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3:19절을 보겠습니다. (신 243쪽)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성경은 그렇게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와 예수 안에 있는 자로 분명하게 구분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도 지키고 예수도 믿고 한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같이 율법을 지키는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보내셔서 세상으로 심판을 받지 않게 하고 있는데 온 세상이 다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심판을 받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의 말씀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들과 같이 율법 전체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미 초대교회에 율법주의가 들어와서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정말 타당성이 있는 몇 가지 율법을 지키게 했습니다. 그렇게 몇 가지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율법 아래 있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만 율법 아래 있습니까?
이 로마서를 바리새인들이 보라고 기록했습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초대 교회 안에 할례라는 율법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2장에서 사도 바울이 할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갈라디아서를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초대 교회에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심판을 받습니다.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율법을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도 율법을 지키는 것이 백번 옳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반드시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율법이 말하는 바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그는 율법 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켜야 합니다.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식사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율법의 행위를 하는 순간에 그것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 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키지 못하면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해서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율법 심판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생명이 있습니다. 율법도 지키고 예수도 믿는다는 말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은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한 가지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다른 구원을 받을 만한 이름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느 방법으로도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셨지만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누가 안 믿습니까?
이스라엘이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교회가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이 말하는 바를 모르고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두려움이 없이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로마서3:20절을 보겠습니다. (신 243쪽)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아무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율법은 단지 무엇이 죄가 되는지를 알려줄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바로 앞에 있는 말씀이 근거가 되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말하는 바를 성경에서 알았습니다. 율법이 말하는 바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왜 율법으로는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는가 하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율법을 항상 다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우리 인생은 연약해서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성경에서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율법을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어떤 마음으로 지키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지키든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감사해서 이제 성경대로 살기 위해서 문자를 보고 율법을 지키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율법을 지키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율법을 지키면 의롭다 하심이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에 자기 생각을 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성경을 봅니까?
자기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경을 볼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그런 사람은 성경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가 본 성경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입니까?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의 행위로는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면 율법을 지키는 모든 사람에게 의롭다 하심이 따라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교회를 위해서 아니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진심으로, 믿음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런 감성적인 말로 미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율법의 행위를 하는 순간에 의롭다 하심이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십일조만 하고 있습니까? 나는 주일이라는 날에 예배만 드리고 있습니까? 아니 나는 모든 율법을 폐하고 매주에 성찬식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 행위를 하는 순간에 여러분에게 의롭다 하심이 따라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신 있으면 하시기 바랍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을 자신이 있으면 율법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하고 있다는 허황된 이야기를 하지 마시고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면 지키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하나라도 지키는 순간에 여러분은 율법 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켜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성경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반드시 의롭다 하심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복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는 우리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독생자를 보내 주셔서 그 이름을 믿게 하심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셨습니다.
율법이 있습니다.
세상에 죄를 짓지 않고 의로운 사람은 아주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는 우리 인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입니다
사람들은 오직 예수라는 말은 해도 왜 오직 예수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말로는 오직 예수라고 힘주어서 이야기를 하는 그들이 왜 오직 예수인가를 전혀 모르고 율법의 행위에 빠져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안 되니까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으니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게 해서 믿게 함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어서 오직 예수입니다
성경에서 오직 예수를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저 그 단어를 아는 것으로 오직 예수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오직 예수라는 의미도 모르면서 성경에 문자를 보고 오직 예수라고 하면 오직 예수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는 오직 예수가 아니라 오직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예수도 믿고 율법도 지키는 음행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입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사람이 아주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오직 예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오직 예수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에 오직 예수라는 말씀입니다
말로만 하지 마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사가 오직 예수라고 하면 마치 그가 진리를 전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고 외식의 모양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는 오직 예수가 아니라 그가 하는 그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식사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아마도 이 시대 이 식사 기도에 대해서 율법이라고 하면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무심하게 하고 있는 외식적인 행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각인이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예가 식사 기도이기 때문에 제가 자주 언급을 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가 아닙니다.
그는 식사 기도를 하는 그것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무심히 하고 있는 그 행위 하나로 율법 전체를 행하야 하는 의무가 있고 율법 전체를 행해서 의롭다 하심을 얻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라는 말씀에는 이것이 포함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의롭다 하심을 얻는데 있어서 오직 예수라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2:16절을 보겠습니다. (신 304쪽)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의롭다 하심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도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어떻게 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생각입니다. 모든 사람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를 잘 지키는 것이고 또 어떠한 의로운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의인이라고 합니다.
몇 년 전인가 우리나라 유학생이 일본에 가서 지하철에서 사람을 구하고 죽었습니다. 그를 의인이라고 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비록 그가 다른 나라 사람이지만 그의 행위를 보고 의롭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매년 그를 기리는 행사를 하면서 의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의인이 많이 있습니다.
법을 잘 지키면서 산 사람을 의인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특별한 행위를 함으로 해서 자기를 희생하고 남을 구하는 일을 했을 때 그를 의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그 사람들의 행위를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세상의 생각입니다.
저 역시도 감히 하지 못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의인이라고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을 반대하고자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도는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따라 사는 자가 아니라 성경말씀을 보고 믿는 성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그러한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성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왜 성인이라고 하는가 하면 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율법의 행위가 좋았기 때문에 성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의인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그런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사도 바울이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역시도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이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아! 성경에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알면 뭐 합니까?
이 성경 말씀을 알고 있으면 뭐 합니까?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세상을 따라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들은 말을 합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성도로서 바르게 살기위해서 지키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그가 그렇게 지켰을지라도 율법을 지키는 순간에 의롭다 하심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없습니다.
안 됩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사도 바울이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의롭다 하심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기 위해서 우리도 믿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두 가지 방법입니다
그리고 비교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은 되고 어느 것은 안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은 포기를 하고 되는 것을 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국어를 모르다보니까 이렇게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해도 그 뜻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비교법입니다
서로 비슷한 두 사실을 비교하여 나타내는 표현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두 가지를 비교를 해서 어느 한 가지를 명확하게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하는 국어의 문법이라는 말입니다 이 비교법을 사용할 때는 어느 한 가지를 나타내면 어느 한 가지는 죽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한 가지가 됩니다.
그러면 어느 한 가지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것이 국어에서 사용하고 있는 비교법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국어를 모르고 있습니다. 국어도 모르는 그들이 히브리어를 헬라어를 그리고 영어를 한다고 하면서 자기 지식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국어도 모르는 그들이 평생을 그런 언어를 공부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물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평생을 공부를 해도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우리 국어처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그것의 무용론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는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 지식을 자랑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렇게까지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보아도 그들의 눈이 소경이 되어서 안 보이고 있습니다.
아니 문제는 세상의 지식입니다
성경을 자기들의 지식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니까 도무지 말씀이 안 보이고 있습니다. 신학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그곳에서 성경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라이선스를 따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있고 그것을 자기들의 기준으로 마치면 목사를 안수 받고 있습니다.
목사가 되면 뭐 합니까?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도 모르는 그들이 목사가 되는 것은 재앙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면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그저 하나님이 친히 써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이라는 생각만 하다보니까 당연히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이 말씀이 성경의 기초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면서 사도 바울이 의롭다 하심을 받기 위해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도 의롭게 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는 반드시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것이 거짓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2:24절을 보겠습니다. (신 373쪽)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면서 이제 너희가 믿음이 있다고 하면 율법을 버리는 행함을 보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설명하면서 이로 보건데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가 아무리 믿는다고 해도 그 믿음이 거짓이라는 것을 야고보서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사람이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받는가를 말씀하고 있지만 문제는 성경을 보면서도 국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성경을 거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그가 믿음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반드시 행함이 있어야 하는데 그 행함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을 버리는 행함이 있어야 믿음이 있고 그렇게 믿음이 있는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때는 반드시 율법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는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러면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아니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됩니다 율법을 지키는 순간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따라오기 때문에 우리 인생은 모두가 저주를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를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을 야고보서에서는 율법을 버리는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드시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싶습니까? 성경을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로마서를 보고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뭐 합니까? 그러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율법을 버리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어야 여러분이 믿는다고 하는 그것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버리는 행함이 없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야고보가 그것은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은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율법을 버리는 행함이 함께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나에게서 율법의 행위가 있다면 믿음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민수기15:32-33절을 보겠습니다. (구 221쪽)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의 앞으로 끌어왔으나”
이스라엘입니다
율법은 문자적으로도 참 어렵습니다. 613가지나 되는 율법이 있고 또 그것을 꼭 문자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은 그 율법에서 파생이 되는 것을 알려고 했습니다. 율법을 문자 그대로만 보면 그가 율법을 범했는지를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안식일에 나무를 하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나무를 하는 사람은 불을 피우기 위해서 나무를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율법에는 불을 피우지 말라고 했지 나무를 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이 나무 하는 자를 잡아 두고서 하나님께 묻고 있습니다.
율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무를 하면서도 율법을 범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물론 분명히 불을 피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내가 불을 피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나무를 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내일을 위해서 나무를 했다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에 규례에는 불을 피우는 것도 죄가 되고 일을 하는 것도 죄가 되고 있습니다.
율법을 주셨습니다.
안식일에 불을 피우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집에서 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무를 하는 것에 대한 율법은 없을지라도 이스라엘이 나무 하는 자를 잡아 두었다는 것은 율법을 범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이 사람은 율법을 범함으로 해서 이스라엘 온 회중이 돌로 쳐 죽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을 주셨습니다.
나무를 해도 이 사람이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있다 보니까 이 사람이 죄를 범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 문자적으로 율법을 범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이렇게 문자적으로 율법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보았고 그리고 법을 지키는 것과 죄를 짓는 것을 알려고 했습니다.
구약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그림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율법이 살아 있다고 하면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다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주일이라는 날에 불을 피워서 식사를 하고 있다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영적으로도 다 맞아 죽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면 온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심히 지키고 있는 율법이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어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을 온 회중이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죄를 깨닫게 해 주고 있습니다. 사실 문자적으로도 보아도 이 시대는 율법을 스스로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안식일에 불도 피우지 말고 나무도 해서는 안 되고 어떠한 일을 해서도 안 됩니다 단 한 가지의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이 모든 율법이 살아나고 그것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보면서도 문자 그대로의 죄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일이라는 날에 불을 피우고 나무를 하고 또 어떤 일을 하고 하는 모든 것이 다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물론 이 율법들은 다 영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대로 지킬 필요는 없지만 문자적으로 율법이 살아 있다고 하는 그들에게는 이 율법이 그대로 살아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왜 주셨습니까?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죄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문자적으로 자기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알고 있었지만 이 시대는 문자적으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영적으로도 자기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 심지어는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주일이라는 날이라고 쉬고 있습니다. 그렇게 쉬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이 율법 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들입니다
주일이라는 날이라고 일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직장을 구하더라도 가능한 주일에 쉬는 날을 구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주일에 불을 피워서 자기들이 먹을 밥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고 있고 그렇게 율법을 범한 사람을 돌로 쳐 죽이라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주일이라는 날에 일을 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불을 피워서도 안 되고 그날 한 밥을 먹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성경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것이 율법을 범하는 일이고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자기들에게 편리한 쪽으로 율법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죄를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죄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이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지만 도리어 죄를 짓지 않으려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요한복음8:4절을 보겠습니다. (신 158쪽)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십계명입니다
간음하지 말찌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십계명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친히 써서 주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 거의 모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십계명이 살아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간음하고 있는 사람들을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같이 정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이 여자를 잡아 왔습니까?
자기들이 율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잡아 왔습니다. 또 자기들은 간음을 하지 않고 이 여자는 간음을 했기 때문에 잡아와서 예수님 앞에서 이 여자를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율법을 보고 죄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알고 있습니까?
아니 율법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그들은 율법을 보고도 죄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율법을 보았으면 죄를 깨달아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율법을 보고 자기들이 죄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이 여자를 잡아 왔습니다.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정말 사람이 복음을 깨닫고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늘 깨닫고 있습니다. 그저 이렇게 초등학문으로 아는 것을 가지고 죄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영의 성도입니다
육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자기들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가 간음한 것을 모릅니까? 그것을 보고 죄를 깨달아서 이 여자가 간음을 해서 잡아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 정도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도 율법을 보고 다 죄를 깨달을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정도를 가지고 자기가 죄를 깨달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불교인도 알고 있고 힌두교인도 알고 있고 무신론자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것을 가지고 사도 바울이 성경에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 정도를 가지고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럼 불교인이나 무실론 자나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육의 사람이 알고 있는 그것을 가지고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달았다고 한다면 이 세상 사람과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는 이 세상 사람이지 영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죄를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아니 율법을 보고 도리어 무죄한 자를 정죄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간음을 해도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없이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의 죄가 있습니까?
물론 이 세상의 이성으로는 간음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죄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를 없이 하셨다는 것을 믿는 성도는 이 여자는 무죄한 자입니다 이해가 안 되더라도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따지면 절대로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남의 죄를 보고 정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죄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지고 가셨습니다. 율법은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알고 있는 초등학문을 가지고 말을 하지 마시고 율법을 보았을 때는 내가 간음한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율법을 보면서도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고 도리어 무죄한 자를 정죄하면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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