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886강,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윤주만목사 2022. 3. 22. 07:17

 골로새서1:24-29절을 보면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교회.

사도 바울은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남편과 아내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골로새서에서는 그는 교회의 머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그리스도편지를 보시는 분들 중에서는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을까 염려를 해서 말씀을 합니다. 저는 무교회주의자가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은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어느 누구보다도 교회에 대해서 중요성을 느끼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팬데믹 상황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많은 국가에서 통제가 실시가 되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방역 수칙에 따라 예배를 비대면 예배로 하라는 정부 지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비대면 예배를 원하지 않고 있고 성경적으로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렇다고 해서 정부 방역수칙을 위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예배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배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제가 몰라서 하지 않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리고 코로나19에 걸리는 것 역시 전혀 두렵지도 않고 만약에 그런 일이 있어서 제가 죽는다 해도 그것 역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예배입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제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복음이 전파가 되고 그리스도의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제가 살아가고 있는 이 정부의 지침에 반대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공산주의국가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팬데믹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그때는 예배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할 수 있습니다. 설령 그 나라에서 저를 감옥에 가두고 제 믿음으로 인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해도 저는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까지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제가 60이 넘는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에 처음으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편지는 이제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에 대해서는 저는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를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한 것으로도 충분히 영생을 얻은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설교 말씀을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올려 드리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예배는 그렇게 급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제가 그리고 우리 성도님들이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리지만 저희는 건물도 없고 사무실도 없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사무실을 일요일만 빌려서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기 때문에 아니 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가능한 정부 방역수칙에 따라 예배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무실입니다. 

남의 사무실을 빌려 사용을 하고 있다고 해서 교회가 아니라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 보이는 사무실이나 건물이 교회가 아니라 성경적으로는 분명히 두 세 사람이 모여서 주의 만찬을 나누고 교제를 하는 것을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굳이 사무실이 지금은 필요치 않습니다. 

지금 정도의 모임이라면 사용하고 있는 사무실로도 충분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간적인 욕심은 조금도 없습니다. 물론 예배를 하는 성도들이 많아진다면 그때는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교회를 소홀히 생각합니까? 

저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셔서 사마리아 여자와 우물가에서 예배를 했습니다. 중동의 날씨가 어떠하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대 낮에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자와 단 둘이서 예배를 하면서 우리에게 예배가 무엇인가를 말씀을 해 주시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이제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있는 성도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궁궐보다도 더 귀한 것임을 우리 성도님들이라면 충분히 깨닫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세상의 것입니까? 

그런 것으로 어떻게 비교할 수 있습니까? 인생들의 이성적 판단으로는 교회라고 할 수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 태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믿고 있다면 교회는 어느 장소나 그리고 형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도가 있다는 그 자체로 그리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가 되고 있다는 것이 아름답다고 믿고 있습니다. 

 

건물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까?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를 시작하면서도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성도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하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교회라는 건물을 화려하게 짓고 있고 그 교회에 이름까지 붙여서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사도가 교회라는 건물을 짓고 그 이름을 지었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방의 종교는 성경을 너무 무시를 하고 있고 성경대로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이성적 생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왜 봅니까? 

성경에서도 말씀을 하지 않는 것을 인생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마음대로 하려고 하고 있다면 굳이 성경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그만이고 그저 이성적 지식에 따라 생활을 하면 된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성경에서 근거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도 이 성경대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선지자들을 감동을 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는 성경과는 전혀 다르게 하면서도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으로 자기들이 영생을 얻었다고 하고 있고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건물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이스라엘이 주님의 몸 된 성전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고 그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고 예언을 하셨고 로마에 의해서 실제 그렇게 되었고 지금은 아예 성전도 없습니다. 주님의 몸인 성전도 없애버리셨는데 교회라는 건물을 지으라고 하시겠습니까? 

 

물론 필요할 수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셔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믿어 영생을 얻는다면 그들이 모여서 교제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도 인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과연 그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었는가를 수많은 예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예표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과연 얼마나 믿는다고 했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아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던 적이 있었는가를 보시면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영생을 얻은 자 그러니까 진짜 성도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적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만 그렇게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들이나 사도들 역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너무도 소중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 교회를 통해서 복음이 전파가 되고 있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듣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은 자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교회를 통해서 복음이 전파가 되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저 역시 교회를 소중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24절,“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우리 이방에 복음을 전한 사도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많은 부분을 그가 기록을 했고 물론 하나님의 감동으로 성경이 기록이 되어 있지만 그는 우리 이방인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를 가장 정확하고 명쾌하게 성경을 기록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성경의 저자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의 사도로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입니다. 

로마 시대라는 특수한 환경적 배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은 헬라 사상을 기초로 하고 있고 헬라어를 사용을 해서 준비가 되어 있던 사도 바울로서는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고 이방인들이 그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방입니다. 

그가 얼마나 힘들게 복음을 전했는가를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이 편한 시대에 복음을 전하고 있는 저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하는 환경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글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당한 고난과 괴로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하면서도 사도 바울은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는 정말 자기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14:20절을 보면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고린도전서10:17절을 보면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교회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해서 정말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방의 종교는 교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지어 놓은 건물을 보고 교회라고 하고 있고 거기에다 이름까지 붙여서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교회에 대해서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의 몸 된 교회라고 말씀합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교회라고 하는 것이지 우리가 보는 건물을 보고 교회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말씀을 이방의 종교는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교회를 모르게 되면 결국에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의 몸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교회가 주님의 몸이고 우리가 다 하나라는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데 종교는 자기들이 지어 놓은 건물을 보고 교회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한 몸입니다. 

물론 영의 생명에 대해서 듣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깨달을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거듭난 우리 성도님들은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의 생명에 대해서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말씀으로 주님께서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입니다. 

떡을 드리는 것으로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생명이라는 의미에서 비유적으로 우리가 알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생명에 대해서 이방의 종교인들은 전혀 깨닫지를 못하니까 교회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영생을 얻는 성도입니다. 

그 생명이 바로 예수의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도 바로 우리 피조물들이 이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생명을 한 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을 그러니까 예수의 생명을 얻는 일에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를 채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얼마나 고생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육체적인 고통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고통도 많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사실 우리 인생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과 같은 삶이라면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사실 전하는 저 역시 누가 이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세상이라는 벽에 대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늘 받고 있습니다. 

 

초기 복음이 전해지던 때입니다.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육체적으로는 평안한 때라는 것을 저 역시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그리고 육체적으로도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자기 육체를 채워야 하는 것이라고 저 역시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들으면 그나마 좋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율법의 문제만 해도 우리 인생의 본성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저 역시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벽을 보고 하는 것과 같은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정말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만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말씀할 수 있습니다. 그런 스트레스가 저 역시 제 육체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본성과 다르게 말씀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라는 것을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아무리 강한 군대라도 이길 수 있다고 예언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 모든 선지자가 그렇게 말을 하는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혼자서 바벨론에 항복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매국노의 소리를 듣게 되어 있고 얼마나 힘들면 다시는 전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다시 또 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선지자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다 같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 같은 인생의 생각을 전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인생의 본성과는 다르게 말씀을 전하려고 하면 그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듣지를 않고 이상하게 생각을 하면 견디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말씀을 사도 바울이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를 채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입니다. 

우리 인생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입니다. 그 인생이 아무리 고난을 받는다 해도 우리는 참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 생명을 얻은 자이기 때문에 괴로움을 기뻐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믿고 있고 이 시대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그의 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생명을 얻는 성도들이 교회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생명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고 있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거듭나서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들만이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는 뜻을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25절,“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일꾼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그의 몸 된 교회의 일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 안에는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복음을 듣고 믿어 성령이 오심으로서 영생을 얻은 사람도 있고 이제 처음 들어와 복음을 듣기 시작한 사람도 있고 오랜 시간 복음을 들었지만 성령이 오시지 않고 이성적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가 어떤 위치에 있든 진리를 알기 위해서 듣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은 여러 가지 이유를 가지고 복음을 듣기도 한다는 것을 이제까지 경험을 통해서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이방의 많은 곳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새로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었고 그 일이 쉽지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과 같이 성경 전체가 있었던 때도 아니고 구약 성경을 가지고 인용을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한다는 것은 저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영생을 얻은 자입니다. 인간적으로는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는 준비된 자로서 이방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2:50절을 보면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왜 복음을 전합니까? 

사도 바울이 인간적으로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왜 복음을 전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 인생은 그림자라는 것을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참은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저 역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때로는 너무 힘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좀 쉬고 싶어도 컨디션이 조금 좋아지면 저도 모르게 설교를 쓰고 있는 제 자신을 보고 있고 그러면 또 너무도 피곤하고 온갖 통증에 시달리고 때로는 거의 모든 것을 놓다 시피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설교를 또 쓰는 것은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믿고 있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입니까? 

저 역시 영생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때로는 인간적으로는 쉬고 싶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다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감히 사도 바울과 비교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말씀을 하지만 이 시대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정말 한 사람이라도 영생을 얻는다면 그것으로 기쁘다고 믿고 있습니다.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이 안개와 같은 인생을 버려서라도 한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만 있다면 복음을 전하는 자의 육체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거듭난 성도만이 그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우리가 복음을 전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귀한 일이겠습니까? 

 

사도들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기 생명도 아까워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림자인 그 생명이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그것보다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구원을 받은 성도가 있는 것이 더 기쁜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사도들도 거의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지만 종교에 의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는가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참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은 자 되고 또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 가장 큰 기쁨으로 믿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영생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들었던 사람들이나 이 시대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성령을 보내주셔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고 있습니다. 

 

26절,“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로마서16:25-27절을 보면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영생입니다.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감취었던 것인가 하면 우리가 보는 구약 성경에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로마서를 마치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룹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비밀에 대해서 구약의 이스라엘이 몰랐었는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내시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시고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하늘에 올라가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감취었던 비밀을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피조물들에게 길을 보여 주시고 구속을 이루심으로 우리가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이제 영생을 얻은 자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7절,“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베드로전서1:3절을 보면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이방의 사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우리 이방에 큰 광명이 비취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는 그저 짐승과 같이 살다가 그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면 그것으로 끝인 인생이었는데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고 이방에 복음이 전파가 됨으로 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가 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소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비밀입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는 신약 성경을 보면서도 이 비밀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거듭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고 태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고 그저 영생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남입니다. 

반드시 우리 안에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두 번 나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니고데모에게 이 거듭나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방의 종교인들은 거듭나는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영광의 소망입니다. 

소망이라는 단어를 보고 그저 소망을 가졌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듭난 생명이 없으면 그는 절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거듭남에 대해서 성경은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피조물의 형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죄가 없으신 분으로 우리 죄를 대신 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방의 종교인들은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소망입니다. 

이 생명이 없이 소망이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영원한 생명도 없이 하나님께 로서 나지도 않은 그들이 소망을 가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28절,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베드로전서4:6절을 보면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생명입니다.

그저 생명이라는 단어를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해할 수도 없고 우리의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같은 생명이라고 단어를 같이 사용을 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생명이라는 것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는 믿고 있습니다. 

 

복음 전파입니다. 

사도 바울이 왜 복음을 전파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해서 생명을 얻는 자로 세우려 함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도 거의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죽은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은 자 되어 그 생명으로 하나님처럼 산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일이 영광의 소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완전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은 자기들을 완전한 자로 만들려고 하다가 모두가 망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복음이 전파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생명을 얻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움을 입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입니다.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흠이 없는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우리가 부요한 자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그저 종교적인 행위를 하면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교회의 일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는데 일꾼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데 있어서 일꾼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은 자 되어 소망을 가짐으로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9절,“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이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는 것을 위하여 그럼으로 영생을 얻게 함으로서 영광의 소망을 가지게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의 사도로서 정말 이 일을 위해서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자기 육체를 채웠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고 그가 전한 복음을 이 시대 우리 성도들이 듣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수고입니다. 

사도 바울의 수고입니다. 우리는 인간적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그를 이방의 사도로 세우셨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고 그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일을 했고 우리가 지금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