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882강,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윤주만목사 2022. 3. 14. 15:22

이사야59:1-8절을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리대로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잔해를 잉태하여 죄악을 생산하며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그 짠 것으로는 옷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그 행위로는 자기를 가리울 수 없을 것이며 그 행위는 죄악의 행위라 그 손에는 강포한 행습이 있으며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사상은 죄악의 사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끼쳐졌으며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의 행하는 곳에는 공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그 자손들에게 언약을 하신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얻게 하시고 그들로 하나님의 백성을 삼아 믿게 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고 모세 오경을 통해서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애굽의 강한 군대에서 그리고 가나안 지경에 있는 백성들을 멸하게 하시고 그 땅을 차지하게 하셨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성경에서도 그렇게 문자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시대 역시 이스라엘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고 이방인들 역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이스라엘은 비유와 예표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물론 맞습니다.

그들을 택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하나님을 믿게 하신 것을 제가 틀리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것에 있어서는 비유와 예표지 그들이 진짜 하나님의 백성인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언제 하나님을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물론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늘 하나님을 믿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고 선지자들에게 그렇게 주장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입니까?

모세가 애굽에서 인도해서 광야라는 교회를 거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갈 때 그들이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히브리서에서 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저희가 믿지 아니함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장정만 60만 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저희의 다수가 믿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 시대입니까?

사무엘 시대에 그들이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역시 그들은 믿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무엘이라는 절대적인 사사가 있음으로 해서 그들이 듣는 것과 같이 했지만 역시 이방의 침략을 많이 받았고 또 사울 왕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윗 왕 때입니까?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이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역시 시편에서 그의 육과 영의 일을 함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대적이 얼마나 많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다윗 왕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백성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럼 선지자들의 때입니까?

어느 선지자가 와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잘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보내심으로서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칭찬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책망과 경계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을 믿은 적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는 어떠했습니까? 그들이 주님을 영접을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형체를 입고 자기 땅에 그러니까 이스라엘 땅에 오셨지만 그들은 영접을 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영접을 하지 않았는가 하면 그들은 어두움에 있어서 참 빛을 볼 수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우리 이방인들에게 경계와 예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보면 우리 이방인들이 어떻게 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으면 이방인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이 자기 조상들이 하나님을 잘 믿지 못했다는 선지자들의 말씀을 보고 그들은 잘못 믿었어도 우리는 잘 믿는다고 늘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방인들 역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어도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순진합니까?

성경을 보면 지금의 나를 너무도 쉽게 깨달을 수 있는데 인생들은 늘 자기만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성경을 보면서 그런 책망의 말씀을 보면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고 자기들이 생각을 하는 이단이라고 하는 곳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자기들은 하나님을 너무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래서 그 종교 안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을 하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종교 안에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들이 만약에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다면 성경을 절대로 그렇게 보지 않을 수 있는데 인생의 이성으로는 성경은 그렇게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이방의 종교인들 중에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물론 표면적으로는 그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표면적 유대인이 누군지 이면적 유대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저 좋은 것은 자기들에게 다 적용을 시키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입니다.

나쁜 의미의 말씀은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절대로 그렇게 보고 있지를 않습니다. 좋은 의미의 말씀은 자기들이 다 하고 있고 나쁜 의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심도 없는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들을 정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너무 좋은 쪽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인생의 이성적 지식으로는 성경이 다 그렇게 보이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책망을 하고 있는 모든 말씀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고 실제 그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은 같습니다.

다르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본성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는 본성이 같은 인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그 본성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종교적인 행위를 보면서 그 육체를 보고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도 사람입니다. 이방인입니다. 그들도 역시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 인생의 이성에는 생김새도 다르고 이성적 지식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다르게 보일지 몰라도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서 보면 마치 우리가 구더기를 보는 것과 같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더기입니다.

아마도 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는 어떻게 보이는가 하면 다 같이 보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피조물과 피조물 사이에서도 그렇게 보이는데 창조주께서 우리 피조물을 보시면 어떠하겠는가를 우리는 냉정하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시편에서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에 있어서 그러니까 사람의 이성적 생각에서 선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선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선에 있어서 우리 인생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치우쳤습니다.

그리고 다 더러운 자가 되었습니다. 구더기를 보면서 깨끗한데서 자라는 구더기를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 인생은 다 더러운 자라는 것을 성경에서 정의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구더기입니다.

우리가 보더라도 깨끗한데서 자라는 구더기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구더기가 더러운 곳에 있는 구더기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인생들은 자기들의 종교 안에서 하는 행위를 보면서 깨끗한 곳에 있는 구더기를 보면서 깨끗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1절,“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앗수르 시대에 있던 선지자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시 최강의 나라였던 앗수르에 의해서 북 이스라엘이 멸망을 당하고 있었고 그리고 히스기야 시대에 와서는 남 유다까지 침략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앗수르를 이길 수 있었지만 후에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비유와 예표로 해서 우리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런 선지자의 말씀을 보고도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 하면 육의 일로 생각을 하고 있었고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만으로 영생은 당연히 얻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주변 정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앗수르가 강대국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바벨론이 일어나고 그리고 메데와 바사 연합국이 일어나고 그 후에 헬라의 그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이 일어나고 강철제국이라고 하는 로마가 일어나는 것을 역사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 왕 솔로몬 왕 때에는 이스라엘이 당시 최강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음으로 해서 더 강한 나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었고 그래서 이스라엘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아니 디아스포라가 될 때까지 주변 약소국으로 살아가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단어는 다윗과 같은 왕이 오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는 구속의 일을 이루심으로 얻는다는 것을 이스라엘을 비유와 예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육의 일로 보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이사야 선지자는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지금까지도 다윗과 같은 왕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고 자기들의 나라가 육적으로 이 세상에서 최강대국이 되는 것을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의 육체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영의 일에 있어서 비유와 예표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약소국으로 곧 멸망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어느 정도 세계정세를 통해서 알고 있고 그런 가운데서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니까 그들은 육적으로 자기 나라가 강대국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 59장을 보면서 이방인들도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은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회개를 하라고 외치고 있고 교인들은 그저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무엇을 회개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주여 주여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고 회개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십니다.

그런데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다는 이 말씀을 보면서 늘 회개를 한다고 하면서 심지어는 죄를 생각나게 해 달라는 기도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귀가 어두워서 듣지 못하심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는데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주여 삼창을 하면서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교회가 떠나갈 듯이 소리를 내면서 회개를 한다고 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듣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다 듣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인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마치 듣지 못하는 것과 같이 아주 큰 소리를 내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혹시라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더욱 목소리를 크게 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성경에서 분명히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아주 큰 소리로 기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그런 것과 같이 반대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2절,“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내가 기도를 해야 합니까?

내가 큰 소리를 내서 기도를 해야 하나님께서 들으십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행위를 하는 것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도 통곡의 벽에서 그렇게 하고 있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회개를 하겠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의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국가 전체가 풍전등화와 같이 연약한 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국가의 존폐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우리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환상으로 보여 주시고 있고 우리에게 믿음으로 역사를 함으로 영생을 얻게 하시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피조물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단 한 가지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깨닫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자기들의 육의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벌레 같은 인생 그리고 구더기 같은 인생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개입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이스라엘을 통해서 비유와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눈이 감겨서 성경을 보고 있지만 영생의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7:23절을 보면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죄악입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악이라는 단어의 말씀을 보면서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세상에서 죄악을 행하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법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죄악이라는 말씀과 마태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불법은 같은 단어입니다. 물론 히브리어고 헬라어지만 그럴지라도 그 의미의 뜻이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죄악이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를 내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죄악을 행하고 있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도 이스라엘이 죄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세상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는 정말 문법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죄악을 행하고 있어서 하나님과 사이를 내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말씀입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죄악의 불법을 행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들에게 주님께서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죄악입니다.

그리고 불법입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믿지 않고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들이 종교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에게 믿지 않는 자들이라고 하면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죄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불법을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도 종교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선지자 노릇하고 있고 교인들이라고 하면서 주여 주여 부르짖으면서 구원을 원한다고 하면서 온갖 것을 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16:9절을 보면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성경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는 목적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보고 있고 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영생을 얻으라고 명령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죄입니까?

이 세상에서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까? 물론 세상에서는 국가법을 지키지 않으면 죄입니다. 제가 그것을 부정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 도덕적인 문제의 것을 가지고 죄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얻지 못하는 것을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주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는 성도가 영생을 얻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영으로 부활하심으로서 의로운 생명으로 하늘에 올라가셨는데 그 일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지 못하면 믿을 수 없고 그렇게 믿지 못해서 영생을 얻지 못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일에 대해서 전혀 증거를 받지 못하고 믿지를 않고 율법을 행위를 하는 그러니까 불법을 행하는 것으로 영생을 얻지 못해서 죄를 지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절,“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

 

이스라엘입니다.

지금 이사야 선지자는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육체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얻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영의 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거의 육체의 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손에 피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행위가 마치 손에 피를 묻히는 것과 같이 영생을 얻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손가락에 죄악에 더러워졌다는 말씀은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에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너희는 너희 아비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는 모든 율법의 행위가 더러워졌으며 그것은 마귀에 미혹을 당해서 거짓을 말하는 것이라는 말씀이고 주님께서는 또 바리새인들에게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을 비유로 해서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보면서도 이방인들 역시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4절,“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리대로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잔해를 잉태하여 죄악을 생산하며”

 

요한복음8:45절을 보면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공의입니다.

공평한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공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의를 아는 자가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리대로 판결하는 자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입니다.

그 문자를 보고 아는 율법입니다. 그것이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그것을 진리라고 주장을 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나는 육체로 판단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돌로 쳐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들이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이 육체의 일을 가지고 정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허망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지키고 있는 율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짓, 죄악입니다.

이미 앞에서 다 말씀을 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주님께서 그들이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하는 자들에게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면서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5절,“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마태복음23:33절을 보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독사입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주님께서 마태복음23장에서 율법주의자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일곱 번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그들에게 주님께서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러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에게 같은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이 바로 뱀들이고 독사의 새끼들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입니다.

율법을 안 지키는 교회가 있습니까? 그들은 말로는 참 잘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말을 하고 있고 자기들이 마치 율법을 안 지키는 것과 같이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거의 모든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종교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율법이라고 인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행위입니다.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으면 그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알고 지켰던 모르고 지켰든 율법의 행위 아래 있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그것은 인생들의 본성이라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기까지는 어쩔 수 없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마태복음23장의 말씀은 물론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 이 성경을 누가 보고 있는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이방인들이 이 성경을 보고 있고 그들과 같이 율법을 지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의 율법입니까?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의 율법의 행위가 누룩이 되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6절,“그 짠 것으로는 옷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그 행위로는 자기를 가리울 수 없을 것이며 그 행위는 죄악의 행위라 그 손에는 강포한 행습이 있으며”

 

잠언4:17절을 보면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심이니라”

 

옷입니다.

구원의 옷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지키는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행위입니다.

그것으로는 가릴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의 옷을 입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을 잠언에서 비유적으로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율법을 지키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술입니다.

진노의 포도주라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잠언에서는 강포의 술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그렇게 율법의 행위를 하게 함으로서 사람들이 사망의 길로 가게하고 있지만 인생의 본성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7절,“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사상은 죄악의 사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끼쳐졌으며”

 

잠언4:16절을 보면

“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아니하며”

 

율법입니다.

인생이 성경을 보면 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신 것과 같이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은 본성부터가 율법을 지키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게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사상은 죄악의 사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끼쳐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이 다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이 결국에는 파멸로 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그것을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악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믿지 않고 자기들이 지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언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단 한 가지라도 황폐와 파멸로 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율법을 지키는 일이 인생의 이성적 지식으로는 너무도 옳기 때문에 사람들은 종교 안에만 들어오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겠다고 마음으로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율법을 반포하자 그들은 무조건 자기들이 다 지켜 행하겠다고 하면서 맹세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 역시 성경을 보면서 그렇게 하고 있고 이 시대를 보더라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 종교인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 율법을 지키는 일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어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8절,“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의 행하는 곳에는 공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이사야9:6절을 보면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성경입니다.

주님께서 이 성경이 내게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이스라엘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만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평강의 왕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해서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진리의 성령이 오시지가 않아서 이 시대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평강의 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해서 파멸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진리의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은 자 되었음을 믿고 있습니다. end