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7-1, 하나님의 진노가

윤주만목사 2024. 6. 3. 06:13

로마서1:18절을 보겠습니다. (240)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 말씀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 그 말씀에서 복음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믿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이것을 창세기부터 계속해서 그렇게 믿음의 말씀을 보니까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제까지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모든 성경 말씀이 이 복음을 알고 믿으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복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를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알아야 믿을 수 있는데 이 시대 아니 이제까지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남겨 놓은 글들을 보면 복음을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입니다.

물론 신약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선 구약의 말씀들이 믿어지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믿음의 말씀이 있습니까? 그런데 이 시대 구약의 말씀들을 보고 어떻게 말합니까? 하박국의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말씀만 보고 있습니다. 그것도 문자적으로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말씀입니까?

다 복음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고 있습니다. 그 말씀만 그렇습니까? 율법이라고 하는 출애굽기에서 신명기까지의 모든 말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초등학문에 빠져 있는 사람은 그것이 다 율법으로 보이지만 복음을 보는 성도들은 그 말씀들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입니다.

또 믿음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복음을 못 보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율법만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성경을 보면서 율법의 행위를 보다가 결국에는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일조라는 율법을 보았으면 그것이 믿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것을 자기 육체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리새인과 같이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시대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과 바리새인이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무엇이 다릅니까? 그렇게 율법의 행위 아래 있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보았습니까?

성경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을 보았습니까? 그러면 그 안식일이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안식일이 변해서 주일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 안식일이 변해서 주일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히브리서도 안 봅니까?

저의 안식에 들어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맞지만 복음으로는 저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맞습니다. 저의 안식에 어떻게 들어가는가 하면 믿음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보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안식일을 믿는 역사가 내 안에서 일어나면 믿을 수 있습니다

이 시대 맥추감사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을 지키라고 했습니까? 성경에는 물론 이스라엘이 그것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복음을 몰랐기 때문에 지켰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밝히 보이는데도 그것을 지키고 있습니다. 말로는 제사법이 폐하여 졌다는 그들이 맥추감사절을 지키고 있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말로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로는 누가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맥추절을 믿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제사법과 절기가 폐하여 졌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맥추감사절을 너무도 당연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말로 그렇게 하는 종교에서는 정말 말로 십일조를 하고, 말로 주일을 지키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로는 감언이설을 하면서 행위로는 복음에 복종치 아니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모든 성경 말씀은 복음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성경이 구약 성경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구약 성경을 보고 복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보면서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도무지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창세기를 보았습니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어야 합니다. 출애굽기를 보았습니까? 역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어야 합니다. 또 레위기도 마찬가지고 민수기도 마찬가지고 신명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 말리기까지 역시 그렇게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믿을 때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렇게 믿으면 어떻게 됩니까?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말씀대로 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십일조를 하고 있고, 주일을 안식일과 같이 지키고 있고,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왜 그러한 행위를 하고 있는가 하면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복음이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그가 목사면 뭐하고 신학박사면 뭐 합니까? 그의 눈에 복음이 안 보이면 그는 소경과 다름이 없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고 있지만 복음이 안 보이니까 믿을 수 없고 점점 더 성경의 문자를 보고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성경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아니 율법에 눈이 멀어서 복음이 안 보이는 사람에게는 이 말씀이 도무지 무슨 말씀인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십일조를 믿으라고 하고, 주일을 믿으라고 하고, 맥추감사절을 믿으라고 하면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복음이 보이는 성도는,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는 그것이 믿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렇게 믿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믿음의 말씀을 계속해서 보면 믿음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그 말씀을 보고 믿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복음을 보고 믿으면 그것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믿음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구약 성경에서 믿음의 말씀을 100개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사람은 구약에서 믿음의 말씀을 1000개 보았습니다. 누가 믿어지는 역사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구약에서 1000개를 본 사람이 100개를 본 사람보다 믿어지는 역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한 행동으로 진리를 가로막는 사람의 온갖 불경건함과 불의함을 겨냥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납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진노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축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진노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교회 안에는 축복만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성경을 보았지만 복음을 본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를 보고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가 진노를 받았습니다.

정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보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러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게 역사를 합니다. 하지만 누가 진노를 받고 있는가 하면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해서 하늘로부터 좇아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진노가 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불의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불의로 진리를 막은 것같이 이 시대 역시 똑같이 하고 있지만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잠언12:12절을 보겠습니다. (923)

악인은 불의의 이를 탐하나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하느니라

교회 안입니다.

성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악인이라는 말씀이 참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믿지를 않고 있는 사람을 악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지만 복음이 안 보이고 있습니다.

복음이 안 보이면 어떻게 됩니까?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이 율법이 무엇인가 하면 불의의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불의의 이를 탐했는가 하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질 정도로 불의의 이를 탐했지만 그들은 복음을 몰라서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이 불의의 이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방해하고 말았습니다.

악한 자입니다

성경을 보았으면 당연히 복음을 보고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가리는 율법의 행위를 보고 있습니다. 그것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가리고 있다는 것을 이스라엘도 몰랐고 이 시대 기독교인들도 역시 모르고 종교에 빠져 모두가 율법주의로 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 악합니까?

그들은 죄인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누가 악한 자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의 종교 안에 있으면 선하고 자기들의 종교 밖에 있으면 악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불의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두 가지의 의입니다

사람이 행하는 의가 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이루신 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루신 의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복음입니다. 우리가 의를 행하지 않았지만 의롭다 함을 얻게 하는 의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행하는 의는 다 불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성도로서 살아가는 행위들을 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사람의 이성에는 의로 보일지 몰라도 성경에서는 불의의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가 다 불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불의가 진리로 가는 길을 막고 있지만 사람들은 불의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불의입니다

그리고 의입니다. 의라고 할 때는 반드시 생명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의를 행하면 그것으로 생명을 얻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을 얻지 못하면 다 불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생명을 얻지 못하고 행하는 의는 다 불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불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리를 막고 있습니다.

악인은 이 불의의 이를 탐하면서 진리를 막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면서 진리를 막았습니다. 이 시대 역시 율법을 지키면서 진리를 막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불의의 이를 탐하면서 진리를 막고 있지만 도리어 불의의 이를 탐하는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누가 진리를 막습니까?

교회 안에서 불의의 이를 한 가지라도 탐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진리를 막고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면 진리를 막고 있는 악한 자라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22:11절을 보겠습니다. (422)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종말이 올 때에 까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불의를 하는 자가 회개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불의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합니다.

불의를 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이 회개를 해서 의를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이성으로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불의가 사람의 이성에는 의로 보이기 때문에 그대로 불의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이 불의가 사람의 이성에 불의라고 생각이 되면 당연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의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불의를 왜 그대로 하는가 하면 십일조를 내는 것이 성도로서 살아가는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는 것이 성도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것이 불의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보시기 바랍니다.

죽을 때가 되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도리어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불의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새벽기도도 잘 나가고 또 찬양도 은혜롭게 부르고 있습니다. 이제 은퇴도 했고 세상에서 별로 할 일도 없다 보니까 교회 안에서 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것이 의를 행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보면서 불의를 행하는 사람은 저 세상에 있는 사람이고 자기들은 의를 행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대로 아니 더욱 의를 행하기 위해서 불의를 행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진리를 막고 있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불의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의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모르면 불의를 행하면서도 자기가 의를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를 모르고 불의를 모르기 때문에 불의를 죽을 때까지 그대로 행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의를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의를 행하라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가 무슨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죄를 짓지 않고 선을 행하는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이 하나도 없다고 성경이 분명히 말씀하고 있지만 그것을 사람의 지식으로는 알고 있어도 자기에게는 적용을 안 시키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죄를 짓지 않고 선을 행하는 의인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의라고 하는 것이 다 의가 아니라 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없다고 말씀을 하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이 세상에 오셔서 죄가 없으신 분이고 선을 행하신 의로운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천주교에서 성인이라고 하는데 성인이 어디 있습니까? 그들 역시 죄를 짓지 않고 선을 행한 의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합니다.

행한다고 하니까 꼭 육체로만 행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으로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죄를 짓지 아니하시고 선을 행하신 것을 마음으로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있는 성도는 죽을 때까지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거룩한 성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불의를 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사는 자체가 불의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불의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이것을 모르면 죽을 때까지 불의를 그대로 행하다가 더러운 자가 되어서 진노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왜 진노를 받습니까?

그 불의가 진리를 막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그 불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그대로 불의를 행하면서도 그 불의로 도리어 부자가 되어서 그렇게 행하는 불의를 보고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라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불의와 진리를 깨닫지를 못하면 다 진노를 받습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보다보니까 진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불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불의로 인하여 진리를 막아서 진노를 받게 되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진노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진노를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정통이라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복음을 알고 들어서 믿고 있다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해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2:25절을 보겠습니다. (90)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마태복음5:4절을 보겠습니다. (5)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경견한 자입니다

그는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경건치 아니한 자는 위로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것을 마태복음에서 주님께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자는 위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건치 아니한 자는 위로를 기다리고 있지를 않고 있고 애통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애통한다고 하니까 교회 안에서 자기 육체의 죄를 고백하면서 눈물을 펑펑 흘리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애통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심령이 가난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가난한 것이 아니라 불의의 이로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해서 자기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교회 안에만 들어가서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애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가 없는 가난한 자입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알아야 심령이 가난해질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보니까 하나도 지키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성도만이 애통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고 성경에서 죄인이라고 하니까 애통하는 사람은 위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죄를 지었습니까?

그럼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만이 애통할 수 있고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저 육체적으로 지은 죄를 생각하면서 그 죄를 고백하는 것으로 위로를 받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으로 위로를 받을 수도 없고 주님이 위로도 해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믿지 않은 그 사람을 왜 위로해 줍니까?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경건한 자가 누구인가 하면 자기 죄를 알고 애통하는 자입니다. 내가 십계명을 보았습니다. 그 계명을 보고 어느 한 가지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아는 성도는 애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건치 않은 자입니다

자기 죄를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죄를 모르고 있으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말로는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실상은 믿지를 않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살인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자기가 우상을 숭배하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자기가 간음하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애통할 수 있는데 경건치 않고 불의를 행하는 자는 모르고 있습니다.

불의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불의를 모르면 자기가 경건한 자인가도 모르게 되고 죽을 때까지 그대로 불의를 행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 좇아오고 있지만 죽을 때까지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로마서1:19절을 보겠습니다. (240)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알 만한 일이 사람에게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환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불의를 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불의가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불의를 행하면서도 자기들이 의롭게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사람이 교회 안에서 하는 모든 일이 다 불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립니까?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까?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전도를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십일조와 정해진 헌금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 진심에서 한다 해도 역시 불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하나님을 알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담이 범죄를 했을 때 이 세상은 멸망을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그리고 노아 시대입니다

이 세상은 죄악이 관영하여 사람들의 생각이 항상 악함을 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류를 완전히 멸망을 시키지 않고 노이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스라엘도 진리를 찾고 공의를 구하는 자들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고 이방의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지혜가 있어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이 시대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다 해도 이 성경을 보고 누가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성경이 그것을 다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님을 삼년 반이나 쫓아다니면서 천국복음을 들었던 제자들도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자 모두가 이전에 자기가 하던 생업을 하려고 갔습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이 시대 지혜가 있어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누가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이 시대는 기독교인은 있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아주 극소수의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을 세상이 알고 있는가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이 시대 하나님을 알아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불의를 행하느라 모두가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게 성경을 통해서 보이시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이스라엘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마귀의 자식들이 되어서 율법에 빠져 있습니다.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 만한 것으로 우리 속에 보이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보다는 율법의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복음을 보아야 하는데 문자 그대로를 보면서 불의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2:10절을 보겠습니다. (265)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이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그가 이 세상에서 지혜가 있다 해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사람의 지식으로 보려고 하다가는 불의만 행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 시대 불의를 행하고 있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소경입니다

진리의 성경이 오시지 않으면 그가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해도 역시 소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신학 박사학위를 받고 세상에서는 모든 사람이 인정을 한다 해도 역시 그는 소경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없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경륜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았습니까?

계속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를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를 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아직 성령이 임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가 신학박사라 해도 소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십일조를 믿음으로 드립니까? 정신 나간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율법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 어떻게 믿음으로 드립니까? 주일을 믿음으로 지킵니까? 주일날도 율법이고 또 주일에 드려지고 있는 예배가 종교의 법에 의해서 그 형식대로 드리고 있는데 믿음이라는 말로 미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습니까?

율법을 모를까봐 말씀을 드립니다. 사람이 자기 육체로 행하면서 삼가 지키고 있다면 그것은 다 율법입니다. 그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하나님의 깊은 것을 깨달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아무리 믿음으로 한다 해도 성령을 받지 못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할례를 행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가 성령을 받았다는 말도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성경에서 복음을 볼 수도 없고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에게 절대로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저 종교인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는 불의를 그대로 행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야 합니다. 왜 성경에서 성령을 말씀하는 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성경을 보고 율법의 행위를 하게 되고 그것이 불의가 되어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령이 오시면 율법을 잘 지키고 심지어는 십일조를 낼 수 있는 믿음을 준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로우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믿지를 않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이셔야 볼 수 있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보이셨습니다.

성경을 보는 것으로 보이신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내 안에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성령이 오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사도 바울이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를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를 단 한 가지라도 하고 있다면 그는 성령이 아직 오시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불의를 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우리에게 보이셨는데도 불의를 행하고 있습니다. 왜 불의를 행하고 있는가 하면 사람의 이성에 이 불의가 옳기 때문에 불의를 행하면서도 죽을 때까지 그대로 불의를 행하다가 더러운 자가 되어서 진노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시편31:21절을 보겠습니다. (823)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 기이한 인자를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그 기이한 인자를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하나님의 사랑을 못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복음이 보여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되어야 하는데 복음을 못 보니까 그 기이한 인자를 못 보고 불의를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이 불의와의 싸움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사람의 이성에는 의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불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배가 부를 정도로 제사를 드렸지만 그것이 불의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지켰습니다. 소득의 십일조를 내고, 이레에 이틀을 금식했습니다. 지금으로 하면 소득의 십일조를 내고 매일 새벽 기도를 나가고, 매 주일날 예배를 드렸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 불의를 행합니까?

하나님의 그 기이한 인자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주시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고 있지만 그 의를 믿지를 못하니까 불의를 행하고 있습니다. 아니 말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불의를 행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사람이 알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지혜로 알 수 있다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무슨 세상의 공부를 하는 것으로 알고 이 시대는 박사 학위를 남발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공부를 해서 박사 학위를 따면 뭐 합니까? 하나님께서 복음을 안 보이시면 아무 것도 아닌 그저 이 세상에서 다른 박사를 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압니까?

누가 성경에서 감히 자기를 박사라고 했습니까? 사도 바울도 만삭 되지 못한 자기에게 보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신약 성경의 대부분을 기록한 사도 바울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기에게도 보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이심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는데 이 시대는 박사가 되어서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발 웃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박사는 개나 주라고 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목사들이 박사라고 가운에 세 줄을 그어 입고 강대상에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복음을 모르다보니까 불의를 행하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감성적입니다.

그 불의를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말로 미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까? 자기들이 어떻게 육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런 종교가 되어 있는데 모두가 그 종교의 포승에 묶여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늘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성경에서 복음을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보고 불의를 행하고 있습니다. 그 불의가 무엇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 불의로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는다는 것을 모르고 자기들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그럼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를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의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이 복음을 알고 있고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알 만한 것이 우리 속에 보이면 불의를 행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의에 대해서 보이신 성도는 겸손합니다. 누가 자기를 박사라고 합니까? 누가 자기를 의롭다 합니까? 아니 율법을 지키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이 복음이 보이지가 않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는 불의를 행하게 되어 있고 그 불의가 사람이 하고 있는 모든 행위라는 말씀입니다. next 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