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884강,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윤주만목사 2022. 3. 16. 09:19

마가복음16:14-18절을 보면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하시더라”

 

부활입니다. 

사람들은 이 부활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헬라어로도 깨어남, 부활, 일어남, 회복 등의 뜻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단어적인 뜻을 아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물론 우리 인생들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들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사실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우리 인생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유대인들과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아도 마치 서로 동문서답을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 차이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인생들이 잘 느끼지를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들에게 이성적 지식이 있고 그리고 언어가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언어로 성경에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니까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보고 아는 것은 창조된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저 우주 역시 창조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할 때는 그 창조된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난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이 그러니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으로 내려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지구 대기권만 벗어나도 전혀 다른 세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창조된 것에서도 그런데 창조에 속한 것과 창조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고 우리의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비유입니다. 

우리 육의 것을 가지고 영의 일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자기들이 그 단어의 언어를 안다고 하는 것으로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자기들의 상상력으로 성경을 보고 생각을 하고 있고 또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이 억지로 성경을 풀고 있습니다. 

 

억지입니다. 

그 말씀은 인생의 이성적 생각으로 성경을 풀어서 이야기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저 우주에 대해서 아는 것도 우주 비행사들이 대기권을 벗어나 갔다 온 것으로 해서 아는 것이지 사실 이 지구 안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창조에 속한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영생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성경을 그저 인생의 지식으로 그리고 언어를 아는 것으로 안다고 하는 그 자체가 모순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있는 아주 적은 지식으로 교만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인생입니다. 

그리고 저는 과학을 따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어려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종교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늘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말씀들이 많았고 그것을 어느 누구도 시원하게 해결해 주는 사람이 없이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고 있고 제가 믿는다고 하면서 행위를 잘 하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다고 칭찬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얼마나 무지한 일입니까? 

성경에서 영생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해서 증거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내게 대해서 증거를 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그때는 그런 말씀들이 전혀 기초가 되지 않았습니다. 

 

영생입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이야기를 했고 저는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그 안에서 생활을 하고 종교인들이 이야기를 하는 교리에 따라 행하는 것으로 잘 믿는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을 해 봅니다. 

그때 제가 얼마나 무지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인생으로는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보아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종교인들이 얼마나 많이 있고 성경말씀을 나름대로 보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들에게서 복음을 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물론 말 합니다.

그들은 지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믿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믿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저 주일이라고 하는 날에 예배에 잘 참석을 하고 있고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헌금을 잘 내고 하는 것으로 그들은 제가 믿음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고 마치 영생을 얻은 것으로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다 무슨 말입니까?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자기가 히브리어를 배우고 헬라어를 배웠다는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 그 뜻을 이야기를 해 주는 것으로 그리고 세상의 도덕적인 이야기를 이성적인 이야기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어입니다. 

이 언어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고 대대로 히브리어를 사용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했는가를 성경을 보면 모릅니까?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스스로가 자부를 하면서 살던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보내셔서 칭찬을 하지 않고 책망의 말씀만 했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이 히브리어를 몰라서 그 언어의 뜻을 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을 하지 않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을 행하고 말았습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실 때 그들이 언제 한번이라도 네 하고 대답을 하면서 들었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부활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씀도 그들이 아는 헬라어로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었을 것 같았으면 유대인들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이방인들입니다. 인생은 다 같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비교하기를 좋아하고 있고 또 자기들의 눈으로 그리고 이성적 지식으로 아는 것으로 서로 차별을 해서 보고 있고 그것으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피조물이 피조물을 보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이성적 지식이 있는 것으로 자기들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면서 마치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영생을 얻는가에 대해서 우리 지식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시고 있지만 이방의 종교는 그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삼위일체라는 성경에서도 증거를 하지 않는 신을 자기들이 마음으로 감동을 받는다고 하면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도 무시를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이 얼마나 교만한가를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어떻게 성경에서 증거를 하지 않는 것을 믿는다고 하고 있는지를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입니다. 

삼위일체라는 것을 비롯해서 온갖 세상의 것을 교회 안에 끌고 들어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절기가 폐하여졌다고 하는 그들이 새로운 세상의 절기를 만들어서 지키고 있는 이중성을 보이면서도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입니다. 

그들에게 성경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 보다 그들의 선진들이 세운 교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를 보더라도 성경이 굳이 필요가 없고 성경을 볼 필요도 없고 그들의 교리에 따라가면 믿음이 있다고 말을 하고 천국에 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14절,“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습니다. 

성경에서도 부활이라고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부활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방의 종교는 교리 자체가 신체의 부활을 주장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도 이 세상에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오신 신체로 부활을 하셨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리입니까? 

저는 그 교리를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주님께서는 분명히 영으로 부활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다시 살아나신 후에 제자들이 주님을 알아보지를 못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나타나사, 

계시하다, 알리다, 보여주다, 나타내다 등의 뜻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언어의 뜻을 보더라도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나타내 주셨다는 것으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종교에서 말을 하는 것과 같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신 그 신체로 다시 살으셨다면 굳이 이 표현의 언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21:14절을 보면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나타나사,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세 번째 나타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후에 사도 베드로가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하고 다른 제자들도 따라 갔는데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배 오른 편에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을 듣고 던지자 고기가 많아 들을 수 없을 정도 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세 번째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제자들이 알아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주님의 제자들은 지난 삼년 반 동안 주님과 동고동락을 하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자들입니다. 

지금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시고 계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도 주님인 줄 알고는 있지만 주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주님께서 나타내시는 형상이 주님께서 마리아의 몸을 입고 오신 그 육체를 나타내시고 계십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성경은 참으로 이상하게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제자들이 주님을 보고 주님인 줄은 알고 있지만 형상이 다르기 때문에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형체입니까?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종의 형체로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지금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보이시는 주님의 형체가 같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만약에 같다고 하는 사람은 문법도 모르는 정말 무식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지 않다는 의미에서 사도 요한이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들을 때는 분명히 주님이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형체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지금 제자들도 긴가민가하면서 감히 당신이 누구시냐고 묻지를 못하고 있다고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벌써 세 번째 주님을 보고 있지만 제자들은 그 세 번의 형체가 다 다르기 때문에 주님을 보고도 주님이신 것 같은데 감히 물을 수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체의 부활입니까? 

지금 이 상황이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 성경을 정말 이상하게 기록한 것 밖에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종교인들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뜻을 알기 보다는 자기들의 교리에 포승으로 묶여 꼼짝을 못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입니다. 

아마 주님께서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온 형체 그대로 부활을 하셨다면 아마도 쉽게 믿을 수 있었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복음서를 보아도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나타내시는 모습을 제자들이 보고 있지만 다 알아보지를 못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우리는 이 부활에 대해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는 자기들이 교리로 신체의 부활을 정해 놓고서 성경을 보는 사람들의 눈을 소경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만약에 신체의 부활이었다면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을 알아 봤을 것이고 그러면 주님께서 다시 살으신 일을 믿었을 것입니다. 

 

로마서11:25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부활입니다. 

제자들이 믿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우리는 지금 성경을 보고 그 문자를 보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너무도 당연하게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부활도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것과 종교인들이 믿는다고 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제자들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직접 보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서를 보면 알겠지만 주님께서 부활을 하시고 나타내실 때 제자들은 주님을 알아 보지를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부활을 하신 형체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제자들이 주님을 보고도 알아보지를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 역시 인생인지라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어도 그냥 흘려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사실 우리가 성경에서 보는 말씀과 당시 그 일을 직접 당하고 있는 제자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믿을 수 있습니까? 

당연히 믿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셨지만 제자들은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음이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마치 주님께서 굉장히 꾸짖으시는 것과 같이 우리가 성경을 보고 있지만 지금 마가는 당연한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믿음입니다.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제자들이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라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마치 제자들이 믿음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은 상태에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이고 제자들의 마음이 완악하다고 꾸짖었다는 말씀 역시 그런 의미에서 보아야 합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습니까? 그것이 안 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성이 율법주의에 있기 때문에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돌감람나무라고 하면서 찍어 참감람나무에 접붙이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오시기 전까지는 우리 인생은 다 완악해서 영의 일을 깨달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완악합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인생은 본성에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의 일을 깨달을 수 없고 부활에 대해서도 알 수 없고 주님께서 어떻게 부활을 하셨는지도 모르게 되어 있고 그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라는 것도 모르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영의 일을 믿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주님께서 영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것도 믿을 수 없고 주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 영으로 우리가 부활을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도 믿을 수 없습니다. 

 

잘 깨달아야 합니다.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 마가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보아도 잘 알고 있지만 오순절이 임하매 성령이 오시고 난 후부터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주님께서 살아나신 것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마가는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삼년 반 동안 유월절을 먹었다 해도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그 말씀에 대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성령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면서 아버지께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시면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너희도 나를 증거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자들도 우리와 같은 인생입니다. 그리고 사실 영의 일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야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다 완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15절,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베드로전서1:12절을 보면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4절은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의 제자들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15절은 주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시고 오순절이 임하매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그냥 아무나 전할 수 있습니까? 절대 아니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어야 성령이 오실 수 있고 그럼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14절의 말씀과 15절 부터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저 성경만 보고 믿지 않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을 하신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고 주님께서는 이제 오순절에 성령이 오실 것을 아시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입니다. 

제자들이 그 이전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보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는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볼 수 있고 베드로의 설교에 삼천명이 회개를 하는 역사가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말씀은 주님의 말씀과 같이 성령이 오신 후에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입니까? 

그것을 보고 복음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초등학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는 그 문자를 아는 것을 전하는 것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는 것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이 말씀을 하기 전에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남입니다. 

그리고 썩지 않고 더럽지 아니하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말씀을 하면서 하늘에 너희를 위하여 간직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영으로 그러니까 그 생명으로 우리가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말씀이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복음을 전하는 말씀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면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생명, 예수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을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성령이 오셔야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복음을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나가서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 이렇게 했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반드시 성령이 오신 성도만이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가 아무리 세상에서 신학적으로 공부를 많이 하고 박사 학위를 받고 모든 사람이 인정을 한다 해도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그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종교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16절,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제자들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지난 삼년 반 동안 유월절을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무교병을 먹었다는 말씀이며 그것은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믿지를 못하고 있지만 이제 성령이 오시면 그들이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17절을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디도서3:5절을 보면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복음을 전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령을 받음으로서 그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영생을 얻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후에 성령을 받고 전하면 듣고 믿는 사람 역시 성령을 받음으로서 주님의 말씀과 같이 성령으로 난 영이 거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심으로서 복음을 전하는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생명을 얻은 자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 세례입니다. 

복음을 듣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디도서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그저 종교 안에 들어가서 그들이 하는 행위를 따라하는 것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입니다. 

듣고 믿어야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는 복음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무교병을 먹이셨지만 그리고 그 제자들이 이방에 복음을 전하고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지만 이방의 종교는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의 행위에 다 빠지고 만 참담한 현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3:18절을 보면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복음입니다.

이 시대는 복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는 것이 복음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다른 복음이 무엇인가를 갈라디아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다른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는 믿지 않아서 다른 복음에 빠져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지 않는 자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씀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믿지 않는 자이고 진노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7절,“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디모데전서4:1절을 보면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믿는 자들입니다. 

우리 성도들을 믿는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믿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이런 표적이 따른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귀신을 좇아낸다고 말씀을 하니까 이상한 샤머니즘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당과 같은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누가 귀신이 들렸습니까? 

사도 바울이 그러나 성경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누군가 하면 바리새들과 같이 외식함으로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외식입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지키는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있는 성도는 그렇게 율법의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게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새로운 말씀을 전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귀신을 좇아냅니다. 

그 말씀은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게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직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은 성도들만이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율법주의가 그 말씀을 듣고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8절,“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하시더라”

 

로마서3:13절을 보면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인생들입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믿는 우리 성도들에게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한다는 말씀은 율법주의가 온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에 미혹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입니다. 

종교는 그리고 세상은 율법주의입니다. 우리 인생의 본성은 율법주의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아무리 율법주의가 강하다 해도 진리의 성령이 인도하심으로 해서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 역시 율법주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병든 사람입니다. 

이런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종교 안에서 병원을 차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병이 걸린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실제 육신의 병으로 생각을 하고 무당과 같은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심으로 우리가 믿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얻은 자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은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