신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어디서 자유를 주셨는가 하면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이 왜 됩니까?

굳세게 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믿음의 비밀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굳세게 서지 못하고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너희가 종이라고 하니까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종이 아니라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예수 안에서 자유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자유하다는 것은 성립이 될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냥 말로 자유 한다고 해서 자유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자유의 조건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말로 자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아야 자유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종의 멍에를 메고 살아가고 있으면서 나는 예수 안에서 자유하다는 말이 성립이 될 수 있습니까? 성경적으로는 말이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인들은 말이 안 되는 말을 말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하다는 것을 모르고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무엇과 같습니까?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 그 안에서 조금 편하다고 해서 나는 자유하다고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감옥에 갇혀서도 어떤 사람은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자유합니까? 그는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지 자유 하는 자가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종은 멍에를 메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멍에가 조금 가볍다고 해서 아니 그 율법을 자기가 충분히 지킬 수 있다고 해서 자유 할 수 있다고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자유라고 하는 사람은 자유라는 의미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유가 무엇인지 종이 무엇인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자기가 충분히 지킬 수 있다고 해서 자유하다고 말 합니다.

종입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 여러분은 종입니다. 그리고 아직 남편이 생전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남편이 생전에 있어 그 법을 지키면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자유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서 남편이 죽어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남편이 죽지도 않은 사람은 차라리 오지 않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남편이 생전에 있는데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 사랑해요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안 됩니다

절대로 자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의 비밀을 주시고 굳세게 서게 역사를 하심으로 자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제 완전하게 자유 하는 자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께로 다른 남자에게로 와서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남자의 사랑을 받으면서 천국을 유업으로 얻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없이는 모두가 음부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비밀을 주신 성도만이 음부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율법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 삯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삯에서 자유하게 해 주셨다는 것을 믿고 이제는 굳세게 서서 어떠한 율법의 행위라도 버릴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내 이성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는 성경대로 살아야 합니다. 성경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대로 산다고 하면서 도리어 율법의 행위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로마서7:4절을 보겠습니다. (247)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다른 분, 곧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분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누가 형제입니까? 육신의 사람이 형제가 아닙니다. 하나에게서 난 사람이라야 형제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로서 난 사람이라야 형제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만이 형제가 될 수 있습니다. 남편이 죽고 이제 다른 남자에게 온 사람만이 형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반드시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하는 말씀을 모르겠습니까?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어떻게 죽임을 당했는가 하면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죽임을 당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와 하나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면 우리 역시 주님이 죽으실 때 율법을 폐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일을 믿는 것입니다. 그 일을 믿지 않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자기를 믿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나를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모든 일들을 믿어야 합니다. 말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신 일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님이 율법을 폐하셨으면 우리 역시 율법을 폐해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안 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는 어떻게 해도 율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죄의 종의 멍에를 메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지혜가 없어서입니까? 그들이 우리보다 성경을 덜 봐서 그렇습니까? 그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입니까?

아닙니다.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알면 자유 할 수 있는데 진리를 모르고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셔야 종의 멍에를 메지 않고 자유 할 수 있는데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율법의 남편이 아직 생전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몸으로 율법에 대해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 역시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구속의 일을 이루지 않았으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만 율법에 대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반드시 율법에 대해서 죽은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받고 싶습니까?

천국에 가서 영생을 하고 싶습니까?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전제 조건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말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에 대해서 말로 죽었다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말로는 누가 못 합니까?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했다고 하는 그들이 어떻게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이중성입니다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말로는 율법을 폐했다고 하고 있고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고 하는 그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중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가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입니다

그 남편을 주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자기 육체로 십자가에서 폐하셨습니다. 죽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전 남편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역시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율법에 대해서 죽었는가 하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폐하셨기 때문입니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왜 죽임을 당했습니까? 죽임을 당해야지만 우리가 다른 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로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반드시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그런 성도만이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1:3절을 보겠습니다. (377)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남편이 죽었습니다.

이제 남편이 죽은 성도는 다른 남자에게 갈 수 있습니다. 반드시 남편이 죽은 사람만이 다른 남자에게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남편이 죽지 않고 생전에 있는데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가 되기 때문에 도리어 화를 당한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자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앞에 있는 말씀은 싹둑 잘라버리고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무조건 가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전제 조건이 무엇인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냥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믿는다고 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 역시 아닙니다. 성경은 반드시 그 결과에 따르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행함을 도리어 거꾸로 보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지도 않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산 소망이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 산 소망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부활의 형상을 입고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소망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가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그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줄을 모르고 막연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는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산 소망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산 소망이 없다면 우리 성도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성경을 주시고 또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우리가 이 영의 일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죽었습니다.

우리의 남편은 죽었습니다. 이제는 다른 남자에게 가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남편이 죽은 사람만이 가시기 바랍니다. 남편이 생전에 있는데 다른 남자에게 가면 그는 음부가 되고 맙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성경을 보고 모든 사람이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하늘의 산 소망인 열매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늘의 열매를 맺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맺는 열매가 무엇입니까?

디모데전서2:4절을 보겠습니다. (338)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 시대는 너무 모릅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치 아니하시는 제사에는 너무 열심을 내고 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에는 전혀 마음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 안에만 나와서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착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호세아서의 말씀입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역시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온갖 제사에 깊이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행위가 제사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영생이 무엇입니까?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받는 것을 원하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온갖 제사를 어떻게 자기들의 생각에 따라 진심으로 드릴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남자에게 왜 갑니까?

이 시대는 가는 이유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만 있으면 자기들이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 안에서 온갖 행위로 간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그 말에 모두가 미혹이 되어서 사망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끌려갑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사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하늘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냥 맺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구원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단번에 이루어지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영생이 무엇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는 청년의 때를 게으르게 보내지 않습니다. 정말 이 청년의 때에 성경에서 진리를 아는데 이르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늘 설교를 쓰고 있지만 그냥 지나가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입니다. 우리 남편이 죽고 다른 남자에게 온 이유는 이 일을 위해서 왔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전 남편에게서의 일은 다 잊어버리고 새 남편을 위해서만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청년의 때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그 기간에 하나님을 위하여 천국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next 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