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7:5절을 보겠습니다. (신 177쪽)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아버지,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누리던 그 영광으로, 나를 아버지 앞에서 영광되게 하여 주십시오.”
영생입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단 한 가지의 이유입니다. 이 영생이 없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 인생들이 철학적으로 아는 영생이라는 단어는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저 이 세상에서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이 그렇게 살다가 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이 세상에 이름을 남깁니까?
이 세상에 위대한 업적을 남깁니까? 그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물론 이 세상에 초등학문의 생각으로는 분명히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남길 수 있다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있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때는 우리 인류가 남겨 놓은 아니 우주 자체도 다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전도서에서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자기들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떠들고 있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치도 없습니다.
티끌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인생이라는 것을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 있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인생에 대해서 더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주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제가 왜 우주를 계속해서 말씀을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저 우주입니다. 수십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거기에 있는 빛을 보고 과학자들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있는 물질들과 우리 인생들이 가지고 있는 물질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주입니다
마치 한 통 속에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들로는 도무지 갈 수 없는 거리에 있다고 해도 거기에 있는 물질의 성분과 우리 인체에 있는 성분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천문학자들이 빛의 밝기와 색깔을 통해서 알아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를 하신 피조물이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138억 년 전에 빅뱅이 있었을 때 그 물질을 우주는 그대로 가지고 있고 그것이 우리 인체에도 그대로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런 것을 볼 때 마다 창조주 하나님을 더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그저 분자 구조에 지나지 않습니다. 단백질 분자의 구성에 따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구성이 하나만 달라도 우리는 피부색이 달라지고 얼굴이 달라지고 있고 그래서 지구 인구를 보아도 75억 명이 넘게 살아도 같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겸손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종교 안에만 들어오면 사람들은 자기들이 마치 특별한 존재나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른 종교보다 더 심하고 성경에서 택함이라는 단어가 있다 보니까 더욱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유대인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더 겸손해야 하고 낮아져야 하는데 그들은 로마에 지배를 받으면서도 오히려 더 교만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사마리아 사람들을 차별을 해서 마주 치는 것조차 부정하게 생각을 했고 그리고 유대인들이라고 해도 병이 들거나 죄인들을 차별을 했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보면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무엇입니까?
우주에서 보면 티끌보다 못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종교에 빠지니까 그들은 자기들이 특별한 존재나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정말 더러운 인생들이 더 차별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무지에서 오는 인간의 본성이 어떠하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이방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종교인들입니다. 그들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저는 똑같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죄를 진 가난한 자에게 하고 있는 짓이나 지금 이 시대 종교인들이 멸시를 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짓이나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류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리를 한 혈통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창조된 세상에서 사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피조물은 창조된 세상에서 살다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말씀합니다.
우리는 생각까지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종교인들이 하고 있는 생각에 내가 동조를 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내 생각이 종교에 빼앗겼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작은 생각하나가 빼앗기는 것으로 결국에는 그들의 행위를 따라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이단은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그들을 멀리 해야 합니까? 그들에게 생각을 빼앗기게 되고 결국에는 그것이 그들의 행위를 따라하게 되고 있고 그것이 어두움에 거하는 일이 되어 사망으로 가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성령을 받은 성도입니다
그럴 리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다 성령을 받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혹시라도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반드시 종교인들과 어울리게 되면 그들의 생각을 공유하게 되고 그것이 결국에는 행위로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입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치열하게 싸워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로 이길 수 있게 역사를 한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을 하지만 교회 안에는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고 그는 언제든지 믿음에서 떠날 수 있다는 것을 늘 생각을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지금 14장부터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17장은 제자들에게 직접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형체를 입고 오신 주님께서 이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다 이루심으로 해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 역시 반드시 우리에게 성령이 오셔야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이제까지 요한복음을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종교가 되고 난 후에 성령을 받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해서 성령을 보내주셨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것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을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알 수 있고 그것이 영생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방의 종교인들을 보더라도 어느 누구도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것과 같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주님께서 하나님과 동등하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입니다
주님께서는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영생을 얻은 자가 없다는 것을 아시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오직 하나님께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신 성도만이 하나님께서 주님에게 주신 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깨닫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지난 시간에 사도 요한이 우리가 얻는 영생에 대해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 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바로 이 생명을 얻는 일임을 믿어야 합니다.
창세전입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일이 영생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고 그들은 피조물의 신체가 부활을 해서 영원한 생명이 더해져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성경과는 전혀 다른 세상의 철학을 따라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서1:4-5절을 보겠습니다. (신 310쪽)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태초입니다
주님께서 창세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창세전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마치 하나님 나라를 우리 인생의 철학으로는 알 수 없는 것과 같이 이 태초에 대해서도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과학자들입니다
빅뱅 전을 알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빅뱅까지는 인생의 철학으로 정립을 하고 있고 모든 가설들을 내 놓고 있지만 그 빅뱅 전에는 아무 것도 가설조차 내 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 인생은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는 빅뱅이 있은 후에 인류가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인류는 인간의 시간적 개념으로는 우리 인류의 탄생을 달력으로 하면 12월 31일에 인류가 탄생이 되었다고 가설적으로 내어 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38억 년 전입니다
그때 빅뱅이 있었고 그것을 1월 1일로 한다면 인류는 12월 31일에 생겨나기 시작을 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류입니다. 그 인류가 창조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비유와 예표로 해서 우리 인생들에게 이 영생을 얻는 일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38억년입니다.
그것을 일일이 우리 인생들에게 성경에 기록할 필요성이 있습니까? 저는 전혀 없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이 있게 하신 이유는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영생을 얻는 자들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알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류가 알 수 있는 정도는 빅뱅 후로부터 해서 지금까지입니다. 그것도 다 가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을 하기 때문에 이 시대 천문학자들이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창세전을 압니까?
그리고 하나님을 압니까?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을 합니까? 우리는 겨우 12월 31일에 나타난 인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인류를 비유로 해서 하나님께서는 영생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창세전에 있는 일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저는 상상이 안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면서 제 자신이 얼마나 미약한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인류가 우주로 보이저 호를 보냈습니다. 그 기구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전에 방향을 잠깐 돌려서 지구를 찍어서 보낸 사진들이 있는데 과학자들이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점 하나입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인생들이 우주를 탐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겨우 태양계를 벗어나려고 하고 있고 성간에 들어선 것으로 확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들이 성경을 보면서 마음대로 상상을 하고 있고 상상만 하는 것으로 끝을 내면 다행인데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있습니다.
창세전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간단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창세기1장1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전을 우리 인생들에게 어떠한 언어로도 말씀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 전에는 하나님만이 계셨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창세전에 대한 말씀은 없습니다. 우리 인생이 아무리 문명이 발달을 한다고 해도 우리는 창세전에 있었던 일을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창세 전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계셨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때를 우리 인생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더구나 이 세상을 버츄얼리얼리티라고 생각을 한다면 더욱 더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과학자들이 가장 과학적으로 인정을 하는 가설이 바로 가상현실 세계라는 것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가상현실세계 속에 주민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적으로도 맞습니다.
가상현실이라는 말과 주의 형제 야고보가 말씀을 하는 우리 인생에 대해서 너희는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하는 말은 일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우리를 헛것이라고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 다 가상현실세계의 주민이라는 말과 일치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교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대로 상상을 해서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정도 과학적인 근거를 해서 주장을 해야 합니다. 저는 과학적인 주장을 하지 않는 그 어느 것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저는 그 과학적인 주장들이 성경과 일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성경에서 보고 있고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가 유일하신 참 신을 믿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주 쉽게 샤머니즘에 빠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과학을 무시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 샤머니즘에 빠져 있습니다.
과학입니다
지동설입니다. 그것이 언제부터 주장을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이미 기원전 300년 전에 주장을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1500년대에 쿠페리니쿠스가 처음으로 지동설을 주장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이미 기원전에 지동설을 주장을 했다는 근거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주장들이 있었지만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대도서관이 로마에 점령을 당하면서 기원전에 있었던 지구의 모든 책들이 소실이 되면서 인류는 문명이 끊어지고 말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 후 종교는 지구를 세상의 중심으로 보는 사상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들은 과학을 무시를 하고 자기들의 샤머니즘적인 사고에 사로잡히면서 과학은 암흑기를 천년 이상을 맞이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1500년대가 돼서야 쿠페리니쿠스가 나타나고 갈릴레오가 나타나면서부터 과학을 새로 보기 시작을 했습니다.
종교의 샤머니즘입니다
그것이 이제까지 그대로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종교 안에는 아직도 창조과학이라는 이상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억지로 자기들의 주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저는 종교에서 주장을 하는 그런 모든 것을 철저하게 배척을 하는 사람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 이전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생들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천문학이 발달을 한다고 해도 태초에 무엇이 있었는가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보는 우주는 빅뱅이후에 존재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알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창세전입니다
누구만 있었습니까? 그것을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전에는 예수 그리스도만 계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어떻게 계셨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에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우리 성도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그렇게 성경에서 증거를 받고 믿고 있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으면 성경은 모든 것이 다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밝히 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고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일을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게 하시고 우리로 그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창세전에는 하나님만이 계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있었는지는 성경에서도 굳이 말씀을 하지 않으니까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니 굳이 그것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할 필요성이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우리는 이 영생만 알면 됩니다. 창세전에 무엇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알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빅뱅이 있은 후에 인류가 어떻게 탄생이 되었는지도 알 필요성은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찌 되었든 우리 피조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게 흠이 없게 하심으로 해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영생입니다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생을 사도 바울은 우리 신체의 구원이 아니라 창세전에 있는 일로 말씀을 하고 있고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입니다
주님께서 이제 성령이 오시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는 우리 성도들이 아는 일을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자들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일이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언어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 말씀으로 기록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창세전에 있는 영화를 바로 알아야 하고 그것은 주님께서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계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 생명을 얻게 하심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창조 후에 있는 존재라는 것을 제가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피조물이 영생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태초에 있는 생명을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22:3-5절을 보겠습니다. (신 422쪽)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깨닫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아니 인생의 철학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가 누구신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는 그래서 그들의 철학에 따라 성자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고 심지어는 성자 하나님이라고 하면서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육체로 부활을 하셨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의 한계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역시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을 종교의 교리를 보면서 느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성령이 오시면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을 알게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말씀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입니다
다 창세전에 있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창세전에 있는 일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겨우 창조하시고 난 후에 일을 알고 있고 그것도 창조를 다 이루신 일을 아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적인 사고에서 성경을 보고 있고 그것이 인생의 철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우리와 같은 형상을 입고 오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라는 말씀은 주님께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우리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창세전에 계셨던 분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전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계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인생의 언어로도 창세전에 계셨던 분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인생들은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것을 강조를 하기 위해서 성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성자입니다
인생의 언어입니다. 우리가 이 한자의 뜻을 알고 있습니다.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는 한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하신 일에서 우리 인생들이 영생을 얻지를 못한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이제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서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성도만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아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창세전에 계셨다는 말씀을 해도 인생들은 그저 자기들과 같은 인생의 형상으로 오셨다는 것으로 성자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만함입니다.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하나님으로 믿으려고 하지 않고 그래서 종교는 삼위일체라는 것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삼위일체라는 자체가 요한일서에서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는 말씀을 부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들입니다
그들의 교만함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하신 참 하나님으로 믿기 싫기 때문에 그들은 성자라는 말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분명하게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말씀을 해도 초기 종교의 인생들의 교만함이 삼위일체라는 성경에서도 증거를 하지 않는 교리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는 참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종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와 같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동등하게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조금 더 쉽게 세상이 있기 전에 아버지 곁에서 내가 누리던 그 영광을 아버지와 같이 누리게 하여주십시오. 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전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전에 있던 영화를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어린 양입니다. 이 세상에 속죄 제물로 보내신 아들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이 이제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일을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일과 그리고 이제 주님께서 아버지와 함께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우리 피조물들이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신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일이 이루어지고 영생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도를 하시는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를 창조하신 일을 통해서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게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일을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계속해서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상식으로 생각을 해도 창조에 속한 것과 그리고 창조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이 있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가 누군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지를 않고 있고 성자라는 전혀 성경적이지 않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3:35절을 보겠습니다. (신 22쪽)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성경입니다
창세전에 있는 일을 우리 인생들에게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우리는 창조 후에 있는 일도 다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창세전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주님께서도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 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지신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그 창세전에 일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으니까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굳이 그것을 알 필요도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이 생명을 주님께서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해 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을 하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의 증거입니다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는 이 생명으로 아버지와 함께 영화롭게 해 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육체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이제 영으로 부활을 하셨고 그것은 그분이 다시 하나님의 생명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시는 일을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우리가 얻는 영생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저 영생이라는 헬라어의 단어를 아는 것으로 영생을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태초에 있는 생명을 가지신 생명 그 자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내시고 다시 그 생명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창세전에 있는 영화를 누리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next 2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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