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28-1,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윤주만목사 2024. 7. 10. 09:05

로마서3:20절을 보겠습니다. (243)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죄를 깨닫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죄를 보고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정죄해서 돌로 쳐 죽이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자기들이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율법을 안다고 하는 그들이 율법으로 죄를 깨닫지를 못하고 무죄한 자를 정죄하였습니다.

죄를 깨닫지를 못하면 이렇게 됩니다.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달았다면 이스라엘은 절대로 이 여자를 잡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죄를 깨닫지를 못했기 때문에 이 여자를 잡아 왔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십계명을 보고 죄를 깨달은 성도는 절대로 어느 누구도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정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율법을 보니까 어느 한 계명도 지키지 못한 죄인입니다. 그런 죄인이 다른 죄인을 정죄할 수 있습니까? 율법을 보니까 내가 살인한 자요, 간음한 자요, 도적질을 한 자요, 거짓말 한 자요, 남의 이웃의 것을 탐한 자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어떻게 바리새인들과 같이 이 여자를 잡아 올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못 합니다

아니 그것을 알고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로 악한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십계명의 어느 한 계명도 지키지 못한 내가 어떻게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자를 정죄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내가 더 영적으로 큰 죄를 범했던 죄인인데 그깟 육적인 죄를 보고 어떻게 정죄를 할 수 있습니까? 영의 생명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성도는 절대로 그러한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육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교회 안에서 지금도 바리새인들과 같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자기들이 하고 있는 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잡아서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에스겔23:11절을 보겠습니다. (1185)

그 아우 오홀리바가 이것을 보고도 그 형보다 음욕을 더하며 그 형의 간음함보다 그 간음이 더 심하므로 그 형보다 더 부패하여졌느니라

율법에 간음하지 말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을 보았으면 어떻게 해야 죄를 깨달을 수 있습니까? 성경에서 말씀하는 간음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죄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무죄한 자를 끌고 와서 간음했다고 하지 않고 내가 간음한 자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간음하지 말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바리새인들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그 여자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까? 이 시대는 십계명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 여자를 보고 간음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가 간음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간음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전체가 다 간음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서에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고 또 예레미야에서도 이스라엘과 유대가 다 간음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개인의 간음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다 간음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십계명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율법을 보고도 전혀 죄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을 보고 무죄한 자를 정죄를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십계명에 대해서 모두를 설교로 올려 드렸습니다.

지켰습니까?

우리가 율법을 몰랐을 때는 지켰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십계명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성도라고 자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으로 율법을 알고 나니까 우리는 십계명의 어느 한 계명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성도는 이제 더 이상 십계명을 범하지 않고 있지만 그것 역시 사람의 이성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누가 십계명을 지키고 있습니까? 어느 한 사람도 한 계명도 지키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십계명을 지키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문자적으로 보고 십계명이 살아 있다고 하면서 십계명을 지키고 있다고 하면서 전혀 죄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간음을 했습니까?

바리새인들이 잡아온 여자가 간음을 했습니까? 바리새인들이 간음을 했습니까? 율법을 보고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다면 그는 에스겔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이 평생을 간음을 하다가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적인 간음을 했습니다.

그것이 죄입니까? 이 세상에 이성으로는 분명히 죄입니다. 제가 죄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세상의 이성을 따라 죄를 알기 위해서 아니 초등학생도 아는 것을 가지고 간음이라고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제가 죄를 마음 놓고 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연약해서 어느 사람에게는 도저히 그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죄를 질 수밖에 아니 율법의 어느 한 계명도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성경은 그들 모두를 간음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시대는 다를 것 같습니까? 이 시대 역시 모두가 간음한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간음뿐 아니라 십계명의 어느 한 계명도 지키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이 세상 초등학문에 빠져 초등학생도 아는 그 문자를 가지고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다고 하면서 죄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만 간음을 했다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더구나 이스라엘 전체가 다 간음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해가 되고 있습니까? 그런데도 이런 말씀을 보면서도 마치 이스라엘 전체가 바리새인이 잡아온 그 여자와 같이 간음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정말 잘 지켰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살았고 그것이 도리어 간음이 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 역시 자기들이 문자 그대로 지키고 있는 그것이 간음을 하는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야고보서4:4절을 보겠습니다. (37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야고보서입니다

누구에게 보내는 서신입니까?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 한다고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주의 동생인 야고보가 이 서신을 보내고 있습니다. 왜 이 서신을 보내게 되었는가 하면 사도행전15장에서 사도 바울이 와서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나서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입니다

이사야가 간음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간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스겔도 간음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호세아도 간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전체가 간음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보도고 자기들이 간음을 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조상 대대로 율법을 지켜왔습니다.

그런 행위가 간음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계명에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보고도 자기들이 어떻게 간음을 하고 있는지를 몰랐습니다. 아니 선지자들이 간음을 한다고 하면 간음을 하지 않는 자기들을 모욕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야고보서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행함이 있는 믿음이 율법을 버리는 행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하고 나서 율법을 버리지 않고 있는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야고보가 간음하는 여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여자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여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계속해서 지키고 있는 그 사람들에게 간음하는 여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간음하는 것인 줄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율법을 보고는 있지만 죄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율법을 보았습니까?

나 외에게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을 보았습니까? 그럼 이 시대 거의 모두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러나 다른 신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율법이 있습니다.

그 우상이 부처입니까? 그리고 어느 신상을 말하는 것입니까? 물론 전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상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어느 누군가 지키는 율법의 의가 우상이 되어서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자기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장에서 이미 우상에 대해서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을 보고 지키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왜 우리에게 주셨는가 하면 우리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 중에 어느 한 율법도 지키지 못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시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율법을 보고도 죄를 깨닫기 보다는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의를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에서 율법을 보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습니다. 그 율법을 자기들이 지키겠다고 모두가 언약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생명을 걸고 언약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언약한 그 율법으로 탐심을 부리다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려고 하다 죄를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야고보가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간음하는 여자들이라고 똑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간음하는 여자입니까?

정욕으로 쓰고 있는 사람이 간음하는 여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정욕입니다. 정욕이라고 하니까 나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정욕이 무엇입니까? 율법을 잘 지키고자 하는 것이 정욕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야고보가 이렇게까지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율법으로 죄를 깨닫기 보다는 정욕으로 쓰려고 그 율법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마귀의 자식이 되었는가 하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간음을 했기 때문입니다.

율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면서 스스로 간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간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죄를 깨닫기보다는 죄를 안 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행위가 죄를 깨닫지 못하게 만들고 있지만 율법을 보는 눈에 소경이 되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1:15절을 보겠습니다. (337)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자기 말대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고 하면서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보다 더 많은 죄를 지어서 죄인 중에 괴수입니까?

그는 분명히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분명히 사람의 이성에 따라서는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도리어 훼방을 했고 핍박을 했고 포행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서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알지 못 했습니다

자기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훼방을 했고 핍박을 했고 포행을 했는데 그때는 자기가 복음을 알지 못했다고 하면서 이제 복음을 알고 나니까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보다 죄를 더 많이 지어서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합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같습니다. 누가 더 죄를 더 많이 지었느냐 아니면 누가 더 의롭냐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시편에서 저울에 달아보니까 입김보다 더 경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짓는 죄는 사실 입김보다 더 경합니다. 그가 아무리 의인이라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달은 성도는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면 그래도 세상에 사는 사람보다는 의롭게 살려고 자기가 노력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똑같이 율법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자기가 어느 한 가지도 율법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죄인 중에 괴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문자적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은 인정을 해도 그래도 세상 사람보다는 하나님의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도는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가라지는 율법을 보고 죄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성경을 보고 죄를 깨달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바리새인과 같이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달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면서 죄를 안 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생각이 어떻겠습니까?

그래도 세상 사람들보다는 죄를 안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는 십일조도 하고 있고 또 주일이라는 날도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율법을 아무리 보아도 죄를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알면 뭐 합니까?

사도 바울이 왜 자기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는지를 모르고 있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달았기 때문에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겨우 몇 가지 지키고 있는 율법에 취해서 어떠한 죄를 짓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죄인입니다

율법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율법을 보고 내가 어느 한 가지도 지킨 것이 없다는 것이 깨달아져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613가지 중에 어느 한 가지도 지킨 것이 없다는 것이 깨달아 질 때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한 것과 같이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 됩니다

왜 죄를 깨달을 수 없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죄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내가 살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자기가 살인을 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내가 간음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자기가 간음을 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내가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우상 숭배한 것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안 됩니다

절대로 죄를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가 평생을 율법을 보고 성경을 연구를 해도 죄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가 살인한 자라는 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만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죄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죄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율법을 보고도 죄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은 율법을 지킬 수밖에 없고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자는 율법 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키지 못해서 결국에는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3:21절을 보겠습니다. (243)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율법서와 예언서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율법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우리가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지으신 창조주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율법을 보면 정신을 잃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렇다 하더라도 신약에 와서 사도 바울이 율법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율법에 대해서 너무 관대하게 성경을 기록했다는 정신 나간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경을 기록했습니까?

이 시대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사상이 어떠한 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누가 기록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기록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도 그렇고 성경을 기록한 모든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기록했다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쉽게 말을 해서 필사를 한 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불러 주는데 그 곁에서 글로 쓴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마치 사도 바울이 성경을 기록한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사도 바울의 인간의 생각이 들어가서 성경을 기록했다면 우리는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반포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친히 쓰셔서 주셨습니다. 그렇다 해도 율법을 지키라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주를 받게 하는 율법을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하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기초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는 순간 반드시 의롭다 함이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는 그 율법을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지키라고 하셨겠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그래서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율법을 반포하신 이유는 죄를 깨닫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보고도 죄를 깨닫지를 않고 있습니다. 죄를 깨닫기보다는 죄를 안 지려고 노력을 하면서 그것을 열심히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 성경에서 율법을 바로 알아야 하는가 하면 율법은 생명과 저주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다 지키면 그 의로 말미암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키지 못하면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스라엘도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겠다고 한 것이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 이상하게 어린 아이가 되고 있습니다.

부모입니다

아이가 이제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 아이에게 전교 1등을 하면 네가 원하는 것을 다 주겠다고 부모가 약속을 했습니다. 부모가 진짜 그 아이에게 전교1등을 바라고 있습니까? 물론 그런 부모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 아이를 잘 모르는 부모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설령 그렇게 말을 했어도 자기 아이가 공부를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이야기입니다.

능력이 안 됩니다

그가 전교1등을 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도 전교1등을 하기 위해서 잠을 안 자고 공부를 하다가는 도리어 건강에 해를 끼칠 것이 분명합니다. 부모가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아들이 꼭 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사람은 그렇게 요구할 수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안 됩니다

성경이 안 된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도 굳이 율법을 지키면서 저주를 자청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아니 사단에게 미혹이 되어서 자기가 몇 가지 지키는 율법에 도취가 되면 저주를 받는 줄도 모르고 그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은 모두가 사망에 이르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지으시고 보기에 참 좋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 피조물이 모두 사망에 이르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만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예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절대로 이 세상에 오시지도 않았고 예수님께서는 헛되게 십자가를 지신 것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신명기28:1-6절을 보겠습니다. (30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그 하나님의 한 의가 어디에서 증거를 받았는가 하면 율법과 선지자들로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에서 하나님의 한 의를 증거하고 있고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의를 증거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율법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율법 누가 지킵니까?

이 세상에서는 당연히 사람이 지켜야 합니다. 그런 사상을 가지고 성경을 보다보니까 성경말씀을 보아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을 사람이 지킨다는 것부터 버리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신명기28장의 말씀입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아마도 거의 모든 신학자들이나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성경을 보는 모든 사람은 이 말씀을 보고 어떻게 생각합니까? 다 자기들이 율법을 잘 지켜서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정의입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율법을 지켜서 신명기28장의 복을 받겠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아니 이곳에서는 이 말을 하고 또 저곳에서는 저 말을 하면서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신명기28장에 율법을 지키면 받을 복을 말씀하고 있다면 속된 말로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을 가지고 장난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는데 그런 인생들에게 율법을 지켰을 때 받을 복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인생들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생각 좀 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성경을 볼 때는 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는 사람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지키면 복을 주시겠다고 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못 합니다

복을 주신다는 그 말씀에 앞 뒤 가리지 않고 복을 받기 위해서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겠다고 언약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보면 뭐 합니까? 도리어 그 지식이 저주를 받게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저 문자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그 말씀에만 집중을 하고 있고 성경에 또 어떠한 말씀이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신명기28장에서 너는 누구를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복을 받으실 분이 누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면 신명기에 있는 말씀은 우리가 아니라 주님을 지칭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다 지키시고 천국의 복을 받으셨습니다. 율법이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복을 누가 받을 것인가를 율법이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누가 지킬 것인가를 율법이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율법을 지키셨습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가 되는가 하면 주님이 율법을 지키심으로 해서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고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네 몸의 소생입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소생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 외에 한 의가 나타남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소생이 복을 받아서 천국에 들어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입니다

율법이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누가 율법을 지켰는가를 아니 하늘의 복을 받을 의가 누구에게 있는가를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신명기28장의 말씀은 우리 인생들이 받을 수 있는 복이 아닙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것을 하려고 했다가는 도리어 저주가 임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이제까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완전히 지키신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어느 누구도 율법을 지키지 못 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의 의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지켜서 얻는 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율법을 지켜서 얻은 의입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말씀은 율법으로는 우리 인생은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셔서 율법을 지키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의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지키는 의입니다. 그것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을 어디에서 증거를 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에서 하나님이 오셔서 율법을 지켜서 복을 받는다는 것을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스가랴3:3-4절을 보겠습니다. (1315)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우리의 의입니다

율법을 지킨 우리의 의는 더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에서도 우리는 다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스가랴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대제사장이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들 앞에 서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대제사장입니다

그가 얼마나 율법대로 살았겠습니까? 그러나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이 여호수아와 같이 더러운 옷을 입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착각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저주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러운 옷을 벗기고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킨 율법의 의 더럽습니다.

그러나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는 아름답습니다. 그러니까 신명기28장의 말씀을 지킨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아름답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의에 옷이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두 가지 옷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사람은 율법을 지키면서 살았지만 모두가 다 더러운 옷을 입었습니다. 사람이 지킨 율법은 더럽습니다. 그 더러운 옷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지키는 율법 외에 하나님이 지키신 의를 나타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율법이 그리고 선지자들이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킨 사람의 의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으니까 이제 모두가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28-2로 연결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