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885강,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

윤주만목사 2022. 3. 20. 10:02

창세기49:28-33절을 보면 

“이들은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라 이와 같이 그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 소유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

 

야곱,

우리는 그가 누군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할 정도로 야곱은 성경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나타내고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이스라엘이라는 뜻은 이긴 자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인생 야곱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야곱을 통해서 어떻게 영생을 얻는가를 깨달아야지 인생 야곱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 성경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를 하시고 또 구원을 해 주셨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우리는 야곱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다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야곱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야곱을 통해서 우리 인생들의 삶에 대해서 깨닫게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왜 장자인 에서를 버리시고 야곱을 사랑하셨는가를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것에 대해서 깨닫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이름을 주시고 그 이름을 따라 그 자손들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창세기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아브라함과 그리고 약속을 주신 이삭보다도 야곱에 대해서 더 많은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야곱은 우리가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중요한 예표로서의 인물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인생 야곱입니다.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장자의 비유로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가 어떻게 구원을 받아 생명을 얻은 자 되었는가를 아는 것이 곧 우리가 영생을 얻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입니다. 

그가 비록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가나안으로 왔지만 그는 그래도 인간적으로는 평탄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삭은 인간적으로는 가장 유복한 삶을 산 사람이라고 해도 틀리지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들에 비하면 야곱은 참으로 그의 고백과 같이 험악한 인생을 산 것으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인물입니다. 

우리는 그 인물들에게서 하나님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특히 야곱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를 구원해 주시는가를 알아야 하고 우리는 야곱과 같은 인생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부를 때도 그들의 연약함에 대해서 말씀할 때는 야곱아 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야곱을 말씀할 때는 구원이라는 말씀이 생각이 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도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연약함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들의 연약함을 예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렁이입니다.

그것이 땅 속에 있을 때는 그래도 어느 정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땅 속에 있어서 지렁이를 먹고 사는 동물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땅 속에서는 어느 정도 안전할 수 있는데 땅 밖으로 나오게 되면 지렁이는 아주 작은 곤충에게도 죽임을 당하고 먹이가 된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이 야곱을 통해서 우리 인생의 연약함에 대해서 아주 잘 나타내 주시고 있고 그래서 더욱 내가 너를 구원하셨다는 말씀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없지만 구원해 주시겠다는 말씀으로 두려워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 야곱 역시 선지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이라는 것을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믿음의 선진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었는가를 말씀을 하면서 우리도 동일한 믿음으로 영생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을 에베소서에서는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야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장자도 아니고 아버지의 사랑도 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왜 그가 장자가 되었는가를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정말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다 해서 얻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야곱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야곱에 대해서 말씀할 때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닫게 함으로 해서 우리 역시 야곱과 같은 지렁이 같은 인생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에서는 미워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에게 은혜가 되는 말씀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모든 조건으로 보아서는 에서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사랑하신다 하심으로 해서 우리도 야곱과 같은 인생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창세전에 예정이 되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구원을 받은 것을 성경에서는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창세기49장에서 그 아들들을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을 하고 있는 것이 믿음대로 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믿음의 선진들의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는 그 믿음의 증거를 받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의 아들들의 분량대로 축복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비록 이 축복이 야곱이라는 인생이 했을지라도 이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야곱입니다. 

열두 아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그 열두 아들들에게 이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야곱이라는 인생의 생각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비록 개인이 말을 했다고 해도 그것은 다 하나님의 감동이라는 것에 대한 기초를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그 아들들에게 축복을 하는 것과 같이 자기도 자기 아들들에게 축복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먼저 알아야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데 그 기초가 무너지니까 인생의 이성적 생각으로 성경을 보고 인생들은 그대로 따라 하려고 하고 있고 특히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8절,“이들은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라 이와 같이 그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축복입니다. 

사람들은 축복을 받는 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성경말씀을 보고 자기들도 그렇게 기도를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자기에게 좋게 말을 하는 기도를 받는 것을 좋아하고 있고 그런 기도를 해 달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종교 안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영의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을 했지만 비록 야곱이 이 축복을 했다고 해도 이것은 야곱이라는 인생이 하는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축복.

무릎을 꿇다, 축복하다, 복을 주다, 찬양하다. 등의 뜻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히브리어의 원어를 안다고 해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교인들이 이런 언어의 뜻을 이야기를 하면서 성경을 자기들 마음대로 억지로 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도리어 저주가 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야곱이 축복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이성적 생각으로 축복을 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하는 것이 무엇인가도 모르면서 인생의 이성으로 축복을 한다고 하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고 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알의 사상입니다. 

인생들은 축복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영의 일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자기들의 육체의 일로 축복을 받기를 원하고 있고 종교인들은 교인들에게 그런 육체의 일을 가지고 축복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도리어 불의의 삯이 되어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축복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말을 하는 사전적인 뜻의 축복으로 사람들에게 축복을 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전혀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축복입니까?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 축복인지도 모르고 그저 인생의 초등학문으로 축복을 한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을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게 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한다고 하면서 저주의 말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의 축복입니다. 

비유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그것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축복을 한다고 하는 것은 도리어 저주가 되고 있다는 것을 이스라엘도 깨닫지를 못했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깨닫지를 못해서 그저 세상의 좋은 말로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고 영생의 말씀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영생을 얻으면 그것이 축복이 되는 것이고 영생을 얻지 못하면 저주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종교인들은 이 세상의 온갖 것을 가지고 그저 이성적 지식으로 복을 받는 것으로 축복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0:16절을 보면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요한복음6:54절을 보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축복,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무엇이 축복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축복이라는 단어를 보고 그 단어를 인생의 이성적 지식으로 아는 것으로 축복이라는 말씀을 이해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인생들이 그저 축복이라면 좋아하고 있고 그래서 아무나 축복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면서 축복을 한다고 하고 그 축복을 받는 사람은 좋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인생의 언어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인생이 그 언어를 안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들이 안다고 하면서 이런 축복이라는 단어를 보고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축복을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축복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의 만찬에 참여를 하는 것이 축복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만찬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유월절을 먹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도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다 먹이셨다는 의미에서 축복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축복을 받고 싶습니까?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를 하고 떡을 떼어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를 하는 것이 축복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피를 마시고 그리스도의 살을 먹는 그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는 것이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시는 것이고 그것이 축복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의 말씀과 같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축복이라는 말씀입니다. 

 

기초입니다. 

축복에 대해서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는 기초적인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셔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하는가 하면 빌립과 나다나엘과 같이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는 것이 축복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복입니까? 

그것을 가지고 축복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종교는 그것을 축복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영생을 얻는 것을 축복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영생을 얻지 못하면 저주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바알 사상에 물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들의 본성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종교가 바알의 사상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그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종교인들이 이 세상의 것을 가지고 축복을 해 주면 기뻐하면서 그런 축복을 받는 것으로 종교에서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의 축복입니다. 

그것은 부자가 되는 것을 말하고 있고 그것을 축복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고 주님께서는 그렇게 부자가 되는 것을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축복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율법으로도 그리고 불의 삯으로도 받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생들은 세상에서 편하게 살기를 원하면서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고 종교인들은 그런 인생들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 축복을 해 주고 있지만 그것으로 부자가 되는 것이 어떠하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단 한 가지의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외에 어느 것도 우리에게 주시지 않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에 비유로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시는 것으로 그리고 자기들의 모든 것을 간섭하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8절을 보면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이방의 복입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감성을 가지고 마음대로 상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증거를 성경에서 얻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성경에도 없는 것을 자기들이 좋은 것은 좋다고 하면서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종교의 교리가 아닙니다. 성경말씀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 기초가 무엇인가 하면 성경에서 반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우리의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입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이방인들에게 무슨 복을 주신다고 하셨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얻고 그리고 사업이 잘 되고 하는 것으로 마치 하나님께서 축복을 하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그런 말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축복에 대해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종교인입니까? 

그가 축복을 하면 그대로 축복을 받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 그런 종교인들의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야곱이 그 아들들에게 축복을 했어도 그것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한 말씀이지 인생 야곱이 했다고 생각을 하면서 자기도 그렇게 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입니다. 

우리 이방인들이 무슨 복을 받는가를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 있습니까? 

거짓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 이방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떻게 복을 받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짐으로 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그가 무슨 복을 받았습니까? 그가 믿음의 조상으로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으로 얻음으로 해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자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복입니다. 

그 외에 어느 것도 우리 이방인들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시지도 않겠다고 하는 것을 주겠다고 하는 것은 그리고 축복을 하는 것은 곧 저주를 받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서4:7-8절을 보면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야곱입니다. 

그 아들들에게 축복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축복을 했는가 하면 그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 인생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께서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을 하신 것을 야곱이 그 아들들에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분량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축복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창세기49장의 말씀은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는 영생의 말씀을 하고 있다는 말씀으로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겨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은혜 받을 자에게 은혜를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분량대로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야곱이 그 아들들에게 영생에 대해서 축복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야곱은 선지자로서 믿음으로 그 아들들에게 축복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방인들은 그저 축복이라는 단어를 너무 좋아하고 있고 아무 것이나 복을 받으려고 하다가 저주를 자청하고 있습니다. 

 

29절,“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이성적인 표현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더욱 더 세상 초등학문에 빠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그것이 진리에 방해가 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창세기3:19절을 보면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돌아가리니. 

인생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보고 신체의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죽으면 그 신체가 어느 곳으로 가는 것으로 이 세상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를 믿던 안 믿던 거의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열조입니다. 

어디로 가 있습니까? 어느 특별한 장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 성경에서 그 열조가 어디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도 이런 말씀을 보면 사람들은 마음대로 상상을 하고 있고 그런 생각에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영생에 대해서 깨달을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담입니다. 

그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열조입니다. 

이상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야곱은 아담보다 더 대단한 사람입니까? 아니 아담과는 다른 사람입니까? 아담이 흙으로 돌아갔으면 야곱 역시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아브라함도 흙으로 돌아갔고 이삭도 흙으로 돌아갔고 그래서 야곱도 이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에 대해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는 이 영생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영생이라는 단어의 뜻을 아는 것으로 영원히 산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영생은 신체의 구원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종교가 되어 그것을 교리로 삼아 더 이상 성경을 보아도 소경이 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영생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가지고 있는 생명은 한번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나는 생명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양들로 얻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영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죽으면 반드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거듭나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0절,“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 소유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성경입니다. 

영생에 대해서 의미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이고 그는 영생에 대해서 깨달을 수 없고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헷 사람의 밭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밭을 사서 사라를 매장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삭과 리브가 역시 거기에 장사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제 이 땅이 좋은 땅이라고 해서 아니 영생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땅이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나안입니다.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 소유 매장지를 삼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그 땅의 소유를 사서 매장지로 삼은 땅입니다. 

 

천국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헤브론에 있는 땅을 사서 장사를 지냈는가 하면 그들은 죽어서도 그 땅에 묻히기를 바랬습니다. 그것이 어떤 샤머니즘이 아니라 그들은 그만큼 천국을 사모하면서 살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입니다. 

그가 그 열조가 묻힌 곳에 장사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야곱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요셉 역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가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서 그곳에 묻어 달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창세기 50장에서 보고 있습니다. 

 

소망입니다. 

그들에게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고 천국을 상징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은 이제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천국을 소망하는 마음을 지금 야곱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은 주님께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의 소망입니다. 

생명이 있는 성도는 늘 천국을 소망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야곱이 죽어가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조상 아브라함이 산 그 밭에 자기를 매장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천국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을 하시면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1절,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인생입니다.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가 어디에 묻히든 화장을 해서 티끌이 되어 사라지든 아무 상관이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매장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말씀은 그 믿음의 선진들이 천국을 소망하면서 그곳에 자기들이 매장이 되기를 원하는 소망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소망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역시 언젠가는 다 죽어야 하는 인생입니다. 죽으면 인생은 다 끝이 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 생명으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너무도 간절히 바라고 있는 믿음의 선진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렇게 기록하게 하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이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소망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죽으면서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다고 말씀을 하면서 나도 역시 그곳에 장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3절,“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

 

천국입니다. 

값으로 산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산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축복을 하고 난 후에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번역의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말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의미를 아는 것이 지혜롭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야곱입니다. 

그가 죽으면서 그 아들들을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축복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죽으면서까지 하나님 나라를 소망을 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님들 역시 야곱과 같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