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28-2,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윤주만목사 2024. 7. 10. 09:06

로마서3:20절을 보겠습니다. (243)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한 의입니다

사람은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사망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율법 외에 라고 말씀을 하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지킨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육체가 없습니다. 사람이 지킨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는 말씀입니다.

그 의가 무엇입니까?

그냥 막연하게 하나님이 의로운 것이 아닙니다. 율법에 증거를 하신 것과 같이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다 지키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율법을 다 지키신 것이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지킨 율법은 다 더러워서 죽습니다. 그러나 그런 죽는 율법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키신 율법이 나타났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한 의입니다

그것은 이제 율법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키는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는데 그 의를 얻는 것은 율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증거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었습니다.

그것은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율법으로 산 의입니다. 그 의와 상관이 없이 이제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서 그것으로 입혀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의에 옷을 입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는데도 그것을 지키느라 율법과 상관없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의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더러운 옷을 입었습니까?

우리는 어차피 율법으로는 다 똑같습니다. 누가 더 더럽냐 하는 것은 이 세상의 생각입니다. 율법으로는 모두가 다 똑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율법과 아무 상관이 없이 우리에게 의를 입혀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 외에 나타난 의입니다

이제는 율법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는데 율법과는 상관이 없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우리에게 입혀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더러운 옷을 입은 대제사장의 율법의 의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하나님의 의를 입혀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 저주를 받아 사망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과 상관이 없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의 의를 입혀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잘 지켰습니까?

율법 하나도 안 지켰습니까? 어차피 그것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서 율법을 잘 지켰느냐 아니면 하나도 못 지켰느냐를 따지지 않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정의를 내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과 상관이 없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서 우리에게 의롭다 하심을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성경이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그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데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도로서 지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율법을 지키는 순간 의롭다 하심이 따라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과 상관이 없이 하나님의 의를 받으려고 하면 반드시 율법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앞에서 율법 아래 있는 자는 모든 입을 막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2:10-13절을 보겠습니다. (37)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쌔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혼인잔치의 비유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 자기들의 일을 핑계를 대면서 혼인 잔치에 오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셨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부르고 있습니다.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데려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렇게 사람의 이성에 따라 악한 자도 있고 선한 자도 있습니다. 율법의 의는 각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이 율법의 의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어서 하나님께서는 예복을 준비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예복을 나눠 주셨습니다.

가득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았습니다. 늘 우리는 비유의 말씀을 볼 때는 정말 다시 생각하면서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시면서 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한 사람은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복을 입지 않았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다 혼인 잔치에 청해서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로 입혀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를 믿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한 사람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가 안 입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예복을 입고 있습니까?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를 입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율법의 의로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입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비유로 예복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 예복을 입지 않고 있습니다. 이 시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를 입지 않고 있는 사람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를 믿지 않고 있는 사람입니다.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하나님의 한 의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율법 외에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과 상관이 없이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이 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습니다.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로 예복을 입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은 이 한 사람이 되어서 예복을 입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한 의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율법 외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를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며 그는 주님이 오실 때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의를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는 율법의 의는 인정을 하면서도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는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의가 없으면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은 결국에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율법이 아닙니다.

아니 지켜서는 안 됩니다. 그것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는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한 의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것을 율법에서 그리고 선지자들이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역시 이 시대 교회도 이 한 사람과 같이 그 의를 받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반드시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 의가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에서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를 증거해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로마서3:22절을 보겠습니다. (243)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오는 것인데, 모든 믿는 사람에게 미칩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차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도 악한 자나 선한 자나 차별이 없이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예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의를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율법은 분명히 차별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누구를 만나 주셨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것은 율법과 상관이 없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이 왜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기 위해서 오셨는가 하면 의인은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절대로 이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일 수도 없고 믿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누가 받겠습니까?

죄인이 이 의를 받겠습니까? 의인이 받겠습니까? 더구나 죄인과 의인이 아무 차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의가 받아들여지겠습니까? 모든 믿는 사람에게 차별이 없는 이 의를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안 됩니다

나는 십일조도 하고 주일도 지켰습니다. 그런데 십일조도 하지 않고 주일도 안 지키는 저 사람과 동일하게 구원을 받는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상당히 기분 나빠 할 것이 분명합니다. 자기는 평생을 하나님을 위해서 살았는데 구원이 그렇게 산 자기와 율법도 전혀 지키지 않고 그저 믿음만 있다고 하는 사람과 차별이 없이 주어진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인정하지 못 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달란트의 비유나 므나의 비유를 오해를 해서 자기들이 이 세상에서 더 많이 일한 그것을 가지고 가면 주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남들보다 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불물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러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가 하면 영의 일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영의 일을 모르고 육의 생각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가 차별이 없다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영의 일을 모르면 여러분이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잘 지키고 산 바리새인들을 마귀의 자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간음하다가 잡혀온 여자를 구원해 주시고 강도짓을 하다가 사형 선고를 받고 죽어가는 사람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우리나라로 하면 친일파와 같은 삭개오는 구원을 하고 자기 나라를 생각하면서 그리고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바리새인은 저주를 받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를 알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영의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육의 생각으로는 수백 번을 성경을 보아도 안 됩니다. 아니 성경을 달달 외울 정도가 되어도 안 됩니다. 바리새인이 정의롭고 예수님이 불의하게 보이는 것이 사람의 이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누가 이해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신기하게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것도 이해를 하고 저것도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12:49절을 보겠습니다. (101)

본토인에게나 너희 중에 우거한 이방인에게나 이 법이 동일하니라 하셨으므로

차별이 없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차별을 두시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는 여러 가지로 차별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믿는 사람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처음으로 유월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유월절을 먹는 것이 대해서 규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율법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절기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고 그저 유월절이 무엇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왜 유월절을 먹으라고 하셨는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되는 절기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대로 말을 하면 성도가 되는 절기라고 해야 맞습니다. 성도가 되려면 반드시 유월절을 먹어야 합니다. 유월절을 먹지 않고 성도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기를 통해서 영의 일들을 다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유월절이 무엇입니까?

쉽게 말씀을 드려서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절기라고 해야 합니다. 이 시대로 말씀을 드리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듣는 예배라고 해야 맞습니다. 이 절기에는 누룩이 있어서는 안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어린 양과 무교병과 쓴 나물을 지팡이를 짚고 급히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이것을 먹을 때는 반드시 이방인이라도 할례를 받은 후에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또 많이 있습니다. 신명기에서 할례는 마음에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믿음으로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이 무엇입니까?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가 얻어지는 절기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 절기를 반드시 먹어야 오순절에 성령이 오십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고 묻고 있습니다.

어떻게 믿습니까?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문자적으로 듣는 것은 복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정말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성경에서 복음을 듣지 못하면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시작이 무엇입니까?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니까 그저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찬송을 부르고 헌금을 하는 것으로 자기가 믿는 것으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생활과 믿음을 모르고 교회 안에 다수의 사람이 포승으로 묶인 체 끌려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구약에서 유월절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유월절을 먹을 때는 이방인이라도 할례를 받으면 먹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방인이라도 믿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는 차별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유월절을 안 먹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 나오기 전에 먹은 것이 유월절입니다. 광야는 교회입니다. 다른 절기들은 광야에 나와서 지켰지만 이 유월절만은 애굽에서 지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애굽에서 지켰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광야에 나와서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유월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고 유월절을 먹으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은 유월절을 먹은 사람만이 교회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교회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법은 동일합니다.

차별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월절을 먹는 것은 누구라도 먹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가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아무리 진리가 전해진다고 해도 그가 믿지를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 진리는 솔직히 개에게 그리고 돼지에게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할례를 받았습니까?

그리고 유월절을 먹었습니까? 이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유월절을 먹지 않은 사람에게는 성령이 오실 수 없다는 것을 갈라디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 예배를 평생을 드려도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유월절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유월절을 먹는 것은 이제 이스라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한 단계이고 그렇게 유월절을 먹은 성도들에게 50일이 지나면 성령이 오신다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유월절입니다

이스라엘은 정월 14일부터 7일 동안 지켰습니다. 그런 날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7일이 아니라 7년이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바로 유월절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가 차별이 없다는 것이 믿어지는 역사가 있을 때까지 아니 복음이 깨달아지기 까지 우리는 유월절을 먹어야 합니다.

성경의 절기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태양계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에 따르는 절기를 만들었지만 실상은 일직선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자 합니까? 그러면 이제는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가 믿어지는 역사가 있기 까지 우리는 성경에서 유월절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복음이 믿어지는 역사가 있기 까지 먹어야 합니다.

누구는 일 년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누구는 십년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드리는 예배로는 죽을 때까지 유월절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 예배를 드리면서 그들이 먹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거의 다 누룩이 섞여 있는 것을 먹고 있는 상태에서는 유월절을 먹는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모릅니까?

성경에 어떻게 유월절을 먹으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까? 그런 것도 모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다면 차라리 그냥 세상에서 사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차별이 없이 미치게 하려면 반드시 유월절을 먹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먹습니까?

그것을 히스기야가 보여 주었습니다. 114일부터 7일 동안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부족하니까 또 다시 214일부터 7일 동안 유월절을 지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날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해야 합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차별이 없는 하나님의 의를 받을 때까지 먹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편지에 많은 말씀을 올렸습니다.

강해부터 해서 성경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아카데미 강의 그리고 설교 말씀들을 많이 올렸습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이 말씀을 보고 질려 버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분량의 말씀들을 보면서 읽기도 전에 이것을 어떻게 읽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너희가 영생을 얻고자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내게 대해서 기록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말씀이 너무 많습니까?

차라리 세상에서 사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저는 진심으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 정도도 버거워하면서 무슨 유월절을 먹겠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있습니다. 제가 쓴 설교는 아주 기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 성도는 평생을 살면서 이렇게 유월절을 먹으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구원을 받았습니까?

성경을 많이 알고 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달음질을 멈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생이 무엇이라는 것을 아는 성도는 설령 내가 영생을 얻을 정도로 유월절을 먹었다 해도 늘 깨어서 성경에서 어린 양과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어야 합니다.

지금은 변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편리만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얼마나 장시간을 전했으면 유두고라는 청년이 이층 누에서 떨어져 죽었겠습니까? 그때는 하루 종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만을 전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찬송을 부릅니까?

그리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수많은 예배 순서가 있습니까? 그럴 시간이 여러분에게는 없습니다. 이 바쁜 세상을 살면서 그런 것을 하면서 어떻게 유월절을 먹겠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말씀을 다 보고도 돌아서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차별이 없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 전제 조건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모르면서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과 같은 예배를 드리면서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누룩을 잔뜩 섞어서 듣고 있는 그 설교를 들으면서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는 것 같이 보일지는 몰라도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모르면서 어떻게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는 차별이 없지만 믿으려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하나라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린 아이와 같이 꼭 집어서 말을 해야 압니까? 국어를 모르니까 성경을 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율법의 행위를 버려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3:8절을 보겠습니다. (369)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오직 믿음입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오직 믿음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에 오직 믿음입니다. 초대 교회에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가 다르다면 우리는 믿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입니다. 만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도 바울에게와 나에게 다르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가 그에게 미쳤고 또 나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가 미쳐서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차별을 말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가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할례를 받고 유월절을 먹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과 내가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이나 예수 그리스도는 동일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는 다릅니다.

사도 바울의 행위와 내 행위는 다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동일하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는 차별이 없습니다. 왜 차별이 없는가 하면 그것은 주님이 하신 일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주님이 하신 일을 믿습니다.

나 역시도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믿습니다. 이것이 복음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한 일이 복음에서 나타나는 의가 아니라 또 내가 하는 일이 복음에서 나타는 의가 아니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이 복음에서 나타나는 의가 되기 때문에 차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오직 예수입니까?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선지자들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주님을 통해서 나타났는데 그 의를 주시는 것이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차별이 있으면 안 됩니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차별이 있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의를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가 있어서 우리 가난한 자가 율법을 지키지 못한 자가 율법을 지킨 것과 같이 부요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부요하게 할 수 있도록 동일하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의 일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 못 믿습니까?

물론 성령이 오시지 않아 진리로 인도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성경을 사람의 지식으로 보려고 하다가 다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지식을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영의 일에 있어서 다 막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미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육체에 미치는 것이 아니라 영에 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차별이 없이 미친다고 하니까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이해를 하지 못하는가 하면 육의 사람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입니다

내 안에 탄생이 되는 영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내 안에 하나님의 의를 가진 영이 탄생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가 내 육체에 미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순간에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탄생이 되고 그 영이 하나님의 의를 가진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거지 나사로도 이 영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또한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도 이 영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가 미쳐서 이 영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 영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이렇게 믿는 자에게 차별이 없이 동일하게 그 영을 탄생 시키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 안에 탄생이 되는 영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의롭다 함으로 말씀을 하고 있고 또 성화로 말씀을 하고 있고 거듭남으로 말씀을 하고 있고 믿음으로 말씀을 하고 있고 성령이 오시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들이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의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3:16절을 보겠습니다. (26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나님의 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이며 이 의는 차별이 없고 동일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가 하면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심으로 성전이 지어져가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아닙니다.

이 의가 우리 육체에게 미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문제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미치는 하나님의 의가 어디에 미치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기 육체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고 심지어는 썩는 그 육체가 부활을 해서 천국으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아담의 자손인 나는 반드시 썩어 없어집니다. 내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육체는 믿지 않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죽는 순간에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썩어 없어지는 것에 마치 하나님의 의가 미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오심으로 성전이 지어져 가고 있고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그 영이 탄생이 되고 있고 그 영에 하나님의 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아담의 자손인 우리 육체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신학에서의 기초 교리가 신체의 구원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신체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육체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사단에게 내어 주어서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것이 내 신체에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믿음으로 해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영이 하나님의 의가 있는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영의 비밀을 모르고 성경을 보는 사람은 다 망하는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우리 신체는 분명히 차별이 있습니다. 누가 잘하고 누가 잘 못하면 차별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미치는 하나님의 의는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신체가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하는 대로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게는 차별이 없는 하나님의 의가 미치는 영이 탄생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음 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